마음의 눈
손 수 자
아직은 초가을인데 나는 벌써 겨울의 문턱에 서서 다가 올 추위를 생각하기 때문일까.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어느 문우와 집 앞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계곡 물소리가 들리느냐고 물었다. 그가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자 “그럼, 마음으로 들으세요.”라고 했다. ‘마음으로 물소리를 들으라니?’어처구니없는 내 주문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요즘은 마음 들여다보기를 자주 하다보니 툭 하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온다. 아름다운 마음의 눈에 대한 잔잔한 여운이 아직도 내 가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가 보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작년 여름이었다. 60대 중반의 낯선 부부가 남편의 친구 부부를 따라 우리 집에 왔다. 선글라스를 낀 노신사는 듬직한 체격에 인상이 퍽 좋았다. 그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내 역시 다감해 보였다. 그들은 집 안으로 들기 전에 집 주위부터 둘러본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다. 아직도 돌멩이가 나뒹굴고 있는 어수선한 뜰이 부끄럽지만 그들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마당이 좋기만 하단다.
모두 계곡 물가로 내려가는데 노신사는 집 발코니에 서서 산만 바라본다. 나는 그에게 함께 계곡으로 내려갈 것을 권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냥 서 있는 게 좋다고 하면서 사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관절염 환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집안으로 들어온 그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비로소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시력을 잃게 되었음을 스스로 밝히고는 신경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의 중역으로 있다가 작은 기업체를 운영하였다고 한다. IMF가 그분이라고 비켜갈 리가 없었다. 회사가 부도나고 빚에 쪼들리면서 건강도 악화되었다. 갑자기 앞이 잘 안 보여서 안과를 찾았을 때는 이미 시기를 놓친 후라고 했다. 녹내장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계곡이 좋다고 하면서 자랑삼아 말했던 내가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지팡이 대신 아내의 손을 잡고 숲속 길을 걷는 그를 시각장애인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을 듯했다. 아내와 함께 소나무를 안아보고 숲체험장 평상에 앉아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심호흡을 한다. 그는 주변 풍경에 대해 소곤소곤 설명해 주는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귀담아 들은 풍경을 마음속에 스케치 하고 물감을 입히면서 풍경화를 완성시켜 나가는 듯 그의 얼굴엔 만족감이 번지는 듯 했다.
폭포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우렁찬 물소리에 감탄했다. 가슴 속이 후련하다고 한다. 그는 어쩌면 가슴 속에 응어리진 내보이지 않던 한을 이곳에 모두 토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명상에 잠긴 듯 한동안 서서 물소리를 듣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찡한 연민을 느꼈다.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중에도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소리에 감동하고, 새소리에 즐거워하며, 깊은 숨 들이쉬고는 솔향기에 취했다. 소년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자기가 그린 마음속의 풍경을 말할 때에는 그의 묘사력에 놀라워했다. 물소리로 계곡의 깊이와 물의 양을 가늠하고, 코에 스치는 향기로 나무와 풀꽃을 이야기 했다. 볼 수 없는 눈으로 환희 보는 듯 주변 환경을 말하는 그는 마음의 눈으로 생생하게 보며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눈이었다.
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무렵부터 밤이 깊도록 숯불 바비큐에 술잔을 돌리면서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했다. 예기치 않게 닥친 절망스런 삶을 희망적인 삶으로 전환시킨 노부부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시력을 잃은 남편과 자녀들을 다독거리며 살림을 꾸려온 그의 부인이 존경스러웠다. 일거수일투족 남편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온 부인은 오로지 남편이 오래도록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앞을 못 보면서도 감각적으로 아내를 챙기는 노신사! 노부부의 곱고 깊은 사랑을 부러워하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성전계곡은 여름철이 되면 피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조용하던 우리 집도 예외일 수 없다. 찾아오는 친지들을 맞고 보내느라 여념이 없다. 다락방을 포함하여 겨우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서 복닥거리노라면 불편함도 있지만 모처럼 만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때로는 친지를 따라 온 낯선 손님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도 몇 시간을 함께 지내면 오랜 지기처럼 스스럼없는 관계가 된다.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순수하기 때문이리라. 그 낯선 노부부가 그랬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데 아직도 오지 않는다. 그때, 아침상에 올린 곰치라는 생선탕을 다시 먹고 싶어서라도 꼭 오겠다고 했었다.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오고 싶은데 못 올 처지라면 서로 마음만 아플 것 같아서다.
많은 사람들이 계곡을 찾지만 자연에서 무엇을 느끼고 터득 할까? 보면서도 못 느끼는 눈보다 못 보면서도 느끼는 눈, 자연을 가슴에 품어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의 눈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마음으로 보는 눈, 마음으로 만나는 가슴.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아 있는 그 부부의 사랑과 삶이 나의 성성한 가슴에 군불을 지펴준다. (2009.9.)
첫댓글 시각 장애인의 삶을 생각하니 아직 살아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건강했던 것은 신의 은총이겠지요.
예, 돌이켜 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건강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