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에는 저의 역사의 지식이 없어 여러 자료를 보며 씁니다.
그러므로 한번에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 공부하면서 기록하려 합니다.
이 "육군 훈련소가"가 언제 나온 것 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던 1969년때의 가사와 조금 다르다.
"웅장한 황산벌에 연무대 높이 섰고" 라는 귀절을 당시에는
"웅장한 호남무대 높이 우럴어 솟고" 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의 "육군 훈련소"는 "제 2훈련소" 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점점 없어질것이다.
그래서 "제 2훈련소"가 아닌 "육군훈련소"가 원본이 될것이다.
찬바람이 솔솔부는 논산의 훈련소.
오늘도 아침부터 구보를 하네.
도라지 위스키는 생각치도 않치만
막걸리 대폿잔이 그립습니다.
찬밥을 먹고나니 만만한게 훈련병,
모여라 헤쳐라로 해를 보내고
불쌍한 훈련병의 엎드려 뻗친 그 모습
사랑하는 애인에게 보이고 싶소.
단잠을 자다가도 기상하면 일어나
비오는 연병장을 구보합니다.
언제 지은 원수라고 요다지도 때립니까
정말이지 밤잠이나 자게 해주소.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각개전투 삼단계라오.
높은 포복 낮은 포복 팔굽까진 이 모습
사랑하는 부모님께 보이고 싶소.
오늘은 사격장에 사격대회 열렸는데
깜장판만 왔다 갔다 불합격일세.
방아쇠 1 2단에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다음부턴 특등사수가 되겠습니다.
라랄라 랄라랄라 랄라랄라 랄라라
오늘은 취사장에 돼지를 잡네.
왕건이는 간데없고 국물만 남았구나.
홀짝홀짝 마시고 나니 덜그럭 빈 깡통.
이 노래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당시 선임하사였던 "임한재"하사가 부른 노래다.
이 노래도 이제는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듯하다
또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사가 추가 되어 있다.
"오늘은 점호시간 병기검사하는데
약실수입 불량으로 기합을 받네
점호사관 하신 말씀 영자 약실 이렇더냐
아닙니다 영자 약실 A급입니다."
문서화되지 않은 모든 이야기는 이렇게 달라지거나 사라지고 엉뚱한 이야기가 남을 뿐이다.
하물며 우리의 역사는 어떠할까?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그대로 머리속에 각인시키고 자란다.
만일 그 배운 역사가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옛부터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記錄)"이라 했다.
패자(敗者)는 그 기록이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록돼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서(歷史書)가 이렇게 잘못되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고대(古代)역사인 고구려, 백제, 신라가 최초로 문서화 된 것은 서기 1145년에 "김부식"(金富軾)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다.
그리고 이보다 늦게 "일연"(一然)이 1276년 ~1281년에 쓴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백제의 건국(建國)후 무려 천여년이나 후에 씌어진 것이다.
물론 그가 생각나는대로 쓴 것은 아닐것이다.
당시에 있었던 자료를 바탕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료는 지금 볼 수가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쓰면서 어떻게 바꿔 썼던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일연(一然)이 그 후에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와도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어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또 있다.
일제(日制)가 1910년부터 우리나라 "역사서적"(歷史書籍) 20여만권을 수거하여 소각(燒却)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역사서적"(歷史書籍)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말이 20만권이지 엄청난 숫자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그대로 남겨놨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두 가지 책은 남겨두다니,,,,,,
이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무관하지 않을듯 하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도네리 친왕"(舎人親王)이 서기720년 경에 만든 역사서(歷史書)다.
삼국사기(三國史記)보다 425년이나 앞서 만들었다.
이는 백제가 멸망(660년)한지 얼마 안된 때이다.
그러나 이 "일본서기"는 1467년에 일어 난 "오닌의 난"(應仁の亂)때 소실됐다고 한다.
현재의 "서기"는 1669년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원래의 "서기"도 왜곡투성이인데 나중에 새로 만들어진 것은 오죽할까?
일본에 유리하도록 왜곡하여 썼다고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서기"에 백제와 신라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백제 4세기 근초고왕(近肖古王)과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부터라고 한다.
백제와 신라 초기 400년 역사는 기록돼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그 공백인 4세기 때에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제기한다.
즉 "일본 서기"가 공백이 아니라 그때는 한반도 남쪽에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옛날 학창시절에 역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중국의 역사쓰는 방법은 싸움에 비긴 것은 중국이 이긴 것으로 기술한다고 한다.
일본은 이보다 한걸음 앞서 없던 것도 만들어 내는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서"가 미흡하다고 이 "일본서기"를 믿는 우리나라 학자가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