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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먼저 가려다가 30년 먼저 간다.
삼계열뇌三界熱腦가 유여화택猶如火宅하니
기인엄류其忍淹留하여 감수장고甘受長苦아
삼계의 열뇌함이 비유컨대 불난 잡과 같으니
그것을 참고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
고려말의 보조 스님이 지으신
《수심결》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입니다.
삼계라 함은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이 우주전체란 곧 우리들 각자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우주도 있고,
지구도 있고,
태양도,
달도,
별도,
처자권속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마치 불난 집처럼 아우성인 것은
우리의 마음에 불꽃이 튀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뇌熱腦라는 것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상태로,
이는 마음속에서 번뇌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여러 면에서 보조 스님이 생존하시던
고려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변한 세상이지만
깨닫지 못한 범부 중생들에게는
부처님 당시도 괴로운 세상이요,
보조 스님이 살아계시던 6백 년 전도 괴로운 세상,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은 세상인데,
보고 듣는 것들이 모두 병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많으니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웬만한 집안에는 다 들여놓을 수도 없고
웬만한 마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기집 안방에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어도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없고,
도시 사람들은 출퇴근 길에 생명을 내걸고
전철이나 버스에 매달려야 하고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교통사고로 황천길을 가는 세상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난 집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보조 스님이 고려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 사회를 보시고 한 말씀하신다면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역시 화택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불난 집보다 더 어수선하고,
두렵고 괴로운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통사로를 당하거나,
전쟁에 폭격을 당하는 것은 순간적이지만
불난 집 속에 갇혀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불길과
연기에 숨이 컥컥 막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불난 집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불난 집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한 집 건너 한 사람 꼴로 교통사고를 당해
불구자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가족이 생긴다고는 할 순 없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장애자 혹은 사망이니
그래도 이러한 재앙이 남의 일이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운전은 무엇이 합니까?
손과 발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손과 발은 하나의 심부름꾼일 뿐이고,
손과 발은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사실은 마음이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달아올라 있으니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고속도로에 이런 팻말이 있습니다.
“3분 먼저 가려다가 30년 먼저 간다.”
참으로 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표지를 보면서도
과속으로 질주하는 사람들은 30년 먼저 가려고 작정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럴 작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뭔지 자신도 모르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있어서
마치 불을 찾아 날아드는 불나비처럼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교통사고만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모든 분야에서 너무나 달아올라 있습니다.
좀 더 냉정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무작정 대학,
그것도 일류대학만 보내야 된다는 생각은
무모하기 그지없는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독이 되는 세 가지 중에 어리석은 마음을 드신 것입니다.
때로는 이 어리석은 마음이 자녀를 범죄인으로 만들고
정신병자로 만들어서 영원히 인생의 낙오자가 되게 합니다.
부모 자신의 과거에 남보다 못 배웠다거나
없이 살아서 괄시받던 일을 생각하고,
내 자식만은 어떻게든 무조건 출세를 시켜야겠다는 열등감에서
교육열이라는 탈을 쓰고 부모들의 마음속에 독이 되어
활활 타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선시대의 설화입니다.
금강산 돈도암이란 암자에 수십 년 동안 수도를 하여
곧 견성을 하게 된 홍도란 스님이 있었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에 화택의 비유가 있습니다.
옛날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 장자의 집은 크고 넓은 저택이었으나 아주 오래된 집이었습니다.
어느 날 장자가 외출을 했는데 그 사이에 집에 물이 났습니다.
장자는 돌아와서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달려가 보니
아직도 불난 집안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천진스럽게 놀고 있었습니다.
무슨 놀이를 하는 지 불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노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자가 아이들에게 불이 났으니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며 놀이에만 정신을 쏟았습니다.
아이들은 불의 위험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자는 안되겠다 싶어 꾀를 냈습니다.
평소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던 것이 수레였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를 아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얘들아,
여기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있으니 어서 나와서 타고 놀아라.”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때서야 불난 집안의 아이들은
얼씨구 좋구나 하고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무사히 그 불 난 집에서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평소에 바라던
양수레, 사슴수레, 소수레 대신에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이들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하얀 소가 끄는 큰 수리를 준비하여 두었던 것입니다.
장자는 아이들에게 흰소가 끄는 장엄한 수레를 선사하였는데
아이들은 아무도 그들이 바라던
양수레, 사슴수레, 소수레가 아니라고 불평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바라던 것보다
더 훌륭한 선물이었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화택삼거라는 유명한 비유로,
부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불아,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세간의 아버지가 되느니라.
그러므로 삼계화택 속에서
나서 늙고 병들고 죽으며, 슬퍼하고 고통받고 고뇌하며
어리석고 암둔한 중생들을 삼독의 불에서 제도하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설하느니라.”
그런데 이 삼계화택三界火宅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탐貪심과 진瞋심과 치癡심이 땔감이 되어서
타오르는 불길이 만든 세상입니다.
장자가 아이들에게 선물한 흰 소가 끄는 수레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마음입니다.
본래 마음,
깨끗한 마음,
삼독에 물들지 않는 마음,
번뇌의 불꽃이 조금도 연기를 내지 않는 마음 -
이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영원히 변치 않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참된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불을 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그 어떤 소원보다도 값진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06월 14일 오전 06:35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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