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Italy)(화산폭발로 잊혀졌던 폼페이)
이탈리아 반도의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BC 7세기경 이곳에 문명을 전개한
그리스인이나 에트루리아인의 문화유산이 현제도 많이 남아있다.
이탈리아의 모든 지역이 로메제국의 역사 유적이므로 어디를 가든지
기독교의 수많은 교회들이 남아 있다.
특히 로마는 하나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도시 자체가 유적들로 가득하다.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와 20,000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의 도시이다.
베수비오는 26일간 폭발하여 폼페이를 완전히 화산재 속에 묻어버렸다.
폭발 이전에 몇차레 경고를 하였지만 시민들은 그것을 듣지 않았고,
한 순간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이집트의 미이라와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폼페이는 로마제국도시 중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에게 인기높은 리조트 도시였고 농업,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문화와 예술, 건축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로마(Rome)(콜로세움, Colosseum)
기원전 735년 로물루스가 팔라띠노 언덕에 양치는 목동들과 함께 세웠다는 로마는
후에 거대한 로마제국의 중심이 되어 힘으로, 예술로, 종교로 세계를 지배하여다.
오늘날의 로마는 고대와 현대가 함께 숨쉬는 곳,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역사를 증언하는 박물관,
고대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고대의 영웅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초대 기독교의 증인들이 참 신앙의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는 곳,
르네상스와 바로코의 걸작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콜로세움은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다.
네로의 궁전 뜰에 있던 인공 연못에 AD72년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으로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 등이 개최되었다.
고대 로마 유적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다.
카타콤 입구(Catacombe)
로마인의 지하무덤으로 기독교 공인 전에 그리스도 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지하교회나 무덤을 카타콤이라 부른다.
이 장소는 16-19세기에 걸쳐 재발견되었으며,
귀족 가문의 소유였던 지하 매장실로부터 여러 층으로 된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카타콤 중 로마 부근의 것은 지하통로의 길이가 500Km 이상 되기도 한다.
또한 카타콤에는 원시 기독교 예술의 귀중한 재산이 되고 있는 조각, 그림, 형상들이 있다.
아피아 거리에 있는 성 칼리스토의 카타콤이 가장 유명하다.
바울의 로마 선교(하늘 계단 교회)
바울이 그토록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당시 로마 제국의 중심도시 로마,
결국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서 2년 여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게 된다.
하늘계단교회는 바울이 로마에 와서 갇혔던 감옥에 세워졌으며
감옥은 이 교회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행 28: 30- 31)
바울이 갇혔던 감옥(Mamertum)
사도 바울은 처음 로마로 압송되어 마메르툼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사진의 밑에 보이는 글씨는 이 감옥에 갇혔던 죄수들의 명단인데
사도바울과 베드로의 이름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위험인물도 아니고 또 로마시민권도 가지고 있음을 알고는
군인 하나로 하여금 감시하게 하고 그를 풀어주었다.
바울은 셋방을 얻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을 그렇게 했으나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티칸(Vatican)(베드로 대성당)
바티칸은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의 언덕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며,
이탈리아 로마 시내 테베레강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베드로 대성당과 그 주변 및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
로마 동남쪽 120Km 지점에 있는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가 바티칸 영토이다.
규모는 작지만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으며,
매년 세계에서 몰려드는 가톨릭 신자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베드로 성당의기원은 큰스탄티누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스탄티누스 당시에는 황제 난립 시대로 6명의 황제들이 있었다.
그중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가장 강력했는데,
그들은 312년 10월 28일 로마의 밀비오 다리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싸움에서 큰스탄티누스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도움으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약속했던 일, 즉 승리 후 그의 모친 헬라나 황후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공경해 오던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무덤 위에 대 성당을 건축할 것을 공포한다.
이렇게 베드로 성당은 32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49년에 완공되었다.
16세기 이 성당의 증축 재정 확보를 위한 면죄부 판매가 종교개혁의 한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 중심지가 된 로마(압비오 가도, Foro Appio)
바울 사도가 로마에 가기를 그토록 원했던 이유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과 같이
당시 로마가 세계 중심지여서 로마 복음화는 곧 세계의 복음화로 이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 당시 순교하였으나 그로부터 200 여년이 지난 AD 313년에
큰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었고 기독교 중심지가 되었다.
압비오는 고대 로마의 도로 중 가장 유명한 도로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이 도로로부터 나온 말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오던 그 길의 대부분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거기서 황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행 28:14-15)
사도바울 교회
사도 바울이 로마에 와서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네로에게 재판을 받고 순교한 시기는
AD 64-67년 사이라고 추정된다.
바울이 순교한 곳은 당시 로마 근교의 사형집행장으로 사용되었던 아쿠에살비에 지역으로,
현재의 트레폰타네 지역(지금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들어섰음)에 해당되는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울이 처형당한 직후 그의 시신은 당시 열렬한 신자였고
사도를 따르던 루치나 부인 가문의 소유지에 묻혔다고 한다.
그후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과 함께 비밀리에 관리해 오다가,
AD313년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후에 무덤 위에 대성당을 지었던 것이다.
그후 386년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던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확장되어
지금까지 1600여년 동안 그 규모대로 이어오교 있다.
라테란 성(The Lateran Palace)(사도 요한 교회)
" 이 도시와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가 되는 가장 거룩한 라테란 교회"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 교회는 AD312년 큰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에 의하여 로마에서 최초로 세워졌다.
AD313년부터 1377년 아비뇽의 유수에서 돌아와 바티칸 궁을 새로운 교황청으로 삼기까지
1,000년 이상 교황이 거주하는 교황청의 역할을 했던 유서깊은 교회이기도 하다.
제네바
제네바는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국제적십자 본부와 국제연합 유럽본부 등 주요 국제기관이 위치해 있다.
따라서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각종 국제 회의가 자주 개최되며
프랑스에 인접해 있는 인구 16만의 작고 아담한 곳으로 해발 375m이다.
프랑스 어권의 대표도시이며, 문화적 도시로
경관이 수려한 레만호, 명소와 사적들도 풍부한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또한 레만호의 서쪽, 론 강이 지중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는 추리히와 제네바에서 쯔빙글리와 칼빈이 각각 중심이 되어
개신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레만 호수
총 길이 72Km로 서유럽의 최대호임을 자랑하는 레만 호수는 스위스 남서쪽 프랑스와 국경을 두고,
알프스 몽블랑의 만년설의 녹아 내린 물을 받아 제네바의 넉넉한 젖줄이 되고 있다.
레만호에는 140m의 제또분수가 제네바의 상징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 때 한강에 202m까지 뿜는 이동식 월드컵 분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분수였다.
몽블랑(Mont Blance)
몽블랑의 등정은 특별한 어려움을 요하지 않으며 오랜 경험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지에 숙달되지 않은 관광객은 고산병을 조심해야 한다.
더구나 이러한 고산지대에서는 눈보라가 무엇보다도 가공할 만한 대상이다.
쾌청한 날씨라도 털옷과 선글라스를 준비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오르는 로프웨이 전망대가 있는
에기유뒤 미디(정오의 봉우리라는 뜻)까지 쉽게 갈 수있다;
첫번째 구간은 에기유의 평지(2,309m)에 이르며(6분소요), 거기서 로프웨이를 바꿔타고
구름다리로 연결된 두 개의 봉우리를 포함하는 '정오의 봉우리'까지 5분만에 오르게 된다.
로프웨이의 플렛폼을 빠져 나오면 60m되는 수직 승강기를 타고 정상 지점에 오르게 된다.
정상의 높이는 해발 3,842m이며
정상에서 몽블랑의 계곡과 암벽 전체에 펼쳐지는 일대 장관을 볼 수있다.
취리히 그로스 뮌스터 교회(Gross Munster Church)
2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도시 취리히는 스위스 최대의 도시이며 독일어권 대표지역이다.
도시 전체가 공원으로 꾸며진 듯한 매우 평온한 인상을 주지만 관광지로보다는
13세기 이래 자유시로 발전해 온 상공업 도시로 더 잘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쯔빙글리(Zwingli)는 이곳을 무대로 종교개혁을 펼쳤으며
'가난한 사람에게 교육을' 호소하여 스위스 국민의 정신적인 기둥이 된
18세기의 교육자 페스탈로치가 이곳 태생이기도 하다.
쯔빙글리가 목회하며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그로스뮌스터교회는
프랑크 카롤랭 왕조가 그 기원인 것으로 추측되며,
특이한 상둥이 첨탑이 있는 취리히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제네바의 칼빈(Calvin of Geneva)
칼빈의 종교개혁은 제네바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스타라스버그로 가기 위해 제네바를 경유하려던 칼빈은 제네바의 지도자 파렐을 만나
그와 함께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개혁은 곧 제네바 시의 개혁이었다.
'기독교 강요'와 같은 걸작을 남긴 신학자로서 칼빈의 업적도 대단하지만
교육과 가정, 시의회 등을 통해서 신앙을 생활과 사회에 정착시키려던
그의 노력도 길이 남을 만한 것이었다.
말년에 제네바의 시민권을 획득했던 칼빈은 결국 제네바에서 일생을 마쳐
영원한 제네바 시민으로 남게 되었다.
칼빈의 사상은 제네바 아카데미에 유학했던 학생들에 의해 전유럽으로 확산되었고
특히 네델란드와 영국 스콜틀렌드에서는 칼빈파의 장로교회가 공고히 성립되었다.
칼빈이 목회했던 성 피에르 대성당(Cathedrale St-Pierre)
12-13세기에 지어져 1536년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사용된 이 성당은
18세기에 화려한 신그리스풍의 외양으로 바뀌었다.
1535년 8월8일 주일에 일단의 종교개혁 추종자들이 이 교회를 쳐들어가 점령하였다.
이때 카톨릭 신부들은 도망하였고, 이후 이 교회는 개신교의 교회로 전환되었다.
1541년 파렐에 의해 제네바로 초청되어 온 그는 20년 이상 이 교회에서 설교했다.
이곳은 칼빈이 종교개혁과 경제적 절약 및 근로를 역설하던 곳이다.
인간의 구원은 신의 주권에 있다는 예정설을 세우고
신자는 자기의 구제를 확신하고 세속의 직업을 열심히 종사할 것을 권고한다.
이러한 칼빈의 교리는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산계급으로부터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의 노력으로 제네바는 모범적인 종교개혁의 도시로 변모하였다.
파리 개선문(Paris)
파리는 2,0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전체의 중요한 교통망의 교차점에 있어 성장을 계속해 왔다.
파리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무수히 많은 건축물 및 기념물, 박물관, 초현대적인 패션 및 예술등이 어우러져 있는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사크레쾨르 성당(Sacr'e Coeur)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한국명으로는 성심성당이라고 한다.
자료: 기독교 문화탐사 성지순례(교회신문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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