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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未來를 알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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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학의 한마디~!
상담(四柱, 對人關係 등)은
내담자 등 자신이 스스로 자기 運
(자기 삶의 예측) 등을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김형학이는
당신에게 메타포를 주기만 하지요~
敎示的으로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 그 길을 찾게 하는 것이지요~
이 글을 知人들과 共有하면
自利利他요, 그 知人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고통스러울 때
더욱 그렇습니다.
☀數萬 가지의 未來를 알고자 하는
學文과 方法과 傳言이
古代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들 중 運七氣三이라는 말 등과 통하는
사주명리학은
♣命(사주팔자)으로 個人의 그릇을 보고
運(大運, 歲運, 月운,日운,時운)을 통하여
때를 알아 進退 始期를 分別하는데
필요하고요,
☀命運은
必然的이고 超越的인 힘을 뜻하는데요.
☀運이란
變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變하는 理致도
이미 定해진 궤도를 따르는 필연적인 科程이랍니다.
☀따라서
凶한 것은 피하고 吉한 것을 取하는 방법은
없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여기서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未來를 모를 때 不安해지고
각종 마음의 病과 肉體의 病을 얻게 되는데요
하긴 이것도 자기 運命이지만,
그래도未來를 알면
觀點과 생각과 마음을 바꿀 수 있기를
단지 바랄 뿐이지요.
(一切唯心造)
예를 들어
사주팔자에 비가 온다면
비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피할 방법도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비를 맞거나 맞더라도 언제?
비가 그칠 것인지는 안다면
이리저리 비를 피해 다니며
경망하게 옷을 적시는
일은 없을 것이고,
때로는 즐길 수도 있을 겁니다.
☀때를 안다는 것은
希望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
命理學의 운명론적 思考는
인간의 意志를 否定하지만,
인간을 無力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問題는
사주 解釋을 通해 내리는
豫測의 적중률에 있습니다.
(현실은 역술인마다 예측이 다르고
적중률도 떨어지고
적중률이 높은 術士가 없고,
더 근원적인 것은
역술의 체계적인 학습 과정이나
학문적 원칙이
확고하지 못하다.)
♣ 간명의 순서는
☀자평진전, 난강망, 적천수 순으로
전개하는데
☀명식, 명식과 대운, 세운을
격국, 조후, 억부 순으로
해독해 내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적천수는
體와 用을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오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서락오는
運의 희기를 살피는 行運法의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는데요.
명식을 읽고, 대운을 읽고,
세운을 읽는 방식을
모두 억부 체계로 표준화했으므로
조후용신의 바른 적용 원칙을 定하지 못했다고들 합니다.
☀억부용신은
每年의 成敗를 가늠하는 잣대인데,
조후용신으로 혼용하는
愚를 범하고 있는 실정이니
다시 한번 숙고하여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적천수에서는 용신이 고정되어 있으나
☀자평진전에서는
大運에서 변화무쌍한데요.
成格된 命이 破格이 되기도 하고
破格인 命이 성격이 되기도 한답니다.
특히身强弱 與否를 따지지 않아요!!
☀명리의 변화는
지지의 형충회합이 좌우한다고 합니다.
☀대운은 격국성패를 좌우하고요~
☀세운은 억부용신으로 보시기를 !!
♣四柱不如心相 !!
貧富貴賤과 吉凶禍福은 각 개체의 立場에 따라
그 意味를 달리하지요.!!
따라서
이를 比較하는 일정한 표준은
애매하지요!!
一般的으로 사람은
病에 신음하고 있을 때는
건강이 幸이요,
福임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無病하고 건강한 사람은
그것이 福인지 모른답니다.
信仰心이 충만한 사람은
가족이나 재산이 없어도
자신이 은총으로인해
늘 행복하고 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이 平安을 얻거나
속진을 등지고 홀로 山中에 隱居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면,
별반 탈이 될 게 없기는 하겠네요.
이런 면을 보면
사람의 사는 게 다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에도수없이 極과 極
즉 지옥이나 천당을 왔다갔다 하는구나.
☀이러하니 세간에는
팔자는 관상만 못 하고
관상은 심상만 못하다는 말이
횡횡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팔자술은
世人의 공통적인 견해나 상식에 準해
世事의 가치를 규정하는
초기 수순을 밟게 되므로
貧富貴賤에 대한 명확한 區分을
가능케 한다고 합니다,
☀命理는
存在하는 어떠한 事由나 認識 체계를
否定하지 않지만
세상 속의 成敗와 가치의 高低는
一刀兩斷해내는 것과 같이 보입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富者라고 생각해도,
八字術이 下格貧命으로 규정하면
객관적으로 그는
세속의 부귀와는 인연이 없는 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四柱不如心相이란?글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吉凶禍福에 대한
다른 시각과 입장 차이를 의미하는 것에
불과한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부자라고 생각해도,
八字術이
下格 貧命으로 규정하면
객관적으로 그는
세속의 富貴와는 因緣이 없는 命인
것이랍니다.
혹여
相의 술법이 命을 앞선다거나
술수는 의미가 없고
오직 心相 만이 요체라는 발상은
순진, 소박?
☀世事의 이치를간파하지 못한 채,
上位의 價値를 論하는 것은
現實과는 상당한 距離感이 있지 않을까요?
☀富貴定於命, 窮通繫於運
命好不如運好
(命보다 運이 더 중요하고 좋다고
하는 뜻의 글임)
일각에서 命은 자동차로 비유하고
運을 도로의 상태로 설명하는 등으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고요~
飛躍해서
命運을 숙명과 運命의 槪念으로 받아들여
命을先天運의 영역이고
運은 後天運으로
사람의 努力으로 改善이 可能한
可變的인 범주에 포함하는 인사들도 있기도 합니다.
古歌에 命格이 높으면
運이 背反해도 변함없는 송백이라
命이 우선이고 運은 다음이라.
원대한 포부를 지닌 자는
사소한 공명이나 부귀에 만족하지 않으나,
범인에게는 그것이 가문의 영광이
되기도 한다고도 하고요.~
부자에게는 하룻밤 화대에 지나지 않으나,
貧者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큰 재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기도하고,
또 세간에 부자 되기 열풍이 있어도
아예 財貪이 없는 성향을 지니지 않는 八字로
타고 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고도 합니다.
부자가 되고 안 되고는
이미 부자가 되려는 의지를
타고 난 사람들에게만해당되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팔자에는
이미 現狀으로 나타난 結果와
그에 대한 意志 有無까지코드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命高運低, 如松柏之値歲寒,
雖不得志於時, 但松柏終時松栢,
不能變爲蒲柳
命底運佳, 如小草之値春風,
非不欣欣向榮, 但逢蒿終時逢蒿,
不能變位芝蘭)
☀結論的으로
體用을 分別하지 못하므로
命과 運을 가리지 못하는구나~
命運은 공히
先天運의 범주에 속하므로
體와 用으로 구분한다면
모두 體身에 속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 같은 體身의 영역에서
體用으로 分化된 것이
命과 運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命運에는 사람의 후천적인 노력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으로
思考하면 좋겠습니다.
☀팔자술에서
보통 격국의 고저를 구분하는 근간은
命(八字)이 되고
運(大運)에서 격국이 成格되거나
變格되는 작용이 나타난다.
☀얼핏 보기에
運이
貧富貴賤과 成敗를 가르는 要素가 되는 것으로
錯覺하기 쉽지만,
이 둘은 엄격히 格局이라는體를
中心으로 모두 說明되는 범위입니다.
☀자!정리해보자!
命과 運은
모두 先天運에 속하고 다 같은
體의 범주에 귀속됩니다.
♣ 後天的인 努力이나 지혜가 介入될
用의 범주로
命理는 이것을 엄밀히 運으로
表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命理는
그 자체가 모두 선천운의 영역으로
하늘이 이미 命運을 定했다는
定命의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命理에도
用의 기능이 전면 不定되지는 않으므로
후술될 現狀轉移의 상황을 언급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현상전이도명운의 영역에서는
어림도 없고,
♣ 다만 歲月에서
環境과 연관지어 설명을 할 뿐이기도 합니다.
命과 運은 이미 定해져 있다고 했습니다.
八字와 大運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命에 이미 貧富貴賤이 결정되고,
運에서 現狀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命의 格이 낮으면
享有할 수 있는 富貴의 정도가 이미 定해진 것이고,
☀運이 調和될 때
豫定된 만큼의 福祿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한해(歲運)의 運數,
이른바 身數를 궁금히 여기기도 하는데
이는 命運의 運이 아니고 歲로구분됩니다.
따라서
歲月의 運路를 命理의 運으로 混同하면
體와 用을
根本的으로 分揀하지 못하는愚를
犯하게 된다고 思料됩니다.
♣ 奪神工, 改天命
민간 格言에
사람의 運命을 좌우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요.
一. 命, 二. 運, 三. 風水,
四. 積陰德, 五. 讀書 지요.
☀이 중 하위 단계인
5. 讀書와 4.積善은
出世와 풍요로운 삶을 期約하는
最善의 行動이기는 해요.
상위 단계의 命運은
이미 先天運의 영역으로서
人間의 意志나 向上心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한 바 있어요.
☀가운데 3. 風水는
環境과運命의關係에서 비롯되는데요~
이것은
좋은 씨앗(命)이라 할지라도,
冷凍室에 보관되면
싹조차 띄울 수 없음을 뜻하는
얘기인데요.
☀풍수는
肥沃한 大地(明堂)을 찾는 사람의
意志와 行動을 강조하지만,
☀命理는
꽃피는 春夏의 季節(運)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풍수는
선천운과 후천운의 경계에서
下位 단계의 努力에 비해
더 막강한 威力을 發揮하므로
중국인들이나 서구인들을 熱狂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命理는
환경의 變化와 이를 可能케 하는
意志와 行動 또한
時運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니
자~ 그러면
☀인간의 意志와 行動으로
능히 運命을 바꿀 수 있다는
탈신공, 개천명의 風水 思想의 옳고 그름을
일단 여러분의 몫이니 살펴보시고,
다만
명리를 모르는 풍수 마스터는 없다는 사실만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다
命理를 알고 흉내 내고 안다고들
말하지만
팔자술의 진정한 마스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손을 꼽을 정도임 또한 알려드립니다.
간혹
命理 자체를 否定하는 風水家나
風水의 우위를
說破하는 爲人들을 보기도 하는데
글쎄요.!
☀葬書라고 불리는 錦囊經이 力說한
改天命의 思想은
命理가 追求하는 順天命의 틀에서 보면,
대담한 거짓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고 해서
風水를 全的으로 否定할 수는 없어요.
天地 萬物과 人間 사이의 關係를
어느 한 面에 置重해서
結論을 내릴 수 없을 터~
즉陰陽의 兩面을
原則的으로 受容해야 하는 것이
術士의 자세에 맞지 않으니까요.~
歐陽修라는 인물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요.
‘春秋에서 孔子는
災異에 관해 論했지만,
그것을 人事와 結付시키지는 않았다.
오직 天道 속에서
常軌를 벗어난 것이 발견될 때
군자는
하늘이 꾸짖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경외감을 갖고,
오직 자신의 영혼 상태만을 주의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사는
어떤 것은 이치에 부합되지만,
어떤 것은 결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군자는
이를 우연한 일로 치부하겠지만,
이로써
그들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命理나 風水는 공히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칠 때
똑같은 위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世上天地가 無作爲的이라는
思考에 이르면
善德을 쌓기 위한 사람의 努力을
否定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프로메테우스적이고 革命的인 實驗主義에
길을 터주면
(프로메테우스는 人間에게 불을 훔쳐다 준
그리스 神話의 神임)
더욱 위태로운 結果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風水를 對하는
가장 理想的인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그것은 人爲的으로
風水를 교묘하게 조작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天道가 風水를 통해
그 意志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明堂은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진정 숙련된 風水家를 만나기는
거의 不可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風水에
感應이 있고 그것을 受容한다고 하더라도
君子는
風水를 쫒지 않고 애써서 얻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點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늘이 짜놓은 萬象의 機密을
억지로 造作하려 들어서도
안되고요.
나는 宗敎人이 아니므로
宗敎를 通한
一切의 救援을 납득 시키고,
引導하는 방도나 길에 대해서는
또
敎育者의 입장도 아니므로
현실의 어려운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끝없이 분투하고,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싶은 마음도 능력도 없어요.
단지 한 가지 현실의 고난이
信心이나 굳건한 意志나 努力만으로
改善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구요?
인간의 운명 틀은
時間的인 要素에 얽매이기때문이라고
思考하니까요~
☀따라서 時運이 調和되지 않으면
一切의 노력과 信心이 虛事가 되는 경우가
許多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신앙을 통해
스스로 위로를 구하고
심신의 안정을 얻는 것만으로
구원의 의미는 충분하니까요~
더 이상을 구하려 든다면
그건 罪惡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교회나 절을 열심히 다닌 덕택에
부자가 되었다거나,
신앙심이 缺如 되어
天災地變을 면치 못했다거나,
혹은 성심을 다해 공을 들여
자녀가 시험에 합격했다는 식의
선전이나 간증도 또한 곤욕스럽습니다.
더욱이 불치병의 치유까지
그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자신한다면 도리는 없겠지만,
글쎄요? 입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만 열심히 하면 출세가 보장된다거나
하는 말도 그럴듯하지만요.
☀그렇습니다.! 자~
분명 타인을 위한적선이나 독서는
현상을 改善시키는 작용력은 있어요.
그러나 이 같은 요소가
이미 하늘이 부여한 선천적인
명운의 틀을변화시키는 법은 없어요.
모든 사람이 기분 좋게 살아야
행복하다고 믿는
상담가 김형학 나는요!
행복한 삶의 핵심은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좋은 기분이
오래도록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은
스스로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른 것이지요.
그 마음이 보다
긍정적인 行動을 수반하게 될 것이니까 말입니다.
마음이 편하면
육체가 건강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지요.~
☀生氣로 충만 된삶이야말로
사람의 노력과 의지로
가능한 영역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주변 환경이 안정되고 풍요로울지라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재앙이나 육친의 변고 등으로 인해
신음하는 일은
피할 수 없으므로 받아들일 도리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를 거역하면
기분 좋은 삶 자체는 불가해집니다.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