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라는 말은..
연기(緣起)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삼무파다(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ratītyasamutpād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의 준말이다.[1] 한역(漢譯) 경전에서는 발랄저제야삼모파다(鉢剌底帝夜參牟播陀)로 음차하여 표기한 경우도 있다.[1]
프라티트야(산스크리트어: pratītya)의 사전적인 뜻은 '의존하다'이고 삼무파다(samutpāda)의 사전적인 뜻은 '생겨나다 · 발생하다'이다.
연기(緣起),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 즉 '프라티트야 삼무파다'는 영어권에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10],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11][12],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13]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 [위키백과] 에서
에서 보듯..
의존(緣)하여 생긴다(起)는 것이다.
그러니 12연기법을 3세양중인과설이라 하여..
연기관계(緣起關係)에는 유전연기(流轉緣起)과 환멸연기(還滅緣起)의 두 가지가 있다. 연기관계를 인과관계(因果關係)라고도 하는데, 예를 들어, 불교의 근본 교의인 4성제에서 고(苦) · 집(集)의 2제(二諦)의 관계는 괴로움이라는 결과와 괴로움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갈애 또는 망집의 관계로서, 미혹되게 하고 괴로움을 겪게 만드는 인과관계 즉 유전연기(流轉緣起)이며, 이에 대해 멸(滅) · 도(道)의 2제(二諦)의 관계는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이상의 경지인 열반의 증득이라는 결과와 열반을 증득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불교의 수행의 관계로서, 미혹을 벗어나게 하고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인과관계 즉 환멸연기(還滅緣起)이다. //
위키백과
이것 있음에 말미암아(緣) 저것이 있고
이것 생김에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
이것 없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 멸함에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
에서 보듯..
인연생기를 설명하는 유전문과 함께
연멸이라 하는 환멸문이 있다.
환멸문을 무시하고 유전문을 연기라 하는 것은 4성제에서 불교는 고와 집만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는 격이니..
불교는 삶을 고해라고 하는 염세주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불교는 염세주의가 아닌 희망과 자비를 가르치는 종교일 수 있는 이유는..
고멸이라는 환멸문이 있기 때문인데..
어째서 여전히 연기라 하면 일체고를 연상하는 것인가?..
에이의 답: 그 주어는 바로 [사성제의 고=팔정도를 벗어난 행동=오취온 업=연기=윤회] 같은 뜻의 다른 단어입니다. //
연기란 윤회와 함께 윤회멸을 가르치는 법문임을 잊으면서 불교를 잘안다고 할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