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음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 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몸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부께서만 홀로, 성자께서만 홀로, 성령께서만 홀로 활동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순간에도,
성부 하느님 홀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은 어떠한 의미가 있어서
이토록 성대하게 축하하는 것일까요?
성령께서는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셨고, 언제나 존재하셨지만,
성령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던 모습은, 시대마다, 순간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에서의 성령 하느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선포하셨던 그 복음을
용감히 선포하도록 하는 것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3대 축제 중 하나인
오순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다락방에 숨어 기도하고 있었던 제자들 위에 내려오시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도록 이끄셨고,
그곳에 모여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지만,
각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그 복음
말씀을
알아듣게 됩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령강림 대축일을
교회의 탄생일로 기념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이고,
오순절에 내려오신 성령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도록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 선포가 없는 교회는, 그 자체로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데,
바로 그 날,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던 날,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례 성사를 통해, 견진 성사를 통해
성령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 사실이 우리 기쁨의 이유가 됩니까? 아니면,
그저, 교리서에서 볼 수 있고, 복음서에서 만날 수 있는,
알아야 하는 상식이나, 외워야만 하는 교리에 불과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그것이 곧 기쁜 소식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음까지도 이기셨기 때문인데,
일상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려워 해야 할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기뻐하는 우리는,
복음을 깨닫고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 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고, 더 잘 깨닫게 되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며,
우리 삶으로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 삶이, 하느님을 향하고,
그 길에 항구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의 칠은 기도
<슬기>의 영을 제게 주시어
이 세상의 없어져 버릴것들을 쫒지 않고
영원한 것만 찾고 바라게 하시며
<깨달음>의 영을 주시어
주님의 신성한 진리의 빛으로 저의 머리를 비추시며
<의견>의 영을 주시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고 천국을 얻기에
가장 확실한 길을 택하게 하시며
<굳셈>의 영을 주시어
주님을 모시고 저의 십자가를 지고 가며
저의 구원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를 용감히 이겨내게 하소서.
<지식>의 영을 주시어
하느님을 알고 저를 알며 성인들의 예지로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며
<효경>의 영을 주시어
하느님을 섬김이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일이 되게 하시며
<두려움>의 영을 주시어
하느님께 경애심을 갖고
어떤 일로도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