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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부활 - 復活(부활)의 의미 (22P)
♥ 예수님! 나의 가장 귀한 분! (2P)
우리가 믿는 주님은 호화찬란한 궁전에서 제왕의 아들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고관대작의 집안에서 귀한 독자로 태어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러러 보는 명망과 인덕을 갖춘 집안의 고귀한 아들로 태어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러한 곳에서는 결코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분입니다.
헤롯 임금이 그토록이나 아기 예수님을 찿았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짐승이 사는 집, 말 구유간에서 동방 박사들은 주님을 뵈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비천한 가운데서 오신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가난한 가운데서 오신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고난 가운데서 오신 주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성품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몸소 인간성을 입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 분은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고, 후미진 곳에서 자랐으며, 여행이라고는 일생에 단 한 번 유년기에 본국의 경계선을 넘어 가 본 정도였습니다.
그 분은 부도, 권세도, 훈련받은 기술도, 세상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일도 없었습니다.
그 분의 친척들이래야 모두 이름없고, 무력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시고 치료하셨으나, 당신의 봉사에 대한 청구서 한 장 제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넘치는 사랑, 무한한 사랑으로 그저 주고, 베풀고, 나누시기만 하셨습니다.
그 분은 책 한권 쓰지 않으셨지만, 그 분에 관한 책을 다 모은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지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 분은 단 한 곡의 노래도 짓지 않으셨지만, 얼마나 많은 악성들이 그 분을 노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다 왔다가 갔지만, 그 분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분은 한 순간도 내 곁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내가 너무나 자주 자주 변덕스럽게 그 분을 버리고, 배반했을 뿐입니다.
그 분은 부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때문에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얼마나 가난했었는지 우리는 그 분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에게 그 사정을 들어볼 수가 있습니다.
그 분은 남의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으며, 남의 배를 빌려 타고 호수를 건넜습니다.
남의 나귀를 빌려 탔으며, 마침내 죽어서까지 남의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 분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대신 창에 찔렸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입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 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분이 곤욕을 당하고 끌려 가심으로, 우리가 해방을 얻었습니다.
강과 바다와 호수를 만드신 그 분이 목마르심으로, 우리가 생수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찬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크리스찬입니다.
크리스찬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왜 고난당하시고 고통받으셨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은 나를 위한 고난이요, 주님의 십자가는 나의 모든 고통, 저주, 죄악, 질병, 불행을 끌어 안으시고 매달리심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나는 해방과 자유, 행복과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 내일 2024.4.1.월-3.수. <성령의군대> ‘성령 컨퍼런스’가 열립니다.
♥ 요한복음 20:19-31절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열 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고린도전서 15:1-58절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구원을 받으리라.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 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 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 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형제들아! 내가그리스도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 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 나지 못하겠고,
37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 나며,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 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 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 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예전에 부목사 시절, 심방 도중 전화가 왔다.
면목동 기독병원 응급실로 달려 갔다. 나의 사랑하던 믿음의 동생 홍성표가 거기 있었다. 반듯이 누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잘 생긴 26세의 아들!
키가 186Cm나 되던 미남 중의 미남!
뇌종양으로 저 천국으로 간 그를 위해 60여 명의 성도들이 40일 철야기도를 6개월 동안 밤마다 피를 토하며 기도했었다.
정말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적의 시간들이었다. 귀가 열리고, 귀신이 떠나고, 그렇게 기도 응답들이 많았었다.
그 날, 부목사인 나는 면목동 기독병원 응급실에서 하염없이 믿음의 동생 홍성표를 바라보며,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오호라! 이 사랑하는 아들이 그냥 이 모습, 이대로 사라져 버린다면...
흙으로 돌아 가고 나면, 이대로 끝이라면?
이것으로 그의 인생이 끝이라면, 인생은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부활의 주님은 살아 계신다.
1).예수님은 성서의 증언 속에, 예언들의 성취 속에 살아 있다.
2).예수님은 부활의 사실과 증언들 속에 살아 있다. 기독교의 증언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다.
3).예수님은 성령의 증거와 신앙 고백들과 간증 속에 살아 있다.
4>.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남기는 어머니의 최후의 유언 속에, 사형수의 최후의 참회와 고백 속에, 과학자의 입에서, 어린이의 입에서, 진실 속의 진실 가운데서 신앙고백이 되는 모든 현장에서... 예수님은 넘치는 그의 사랑 속에 살아 있다.
5).예수님은 원수들의 미움 속에도 살아 있다.
예수 증오는 죽은 예수나 그의 사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배교자 줄리안처럼 죽으면서, "갈릴리 사람 그대가 이겼도다." 하듯이, 산 예수에게 도전한 것이다.
6).예수님은 수 백만의 순교자들 속에 살아 있다.
7).예수님은 성자들의 생애와 성화된 삶 속에 살아 계신다. 그들은 예수의 향기요 편지다.
8).예수님은 수 많은 전도자들의 열정 속에 살아 있다.
9).예수님은 죠지 뮬러는 5만번 응답 받았다 했거니와, 성도들의 기도 응답 속에 살아 있다.
10>.예수님은 교회와 복음화 된 세상 속에, 성령의 증언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숱한 부활의 모형적 사건들을 경험하고 있다.
예전에 어느 집사님이 동백 한 그루를 주셨다. 주신 정성이 너무 감사해서 길렀다. 이 조그마한 식물을 길러 보면서, 식물 하나에도 생명이 움트는 것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 보게 되었다.
산과 들에 수 없이 자라는 식물들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다. 그러나 내 집, 내 실에서 움을 틔우는 동백잎 하나가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다.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 양육의 신비를 깨닫는다. 내 힘으로는 나뭇잎 하나도 키울 수 없다. 그러나 그 마른 가지 속에서 연한 생명의 잎이 나온다.
이건 기적이다. 하나님의 기적이다.
♥ 봄이 오면, 꽃이 핀다.
우리 눈에 쉽게 띄는 꽃들 중에 제일 먼저 ‘산수유’가 작은 송이 송이를 만개하며 노랗게 피어 난다.
‘목련꽃’이 백설같이 흰 속살을 드러 내며, 큼직하게 피어 난다.
뒤따라 ‘개나리’가 아기 병아리처럼, 옹기 종기 흐드리지게 활짝 핀다.
뒤따라 ‘벚꽃’이 만개한다. 벚꽃은 바람에 눈송이처럼 날린다. 산책 길에 벛꽃이 만개하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들판 한 구석에 ‘할미꽃’이 고개를 부끄럽게 푹- 숙이고, 조용히 피어 난다.
화려한 핏빛 같은 ‘매화’가 피어 나고,
‘복숭아 꽃’이 피고,
백옥 같은 ‘배꽃’이 활짝 핀다.
30여년 전, 서울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퇴계원을 지나 오는데, 우와! 배꽃 동산이 나타났다. 정말 장관, 장관이었다. 지금 배꽃은 온 천지를 하얗게 수놓고 있다.
이어 ‘철쭉’이 붉게 붉게 만개한다. 철쭉의 응어리져 배여 나오는 붉은 색상은 과히 장관이다. 현란하다.
연이어 온갖 ‘야생화’가 활짝 피어 난다. 이름 모를 야생화 꽃 한 송이, 한 송이들은 정말 아기 자기하다.
지금은 봄이 짧아서 3월, 4월에 꽃들이 정신없이 피어난다.
마지막으로 ‘장미’가 4월, 5월을 붉게 수놓는다.
5월이면 모든 꽃들이 다 피어 난다. 그래서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이것이 바로 復活(부활)의 기적이다.
겨우내 앙상하던 마른 가지들에서 어떻게 이토록 찬란한 꽃들이 앞다투어 필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이 어떻게 이리도 정확하게 계절을 짚어 낸단 말인가?
우리는 신앙생활 하며, 늘 표적을 구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적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 없다.
기적은 이미 충분하다.
지상에서의 생명의 신비, 움이 돋는 식물들, 새 봄마다 활짝 피어나는 수 많은 꽃들, 자라는 동물들... 아기가 임신되고, 태어 나고, 하루 하루 자라고, 어른이 되는 과정 과정들...
이 모든 것이 장차의 진정한 부활이 무엇인지를 예고해 준다.
♥ 인류의 대 사건
옛날 로마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문서를 연구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유월절 한 번에 죽인 양의 숫자가 186,000 마리나 된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실 그 당시 무려 256,500 마리의 양을 죽였다고 하는데, 정말 놀라운 숫자이다.
한 가족당 양 한 마리씩 바쳤다면, 유월절 모인 사람들의 수가 대략 270만 이상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온 국민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천년 전에 조그마한 예루살렘에 270만이나 모였다니, 정말 놀라운 집회이다.
이렇게 많이 모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죽음 만이 있고,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죄를 짊어지심)과 함께 부활(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심)에 집중되어 있다.
♥ “혜빈이는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하늘 나라에 갔다. 혜빈이의 머리 맡에는 선교 저금통이 여섯 개나 남겨져 있었다. 병원으로 문병 온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돈을 주고 가면 꼬박 꼬박 모았던 것이다. 혜빈이는 병상에서 늘 찬송하고 기도했다. 혜빈이가 떠난 후, 6개의 선교 저금통은 태국의 서양숙 선교사님 가정에 전달되었다.”
송한호 목사의 글이다.
만일에 부활이 없다면, 혜빈이의 이 눈물겨운 찬송과 기도는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부활은 기독교 최대의 진리이다.
부활절은 기독교 최고의 명절이다.
기독교는 이론적인 종교가 아니라, 사실적인 종교이다.
우리는 ‘부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 위에 기초해 있다.
주님의 부활을 그 시작으로 하는 부활 신앙은 우리 모두의 삶의 희망이요, 존재 근거이다.
♥ 1.부활의 역사성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1>.무덤이 비어 있었다. (요20:2,눅24:1-3,12)
(요20:2)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弟子)에게 달려 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主)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눅24:1)안식 후(後) 첫날 새벽에 이 여자(女子)들이 그 예비(豫備)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3)들어 가니, 주(主) 예수의 시체(屍體)가 뵈지 아니하더라.
(눅24: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 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細麻布)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가니라.
무덤은 큰 돌로 봉해져 있었으며, 로마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그들은 즉시 예수의 시체를 내어 놓고 불길처럼 번져 가는 기독교를 막았을 것이다.
2>.천사의 증거이다. (마28:5-6,막16:6,눅24:6)
(마28:5)천사(天使)가 여자(女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막16:6)청년(靑年)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 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눅24: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記憶)하라.
막달라 마리아 등 무덤을 찾아 온 사람 들에게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을 알렸다. 지키던 군인들은 이미 다 도망치고 없었다. 천사의 출현과 부활의 사실에 혼비백산하여 도망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죽었다가 살아 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
과거 무궁교회 동역자였던 조용진 부목사님의 사모님 어머니도 죽었다가, 살아 났다.
어떤 시동생은 죽은 형수의 시체에서 반지를 빼내다 살아났다. 그래서 장례식 3일 장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홍성표 군의 시신을 보았는데, 영안실의 누워 있는 모습과 기도실에 누워 있던 모습이 똑 같았다. 숨만 쉬지 않을 뿐...
윤석전 목사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죽였다. 5시간 후에 부스스 깨어나며, “왜 날 불렀느냐? 천국이 너무 좋았는데...” 했다.
이러한 일들은 주님의 부활을 유추해 보기에 충분하다.
3>.파숫군, 장로들, 대제사장들, 군병들이 스스로 증거했다. (마태복음28:11-15)
(마28:11)여자(女子)들이 갈 제 파숫군 중(中) 몇이 성(城)에 들어 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大祭司長)들에게 고(告)하니, (12)그들이 장로(長老)들과 함께 모여 의논(議論)하고, 군병(軍兵)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弟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盜賊)질 하여 갔다 하라. (14)만일(萬一) 이 말이 총독(總督)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勸)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병(軍兵)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人)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이들은 모두 함께 모의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숨겼다.
뇌물이 오고 갔다.
세상에서 가장 신빙할 만한 증거는 적들에 의한 反證(반증)이다.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지 12년 만에 시해 당시의 진상이 공개됐다. 당시에 전두환 합수부장은 대통령이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에 입을 연 가수 심수봉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조용해!” 라는 말 후에 총성이 들렸고, 총을 맞은 대통령이 한참 후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 때 김재규가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다시 쏘았고, 심수봉 자기에게도 총을 들이 대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떨어져 살았다는 고백도 했다.
전두환이 자기에게 100만원을 주면서 입을 다물라고 시킨 일도 고백했다.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이다.
5.18.광주 사태는 도무지 그냥 덮고 넘어 갈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당시의 주모자 가운데 최고 군통수권 계열에 있던 사람과 현장에서 학살을 지휘한 부대장 등은 어떤 형식으로든 처벌하고 넘어 가야 이 문제의 역사적인 해결이 완료된다.
또 하나, 최근에 밝혀진 문서 중에 하나는 광주교도소를 향해 돌진한 폭도들에 대한 의혹을 본다. 이들이 정상적 집회자들이라면, 왜 교도소를 습격했을까?
정말 북한의 특수군들이 아닐까?
북한 땅에 있는 광주사태의 무덤들과 비석은 뭘 말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의혹은 광주사태의 보상 대상자 들이다. 4,000여 명이 넘는다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왜 정부는 그들의 명단을 밝히지 못하는가?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은 한강 폭파를 지시한 군 대령을 사형시켰다. 한 사람을 죽임으로 다른 모든 사람을 살리고, 정치적 마무리를 깨끗히 한 것이다.
다 비밀을 지키고 입을 봉해 둔 것 같아도, 진실과 진상은 백일 하에 드러 나기 마련이다.
금0교회 김0 도 목사 재판 사건은 재산과 거액의 돈을 여자에게 건넨 사실과 여자 문제는 정말 의혹이 짙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문제는 정말 사회의 지탄감이다.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미완이다.
박근혜 사건은 여전히 미완이다.
문재인의 정권 취득 과정도 미완의 현재형이다.
주님의 부활이 허위였다면, 그 분을 죽인 적들과 당시 종교 지도자 들이 그냥 있었을 리가 없다.
4>.주님이 많은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요20:20,27,눅24:36-43,요21:4-6,마28:16-20)
(요20: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弟子)들이 주(主)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20: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者)가 되지 말고 믿는 자(者)가 되라.
(눅24:36)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親)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平康)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저희가 놀라고 무서워 하여 그 보는 것을 영(靈)으로 생각하는지라. (38)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 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疑心)이 일어 나느냐? (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靈)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이에 구운 생선(生鮮) 한 토막을 드리매 (43)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요21:4)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弟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對答)하되 없나이다. (6)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마28:16)열 한 제자(弟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命)하시던 산(山)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敬拜)하나, 오히려 의심(疑心)하는 자(者)도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 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族屬)으로 제자(弟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聖靈)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吩咐)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世上)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恒常)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주님은 직접 제자 들에게 나타 나셔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숫기도 하고,
문을 닫은 곳에 들어 오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기도 하고,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직접 만져 보라 하시고,
디베랴 바닷가에서는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하신 후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당부하시고,
열한 제자에게 갈릴리의 한 산에서 나타나시고,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 말씀을 풀어 주시고,
베다니까지 걸어 나오셔서 그 곳에서 승천하시고,
게바에게,
그리고 500여 명의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셨다. (고전15:1-8)
(고전15: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傳)하였노니, 이는 성경(聖經)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罪)를 위(爲)하여 죽으시고 (4)장사(葬事)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聖經)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後)에 열두 제자(弟子)에게와 (6)그 후(後)에 오백(五百)여 형제(兄弟)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中)에 지금(只今)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그 후(後)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後)에 모든 사도(使徒)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滿朔)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악한 자는 부활해서는 아니된다.
소련 땅 안에 스탈린의 유해를 두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긴 후르시쵸프는 드골에게 청하여 나폴레옹을 안장한 앵바리드를 이용하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 드골은 앵바리드는 영웅을 위한 묘지임을 내세워 승인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턴에 전화를 하여 알링턴 묘지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거절 당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영국의 영웅 이외는 받아 주지 않았다.
더 이상 도리가 없어서 이스라엘에 문의했더니, 여기서는 쉽게도 받아 들여주겠다는 회답이 왔다.
그러나 편지 말미에 "신뢰할 만한 국제 통계에 의하면, 신성한 이스라엘에서는 부활의 확률이 세계에서 으뜸 간다는 사실을 미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스탈린의 유해는 아직도 소련에 남아 있다. 악한 자의 부활을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악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부활한다고 한다.
5>.제자들의 극적으로 변화된 모습이 부활을 증명한다. (사도행전 1:22,2:32-33,4:33-35)
(행1: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洗禮)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主)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出入)하실 때에 (22)항상(恒常)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中)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復活)하심을 증거(證據)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2: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證人)이로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約束)하신 성령(聖靈)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4:33)사도(使徒)들이 큰 권능(權能)으로 주(主) 예수의 부활(復活)을 증거(證據)하니, 무리가 큰 은혜(恩惠)를 얻어 (34)그 중(中)에 핍절(乏絶)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者)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使徒)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各)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주님의 죽음 후에 실의에 빠져 다시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 갔던 제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시 그전처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핍박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까?
성경은 그것이 주님의 부활 때문이라고 명백하게 증거한다.
일군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집단 환각설 등은 너무 궁색한 작위적 이론에 불과하다.
나 배종부 목사는 성령을 받은 이후에 그 삶과 성격과 목회와 사역과 대인관계가 완전히 변했다.
6>.그리스도께서 살아 생전에 미리 부활을 예고하셨다. (마16:21,마17:22-23)
(마16: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自己)가 예루살렘에 올라 가 장로(長老)들과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서기관(書記官)들에게 많은 고난(苦難)을 받고, 죽임을 당(當)하고, 제 삼일(三日)에 살아 나야 할 것을 제자(弟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7: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弟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人子)가 장차(將次)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23)죽임을 당(當)하고, 제 삼일(三日)에 살아 나리라 하시니, 제자(弟子)들이 심(甚)히 근심하더라.
부활이 거짓이라면 주님 자신이 희대의 사기군이 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정상인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님이 비정상인이거나 사기군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7>.제자들이 예수님을 친히 보고,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고, 만졌었다. (눅20:34-36, 24:39-43, 28:8-10, 요21:12)
(눅20: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世上)의 자녀(子女)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世上)과 및 죽은 자(者) 가운데서 부활(復活)함을 얻기에 합당(合當)히 여김을 입은 자(者)들은 장가 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天使)와 동등(同等)이요 부활(復活)의 자녀(子女)로서 하나님의 자녀(子女)임이니라.
(눅24: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靈)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이에 구운 생선(生鮮) 한 토막을 드리매 (43)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마28:8)그 여자(女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弟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9)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平安)하뇨? 하시거늘, 여자(女子)들이 나아 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敬拜)하니 (10)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兄弟)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요21:12)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朝飯)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弟子)들이 주(主)신 줄 아는 고로 당신(當身)이 누구냐? 감(敢)히 묻는 자가 없더라.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전하는 데는 막을 자가 없다. 체험은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체험 신앙 만이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8>.오늘날의 기독교 세력의 지속적인 확산과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가 증명한다. (갈2:20,빌3:10)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肉體)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爲)하여 자기(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빌3: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復活)의 권능(權能)과 그 고난(苦難)에 참예(參與)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허구가 2,000년 이상 이토록이나 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발휘하며 당당히 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 마음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활은 거짓이라고 불신하게 하는가?
나는 나의 이 놀라운 불가사의한 믿음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모른다.
지금 지구 상에는 13억의 카톨릭 교인과 11억의 개신교인, 3억 5천만명의 그리스(동방)정교회 신자들이 주님을 믿고 있다.
이들이 모두 거짓을 신봉하고 있다는 말은 통용될 수 없는 말이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약 30억의 인구가 주님을 섬긴다. 문명 세계는 거의 다 주님을 섬긴다.
♥ 2.부활의 인식 방법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끝까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와 증거가 있는가?
예수님의 빈 무덤까지도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못한다면, 어찌 하겠는가?
나는 그 외 모든 역사적 기록들을 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찌 하겠는가?
신앙은 철저히 현재적인 것이다.
21세기를 바라 보는 오늘 이 현실 속에서 내가 부활 신앙을 확신하지 못하면 2,000년 전의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면 주님의 부활을 어떤 방법으로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부활을 인식하는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이성의 판단도 아니고, 역사적 물증에 의한 증거도 아니고, ‘오로지 믿음에 의한 확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감화, 감동이 아니면 불가능 하다. 믿음은 선물이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고, 믿어지는 것이다.
도마는 부활한 주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기를 원했다. 오늘날도 많은 신자들이 주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 정상적인 눈으로 보기는 힘들겠으니, 환상이나 꿈이나 기적으로라도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
어느 집사님은 과거에 환상 체험을 수없이 했다. 그러다 10여년 간 끊어졌다.
“다시 한 번 보았으면, 굳게 믿겠는데...” 했다.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미몽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의미심장하게 되새겨 보아야 한다.
“자! 네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만져 보라.”
“네 손가락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제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누가와 글로바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랫 동안 길을 가면서도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고, 주님을 알지 못했다. 마지막에 주님은 구약성경을 풀어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책망하신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24:25)
오늘 이 현장 속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의 눈이다.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 보고, 믿음의 눈으로 말씀을 대하고, 믿음의 눈으로 기도하고, 믿음의 눈으로 교회에 다니고, 믿음의 눈으로 성도들을 바라 보아야 부활의 신앙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럴수록 당신은 더욱 더 성령 신앙에 굳게 서야 한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도저히 믿어질 수가 없기에...”
♥ 3.부활의 의미
그러면 우리에게 주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주님의 부활은 “예수를 믿는 너는 의롭다.”는 뜻이다. (롬4:25)
(롬4:25)예수는 우리 범죄(犯罪)함을 위(爲)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義)롭다 하심을 위(爲)하여 살아 나셨느니라.
어떤 인간이든지 간에, 과거에 어떻게 살아 왔던지 간에, 과거와 현재에 내가 어떠한 죄악 가운데 처해 있든지 간에, “예수를 믿는 너는 의롭다.”는 것이 주님의 부활의 의미이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영생을 누린다. 스스로 의로워서가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은 때문이다. 이것을 확신하시기 바란다.
2>.주님은 부활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희망이다. (고전15:12-20,벧전1:3-4)
고전15: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 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벧전1:3)찬송(讚頌)하리로다.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矜恤)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者) 가운데서 부활(復活)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所望)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基業)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爲)하여 하늘에 간직(看直)하신 것이라.
이 희망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세상 희망은 죽으면 끝이다.
“나는 얼마 정도 더 살고 죽는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부활의 소망과 영생의 희망이 있으므로, 절망하지 않는다.
부활에의 희망은 세상 끝날까지 사라지지 않는 불변의 희망이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
우리는 영원히 산다.
생명, 영원, 영생이 바로 나의 것이다.
오로지 나의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뿐만 아니라, 이 험하고 악한 세상을 건너 갈 때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희망의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나 붙드시며,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담대하게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3>.주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행2:23-24,10:39-41,롬1:4)
(행2:23)그가 하나님의 정(定)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法) 없는 자(者)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하나님께서 사망(死亡)의 고통(苦痛)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死亡)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10:39)우리는 유대인(人)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行)하신 모든 일에 증인(證人)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 내시되, (41)모든 백성(百姓)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擇)하신 증인(證人),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 나신 후(後) 모시고 음식(飮食)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롬1:4)성결(聖潔)의 영(靈)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復活)하여 능력(能力)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認定)되셨으니, 곧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기독교 복음의 진수는 곧 주님의 부활이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의롭다 하시려고, 승리케 하시려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고백 속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다 풀려 나간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속의 주님께서 친히 내 삶을 책임지시고 이끌어 가신다. 나는 그저 온전히 위탁하기만 하면 된다.
이 얼마나 평안하고, 즐겁고, 신나고, 희망찬 삶인가?
아무 걱정 없다.
아무 염려 없다.
주님과 끝까지 동행하기만 하라.
그대의 인생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부활은 있다. (고전15:12-13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부활이 없다는 자들은 비성경적, 비신앙적, 반신적인 자들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다. 하나님이 거짓말쟁이요, 성경이 거짓말을 한 것이며, 우리의 믿음도 따라서 헛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부활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은 이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삶은 결코 불쌍하지 않다.
전도해 보면,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피부로 와 닿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신다. 직접적인 전도가 가장 미련하고 원시적이지만, 역시 가장 효과적이다.
불신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으나, 우리는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게 부활을 믿는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는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5>.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다. (고전15: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주님이 제일 먼저 부활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죽은 소녀나 나사로나 엘리사가 다시 살린 수넴 여인의 아들 등은 부활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다시 죽었다.
이들의 다시 살아남은 부활의 징표를 보여 준 것이다.
6>.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만이 영생의 부활을 얻는다. (고전15:22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요, 그 다음은 주님 재림 시에 그와 함께 한 자들이요(이미 세상을 떠난 성도들), 그 다음은 살아 있는 우리요, 마지막은 사망의 원수들이다.(23-26절)
이들도 변화하여 영원한 몸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를 부인하는 자들은 두번째 영원한 사망을 위하여, 영벌을 위하여, 지옥 불 못에 들어 가기 위하여 부활하는 것이다. (26절) 이보다 더 큰 절망은 없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는 우리는 영원한 희망에 거한다. 부활한 우리는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 가기 때문이다.
7>.부활이 없다면 인생은 무책임한 삶이 된다. (고전15:32절)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내세의 삶이 없고, 영원의 삶이 없고,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삶의 철학, 양심, 도덕, 윤리, 준법은 아무 의미도 없다.
♥ 생전에 제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저 세상이 어디 있나? 죽으면 다 끝이지!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없어...”
그러나 제 아버지는 마지막에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가셨다.
만일에 부활이 없고, 내세가 없다면, 믿음을 준비하며, 선을 행하며, 절제하며, 준비하며 살 필요가 없다. 되는 대로 향락을 즐기며, 이 세상이 마지막이니 만큼 마음껏 육체적으로 누리며, 죄 지으며 살다가 갈 것이다.
♥ 영국의 유명한 문인 찰스 램이 잘 알고 지내던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던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일생을 결혼하지 아니하고 혼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왔다. 그가 독신으로 일생을 살게 된 젊은 날의 삶의 충격이 있었다.
그는 청년 시절에 한 여인을 깊이 사랑했다. 어느 날 그는 청혼하기 위하여 그녀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상대가 자기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 줄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 만큼 그녀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집 대문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니 하인이 나와서 하는 말이, “아가씨께서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답니다.” 라는 냉정한 거절의 전갈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 와 너무나 답답하여 그녀에게 자신을 거절한 이유를 말해 달라고 간절하게 편지를 썼다. 답장이 왔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오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당신은 길에서 일하고 있던 한 여인을 밀치고 그냥 지나 치더군요. 당신은 넘어진 그녀를 부축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나는 ‘내 한 평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쌍한 한 여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결코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젊은 날의 충격이 그를 변화된 삶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인생의 작은 충격도 삶을 이토록 바꿀 수 있다면, 하물며 부활의 신앙으로 사는 사람의 삶이리요?
영원한 부활의 삶을 위하여 얼마나 투자 하겠는가?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주일 마다 왜 교회에 오며, 헌금하며, 헌신 충성하는가?
세상에 이런 미친 짓이 어디 있는가?
오늘 우리는 부활의 삶을 위하여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고 있으며, 모든 것을 던져 투자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교회생활과 믿음의 행위와 삶이 그래서 중요하다.
부활이 없다면 인생은 무책임한 삶이 된다. 반면에 부활의 세계가 펼쳐질 것임으로, 우리는 오늘 힘을 다해, 그 날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8>.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이다.(고전15:42-44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
9>.우리 살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 재림 시에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한다.(고전15:51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秘密)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忽然)히 다 변화하리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 이 신령한 몸은 예수님이 가졌던 몸이다. 육체가 아니요, 영체가 아니요, 부활체이다. 공간과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몸이다. 육체이면서, 영체이면서 어떠한 제한도 필요 없는 몸이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몸을 덧입는단 말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으로 보라. 동시에 여러 곳에 나타나시고, 숨을 쉬시고, 음식을 드신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지신다. 문을 닫았는데, 나타나신다.
10>.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전15: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兄弟)들아! 견고(堅固)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恒常) 주(主)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者)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受苦)가 주(主)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부활은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의 신앙이었다. 부활은 오늘날의 우리의 한결같은 신앙이다. 부활은 우리의 미래의 신앙이다.
우리는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 보며 오늘을 산다. 오늘을 살되 그냥 살지 아니하고, 믿음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 간다.
부활의 신앙이 고난과 절망을 이겨 내게 한다. 부활의 신앙이 나태함과 무기력을 이겨 내게 한다. 부활의 신앙이 잠자는 내 영혼을 일깨운다.
이 위대한 신앙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게 살았던 록펠러는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첫 여인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가장 놀라운 일 몇 가지를 남겼다.
1.가장 가난했던 자가 가장 부자가 되었다.
2.가장 많은 돈을 남에게 준 자가 되었다.
3.가장 장수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98세까지 살았는데, 건강하여 치아가 하나도 썩지 않았다.
4.가장 신실하고, 건실한 삶을 산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한번도 춤추는 곳을 가거나, 술과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5.가장 믿음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한번도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았으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식사 때마다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기도했고, 매일 성경을 읽었다. 늙어서 눈이 어두워지자, 성경 읽는 사람을 고용하여 늘 곁에서 성경을 읽게 했다. 말씀의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는 전도하고 있다. 저는 매일 새벽 오늘 전도할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오늘의 성령 충만함을 달라고 간구한다. 기도의 능력을 부어 달라고, 공부하게 해 달라고, 교회의 살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한다.
오늘 아침에 전도한 3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중 3년 여학생, 연세대 2년 남학생, 60대 어르신! 다 거절이었다.
그러나 계속 인도할 것이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세상에 관심이 있는 자는 세상을 바라 볼 것이다. 돈에 관심이 있는 자는 돈 벌 궁리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교회의 일에 전심 전력할 것이다.
♥ 4.부활의 삶 (부활 신앙의 적용)
이제 이 부활의 신앙을 우리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1>.나는 주님을 따라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
어떠한 절망과 고통이 와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죽음도 우리를 꺽지 못한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은 끊임없이 주님의 능력으로 재생되고, 부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질병도, 가난도, 미움도, 불통의 역사도 건강으로, 부유함으로, 사람으로, 형통함으로 다 부활되고, 회복된다.
2>.이 생명의 부활을 전하며 살아야 한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죽어 가야 할 사람들에게, 절망과 고통의 나락에서 신음하는 우리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 이 생명을 전하고, 부활을 전해야만 한다.
날마나 천국, 날마다 기쁨, 날마다 희망, 날마다 부활이 우리 언어로, 우리 생활로, 우리 살아 가는 모습으로 이웃들에게 전해질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놀라운 생명력과 하나님의 은총이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날마다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란다.
성도 여러분!
부활의 신앙에 확고히 서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