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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은, 이 세상에 나서 울지도 먹지도 않아서~
제가 엄동설한에 태어났거든요....
3일간 아무것도 안먹길래~
웃목에 뒀다가 숨이 붙어있어서~
죽으면 묻어주려고 ~ 그랬다는,
그리고, 초딩 5학년에 엄마가 가시고 다음해에~
새엄마가 와서 장티푸스에 걸려서
봄부터 가을까지 아파서 학교도 못가고~
결혼후에 나의 엄마를 닮아서
큰애 낳고 하혈해서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서 수혈을 10 대나 맞고서~
배에는, 얼음을 24 시간 얹어두었으니, 허리가.....
40 세때에 저혈압에 신경은 고도로 예민하고~
그래서 한방병원 가니까,
저보고 술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양주나 소주로~ㅎㅎ
그리고선 말하기가 좀 가슴아픈 사연이지만,
뭐 그래요~ 애들아빠가 사고를 쳐서
집이랑 토지,밭이랑~
몽땅 다 회사에 경매로 빼았기고,
길거리에 나 앉았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못땠으면 자살을 시도했었지요.
제 동생이 간호사인데,
잠 못잔다고 수면제를 한 통 주었지요.
그걸 한꺼번에 다 먹고 죽으려고 했지만
3일만에 깨어났습니다.
애들은 경주에서 대구로 '난타' 처음 나왔을때,
보내고선~~ 애들 아빠는 교도소에.....
5개월만에 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로 나오게 했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안되는걸 어떻게든 하는.....
서울로 가서 고향 오빠를 찾아갔습니다.
서초에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인 그 오빠를요~
챙피고 뭐고~ 내가 살아야 하기에~
그리고선 400명 고법에서 다들 형량이 있었는데,
집행유예로 나온이는 달랑~ 한사람 였습니다.
역시 돈이 좋긴 좋더만요.....
변호사비 천만원인데, 아는 오빠라고 8백만원에 ....
물론, 서류상 이혼하고,
그래도 정신 못차리면 그땐, 뭐 ~
그래서 이젠 정신차리겠지~ 애들을 위해서 ....
정신차린다는거~
화장실 갈때와 올때 다르다는거~
그래서 작은 수퍼를 차리고 홀다당,
퇴직금반 받은것을 다 날리고~
그것도 제 남동생이 노무사였기에
회사에 같이가서~
법정위로금으로 반 받아냈던겁니다.
정식으로 갈라서고서 애들이 불쌍해서
제가 데리고 와서 단칸방에서 삯을세로 시작해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때~
그래서 죽을만큼 힘들었어도
간병인, 파출부로~일을 했습니다.
형제들도 나를 뒤돌아보지도 않더만요~
허긴 내 스스로 한번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도 필요없구요~
파출부일, 가리지않고 일을 했습니다.
죽기살기로~ 그랬더니
남는것은 온 몸에 병만~ 안좋았습니다.
어느날, 친구가 신부님 식간일을 추천해줘서~
그나마, 힘들어도 3년 9개월간 힘들게 일을 했습니다.
작은 딸이 전문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큰딸은 휴학계 내고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통역일을 하며
사위를 만나서~ 결국은 결혼까지~
2007년도에 대구가톨릭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할때, 장기기증을 해서 빨간열매를.....
제가요~ 여행을 좋아합니다.
물론, 저는 혼자서 여행을 잘 다닙니다....
계획없이 그냥 떠나는 목적지도 안 정하고~
어떨땐 책보고 국내여행 다녀온 책을 보고서
나도 그 책대로 떠나보기도 하고~ㅎㅎ
강원도로, 전남 해남, 벌교로~
누구랑 같이 가면 상대의 감정과 기호에 맞춰야해서
귀찮고 힘들어서 혼자 차 끌고 잘 다녔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나를 거들떠도 안봐 줍디다...하하
아마도 그때 누군가 나에게 친구하자고 했으면
유안진님의 글 속에 보면요~
남자인든, 여자이든 그냥~
저녁먹고 뒷짐지고, 마실나온것 마냥~
스리퍼 질질~끌고서
술한잔 하자면 같이 어울려 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친구 하나 못 만든것은
아마도 내가 많이 부족했겠지요....ㅎㅎ
제 마음속에는 남자를 못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애들아빠가 잘못한 부분에서 많은 상처가 있기에~
그런 다음에, 산악회 가서도 보면은요~
술마시고 본성이 나올때 보면요~
마, 애인도 친구도 다 싫습디다~ㅋㅋ
그냥 편안한 친구가 좋은데,
친구는 역시~ 옛친구가 좋구요~
구관이 명관이라구~
뭐시기 성당신자라고 해도 다들 무늬만 신자이지~
너무 세속적이고, 정말 기도생활하는
진정한 신자다운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 성당에는 모니카형님 한 분 정도~
그 분도 많은 상처가 있으신 분이시지요.....
연세가 75세 혼자 사시면서~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신앙생활만 하시면서 음식솜씨가 참 좋습니다.
여러사람들에게 반찬도 만들어서 주고,
수녀님이나, 신부님께는 그냥 해다가 드립니다.
아마도 4 년전쯤에 제가 대구에서 일이 없으니까
우울증에 걸려서 사람 만나는걸 싫어해서
방에서 칩거를 하니까~
몸이 15키로 쪘습니다.
작은딸이 청주로 이사가자고 해서
작은 아파트 임대 받아서 둘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차사고로 죽다가 살았던 기억이 ~
경주에서 한 번 있었고,
청주에 와서 교통사고 2 번이나 났었고,
올해 3 월달에 길 가다가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갔었어요.
다시 산 목숨~ 여러번이 되다 보니까~
내가 힘들때, 글쓰기를 시작해서 15년 되었답니다.
그냥 생활글이지요.....
그러면서~ 내 신앙도 좀 더 굳혀지고~
매일 기도하는 생활이 되어졌습니다.
욥기만 보면요~ 꼭~
나를 뒤돌아보는듯하여 지금도 잘 웁니다.....
다시 그때가 온대도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았을까?
아마도 그랬을거 같습니다.....
죽을만큼 힘들었어도 내 양심대로
힘들어도 인간답게 살기위해 몸부림을 쳤을겁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길을 닫으시면 다른 길을 열어주시니까요.
그래서 고생이 되었지만,
보람되고~ 아이들이 엄마를 인정해 주는 ....
아마도 내 신앙이 나를 바로 세워주는
아니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로 써 주실거라는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기도란, 과연 하느님과의 대화인데,
과연 나는 얼마나 하느님과 잘 소통이 되었을까나....
아직도 가끔,
주님께서 주시는 메세지를 잘 읽고 있는지...
하느님 뜻에 맞게 잘 살고 있는지~~~
맨날 히죽거리면서 남에게 퍼주는 인생~
울딸 나를 이해 못해줘도~
그냥 그렇게 산답니다.
주님,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아멘.
2014. 12. 1. 새벽에~
첫댓글 내 삶은 나의것~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니겠지만
내게는 힘든 삶이였고,
신앙이 곧 나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초라한 한사람의 일생이지만,
내게는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이였습니다....
보잘거 없지만, 다른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한바가지의 맑은물이 되었으면....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