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사순입니다. 정확히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재를 얹는 예식으로 우리는 새로운 파스카를 위한 준비를 갖습니다. 각자의 마음과 정신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이 시기는 당연 예수님께서 마련하셨습니다. 공적으로 당신의 길을 걷기에 앞서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며,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몸소 보이신 가르침을 따릅니다. 광야에서 지내신 40일을 우리의 사순 시기의 40일로 동참합니다. 해마다 거행되는 이 사순시기는 우리가 참회와 신심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이 시기 자체가 지닌 심오한 성사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순 감사송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제 저희는 새로운 마음으로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며
마침내 영원한 파스카 잔치에 들어가리이다.”
이 감사송의 언어들은 거룩한 성경의 말씀과 성찬례를 이어줍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모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 속에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삶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바로 세례의 의미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마음은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되풀이해야 하는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사순1주일을 앞둔 토요일, ‘돌아온 아들’을 통해 힌트를 얻습니다. 가정생활에 질려 갑자기 자기 짐을 전부 챙겨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서 방향을 바꾸어 용서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회개의 과정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가 회개하도록 부추긴 것은 미덕이나 도덕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에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아직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떠올려 되찾아갈 안식처가 아버지 품이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되돌아가기 위해 수고를 들이는 우리를 안아 주고자 하십니다. 구약의 말씀들은 구원 역사의 시작부터 새 계약까지의 단계들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함께 하셨던 하느님의 약속들을 다시금 들려주심으로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십니다.
40년간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의 유량의 역사는 이제 예수님에서 다시 광야로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의 역사에 상응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겪으신 수난에서 궁극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공생활에 앞서 광야에서의 시작은 처음부터 당신의 수난을 향해 나아가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죽음과 수난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악마의 여러 유혹을 받으셨지만, 물리치고 이겨냅니다. 아버지에 대한 자녀다운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당신의 신적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실재로 우리 인생의 나그넷길에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하느님의 참된 힘은 같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그 사랑 덕분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와 승리를 나누어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분이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유혹과 죽음을 물리치신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 우선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제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 여러 책을 읽고 강론을 씁니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바치는 고해를 정성껏 경청하고 필요한 보속을 주며, 하느님께 대신해서 기도를 바칩니다. 집중하며 바친 미사가 끝나자마자, 제의를 입은 채 신자들과 한데 십자가의 길을 바칩니다. 이 사순시기에만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이 참 좋습니다. 밥 먹을 때에는 그렇게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속상했는데, 이 십자가의 길에서 같이 서 있으려니 위로를 받고, 커다란 힘을 느낍니다. 한 분 한 분의 음성과 떨리는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십자가와 촛대의 행렬이 가장 엄숙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가 예수님의 수난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얼거리는 트로트를 부르지도, 공짜 선물을 받지도 않았음에도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고요히 울려 퍼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하신 그분 수난의 길에서 나도 함께 기억해 주실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평성당 교우 여러분,
함께 걸어주십시오. 죽더라도, 예수님께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