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10주일
예수님께서는,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라고
가족들의 소식을 전한 이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낳아주신 분이 어머니 이고,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아들, 딸들이 나의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는,
예수님께서, 사전적인 의미에서,
어머니가 어떤 분이고, 형제가 누구인지? 를
묻는 질문이 아니고,
구원적인 의미에서,
’누가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있느냐?‘ 를
알려주시는 질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머니 와 형제들 은
구원에 가까이 있는 이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나는 예수님의 어머니 와 형제들 입니까?
아니면, 단지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아들, 딸들 이기만 합니까?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실한 영혼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결합될 때 우리는 정배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마태 12.50)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의 형제들입니다.
신성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지니고
우리의 마음과 "몸에" 그분을 모시고 다닐 때(참조: 1코린 6.20)
우리는 어머니들입 니다.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참조: 마태 5.16)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
우리는 단지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아들, 딸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되도록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는 예수님의 이 말씀들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가운데,
너에게 더 큰 행복을 주면, 나는 더 행복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내가 옆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은 무엇입니까?
옆 사람을 더 많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이,
가장 큰 선물이고, 그 선물은 나에게도 큰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가장 큰 선물이 되도록,
우리 자신이 옆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이 되도록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로 인해, 옆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옆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은 없고,
그것은 나에게도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갑니까?
물론, 그 질문은, 누구에게 묻더라도, 정답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나의 그 행복의 시작점을 어디에서 찾느냐?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내 행복의 시작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면,
내 행복의 시작을,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면,
그 행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금도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나의 행복을, 너의 행복에서 찾고,
나의 행복이, 너의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면,
곧,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면,
나로 인해, 옆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가는 것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다면,
그 행복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이며,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되는
행복입니다.
온 삶을 통해,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더 큰 행복으로 초대하시고,
행복 자체를 차지하도록 불러주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역시, 더 큰 행복을 바라고,
더 큰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