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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 1 나사로 - 요 11: 4 죽을 병이 아니라 (상)
제 11 장 : 부활과 생명
1. 나사로의 병 ( 요 11: 1 - 4 )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와 그의 두 자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이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 탓에 죽게 되었다.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의 병듬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예수는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말슴을 하셨다.
요 11: 1 나사로 -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이었던 것 같다.
베다니를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마을’이라고 표현한 것은 마리아가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긴 일로 더 잘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병든 자"란 말이 이 기사(記事)의 초두에 나오게 됨은, 나사로란 사람보다 그의 질병이 여기서 화제거리이기 때문이다(Godet).
2]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그들은 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고 누가복음 10: 39에 보면 마리아는 주의 말씀에 대해 더 간절하였던 것 같다.
* 눅 10: 39 –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1) 마리아
예루살렘에서 약 3km 떨어져 있는 베다니는 문둥병자와 소외된 사람들이 격리되어 사는 강림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이처럼 사회로부터 냉대받은 베다니 마을에서 마리아는 마르다와 나사로와 함께 단촐하게 살고 있었다.
언니인 마르다는 실제적이고 활동적이었던 반면 사려깊고 내성적인 성격을 소유한 마리아는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집안일을 도우며 마음속에 항상 메시야를 소망하던 마리아의 생활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마리아는 메마른 심령에 생명의 생수를 공급받게 된 것이다. 능력있는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고 많은 이사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리아에게 인간의 것이 아닌 메시야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영적인 제자로서 신앙을 성숙시켜 가고 있던 마리아에게 그 믿음을 흔들어보는 일이 발생하였다. 집안의 생계를 맡고 있는 오빠 나사로가 중병이 들어 죽은 것이다.
가장 역할을 하던 나사로의 죽음은 마리아게게 큰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비탄에 잠긴 채 눈물을 토해내는 마리아의 호소는 예수님의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가서 마침내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낳았다.
이 사건을 통하여 마리아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과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마리아의 마음 깊이 뿌리내린 믿음은 현실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자신의 삶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펼쳐 보여주시는 주님께 마리아는 가장 귀중한 소유를 아낌없이 드림으로 감사와 믿음을 나타내었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께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주님의 머리와 발에 부음으로써 신앙고백을 대신한 것이다. 결혼 지참금으로 사용할 향유를 부은 것은 곧 여자로서의 행복한 미래를 포기하고 주님만을 사랑하며 헌신하겠다는 의지였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기도 했다.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영적 통찰력이 개발된 마리아는 주님의 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한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러한 마리아의 행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태복음 26: 13)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소외받는 비천한 여인 마리아가 그 이름이 영원토록 기억되는 존귀한 신앙으로 남게 된 것은 믿는 자 모두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영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을 늘 대하고 이를 통하여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여야 함을 깨닫게 한다. 또한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범사에 감사의 향기를 발하는 생활을 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치는 성도를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는 기쁨으로 칭찬하며 맞아 주실 것이다.
(2) 마르다
관리자라는 의미이다.
베다니 마을에 살던 나사로의 누나이며 마리아의 언니(요 11: 1 – 12: 2)
* 눅 10: 38-42 –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 나사로
나사로(Nazarus)란 이름은 "엘르아살"이란 이름의 단축형이라고 한다.
뜻 : 하나님의 도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로 죽은지 4일만에 예수께서 살리셨다(요 11: 43).
예수께서는 후에 나사로를 ‘친구’(필로 fivlo")[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셨다(11절).
(4) 베다니 (Bethany)
뜻 : 슬픔의 집. 예루살렘 동쪽 약 4km 지점으로 지금도 나사로 동네라고 부른다.
* 막 11: 1 –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 눅 19: 29 -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의 동네로 나사로를 살리신 곳(요 11: 1).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대접을 받으실 때에 어떤 여인이 귀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주님의 머리에 부었던 일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 마 26: 6-12 –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 막 14: 3 –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요 11: 2 향유를 붓고 -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
마리아는 주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예수의 장례를 위한 믿음의 여자였다.
1]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 요 12: 1-8 –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마 26: 12-13 –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마리아는 눅 7: 37-50에 관설된 여자와 동일시될 사람이 아니다.
* 눅 7: 37-50 –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사도 요한은 여기서 주님께 대한 마리아의 경건한 행위와 사랑이 어떻게 큰 사실을 기억한다.
요 11: 3 보시옵소서 -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
예수와 친교를 이어오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가 병이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인편으로 예수께 이 사실을 전해 주었다.
1]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자기들을 대신하는 심부름꾼을 예수께 보냄을 말한다.
2] 주여 보시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주위의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면 치료하시는 주님을 향하여 나사로의 병듬도 살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말이다.
* 사 64: 9 -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 애 2: 20 –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 히 10: 7-9 –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3]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병들었나이다"라고만 말하고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청원에 있어서 고상한 성격을 드러낸다(Bengel).
이것은 짧은 기도이다. 우리는 길게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짧게라도 진실한 믿음으로 우리의 근심거리를 주님에게 고하면 주님은 그것을 들어 주신다.
특별히 그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 기뻐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에게 구하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 요 14: 13-14 –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야고보는 신자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교훈하였다.
* 약 5: 13-16 –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요 11: 4 죽을 병이 아니라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
심부름꾼을 통하여 나사로의 병듬을 들으신 예수는 나사로의 병을 아셨다.
나사로가 병이 든 것은 그를 죽이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의 병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려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것이다.
1]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베다니에서 온 심부름꾼을 통하여 나사로의 병듬을 아신 예수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2]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이를 통하여 죽음에도 그 종류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1) 죄로 인한 죽음
그러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역사상 인간의 죄에 대한 여러 가지 형벌을 내리셨으나 그것들은 죄에 대한 엄격한 형벌이 아니었다.
성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격한 형벌을 죽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에게 처음 명령을 주실 때에 하신 경고의 말씀 속에 들어 있었다.
* 창 2: 16-17 –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였으며 그 결과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다고 말한다.
* 롬 5: 12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고전 15: 21-22 –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처럼 죄에 대한 형벌은 한마디로 죽음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한 것이다(롬 6: 23). 그런데 이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① 영적 죽음
죄의 형벌로서의 죽음은 우선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영적 죽음 혹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은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거나 영혼이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하나님과 단절된 자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대언하기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라고 하였다. (렘 2: 13).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 곧 생명의 근원이시다. 또 주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사람이 주 안에 거하지 못하면 마치 포도나무에서 잘리운 가지와 같이 생명이 없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요 15: 4, 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표현하셨다.
* 눅 9: 60 –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여기에서 처음 말씀하신 ‘죽은 자들’은 일반 사람들을 가리켰다. 또 탕자의 비유에서 그는 아버지의 품을 떠났다가 돌아온 그 아들을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표현하셨다(눅 15: 24).
또 주께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거듭날 것을 의미하셨다고 생각된다(요 5: 25).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 1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했고, 또 에베소서 2: 5에서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 영적으로 이전에 죄 가운데서 죽어 있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또 바울은 에베소서 4: 18에서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말했다.
구원받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지금 영적으로 하나님과 떠나있고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섬길 줄도 모르고 하나님 없이 살고 있다. 사람의 정신적인 모든 문제들, 예를 들어 양심의 가책과 고통, 공허함, 우울증, 슬픔, 공포 등은 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영적 죽음의 결과들이라고 볼 수 있다.
② 육체적 죽음
죄의 형벌로서의 죽음은 물론 육체적 죽음을 포함한다. 육체적 죽음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영혼이 그의 몸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 창 35: 18 -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 왕상 17: 22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 눅 8: 55 -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그것은 본래 결합되었던 흙과 생기가 분리되어 흙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 창 2: 7 -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전 12: 7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어떤 불신앙적 학자들의 주장대로 자연적 현상이 아니고 인간의 범죄함 때문에 왔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선언하시기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창 3: 19).
그것은 그가 아담에게 첫 명령을 주시면서 이 명령을 어기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던 말씀 그대로이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 때문에 왔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은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아담의 후손들의 명단을 기록하면서 ‘죽었더라’는 말을 8번이나 반복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경고하신 말씀대로, 즉 죄의 형벌로 죽게 되었음을 증언하였다. 아담의 범죄로 그와 그 후손들은 다 죽게 되었고 그 죽음은 육체적 죽음을 포함했다.
* 롬 5: 12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육체의 노쇠, 각가지 질병들, 자연적 재난들로 인한 육체의 고통들 등은 육체적 죽음의 전조(前兆)들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