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년전 윔퍼의 발자취를 좇아 오르다
글 임명균 대원 · 사진 탐사대
3차례의 경쟁을 뚫고 필자는 오지탐사대 에콰도르팀 구성원이 되었다. 이후 짧고도 긴 2달간의 시간동안 평생 처음 해본 산행 훈련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조금씩 성장해갔다. 훈련을 통해서 대원들에 대한 배려, 협동심을 배울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자인지 배울 수도 있는 시간들이었다. 발대식과 짧은 합숙 생활을 마친 뒤 7월 22일 월요일 밤 9시 드디어 에콰도르를 향해 출발하였다. 미국의 하와이, LA, 페루의 리마를 거쳐서 에콰도르 키토에 도착 할 예정이었지만 에콰도르까지 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항에서 머문 시간만 따져 봐도 하와이 4시간, LA 15시간, 리마 12시간까지 총 31시간이다. 탐사 기간 총 20일 중 에콰도르 도착까지 족히 3일이라는 시간을 특별히 하는 것 없이 무료하게 보내야했다.
까얌베 정상에 오른 대원들의 모습.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인해 말랑했던 옷이 어느새 딱딱한 얼음갑옷으로 변해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코토팍시 7월 24일 수요일 오후에 3시에 드디어 지루한 공항생활을 마치고 에콰도르 키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2800m가 넘는 고산도시다. 이곳에서도 고산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 한 구석에는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고산증에 대한 걱정보다 큰 사건이 이후 일어났다. 바로 20개가 넘는 더플백 중에서 대장님의 모든 장비가 들어 있는 가방 하나가 분실된 것이다. 총 가치만 천만원이 넘는 가방을 잃은 우리팀은 누구도 에콰도르에 도착했다는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항에서 기다리는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 키토의 한인민박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박 3일 동안 민박집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식량을 구입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코토팍시(5897m)에 가기 위해 부푼 마음으로 기대를 하며, 드디어 26일 아침에 출발하였다. 사실 코토팍시는 미션을 수행할 장소는 아니다. 단지 고소적응 훈련을 위한 산이었다. 몇 시간을 차로 달렸을까 코토팍시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많은 산들이 있었지만 역시 눈으로 뒤덮인 산이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코토팍시는 구름으로 가려 정상만큼은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가 얼마나 높은 산인지 시위하는 것일까?’ 필자는 설렘 가득 찬 눈으로 저 멀리의 산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 시각 다른 대원들은 피곤했던지 입을 크게 벌리고 머리는 창문에 비비면서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1~2시간을 더 달린 끝에 코토팍시국립공원에 도착하였다.
정상부근에만 눈이 있는 침보라소에서의 피켈훈련은 눈이 아닌 화산재 모래바닥 위에서 이루어졌다.
입구부터 가이드문제와 현지 국립공원의 까다로운 태도로 입씨름을 했지만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코토팍시의 3800m 지점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려는데 훈련했던 것들과 상황이 너무 달랐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애를 먹었다. 대장님께 많은 잔소리를 들으면서 훈련한 것을 다들 잃어버리고 처음 치는 어린이들 같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빙빙 돌면서 겨우 텐트를 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산 정상을 보았다. 가히 경이적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전경을 본적이 있었던가! 아니 처음이다. 정말이지 심장이 빨리 뛰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대장님께서는 “이거 가지고 놀라나”하고 말씀하시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산이 훨씬 많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이런 눈 덮인 활화산을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니 최고로 멋있는 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호세리바스 산장에서 찾아온 고소증세 잠시 후 차를 타고 호세리바스 산장(4864m)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의 바람은 그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돌풍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 정도 올라갔을까 어느덧 산장이 보였다. 이 가운데 필자는 고소를 처음 경험하였다.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산장이 눈앞에 보이는데 한 걸음 한 걸음 걷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동시에 머리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원들의 부축을 받아 호세리바스 산장에 도착하였다. 산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눈 덮인 곳이다. 그 곳을 바라보면서 한 번쯤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을 먹고 바로 베이스캠프로 하산 하였다.
이후에도 고소를 제대로 먹었는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캠프로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못했다. 결국 대원들이 깔아 준 침낭 속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대원들과 함께 아침 6시에 기상하였다. 두통은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이곳저곳 안 아픈 데가 없었다. 피켈, 크램폰 등 장비를 준비하고 차를 기다리는데 차는 한참 뒤에나 왔다. 이것 때문에 우리 모두 신경이 곤두섰는데 설상가상 국립공원 직원이 와서 피켈과 크램폰을 놓고 가라고 했다. 이유는 우리가 몰래 정상에 오를까봐서다. 무척이나 황당했지만 여기 규정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스틱만 가지고 올라갔다.
석양에 붉게 타오르는 침보라소의 광경
트럭 뒤에 타고 올라가니 모두 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필자는 어제와 같이 고소를 먹지 않기 위해 호흡을 크게 쉬면서 걸음을 최대한 천천히 옮겼다. 그렇게 호세리바스 산장에 무사히 도착했고, 산장을 지나 눈 덮인 곳까지 잠깐의 휴식을 갖고 다시 올라갔다. 눈 덮인 곳까지 대원 모두 아무 탈 없이 올랐다가 점심때가 되어 산장으로 하산 하였다. 하지만 한 시간을 산장에서 있었을까? 필자의 몸에는 아주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고소증상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물콧물이 흐르는 가운데 산장을 빠져나와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3800m 베이스캠프에 도달했을 때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고통의 시간들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못할 경험을 한 것이다. 30일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우리의 미션 대상지인 침보라소(6310m) 길에 올랐다. 침보라소는 지구 중심에서 가장 높아 18세기까지 세계 최고봉으로 여겨졌던 산이다. 4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드디어 등반기점에 도착하였다. 코토팍시와 다르게 날씨가 좋아서 침보라소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로 웅장하고 대담해 보이는 산이었다. 코토팍시는 여성적이고 아름다움이 강조된 산이라면 침보라소는 남성적이고 튼실해 보이는 산이었다. 2003년 오지탐사대가 이 산을 도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을 여기 오기 전부터 들었다.
그것을 잘 알기에 산을 보면서 왠지 모르는 긴장감이 마음속에 감돌기 시작하였다. 까렐 산장(4850m)에 도착해 짐만 꾸리고 다시 윔퍼 산장(5050m)에 올랐다. 이번에도 필자의 고소증상은 바로 나타났다. 머리가 깨질듯 했다. 다음날 비록 눈은 아니었지만 화산재 모래바닥에서 피켈훈련을 하게 되었다. 크램폰을 신고, 피켈 훈련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미있었다. 훈련을 끝내고 까렐 산장으로 내려온 뒤 필자를 비롯한 몇몇 대원이 계속 고소증상을 호소했다. 모든 대원의 컨디션은 점점 악화됐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8월 1일 리오밤바로 가서 2박 3일 동안 머물며 에콰도르의 음식과 재래시장을 구경했다. 그리고 3일 다시 침보라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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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퍼 산장에서 저녁 10시 출발에 앞서 찍은 기념사진. 하지만 불어오는 심한 바람과 계속되는 낙석으로 인해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안긴 침보라소 그리고 까얌베 산 정상에서의 환희 대장님께서는 전날 식사시간에 “최악의 컨디션이 최적의 조건이다”며, 항상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모든 산행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말에 힘이 났고, 용기가 났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흘러 몸에서 적응을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컨디션도 괜찮고, 고소가 와도 이겨낼 자신이 생겨났다. 이날은 마침 이춘상 대원의 생일이었다. 정상공격을 위한 전야제이기도 해서인지 깜짝 생일파티는 생일 당사자 뿐 아니라 모두에게 에너지와 긍정의 기운을 심어주었다.
8월 4일 밤, 침보라소 정상공격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밤에 하는 이유는 눈 덮인 산이지만 낮에는 햇살 때문에 눈이 녹아 등반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눈이 딱딱하게 얼게 될 밤에 등반을 시작하여 오전에 돌아오는 과정으로 계획을 짰다. 윔퍼산장에서 잠을 청하고 9시가 되어 식사를 하고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대원 두 명당 가이드 한 명이라는 이 산의 규정에 따라 가이드들과 같이 짝을 지어 올라갔다. 낮과는 180도 다르게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침보라소는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다. 2시간도 안되어 위기에 봉착하였다. 바람이 심해 낙석이 계속해서 괴롭혔고, 가이드들은 위험하기 때문에 하산하여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오르기 위해서 3개월 동안 이곳만 보고 왔는데 이대로 하산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되는 낙석과 눈앞에 떨어지는 배낭만한 돌들을 보면서 결국 하산을 결정했고, 내려가는 내내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먼저 내려온 필자는 줄지어 내려오는 랜턴 불빛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토록 열망했던 것이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의 힘의 의해 눌린 자신이 너무나 작아 보였다.
멀리서 보는 까얌베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사진은 정상 부근의 설경으로 가까이서 보는 산은 다른 모습이었다.
시간적으로는 내일 다시 한 번 도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가이드가 문제였다. 팀 12명의 인원에 필요한 가이드는 6명인데, 내일은 개인 스케줄상 그 숫자를 맞출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너무나 황당해 계속 사정을 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낙담한 우리에게 가이드는 다른 제안을 해왔다. 까얌베 산(5790m)을 추천한 것. 이 산은 에콰도르에서 침보라소(6310m), 코토팍시(5897m) 다음으로 높은 산이었다. 다음날 아침 바로 모든 짐을 싸서 버스에 싣고 10시간을 달려 까얌베 산장(4600m)에 도착하였다. 오면서 까얌베산을 보니 여기 또한 진풍경이었다. 이 산은 아주 길게 눈이 좌우로 덮여 있어서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부드럽게 느껴지는 산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할 쯤에는 이미 저녁 7시가 넘었다.
6일 밤 0시에 기상과 동시에 라면을 먹고,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헤드랜턴을 켜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산장 바로 위부터 눈이 있어서 우리는 바로 눈을 밟을 수가 있었다. 이틀 후면 에콰도르를 떠나는데 처음으로 눈을 밟고 피켈을 눈 속으로 꽂는 순간이었다. 눈을 크램폰으로 밟은 것과 피켈을 눈 속에 꽂는 순간의 짜릿함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앞에 걷던 이춘상 대원과 장원정 대원이 경사면에서 미끄러져 수십 미터를 내려가는 것을 보고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조심 크램폰으로 꾹꾹 눈을 밟으면서 전진해 나갔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점점 숨이 가빠 오르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다가 쉬고, 몇 걸음 걷다가 쉬고를 계속 반복하였다. 눈보라와 얼음으로 온 몸이 얼면서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숨이 점차적으로 차올랐다. 어느덧 칠흑 같던 어둠은 사라지고 날이 밝아왔다. 그리고 가이드가 말한 도착예정 시간인 새벽 6시가 되었다.
‘이제 곧 정상이 보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그 순간 가이드는 앞으로 3시간은 더 가야한다는 말을 건넸다. 마비가 온 것 같이 온 몸이 굳어버렸다. 도저히 더 갈 힘이 없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대장님의 이끌림을 받아 천천히 올라갔다. 대장님께서는 필자가 포기치 않도록 “일어나! 정신력을 발휘해!”라고 호통을 치시면서 이끌어주셨다. 거의 끌려가다 싶을 정도로 계속 올라갔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있었지만 정신이 혼미하니 겁도 안 났다. 대장님의 도움으로 정상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아쉽게도 몸살과 설사로 인해 등반도중 하산한 목민수 대원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 모두는 정상에서 환호를 지를 수 있었다. 새벽 1시에 출발해 정상에 9시 25분에 도착한 에콰도르 팀이 정말이지 자랑스럽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준비한 약 4개월의 기간과 흘린 땀, 훈련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내 머리를 스쳤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오지탐사대원으로서 모든 기간 동안 난생처음 경험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
고소적응 훈련을 위해 찾은 코토팍시를 배경으로 찍은 대원들의 점프샷 |
첫댓글 아직 그대의 기억이 생생하군요 모두에게 자랑 스럽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우리 탐사대의 대원들을^^
헉~~~마니추워보여요^^
히야....머싯다....점프샷도 잼 있어요. 읽는건 담에...총.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