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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하나님의 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막 13:34)
제이슨은 학생 문서 전도인 프로그램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주간 그룹 지어 활동했는데 그의 실적은 저조했다. 문을 노크할 자신이 없었고 문전 박대를 당하거나 질문을 받아도 재빠르게 대처할 재치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문을 두드리며 그는 불편한 마음으로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책을 많이 팔 수 있을까? 귀가할 때 동료들을 만나 서로 성공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대만큼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응답이 없자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순간 누군가 말했다. “잠깐만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여성이 말을 건넸고 제이슨은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며 삶에 변화를 가져다줄 무언가를 제공하려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여성은 제이슨의 설명을 흥미 있게 듣다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제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요.” 인생을 바꿔 줄 책을 그 여인이 구입했으면 했던 제이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성이 말을 이어 갔다. “믿기지 않겠지만 요즘 너무 무기력했어요. 그래서 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가르쳐 줄 누군가를 보내 달라고 기도할 때 당신이 문을 두드렸답니다.”
그는 제이슨의 가방에 있던 성경과 그에 관련된 책을 전부 구입했다. 그때부터 제이슨의 여름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그의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판매량이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자신이 예수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변화를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느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 낙담에 빠져 그분의 일을 가로막는 일이 없도록 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지역의 복음화(북위 10~40도 사이에 있는 선교적 도전이 큰 국가)
9월 2일
좋은 소식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젊은 대학생인 에이미가 복음 전도자 에릭 플리킹거의 전도회에 참석했다. 성경 공부가 즐거웠던 에이미는 룸메이트도 가끔 데려왔지만 전도회가 끝날 때까지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께 드릴 준비는 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지금껏 성경은 이거 해라, 이거 하지 말라고 하는 책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사랑에 관한 하나님의 레시피로 보여요.”
전도회 이후에 교인들은 에이미와 성경 공부를 계속했고 몇 달 뒤 에이미는 침례를 결심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마 후 에릭은 교회에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토니가 어제 침례를 받았답니다. 아름다운 예식이었고 정말 기쁜 하루였습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토니는 에이미의 친구였다. 미국에 건너온 아시아인이었고 1년 전만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성경도 없었고 기도를 드려 본 적도 없었다. 토니는 에이미와 참여했던 집회에서 교인들이 만든 건강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에이미가 온라인에 자신이 만든 요리를 업로드 하자 토니는 함께 가서 요리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좋은 친구가 되었고 에이미는 토니를 교회 요리 학교에 초청했다. 프로그램은 토니의 마음에 들었고 에이미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에이미는 토니에게 성경과 함께 ‘잇 이스 리튼(It Is Written)’ 프로그램의 성경 연구 교재를 선물했다. 토니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다른 전도회에도 참여했고 결국 침례를 받기로 했다. 자기 삶을 예수께 드리는 데 그치지 않고 토니는 친구들을 교회에 데려왔다.
에이미는 예수를 영접하고 그분을 토니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토니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 예수의 제자인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전할 특권을 지니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재송, 장혜순 선교사 부부(필리핀 1000명선교사 훈련원)
귀국한 선교사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헌신을 위해
9월 3일
쑥스러운 전도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켄드라는 치과 병원에서 자신의 삶이 바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린 딸이 진료를 받는 동안 대기실에 있는 무료 성경 강좌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홍보물을 가져왔고 성경 공부 신청서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톰과 샤론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성경 공부가 시작됐고 우정도 쌓였다.
켄드라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경 지식을 쌓았고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침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몇 주 뒤 담임 목사는 그에게 ‘잇 이스 리튼’ 전도 팀이 필리핀에 찾아올 것이며 함께 선교하며 전도회에서 설교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일러 주었다. 켄드라는 부끄럼이 많고 대중 앞에 서 본 경험도 없지만 거기에 지원해 보라고 하나님께서 격려하시는 느낌을 받았다. 미흡해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켄드라는 마닐라의 수많은 청중 앞에서 세 천사의 기별을 자신 있게 전했다. 켄드라가 호소하자 사람들은 단상으로 나와 자신의 결심을 고백했다. 수줍음 많은 켄드라는 영혼을 구하는 켄드라가 되었다.
켄드라의 딸을 진료한 치과 의사는 자신의 병원에 미래의 복음 전도자가 방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잇 이스 리튼’의 성경 교재 뒷면에 인쇄된 광고를 통하여 조용히 켄드라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켄드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나아가 그는 예수의 제자를 양성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 1:17)고 말씀하셨다. 『시대의 소망』에서는 “사람이 회개하면 자기에게 예수님이 귀중한 친구가 되셨다는 사실을 곧바로 남에게 알려 주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라고 설명한다.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켄드라는 친구와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그 친구도 침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노영, 이미진 선교사 부부(대만)
도료교회 안식일 오후 음악반 활성화
9월 4일
가망이 없어 보여도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 27:54)
체코의 프라하는 유럽에서 무신론자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유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어려운 곳에서도 활약하신다.
몇 년 전 나는 온라인 전도회를 진행했다. 그런데 관계자들도 모르게 안나라는 여성이 접속해 라이브 방송을 시청했다. 그는 매일 밤 시청했고 내용에 감명을 받았다. 나는 전도회 참석자들에게 결심 카드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안나는 결심 카드가 없었지만 결심 질문을 직접 써 내려가며 자신만의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를 작성한 뒤에는 온라인으로 주소를 찾아 카드를 발송했다. 안나는 결단을 내렸고 그 결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제시카는 미국의 대도시 전도회에서 성경 사역자로 봉사하고 있었다. 그의 남편 켄트는 신앙에 큰 관심이 없었다. 거리가 멀어 전도회에 남편이 몇 번밖에 참석하지 못하자 제시카는 실망이 컸다. 전도회 마지막 호소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켄트가 제시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방송 실황을 통해 전도회에 참석했으며 침례를 받고 싶다고 켄트는 말했다. “여보, 나 대신 결심 카드를 작성해 주겠어? ‘네,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네, 침례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카드에 ‘네, 교회에 참석하고 싶습니다.’라고 적어 줘.” 제시카는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켄트의 침례식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가망 없는 도시나 가망 없는 인생, 가망 없는 상황 속에도 하나님께서는 활약하신다. 그분은 어디서든 마음에 호소하신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로마의 백부장은 적어도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는 믿음을 보였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그는 말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성령께서는 가장 가망이 없는 영혼도 예수께 인도하기 위해 역사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윤성결, 황혜원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지에 적절한 리더가 세워지고 지속적인 선교 사업이 이어지도록
9월 5일
로마에서 생긴 일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이탈리아 로마에서 전도회를 개최하기 위해 몇 년을 준비했다. 그러나 전도회를 시작하기 몇 달 전, 우리는 거기에 세 천사 기별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지에서 우리를 돕던 코디네이터는 갑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간병하느라 한시도 짬을 낼 수 없었다. 전도회에 참여하기로 한 가장 큰 교회에는 방화 사건이 터져 전 교인이 전도회에 활발하게 참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몇 사람은 공중 전도뿐 아니라 전도 사역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적극적으로 돕던 교회 지도자 여럿이 병에 걸렸다. 마귀는 바티칸과 불과 1.2km 떨어진 곳에서 전도회가 개최되기를 원치 않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도회를 원하셨다. 다양한 사람이 매일 밤 교회에 찾아왔다. 한 남성은 아드리아해 인근에서 200km 넘게 차를 타고 찾아왔고 다시 이탈리아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듣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교회 라디오 채널이 로마의 전도회를 모두 방송했다. 전도회를 마칠 무렵 40여 명이 침례를 결심했다. 수많은 사람이 단상 앞으로 나와 믿음을 표현했다. 전도회가 끝나고 몇 주 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침례를 받고 싶다고 목회자에게 연락한 사람도 많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시리아 군대장관의 여종은 그의 주인 나아만 장군에게 사마리아의 엘리사를 찾아가라고 권했다.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어떤 도시와 지역도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여호와이며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나에게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렘 32:27, 현대인)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면주, 김영문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연합회 내 소그룹의 활성화로 건강한 교회가 늘어나도록
9월 6일
그분은 아신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19세기 영국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자신의 책 『다윗의 보고』에서 시편 103편에 관해 이렇게 기술했다. “드높은 알프스산에도 특별히 높은 봉우리가 있듯이 영감의 말씀인 시편에도 다른 노래보다 뛰어난 시들이 있다.”
시편 103편은 성경의 드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며 다음과 같이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8~13).
다윗은 몇 마디의 표현으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비, 용서, 다정한 아버지의 손길을 깊이 새겨 준다. 이어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다음과 같이 실감 나게 서술한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14절).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 아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타락한 심성이 불쑥불쑥 앞설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먼지뿐임을 기억하신다. 아이가 신발 끈 묶는 법을 배울 때 부모가 포기하지 않듯 사랑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죄에 무신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분은 고쳐야 할 점을 바로잡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러나 자녀를 향한 그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동정, 인내, 친절, 사랑이다. 그분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고민을 헤아리신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익히 아시기 때문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B.M.W.(세계자전거지원선교회)
에티오피아 아본사 기술대학 건립을 위해
9월 7일
어떻게 해서라도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하나님을 전하는 일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당장 성공하지는 못한다. 모든 교회가 전도회로 엄청난 결실을 거두지는 못한다. 예수님은 이 점을 잘 알고 계신다. 당장 성공하지 못해도 힘과 끈기를 잃지 말라고 그분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한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하신다. 모두에게 초대장이 전달됐고 잔치가 준비되었다고 알리러 종들이 집을 나선다. 그리고 참석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끝없이 핑계를 댄다. ‘조금 전에 장가들어서’ 곤란하다는 사람, ‘방금 밭을 사서’ 안 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세 번째 사람은 소를 샀으니 시험해 봐야 한다며 거절했다.
주인은 그들을 초대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말한다(눅 14:21). 그런 뒤에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며 다시 한번 종들을 내보낸다(23절).
이 이야기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묘사했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예수님을 전하다가 거절당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전도 활동이 성공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비유 속의 주인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전도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사람을 강권하여” 채우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에 우리의 밝은 빛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험지에서 선교하던 사도들은 거절당해도 전도를 멈추는 법이 없었다. 그러한 일을 당한다고 복음의 열정이 식어 버려서는 안 된다.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삶을 사람들이 더 이상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 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의권, 스즈키 에리코 선교사 부부(일본)
소그룹(가정 집회)을 통한 영혼 구원을 위해
9월 8일
아기 제시카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시 106:10)
1987년, 텍사스 미들랜드에서 18개월 된 아기가 이모의 집 뒤뜰에 있던 우물에 빠졌고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우물의 폭은 20cm에 불과했고 제시카 매클루어는 6.7m 아래에 끼여 있었다. 이 사건은 개국한 지 10년도 안 된 케이블 방송 뉴스의 좋은 기삿거리였다. 언론은 계속해서 이 사건을 다루었고 온 나라가 걱정스레 지켜보았다. 아이를 구출하는 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 당시 미국의 전 국민이 제시카의 이모이자 삼촌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만큼은 제시카가 “모두의 아이”였다.
구조에는 숱한 어려움이 따랐다. 아기가 갇힌 파이프는 지하 6m가 넘는 데다가 무쇠처럼 단단한 바위에 둘러싸여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구조원들은 어린 제시카를 생각하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작업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이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은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제시카를 이송한 의사는 『오데사 아메리칸』지의 인터뷰에서 제시카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제시카와 동갑내기인 아이가 있었다.
아기 제시카는 구조되기까지 58시간 동안 우물에 갇혀 있었다. 사건 이후에도 제시카는 미들랜드에 거주했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 현장과 3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살았다. 제시카는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구조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마에 남은 흉터가 1987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제시카는 무기력하게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구출됐다. 이제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시카는 사람들의 관심 덕분에 구원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남은 상처는 무기력하게 죄에 빠진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주셨음을 일깨워 준다. 어린 제시카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은덕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우리를 구원한 그분께서는 영원한 삶을 주고자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 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 훈련원)
훈련원 직원들의 건강과 영성을 위해
9월 9일
핀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
놀랍게도 한때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핀볼은 불법이었다. 1933년에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선거 유세에서 핀볼 반대 운동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매년 핀볼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백만 달러가 “아이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점심값”이라고 그는 믿었다. 핀볼은 그 당시에 도박으로 여겨졌다. 핀볼은 기회와 상품을 제공하는 게임이었고 무료로 한 번 더 하는 기회부터 껌, 보석, 저녁 식사까지 상품으로 내걸었다. 1931년에 동전으로 작동되는 핀볼 기계가 처음 등장했고, 날개 달린 기계가 나타난 1947년부터는 ‘게임 실력’이 중요해졌다. 수십 년간 핀볼 기계는 학령기 어린이들의 비행, 부정직, 악습과 얽혀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핀볼 때문에 수업을 빼먹고 돈을 낭비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과거 미국의 전형적인 청교도적인 모습이라거나 속 좁은 구세대의 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도박에 대한 라과디아의 우려는 타당했고 그의 불안감은 그가 의식했든 안 했든 확고한 성경적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집니다”(고전 15:33, 공동번역)
그리스도인은 무엇과 누구에게 영향받고 있는지를 주의 깊이 살펴야 한다. 어떤 행동은 불건전한 일로 이어지는 관문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어울리는 상대에게 영향을 받는다. 겉으로 문제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일이 많다. 우리의 원수는 지난 6,000년간 인간의 행동을 세밀히 조사했고 사람들은 죄를 실제보다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다. 핀볼이 정말 위험한 게임인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이 예수께 헌신하며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강병주, 김윤숙 선교사 부부(대만)
신주금성교회의 대학선교 사역을 위해
9월 10일
사소한 추구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4~15)
1979년 철자 게임의 패를 몇 개 잃어버린 두 명의 캐나다인이 자신만의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임이 '트리비얼 퍼수트(Trivial Pursuit)'이다. ‘사소한 추구’라는 뜻을 지닌 이 게임은 2014년까지 1억 개가 넘게 판매되었다.
교회는 사소한 것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인 이들의 삶을 보여 주는 곳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남다른 이유는 오랜 기간 기도와 성경 공부로 하나님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만 만족스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정로의 계단』에서는 이렇게 조언한다.
“아침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그리고 이 일을 첫 번째 과제로 삼으라. 또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 저를 받아 주시고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삼으소서. 제 모든 계획을 주님 발 앞에 놓습니다. 오늘 저를 주님의 일에 써 주시옵소서. 저와 함께해 주시고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날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아침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분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거나 멈춰야 한다. 이와 같이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게 될 것이다”(70쪽).
우리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온전히 의지하도록 부름 받았다. 믿음은 일회적인 신앙 행위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다.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께 양보한다는 것은 삶을 그분께 내맡기고 그분이 우리의 삶을 이끄셔서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 가게 해 주시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요청하신다. 삶의 모든 국면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도받고 이끌림 받아야 한다. 교회란 영원한 삶이냐 죽음이냐에 관한 문제이며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손만식, 어은숙 선교사 부부(필리핀)
선교사 가정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9월 11일
제 마음을 취하옵소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모범적인 기도가 또 있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떤 헌신의 마음이 필요한지에 대해 엘렌 화잇은 『실물교훈』에서 이렇게 말했다.
“겉치레는 단순한 믿음과 전적인 자아 부정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데 스스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해 주시도록 수락할 뿐이다. 그때 우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는 제 마음을 주님께 드리지 못하니 주님께서 제 마음을 취하옵소서. 제 마음의 소유자는 주님이십니다. 저는 제 마음을 깨끗이 유지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옵소서. 저의 자아는 허약하고 그리스도를 닮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저를 구원해 주옵소서. 저를 빚어서 순결하고 거룩한 분위기로 이끌어 올리시어 제 영혼에 주님의 사랑이 흐르게 하옵소서’”(159쪽).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큰 소리치면서 자신을 의지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많다.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를 전적으로 따르는 길이 그리스도의 길이다. 성령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값없이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알아서 하늘에 가라고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으신다. 인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인간은 그리스도와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 살기에 부적합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시기에 가장 연약한 죄인이라도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승리의 삶을 살면서 예수 안에서 성장하도록 자비를 베푸셨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비울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해 주시도록 수락”할 수는 있다. 우리는 스스로 예수님에게 마음을 드리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취해 가시도록 허락할 수는 있다. 스스로 마음을 순결하게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도록 맡길 수는 있다. 그리스도와 닮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루어 주시며 기꺼이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바꾸실 수 있다. 새 마음을 주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승리의 경험을 선사하신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매일 자라 가면 그분께서 이런 일을 이루어 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삼육대학교 해외선교센터
중국, 말레이시아, 기타 국가의 온라인 전도회 운영을 위해
9월 12일
내맡기라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는 도망칠 것입니다”(약 4:7, 쉬운)
아무도 유혹의 힘이 너무 강해서 이겨 낼 수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시험이 제아무리 격렬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자들은 죄의 세력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놀라운 보증을 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는 도망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마귀에게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한다. 따라서 마귀에게 패할 일이 없다. 시험을 당해도 거꾸러지지 않을 수 있다. 마귀가 “너희를 피하리라”고 야고보는 분명하게 말했다.
성경은 우리 힘으로 싸워 이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앞 구절에서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는 도망칠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원한다면 자기 힘으로 원수와 열심히 싸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절망적인 패배를 맛볼 것이다. 성경은 마귀를 “우는 사자”(벧전 5:8)로 묘사한다. 울부짖는 사자를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있다 해도 매번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예수께 맡기면 그분이 능력으로 임하여 기적을 일으키실 것이다. 성경에 소개된 그리스도는 영적인 원수를 모두 격파하신다. 영적 싸움의 승패는 예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영적으로 패배하는 이유는 시험의 순간에 자신을 예수님에게 온전히 내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습관이 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뼈저린 교훈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 마음에 새겨질 때가 많다. 예수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받아들일수록 더 많이 그분께 자신을 맡기며 성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자라나는 과정이다.
유혹이 닥쳐도 패배와 낙담으로 끝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탄에게 맞설 수 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면 마귀는 도망친다고 야고보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효수, 김윤주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비밀리에 활동하는 교우들의 안전과 신앙을 위해(개종 시 수감, 고문의 위협을 당함)
9월 13일
피할 길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성경은 총 3만 1,102구절로 되어 있는데 첫 시험은 57절 만에 등장한다. 시험은 우리 삶에 항상 존재한다. 심지어 잡지 표지나 슈퍼마켓 선반에도 시험거리가 놓여 있다. 시험은 가족, 친구, 원수를 통해 다가온다. TV, 라디오, 음악, 인터넷을 통해 접근하기도 한다. 시험거리는 어디든 존재하며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도록 유혹한다.
그러나 시험에 굴복되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모든 시험에는 피할 길이 있다는 것이다. 성질을 부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피할 길이 있다. 우리의 정욕이 고개를 쳐들 때도 피할 길이 있다. 심지어 인종 차별, 거짓말, 탐욕, 도둑질의 유혹이 찾아올 때도 피할 길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탈출구를 마련하신다.
‘잇 이스 리튼’의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을 촬영한 어느 저녁은 유난히 추웠다. 줄기차게 바람이 휘몰아쳐 우리는 서둘러 촬영을 마치고 따뜻한 곳으로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나도 여건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부들부들 떨며 촬영을 이어 갔다.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추위였다. 아내 멜리사는 숄과 담요로 몸을 감쌌지만 소용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차에서 두툼한 재킷을 발견했다. 불과 몇 십 미터 거리에서 추위에 떠는 동안 재킷은 차 안에 있던 것이다. 따뜻한 겉옷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면 아내는 추위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시험을 피할 길은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점을 떠올리고 믿음으로 그분을 부르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모든 시험에는 언제나 피할 길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 김은아 선교사 부부(필리핀 아드라)
코로나로 인한 문제들이 선교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9월 14일
“정말 그럴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형이 새로운 교회에 출석할 때 나는 9살이었다. 토요일에 교회에 나가는 그를 보고 우리 가족은 놀랐다. 일곱째 날은 금요일 해 질 때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를 온전히 거룩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형은 믿었다.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던 나는 형에게 왜 그렇게 믿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성경을 펼쳐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곱째 날이 무슨 요일이지?” 형이 내게 물었다.
“일요일!” 내가 답했다.
형은 내게 달력을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벽에 걸린 달력은 아버지가 교회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토요일?” 형은 혼란스러운 내 표정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갔다. “토요일이 일곱째 날이에요?”
어머니는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형에게 되돌아갔다. “그럼 왜 우리는 일요일이 안식일이라고 생각하지?”
“수백 년 전 너희 교회가 일요일로 바꾸었으니까.” 형이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안심하며 말했다. “교회가 바꾸었다면 그게 맞겠지.” 그러자 형은 또 질문했다. “하나님께서 쓰신 십계명을 교회가 마음대로 고쳐도 될까?”
답은 뻔했지만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형의 질문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몇 년 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고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안식일 준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토요일에 교회에 간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 또 남들이 내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첫 번째 성경 공부를 하고 교회에 나가기 전부터 나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고 필생의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이란 예수님을 따르고 성경에 내 삶을 맡기면 결코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희원, 현아름 선교사 부부(대만 따리교회)
올해 시작한 패스파인더 사역으로 어린이와 3040세대가 활성화하도록
9월 15일
혹독한 대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나는 감사하게도 모범적인 친구들을 만났다. 고향 뉴질랜드를 떠나 세상 구경을 하러 영국 런던에 갔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뒤 내 세상은 180도로 바뀌었다. 집에서 2km나 떨어진 당시 인구 700만인 도시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나를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 주는 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친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신앙의 롤 모델이 되어 내가 믿음 안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중 더글러스라는 친구는 런던 대학교에서 보험 통계학을 배우는 아프리카 유학생이었다. 어느 날 그의 한마디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한번은 그에게 안식일에 공부하지 않고도 어떻게 그 힘든 학업을 따라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질문하는 친구가 많았지. 금요일 밤과 토요일에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들 말하더군. 그 시간에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서 말이야. 나는 내가 하나님을 존중해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존중해 주시고 학업을 따라갈 힘도 주실 거라고 했어. 친구들에게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가 아니라 기도회가 있는 수요일 밤에도 절대 공부하지 않는다고 했지.”
친구들이 볼 때 그의 상황은 불리한 게 당연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반에서 2등이야. 친구들은 믿지 못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삼상 2:30) 여기겠다고 제사장 엘리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이 손해처럼 보일 때도 있다. 원칙을 버려야만 부와 명예, 기회가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첫째로 삼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하늘의 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세상의 유익을 얻고자 믿음을 희생하는 그리스도인은 너무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기원, 이용숙 선교사 부부(대만)
루조우교회 성도 모두가 선교 사명을 발견하고 합심하여 교회와 지역사회를 섬기도록
9월 16일
믿음의 단계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 58:13~14)
그들은 가진 것을 전부 팔아 미국으로 건너온 스위스 이민자였다. 몇 군데를 알아본 부부는 오리건주가 마음에 들었고 거기서 관광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뒀다.
그들 부부는 우편으로 받은 홍보 책자에 관심이 생겨 성경 예언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리스도인이었지만 믿음이 깊지 않던 그들은 성경을 배우고 싶었고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성경을 배운 뒤 부부는 마음이 열렸고 이전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받아들였다. 믿음을 실천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칠일 안식일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그들의 사업은 토요일에 가장 벌이가 좋았다. 토요일에 일하지 않고 성공할 길은 없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고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두 사람은 기도했고 가장 바쁜 날 쉬더라도 하나님께서 사업에 복을 주실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만약 복을 주시지 않는다면 그분에게 더 좋은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로 했다.
늦은 금요일 오후에 그들은 가게 문을 닫았고 일요일 아침에 열기로 했다. 일요일이 되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날 그들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 뒤로도 6일 동안 일하는 데도 7일 일할 때보다 매출이 더 많았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사 58:13) 하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부족하면 어려움과 장애를 만날지도 모른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능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늘의 복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선교지에서 헌신하는 한국 선교사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9월 17일
“아름다운 안식일이여, 잘 가시게나!”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4)
어느 토요일 저녁 우리는 함께 자갈밭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내 친구 자이러스가 걸음을 멈추더니 지평선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름다운 안식일이여, 잘 가시게나!”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2년이 흐른 때인데 누구도 그런 식으로 안식일을 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안식일은 정말 아름다운 날이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게 맞았다. 나는 안식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되새겼다. 안식일은 숨구멍과 같았다. 일을 중단했고 세상 걱정은 한쪽으로 제쳐 두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교제하며, 자연을 즐기고 친구들과 함께하며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안식일을 지키기 전 교회 출석이란 일주일 중 한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는 것에 불과했다. 조금 일찍 교회를 나설 때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안식일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었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휴식은 없었다. 바쁜 삶의 일과 중 교회에 갈 한 시간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에 불과했다. 안식일 준수란 에스겔이 “일하는 엿새”라고 표현한 사업을 멈추는 시간이다(겔 46:1). 그날 하루는 다른 신들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고 지키시는 하나님과 곧 오실 그의 아들 예수님에게 관계의 초점을 맞추는 날이다.
친구의 행동을 접하고 나서 안식일은 나에게 약간 더 좋은 날 그 이상이 되었다. 안식일은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분과 나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맺는 초석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므로 그 삶을 지켜 주시고 복 주실 것임을 깨달았다. 안식일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이끌며 마음을 열고 하늘의 복을 받아들이게 해 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 정해옥 선교사 부부(인도 1000명선교사 훈련원)
인도 1000명 선교사 운동 동문 선교사들의 영적인 성장
9월 18일
기적의 한 시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로비는 아버지를 줄기차게 비웃었다. 아버지 찰스는 수년 전부터 지역 재림교회에 다니는 중이었다. 침례를 받거나 입교하지는 않았지만 제리와 친해진 이후 교회에 발을 내디뎠다. 매주 참석했고 교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반면에 로비는 완강했다. 그러니 그가 추수 감사절에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가 전도회 초청에 응했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비가 교회에 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예언의 은사에 관하여 설교할 예정이었는데 삐딱한 마음으로 처음 교회를 찾아온 손님에게 적절한 주제는 아니었다.
로비는 아버지와 제리와 함께 두 번째 줄에 앉았다. 그는 설교를 열심히 들었다. 놀랍게도 전도회가 끝날 때 로비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내가 평생토록 찾아다닌 게 바로 이거예요. 저도 교인이 되고 싶어요.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얼마 전까지도 로비는 교회에 다니는 아버지 찰스를 놀렸다. 사실 아버지를 놀린 이유는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종교를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설교 한 편이 로비의 의문을 말끔히 해결해 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성령께서 그에게 직접 말씀하셨고 로비는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켰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다가오셨고 그 기적의 한 시간 동안 로비의 마음에 역사하여 변화를 일으키신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에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틀려서가 아니라 그냥 싫어서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믿으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로비는 얼마 뒤 침례를 받았다. 그는 확신을 주시는 성령에게 설득되었다. 마음이 굴복된 순간, 하나님께서는 수년간 계속된 그의 반감을 무너뜨리셨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 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신띠엔 교회 한글반 과정을 위해
9월 19일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1970년대 영국의 어느 평원에 의문의 문양이 나타났다. 농작물들이 이상한 패턴으로 꺾여 있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이 말했지만 이것을 외계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91년에 한 남성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밝혔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음모론을 믿었다.
의문의 문양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갖다 붙였고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문양을 그린 장본인이 나타나 자신이 한 일이라고 인정했고 어떻게 그렸는지까지 설명해 주었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한번은 우리 팀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모론을 다룬 적이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지구 평면설이나 달 착륙 조작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 판단력이 의심된다는 반응도 있었고 나를 사회의 위험인물로 여기는 사람도 생겼다.
믿지 못할 것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식 밖의 이야기를 굳이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그것도 일종의 편집증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그 사람들의 말을 아예 믿을 생각이 없는 거죠?”라며 내게 따져 묻는 사람이이 많았지만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설명해 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어째서 하나님과 성경에 관련한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믿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일까? 믿음이 단순히 지적 활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진짜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며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한다. 믿음에도 서로 다른 의견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 의심과 회의론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따라야 하고 “주께서 이르시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 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한 선교지 상황이 회복되도록
9월 20일
세대 차이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삿 2:12)
젊은 세대보다 노년층이 더 많으면 인구를 유지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교회마다 젊은 신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사사기 2장 10~11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사사기에 등장한 젊은 세대는 부모나 조부 세대의 경험을 맛보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겪은 문제를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겪는다. “훌륭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하늘에 대한 자기만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
조부모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며 부모는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성공했지만 그들의 자녀는 조부모의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조부모는 구닥다리 세대이고 손주들이 신세대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교회에 헌신했고 선교 사역에 참여하고 귀중한 믿음을 남들에게 전하며 살았다.
자녀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경험을 누리고 믿음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 매일 의미 있고 경건한 시간을 갖는 아이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는다. 세상은 아이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 의식적으로 힘써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형우, 배현경 선교사 부부(일본)
재일 한국인 선교를 위한 거점 집회소 7곳 개척 및 재일 한국인 선교 센터 건립
9월 21일
풍요의 문제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신 8:11)
풍요로운 나라에 살면 시험거리가 많다. 자신의 소유물에 지배당하지 않고 믿음을 타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신명기 8장 11~17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열심히 일하고 신중하게 소비하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사람은 편안한 삶과 번영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물적인 번영이 파멸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신들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경우다.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부를 반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풍성한 복을 내린 사례가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물 때문에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 주신다. 세속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영적 열망이 사그라들 때가 많다. 꼭 부자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삶의 주인임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영적인 일보다 세속적인 일에 더 큰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다 보면 이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다. 각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소유물이 필요하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너무 풍족하면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풍족함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사역을 돕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물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지 말고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운동
10/40지역에 더 많은 1000명선교사 분원이 설립될 수 있도록
9월 22일
절망적인 상황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대하 33:13)
“우리 아버지는 엄청난 술꾼이었어요.” 피터가 내게 말했다. “젊을 때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실 때가 많았는데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제 삶이 뒤바뀌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성경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요.”
자기 파괴적인 길을 걷는 가족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피터의 고뇌를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피터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마음에 역사하시리라 믿으며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
아버지가 간경화 진단을 받자 피터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다. “제가 마을에서 다니엘서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 아버지가 참석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침례반 성경 수업에도 참여하셨어요.”
그의 아버지는 침례를 받았고 일주일 뒤 병원에 실려가 숨을 거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예수께 마음을 내려놓았고 재림의 소망 안에 잠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복음에 반감을 지닌 사람, 성경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 하늘의 법칙과는 반대되는 생활 습관을 지닌 사람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신다. 고대 사람들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령께서는 느부갓네살의 마음에 역사하셨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감히 논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왕에게 말할 기회를 얻었다. 유다의 왕 므낫세는 수십 년간 대놓고 하나님께 반역을 저질렀다. 성경은 그가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다고 말한다(왕하 21:6). 그러나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했다(대하 33:12~13).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셨다(대하 33:13).
무자비하게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다소 사람 사울은 사도, 선교사, 믿음의 수호자이자 수많은 신약 성경의 저자가 되었다.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피터는 하늘에서 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여러분도 하늘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남웅, 심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신좡행복국제교회 제자 훈련과 영적 성장을 위해
9월 23일
북녘의 빛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불안했고 결국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도회를 마친 뒤 목사님과 나는 주차장에 있었다. 주변에서 산불이 발생한 게 분명했다. 오렌지색 불빛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불안감도 커졌다. 그러나 산불이 아니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본 것은 오로라였다.
북극 오로라와 그 사촌 격인 남극 오로라는 태양광에 의한 하전 입자가 대기 중의 기체 입자와 충돌해 형성된다. 그 결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한 빛의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깨웠고 어린 아들과 함께 우리는 더 멋진 모습을 기대하며 시골로 차를 몰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골짜기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붉은빛, 녹색빛이 가로지르는 모습에 우리는 황홀경에 빠졌다. 처음 보는 오로라였다. 북캘리포니아에서 보았던 그 광경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자연은 하나님의 두 번째 책이라는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오로라 현상도 그 근원은 인간의 과학을 넘어선 하나님의 법칙이다. 오로라를 보면 하나님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놀라운 창의성을 엿볼 수 있고 능력과 지혜로 우리를 놀랍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창 1:31)다고 하셨다. 그분의 피조물은 6,000년 동안의 죄로 훼손되었고 우리는 창조주에게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곳곳에서 우리에게 즐겨 놀라움을 선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의 경이 속에서 경이로운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 김미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도시감화력센터 및 데이케어 센터 활동이 잘 정착하도록
9월 24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연어가 알을 낳으려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산란기를 맞이한 워싱턴주의 한 냇가에는 출근길의 고속도로처럼 크고 아름다운 물고기로 가득했다. 연어는 어떻게든 자신이 태어난 냇가로 찾아가 알을 낳는다. 연어는 자기장을 이용해 위치를 찾아가며 광염성 어류라서 민물과 바닷물 모두에서 살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긴지느러미뱀장어는 그보다 더하다. 뉴질랜드에서 출발하여 통가라는 태평양의 섬까지 2,414km를 이동해 알을 낳는다. 알은 해류에 따라 수개월에 걸쳐 다시 뉴질랜드로 이동하며 그곳에서 새끼가 탄생한다.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 알을 낳는 연어와 달리 긴지느러미뱀장어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까지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여 번식한다. 수년간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 100살 넘게까지도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긴지느러미뱀장어의 이러한 행동 양식은 여전히 과학자들에게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자연 속의 설명할 수 없는 신비를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설계자이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분의 독창성에서 그분의 성품을 엿본다. 세상은 장미와 튤립 두 가지의 꽃만 있어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며 이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튤립과 장미를 포함하여 셀 수 없이 많은 꽃과 식물이 존재한다. 나무의 종류도 무수하고 강아지의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이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와 언어의 다양성을 보면 하늘 아버지가 창조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되 아름답게 지으셔서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이끄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훈, 조혜정 선교사 부부(네팔)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는 50여 현지 선교사의 건강과 영성을 위해
9월 25일
한 말씀만 하옵소서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
성경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어둠을 향해 “빛이 있으라”(창 1:3) 하시니 빛이 있었다. 이후 6일간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말씀으로 하늘, 물, 식물, 동물을 지으셨다. 시편 33편 6, 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그분의 말씀에는 여전히 창조와 재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세상을 만들어 낸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 삶에도 능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자기 종을 낫게 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한 백부장이 등장한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 찾아가시려 하자 백부장은 그럴 필요 없다며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청한다(마 8:8). 말씀만으로도 그분은 병을 고치실 것이라고 백부장은 확신했다. 덧붙여 그는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9절)라고 말했다.
백부장은 부하들이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훨씬 더 무한한 능력이 있을 것이며 병마까지도 복종하리라고 믿었다. 예수님은 온 이스라엘에서도 본 적이 없는 믿음을 오늘 이방인에게서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백부장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믿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께서 여전히 그때와 같은 능력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깃든 창조의 능력을 우리 삶에도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도 경험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 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 1000명선교사 1기 선교사들의 사역과 안전을 위해
9월 26일
위대하고 소중한 약속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약속과 선한 뜻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먹게 해 주고 싶어.’라는 말보다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꼭 사 줄게. 약속해.’라는 말을 훨씬 더 좋아한다. 약속이란 분명한 것이다. 무언가를 확신할 때는 약속을 받았을 때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우리는 이 부패한 세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구하는 사람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말했다(빌 1:6).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삶에 역사하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그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십일조를 드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말씀하셨다면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이다. 용서에 관한 요한일서 1장 9절의 약속은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아 하나님 앞에 정죄함 없이 서게 된다는, 변화된 삶의 강력한 보증이다.
성경에 주어진 약속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구한다면 일상에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복을 누릴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지수 선교사(대만)
PCM 선교사를 통해 많은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9월 27일
안전장치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엠마는 절망적이었다. 옻이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얼굴까지 퍼져 외모에도 영향을 미쳤다. 빨리 증상이 가라앉았으면 했다. 어느 여성이 특정한 식물의 뿌리를 달인 물을 옻이 오른 부위에 발라 보라고 권했다. 자신의 고향 유럽에서 수년간 그렇게 하여 큰 효과를 봤다고 여성은 말했다.
엠마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고 뒤뜰에서 그 식물을 발견해 캐내고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엠마는 그 갈색 액체를 식힌 뒤 얼굴에 발랐다. 끔찍한 냄새가 났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옻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견딜 만했다. 친절한 여성의 조언대로 냄새를 참으며 엠마는 액체를 여러 번 발랐다.
그러나 곧 그것이 쓸모없는 조언이었음을 엠마는 깨달았다. 낯선 사람의 믿기 어려운 조언을 그대로 따라한 게 부끄러워졌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여러분은 누구의 조언을 따르는가? 요즘에는 온갖 조언이 넘쳐 난다. SNS나 인터넷, TV, 친구, 가족, 동료들까지도 언제든 충고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조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즉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이끄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치고 이끌겠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단순히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늘어놓은 책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를 이끌고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분은 자녀들에게 영생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건강, 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 지침을 주셨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성경은 우리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조언이 있지만 하나님의 조언만이 안전하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 선교
북북북 청년 선교사 운동을 위해
9월 28일
남다르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두 어부였다. 바울은 배운 사람이었고 누가는 의사였지만 마태는 세리였다. 다윗과 선지자 아모스는 양치기였고 엘리사는 농부였다. 라합은 매춘부였고 기드온은 흙수저였고 모세는 도망자였다.
비천한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된 또 한 사람은 바로 느헤미야이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의 술을 따르는 자였다. 가장 강한 군주와 접촉할 수 있는 그의 직책을 활용해 하나님은 유다를 재건하셨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에서 70년을 포로로 지냈다. 자기 민족을 위해 왕에게 호소할 기회를 얻은 느헤미야는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느 2:5)라고 말했다. 대담한 요구였지만 왕은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도시를 재건했을 뿐 아니라 위협, 반역, 반대 등 숱한 어려움에도 개혁을 단행해 유다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개혁을 단행하게 했다.
느헤미야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 남다르게 헌신했다. 그는 건축가가 아니었지만 벽을 다시 쌓았고 장수가 아니었지만 하나님 백성의 전투를 준비했다.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었지만 예루살렘과 온 유다의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헌신적인 느헤미야의 사례는 누구든지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훌륭한 본보기이다. “자기를 비워 마음속에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자리를 내주며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의 유용성은 끝이 없다”(치료, 159).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사람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동현 선교사(대만)
베이툰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대만 대학생 선교 센터 건축을 위해
9월 29일
마무리 작업
“그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느 3:4)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절망적 상황을 곧바로 파악했다. 위대했던 도시의 성벽은 무너져 내렸고 입구는 불타 버렸다. 당장 조치가 필요했고 시민들에게 위대한 사업에 동참하라고 호소했다.
그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느헤미아 3장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업적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엘리아십에 이어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했다고 진술한다(느 3:2).
3장에서는 예루살렘 주민들의 놀라운 협력을 묘사한다. “그다음은”이라는 말이 거의 30번이나 언급되어 그들이 한 목적으로 연합해 비범한 결과를 이루어 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그 사업에 동참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했다고 5절에서는 말한다. 사업에 대한 거부는 후세대를 위한 교훈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비슷한 열정으로 복음 사명을 다하기를 바라신다. 대도시에도 작은 마을에도 세 천사의 기별은 선포되어야 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언젠가 하나님의 백성은 한 무리가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곧 오실 구주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느헤미야 당시처럼 한마음으로 연합해 이 시대 안에 사업이 완성되기를 기도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 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는 자녀의 믿음과 건강을 위해
9월 30일
마음 들여 일할 때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느 4:6)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의 눈에 망가진 도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성읍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대담한 계획이 지나친 낙관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은 다윗왕이나 히스기야왕 시절의 영광스런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바벨론 군사들이 쳐들어와 도시를 파괴했고 남은 사람들은 기가 꺾였다. 느헤미야는 그들을 독려해 성벽을 재건하자고 했다. 또 어떻게든 이들을 방해하려는 반대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재건 사업은 더 힘들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그들이 쌓고 있는 성벽은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더라도 무너지게 될 것”(느 4:3, 쉬운)이라면서 느헤미야의 무리를 조롱했다. 그에 대해 느혜미야는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우리는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하는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다른 나라로 잡혀가게 해 주십시오”(4절, 쉬운)라고 응수하면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했다.
재건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궁극적인 요인을 한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6절에서는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백성이 성심껏 일했기 때문이다”(바른성경). 고된 역경과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작심한 원수들을 만났음에도 유다 백성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어 냈다. 그 비결은 “마음 들여” 일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긴 일을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은 헌신했다.
동일한 이유로 교회 성장이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마음 들여” 일하는 교회는 전도와 지역 사회봉사에 힘쓰면서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해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한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마음 들여” 일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복음 전도에는 노력, 참여, 투자가 요구되지만 그 결실은 그 노력 못지않게 값지다. 사역을 위한 마음가짐이 교회를 영혼 구원 센터로 바꿔 놓는다. “마음 들여” 일하는 교회는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수, 이주연 선교사 부부(대만)
싸루국제교회 제자훈련과 패스파인더 활성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