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 수영비행장
해운포(수영만) 매립, 옛수영비행장 자리 센텀시티 조성
1934년 부산의 기업가 하자마 등이 지금의 센텀시티 일대에 해운대 골프장을 개장하였다. 그곳은 스즈키(鈴木)가 복숭아, 포도, 배 등을 재배한 과수원이었다. 하자마는 과수원을 구입하여 골프장을 조성하였다. 그 당시 회원이 130여 명으로 해운대 온천장과는 10여 분 거리였다.
이곳 충적평야에 비행장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0년으로 일본 육군은 인근 주민들을 강제로 징용 동원하여 군사비행장을 건설하여 일본 육군비행장으로 개장하였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는 일본군의 후방 병참기지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군사비행장을 수영비행장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6년에는 미군정청이 한국 민간인 수송을 위하여 C-47 항공기 8대로 서울~대구~부산 간 노선을 주 2회 운항하였다. 1948년 10월 30일 대한국민항공사(KNA)에서 부산~서울 간 노선 취항으로 최초로 민간항공 운송이 시작되어 비행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전쟁기 때인 1950년 8월부터 1954년 4월까지는 수영비행장을 임시 국제공항으로 지정하여 유엔군의 전투병력 및 군사물자 수송을 위한 군용비행장으로 사용하다가, 전쟁 이후에는 일반공항으로 지정하였고, 교통부에서 일부 시설과 부지를 인수하여 군용비행장으로 계속하여 사용하였다. 1953년 12월부터는 수영비행장을 기점으로 광주·군산·대구·제주 간의 노선을 부정기로 운항하였다.
1958년 1월 30일 수영비행장 시설의 개·보수를 통하여 부산비행장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등 항공운송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여 항공운송이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매년 그 수요가 증가하였다. 1963년 9월 30일 김포국제공항에 이어 부산국제공항으로 승격되어 항도 부산의 관문이 되었다. 1963년 9월 1일 한·일 간 정기항공노선인 부산~후쿠오카 노선이 개설되어 국제선이 취항하게 되었다.
1970년 6월 10일에는 부산~서울, 부산~후쿠오카 노선에 DC-9 제트여객기를 투입하여 운항시간을 단축시키는 등 여객을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부산국제공항은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매년 증가하는 국내외 관광객 및 화물에 비례하여 부산국제공항 확장계획을 검토하였으나, 지리적 여건으로 확장이 불가능하여 공군비행장이 위치한 김해로 이전키로 확정하였다.
1976년 8월 이후 수영비행장은 국방부에서 군용비행장으로 관리·이용되어 오면서 활주로 양측 외곽 부지를 임대해 주어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1996년 2월 16일 군용항공기지에서 제외되면서 비행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옛 수영비행장 자리에는 센텀시티(Centum City)가 들어섰다. 센텀은 100을 의미하는 단어, 시티는 도시의 복합어로 주거, 컨벤션, 엔터테인먼트, 관광, 방송, IT, 영상 등 복합기능을 100% 갖춘 첨단 미래 도시를 뜻한다.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