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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 백아산(白鵝山 810m)을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2월23일 묘시(卯時)에 일어나니 주위는 어둑 어둑하고 히뿌연 날씨에 지다남은 반달이 중천(中天)에 떠 있으며, 띄~엄 띄~엄 잔월효성(殘月曉星)이 희미하게 빛나도다! 오늘은 시산제(始山祭)를 겸한 산행이라 준비물이 엄청 많아서, 내자(內子)의 도움으로 출발지에 이르니 1번 도착이다.
잠시후 능선(신동승)님을 비롯하여 10여 명이 차례 차례 도착하고, 그 뒤를 이어 금부총무님 일행들이 도착하여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차는 서남시장, 한국광유를 거쳐 칠곡 IC에서 여유롭게 출발합니다.
일기예보에 미세먼지가 많다드니... 동녘하늘에 붉은 태양이 잘익은 홍시같아 금호강(錦湖江)에 떨어져서 오늘은 두 개의 해가 천지(天地)에 아롱거리도다! 이는 길조(吉兆)인가? 흉조(凶兆)인가?
이런 저런 상념(想念)으로 지난 18년의 세월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치니... 오고가는 인생사가 새삼 무상(無常)하게 느껴집니다. 차는 “88고속국도”를 달리는데 도로는 확장공사로 노면(路面)이 고르지 못하여 덜컹 덜컹 마차 달리는 소리가 난다.
도중에 ‘거창휴게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하고는 줄곧 내달아 ‘지리산휴게소’에 잠시 들려 휴식합니다. 이른 시간이라 넓은 마당에 인적은 드물고 마당 가운데 몇 그루의 청솔은 예나 지금이나 청청(靑靑)합니다 그려!
다시 남원을 지나 순창 IC에서 27번국도를 타고 옥과를 거쳐 화순군 북면 “백아산관광목장”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시계는11시가 다 되어간다. 준비해 온 제물을 여러회원님들이 골고루 나누어 들고 일열로 오르시니 질서가 정연합니다.
10여분을 올라 관광목장 뒷산의 넓은 잔디밭에서 단체로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 백아산(白鵝山) 정상을 향하여 진행하니, 입구에는 “연리목(連理木) 과 연리지(連理枝)”에 관한 작은 비문(碑文)과 설명서가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백거이(白居易)선생의 ‘장한가(長恨歌)’ 中에 한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나는 새가 되거든 남방의 비익조 같이 함께 날고, 나무가 되거든 연리지가 되라.”(비익조: 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는 글귀가 있으며, 그 뒤로는 “우리의 금실(琴瑟) 영원하여라!”는 작은 팻말이 걸려있어 목장주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는듯 합니다.
30여 분을 선두로 올라 505고지 작은 능선에 오르니, 날씨가 어찌나 포근하고 청명(淸明)한지 온몸에 땀이 솟아나고 지근한 거리에 백아산 구름다리(하늘다리)가 손에 닿을 듯 하다.
다시 30여 분을 더 올라 거대한 “마당바위” 부근에 이르니, 산봉우리 전체가 ‘바위덩어리’로 단단하게 뭉쳐있어 웅장하고도 상(祥)스런 기운이 감돈다.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져서 크고작은 봉우리들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등산로는 잘 다듬어져 있어 걷기에 안전하고도 편안하며, 경사가 심한곳에는 철계단을 시설해 놓아서 오르기에 한결 수월하다. 그럭저럭 마지막 철계단을 오르니, 바닥에는 동절기에 안전을 고려해서 덕석처럼 엮어서 깔아 놓았다. 산꾼들을 위한 관계당국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마당바위 정상에 오르니, 넓고도 넓은 잔디밭에는 각처에서 온 등산객들이 군데 군데 모여앉아 점심을 들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한 다음 양지바르고 평평한 곳(乾方:하늘방향)에 자리를 깔아 기다리니, 김광열님이 뒤이어 도착하고 연이어 남산님들이 힘겹게 오르신다. 혹자는 편한곳(산기슭)에서 모시자고 하나, “우리들의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의 감응(感應)도 클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이 늘 님들을 힘들게 합니다.
고맙고 송구한 맘으로 운반해 온 제물들을 정성껏 진설하여 “갑오년(甲午年)시산제(始山祭)”를 모심니다. “유세차갑오정월병인삭이십사일을축(維歲次甲午正月丙寅朔二十四日乙丑) 유학(幼學) 대구남산산악회원(大邱南山山岳會員) 일동(一同) 감소고우(敢昭告于)...” 우리 남산님들의 건강과 시방세계(十方世界) 산행에 무사안녕을 빌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일체소원성취를 기원 기원 하였슴니다.
모든 회원님들이 차례 차례 정성을 다 올린후, 점심을 겸해서 떡이며 과일, 돼지고기를 골고루 나눠서 드시니... 더는 바랄게 없슴니다.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포근하고도 고요하여서 바람한점 느끼지 못하겠으며, 황사현상도 많이 가벼워져서 아침나절 보다 시계(視界)가 한결 멀어졌슴니다.
점심후 “마당바위표석”을 배경으로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 봅니다. “마당바위”는 사방이 바위(암반)로 뭉쳐져 있는데, 그 윗부분은 워낙 넓고도 평평하여서 ‘헬기장’이 들어서 있으며, 또 상당량의 흙으로 덮여있어 얼핏보면 암반위라는 사실을 못느낄 정도이다.
연하여 북동방향에는 이름모를 묘(墓) 한기가 외롭게 잠들어 계신다. 백호(白虎)와 청룡(靑龍)이 모두 암반(巖盤)으로 감싸고 있으며, 백호 보다는 청룡이 훨씬 강하고 웅장하도다!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은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그야말로 중중포리(重重袍裡)다.
이 높은 곳까지 옮겨모신 후손들의 정성이 가히 하늘에 닿고도 남겠슴니다. 옛 선인들은 우직하고도 효성스러워서 선조를 하늘처럼 모시고 있으니... 오늘날 신세대들은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슴니다 그려!
다시 ‘하늘다리(구름다리, 출렁다리)’ 방향으로 오르니, 두 개의 봉우리로 나눠진 대협곡 사이를 거대한 ‘인공철구조물’로 다리를 놓아서 한꺼번에 150여명 정도는 건널 수 있다고 씌여있다.
안내문에 백아산(810m)은 정상이 희끗희끗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마치 흰 거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흰거위산’이란 뜻으로 ‘백아산(白鵝山)’이라 한다. ‘하늘다리’는 2013년에 설치 하였으며, 연장 66m, 지상고 41m, 해발 720m 높이에 시설되어 있고, 안전을 위해서 한꺼번에 30명 이상은 건너지 못하게 한다.
또 6.25 당시 빨치산 주둔지로 사용, 토벌대와 ‘마당바위’에서 혈전으로 유명하여 당시 하늘로 돌아간 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하늘다리’라 하였으며, 멀리 서북쪽엔 무등산과 남녘으로는 모후산(母后山)을 조망(眺望)할 수 있다.
오늘날 ‘건설공법’이 뛰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거대한 ‘철구조물’을 옮겨 설치하는데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었을까를 생각하니 그저 아찔하게 느껴지며, 산꾼들에게는 더 없이 편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허나~ 아무리 봐도 ‘관광목적’이 앞서는 것 같으며 아름다운 대자연에 많은 상처가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가 없슴니다.
여러 회원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는 서둘러 백아산 정상으로 진행합니다. 점심후라 배도 든든하고 날씨도 포근하여 능선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등산로 좌우(左右)에는 철쭉나무가 넓게 분포돼 있어 제철에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들며, ‘하늘다리’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산세는 험하고 날카로운 바위들이 많아 걷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으며, 주위에는 높은산들이 없어 시계(視界)도 넓어서 속이 다 후련합니다. 40여 분을 걸어 그럭저럭 정상에 오르니 조그마한 빗돌(백아산 810m)에 한사람이 앉기에도 그저 비좁게 느껴짐니다.
여러 회원님들이 도착하시는데로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잠시 사방을 조망(眺望) 하는데... 멀고 가까운 산봉우리들이 열지어 다가오니,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었는 듯 천하가 발아래로 보이고, 힘들여 태산에 오른 보상을 톡톡히 받슴니다 그려!
절기는 입춘 우수를 지났건만 낙엽수는 아직도 앙상한 가지에 싻눈이 단단하여 봄소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으며, 간간히 홀로 서 있는 청솔만이 푸르럼을 뽐내며 그 절개를 지키고 있슴니다.
백아산(810m)은 호남정맥상의 연산 부근에서 남동쪽으로 작은지맥을 따라 꾀꼬리봉, 기우산, 차일봉을 지나 이곳 백아산(白鵝山)에 이르고, 다시 그 잔여지맥은 매봉, 밤실산, 모후산(943m)을 거쳐 매봉산(497m)에서 그 맥을 동복천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통명지맥이라 한다.
얼마를 쉬다 후미에서 도착하신 황고문님과 김해진님의 요청으로 대 여섯명이 함께 사진촬영을 마치고 다시 하산길로 접어듬니다. 중도에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여러개 넘어 ‘동화삼거리’ 부근에 이르니, 금일 산행에 동참하신 ‘앞산산악회원’ 세분이 선채로 휴식을 하고 계신다.
반갑게 감사(感謝)의 인사를 드린후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얼마를 함께 걷슴니다. 마지막 768고지에서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옛 팔각정자가 있었던 곳에서 세분은 먼저 하산하시고, 10여 분을 기다려서 후미와 다시 합류 합니다.
옛 정자(亭子)터에는 돌기둥만 여덟 개가 당그러니 서 있고, 지붕은 온데간데 없슴니다. 모든 건축물은 온전히 제 기능을 할 때 가치가 있는것이지, 허물어지면 흉물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만 훼손시킴니다.
다시 몇걸음을 더 나려오니 상당한 크기의 묘(墓) 한기가 보인다. 주위를 살펴보니 혈장(穴場)이 크고 국세(局勢)가 웅장하며, 청룡(靑龍)이 잘 발달하여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도다! 봉분(封墳)의 크기로 보아 당시의 권력이나 재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지금도 묘역(墓域) 관리가 잘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그 후손들의 정성이 지극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저런 주제없는 얘기들을 주고 받으며 1시간 여를 걸어서 ‘자연휴양림’에 도착하니, 여러개의 통나무집들이 숲속에서 동면(冬眠)에 들어 있다. 포도(鋪道)위를 10여분 걸어서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산주를 끓일 여건이 되지못하여 서둘러 동복호(同福湖)의 물염정(勿染亭)으로 달림니다.
구~불~ 구~불~ 휘어진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20여리나 달려서 동복호 상류(上流)의 물염정(勿染亭)에 도착하여, 하산주(下山酒)를 준비할 동안 여러회원님들과 함께 물염정 주위의 풍광을 답사합니다.
모두들 이~야~! 하면서 탄성(歎聲)을 지르는데... 이럴때는 제가 괜히 우쭐해 짐니다 그려! 정자(亭子)가 있는 이곳은 광주 무등산 부근에서 흘러내린 작은지맥이 까치봉(424m)과 유둔봉(457m)을 지나 마지막으로 그 지맥이 단단하게 뭉쳐서 볼록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 이며, 주위의 풍광 또한 빼어나서 많은 답사객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일설에는 중국 송나라 소식(蘇軾)이 지은 ‘적벽부(赤壁賦)’의 적벽 경치와 흡사(恰似)하여 부쳐진 이름이라 하는데... 물염적벽(勿染赤壁)을 비롯해서 창랑적벽(滄浪赤壁), 보산적벽(寶山赤壁), 장항적벽(長項赤壁) 등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또 방랑시인 김삿갓이 죽은곳으로 더 유명하다.
인하여 입구에는 김삿갓 선생의 비문(碑文)과 시문(詩文)이 새겨진 돌병풍(石屛風)이 세워져 있어 특별하며, 그 옆에는 선생의 석상(石像)도 모셔져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병연(炳淵)이요, 호(號)는 난고(蘭皐) 또는 김삿갓(金笠)이다.
김병연은 명문 안동김씨의 일가로 출생하여, 조부 김익순이 높은 벼슬을 지내 남부럽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그가 다섯 살때 순조 11년(1811) 평안도 일대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가산군수를 지낸 “정시”는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했으나, 선천에서 부사를 지내던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항복하여 겨우 목숨을 구했다가, 농민군이 관군에게 쫓길 때에는 농민군의 참모인 “김창시”의 목을 1천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功)을 위장하였다.
나중에 그런 사실이 밝혀져 “김익순”은 참형을 당하였고, 병연의 부모는 이 사실을 철저히 숨겼으며, 병연은 열심히 공부하여 향시에 나가 장원을 하였다.
당시 백일장의 시제(詩題)가 “정시 가산군수의 죽음을 논하고, 하늘에 사무치는 김익순의 죄를 탄식하라”였는데, “한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번 죽어 마땅하다.”라고 한껏 저주 하였는데...
출세를 보장해 줄 ‘과거시험’이 조상을 욕하는 영원한 ‘기념물’이 되어, 그는 천형(天刑)의 죄인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타고난 역마살에 고행에 가까운 방랑(放浪)을 시작하여 57세에 이곳에서 타계 하였는데, 그의 둘째 아들이 영월까지 운반해서 장례를 치뤘으나, 1982년 영월 향토사학자 “박영국”에 의해 ‘와석리’에서 그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간단하게 그의 시(詩) 한편을 옮겨봅니다.
촉촉첨첨괴괴기(矗矗尖尖怪怪奇)(꼿꼿,뾰족뾰족,괴괴한 경개가 하도 기이하여)
인선신불공감의(人仙神佛共堪疑)(사람도,신선도,신령도,부처도 놀라 못 믿을 것 같다.)
평생시위금강석(平生詩爲金剛惜)(내평생 소원이 금강산을 읊으려고 별러 왔으나)
급도금강불감시(及到金剛不敢詩)(금강산을 대하고 보니 시를 못쓰고 감탄만 하는구나!)
한번은 개성에 가서 어느 집 문앞에서 하룻밤 잠을 청했는데, “집주인이 문을 닫아걸며 땔감이 없어 그런다고 했다.”
읍명개성하폐문(邑名開城何閉門)(고을 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걸며)
산명송악기무신(山名松岳豈無薪)(산이름은 송악인데 어찌 땔감이 없다 하느냐)
또 한번은 어느 가정집에 들려 점심때가 되었는데, 제법 유식한 마누라가 남편에게 “인량차팔(人良且八)”하니까, 남편이 “월월산산(月月山山)”이라고 대꾸한다. 그러자 김삿갓은 “견자화중(犬者禾重)아, 정구죽천(丁口竹天)이로다.”하고 자리를 떠난다.
(人+良+且+八)=식구(食具)이니, “밥상차릴까요?” (月+月+山+山)=붕출(朋出)이니, “이친구 나가거든”, 김삿갓이 한말 (犬者禾重+丁口竹天)=저종가소(猪種可笑)가 되니, “이 돼지 새끼들아 가소롭다”는 뜻이다. (이상 방랑시인 김삿갓 참조)
하늘이 내린 인재(人材)도 타고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니... 부평초(浮萍草) 같은 그의 인생이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병풍석(屛風石) 뒤를 돌아드니, “물염정(勿染亭:지방기념물 제60호)”이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세워져 있다.
안내문에 ‘물염정’은 16세기 중엽에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지었으며, 뒷날 외손 나무송(羅茂松) 나무춘(羅茂春) 형제에게 물려 주었고, 그후 여러차례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정자 내부에는 하서 김인후(金麟厚), 택당 이식(李植), 석주 권필(權韠),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송병진(宋秉瑨) 등이 ‘물염적벽’을 노래한 시문 28수가 걸려있어 더욱 격조(格調)를 높여주고 있슴니다.
또 ‘물염정’은 담양의 식영정(息影亭), 완도 세연정(洗硯亭), 광주 호가정(浩歌亭), 곡성 함허정(涵虛亭), 나주 영모정(永慕亭), 영암 회사정(會社亭), 장흥 부춘정(富春亭) 과 더불어 전남 8대정자 中의 제1호라 한다.
여러 회원님들과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주위를 한바퀴 휘~ 돌아 나오니, 그사이 하산주가 준비돼 있어 모두들 맛나게 드심니다. 또 벽송 산대장님께서 필자에게 건배 제의가 있어... “오늘 백아산 산행에 참석하신 모든분들의 건강과 남산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방 랑 시 인 김 삿 갓
김문응 작사 전오승 작곡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 천--- 리
흰구 름--뜬--고 개-넘-어- 가는-객이누구-냐
열두대 문 문간--방--에 걸식--을-하--며--
술한-잔-에--시한-수--로 떠 나-가 는김삿-갓-
단기 4347년(서기2014년) 2월 23일
전남 화순군 백아산(白鵝山 810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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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산행후기가 많이 늦었슴니다.
아울러 백아산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오며,
산행당일 진행에 수고하신 벽송대장님을 비롯하여 능선 부대장님, 김광열 부대장님,
박총무님, 금부총무님 등 모든분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또 산행에 동참하신 "앞산산악회원님들"과 "예향산악회원님들"께도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상호간에 많은 교류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물염정의 비경과 풍자와 해학의 시인 방랑시인 김사갓 김병연 선생님의,
생애 많은 역사공부하고 갑니다.
긴장문 쓰시느라 수고많은 셨고 산행후기는 먼후날 남산의 발자취에좋은 길잡이가 될것 같습니다.
벽송님이 다녀 가셨군요! 늘 바쁜일과 속에서도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열심히 사시는 모습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당일 백아산 산행 진행에 수고많으셨으며,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백아산 산행후기로 못가본 백아산의 아름다음을
고회장님 덕분에 즐감합니다~
이고문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대자연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필력이 둔한 저로서는 다 표현할 수 가 없었슴니다.
함께할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것인데... 이고문님의
입장이 여의치 않으시니 아쉬움이 큼니다.
언제라도 시간되시면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산행 후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역사가 많은 백아산에 얽힌 옛날 이야기는 현재에도 살아 숨쉬고 있지요.
항상 수고 하시고 고생이 넘쳐도 산악인을 위한 마음은 한결 같아서 감사함을 전 함니다.
황고문님이 다녀 가셨군요! 황고문님을 비롯해서 모든회원님들께서 열심히 도와주시는
덕분에 우리산악회가 다달이 발전을 하고 있슴니다.
부족한 장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으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빌겠슴니다.
회~장~님~~♪♪
후기 잘~~읽고 갑니다
늘 좋은글 감동있게 전달하시어 넉넉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구~슬~님~이 다녀 가셨군요!
한동안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뵐 수 있어 무척이나 기쁨니다~~~
졸문의 후기로 어찌 그날의 감동을 다 전할 수 있으리오!
산행연습 많이 하셔서~~~ 동참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