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우의정 휘 희(양간공파‧의정공파)
1729(영조6)- 1800(정조25)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선지. 호는 근와. 시호는 효간공.
아버지는 증 영의정 상경이며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덕수 이씨이다.
1762(영조39) 생원시 장원으로 합격하여 경릉 참봉. 북부 봉사를 지냈다.
1773(영조50) 증광시 문과에 병과 50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 가주서를 거쳐 권지 부정자에 선보 되었다.
그 후 설서겸 춘추관 기사관이 되어 문학으로 중망에 올랐고
전 라 좌도 경시관으로 있을 때 과거의 공정을 기하였다.
수원 부사, 대사간, 대사성을 거쳐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왕명으로 주자전서를 점비(點批)해 올렸으며
병조, 호조, 이조, 공조, 예조참판을 거쳤다.
송자 대전을 교정해 올려 왕이 술우평이라 사호(賜號)하였다.
광주 목사로 있을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유사를 지었다.
형조, 예조판서와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서흥 부사와 규장각 직제학,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다.
의정부 우의정에 올랐다가 만년에 연산 향리로 퇴거하였다.
시호는 효간공이며 임금이 지은 제문을 하사 받았고 영정과 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광산 김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