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의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생각과 선택 가운데, 중요하게 여기는 '정의'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답다 하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합당한 삶에 대한 고찰 가운데 그 중심적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정의'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아닐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이 추구해 온 '정의'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과 가치를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 상황적 요인에 따라 바뀌는 가치는 진리가 아닌 것이니, '정의'라는 시대적이고 환경적인 선택적 개념은 진리가 아니다.
그럼 '요즘 시대의 정의'와 '궁극적 의미로서의 정의' 이 둘 중 어떤 것이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일까?
'정의'의 본래적 의미에는 대다수의 인간이 옳다고 믿는 것이 담겨 있지 않다. 본래적 의미로서의 정의는 바로 '신의 뜻'을 대변할 뿐이기 때문이다. 신이 정한 신의 뜻이 '정의'이고, 그것에 합당한 공감과 동의, 순종이 믿음으로 주어져 삶의 증거로 고백되어지는 것이 본래적 의미로서의 '정의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여러 시대를 지나면서 시대적이고 환경적인 해석을 통해 다른 가치적 중심을 쫓아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관점적 변화를 통한 개념적 해석의 범주를 넘어 본래적 가치 변화를 추구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이제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 시대를 열었고,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뜻'이 중요한, 변화된 관점을 인간들의 더 나은 가치로, 곧 '인간들에 의해 인간들을 위한 인간들의 정의'로 붙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뜻'이란 전체적이면서 집단적인 공동의 합의적 개념의 정의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공의나 공리주의니 하는 것 조차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와 관점은 '모두의 가치'에서 '나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더욱 편합한 선택과 관점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첫번째였던 아담이 그의 돕는 베필과 더불어 하나님처럼 눈이 밝이지리라 미혹한 뱀을 따라 하나님의 질서와 관점 안에서의 순종 대신에 스스로가 그 질서의 주체가 되고 판단받는 자에서 판단하는 자를 꿈꾼 순간 하나님의 공의 대신에 붙들게 된 인간의 정의를 따라 살아 온 인간들의 죄로 인한 문제인 것이다.
더 이상 모두의 정의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선과 악의 분별 조차도 인간의 선택적 범주 안에 있다고 믿게 된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모두의 공의는 무의미해지고, 오직 나에게 유리하고 나를 기쁘고 만족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는 의미로서의 '편협한 정의'를 추구하는 '말세적 정의'가 세상에 창궐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호환, 마마 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서운 것이며, 가장 강력한 악의 근간이고, 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의 죄가 그 피로 이어진 인간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두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며 사는 세상을 어떻게 정의롭게 만들 것인가? 즉 답이 없는, 아니 질문 자체가 답을 가지지 못한 오류의 해답을 찾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면 변하게 된 가변적 개념으로서의 정의를 위해 무엇을 걸 것인가?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하고, 누구도 구하지 못한다. 진정한 정의는 내가 불법이고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회복할 수 있다.
더 이상 내가 그 모든 관점의 중심이 아니라, 나의 권리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 모두를 대속하여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값을 치룬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내어 줄 수 있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절대적 정의, 곧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전적인 순종을 내어 드릴 때 비로서 우리의 삶에 드러나지고 열매 맺게 될 것이다.
세상 어떤 인권도 신권을 앞설 수 없다. 누구의 정의도 창조주의 뜻을 대변하거나 대체할 수 없고, 주의 공의 없이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인간의 정의란 존재하지 않고 무의미한 것이다.
생각과 스스로의 판단을 내려 놓고, 그저 겸손히 신의 뜻 앞에 엎드려 겸허하게 수용하고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라. 그러면 이 땅 곳곳에 인간의 땅과 나라가 아니라, 주가 주인되시는 주의 나라가 임하고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그 주의 나라에서 주와 연합함으로 주의 나라를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인간의 '정의'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