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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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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내맡김영성 강의 2020.06.05. 지리산 피정 강의
테바 추천 0 조회 8 24.01.20 18:12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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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1.21 09:49

    첫댓글
    즉, 정화의 과정은 감각에서 영혼으로,
    능동에서 수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능동적인 밤은
    인간이 완덕에 이르고자 완덕의 정상에 서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것으로서,
    스스로 벗고, 끊고, 버리고, 없애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스스로 무(無)에 이루고자 투쟁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감각의밤, 이성의 밤, 기억의 밤,의지의 밤,
    끊고 버리고 비워지기 위해

    정화의 과정은
    1, 감각의 능동적인 과정
    2, 영혼의 능동적인 정화과정
    3, 감각의 수동적인 정화과정
    4, 영혼의 수동적인 정화과정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의 깊은 수동적인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영적 진보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조명의 길' 혹은 '주부적 관상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 작성자 24.01.21 09:57


    그리고 이러한 정화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영원히 정화를 거듭할수록 사랑에 불타게 됩니다.

    이러한 정화는 반복해서 그 깊이를 더해가며
    영혼을 순결하게 하지만
    그 깊이로 영혼은 더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반복되는 정화의 고통으로
    영혼은 모든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고요함을 얻고
    하느님과 합일할 수 있도록 영혼을 비우며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의 지식으로 사랑이 불타게 됩니다.

    오직 사랑만이 하느님과 결합시켜 하나가 되게 합니다.

    결론,
    이렇게 정화된 인간은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정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합일할 수 있도록
    인간의 감각과 영혼의 고통을 포함하는
    영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정화는 하느님을 향한 나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합일을 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인간의 자기 비움이며
    인간의 그 대상을 향한 자기 변화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아가서 하느님과 사랑으로 합일하려는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과도 합일 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작성자 24.01.21 09:57


    moowee 12.02.13 09:15

    화살기도"를 하여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게 되면,
    영적이 귀가 뚫리고, 영안이 열려,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되고,
    그럼으로써, 말씀이 이뤄지고 완성이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이 나날이 정화시켜 주시고 닦아 주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으로 완성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하시는 것,
    이것이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하느님께 나가는 길은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하느님만 믿고 살아 가면, 하느님이 다 해주시는 것,
    이것이 "내맡김의 영성" 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통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이
    "내맡김의 화살기도" 입니다.

  • 작성자 24.01.21 09:59


    하여튼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내맡김>과 <끊임없는 기도> 이 두 가지이다.

    <첫째> 하느님을 믿는 모든 신앙인은 다
    하느님께 내맡기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내맡겨도 되고 안해도 되고 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이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반드시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하느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을 신앙인이라 말할 수 있나?,...

    <둘째>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 후,
    가장 중요한 것이 <끊임없는 기도>이다...

    거룩한 내맡김의 지난 역사 10년을 돌아보면
    그토록 뜨거운 마음과 눈물로 내맡김의 봉헌을 하고,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에 열심히 활동하던 하내영도
    끊임없는 기도에 소홀하면 내맡김의 삶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많이 증명되었다.

    <끊임없는 기도>는 또한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의 <영과 육의 정화>를 위해
    매우 소중한 도구이다

    끊임없는 기도는
    그런 과거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들을 정화시켜
    나날이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켜 준다.

  • 작성자 24.01.21 09:59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로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항상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작성자 24.01.21 10:01



    그러나 '내맡김',
    특히 하느님께 완전히 위탁하는 내맡김, 거룩한 내맡김은
    한 번 완전히 내맡기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내맡기는 주체가 아무리 부족하고 죄스러운 주체라 하더라도,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으로 한 번 하느님께 내맡겨,
    하느님이 받아주시기만 하면 곧
    그 주체가 하느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맡긴 주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다하여도
    그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레사 성녀나 이냐시오 성인이나 후코 성인의 기도들이
    바로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의 기도들이다.

    완전한 내맡김,
    다른 말로 '거룩한 내맡김'은 곧 주체가 "無"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맡김'과 '비움'이나 '내려놓음'의 큰 차이인 것이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각각의 삼위로서 일체,
    완전한 하나를 이루신다는 삼위일체이심을 기념하는 오늘,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를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으로 이해해 보고 싶다.

    '완전한' 사랑으로
    三位 서로에게 '완전히' 내맡겨,
    '완전히' 無化되어 '완전한' 하나가 되신 전능하신 하느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작성자 24.01.21 10:02


    moowee 14.06.14 08:58

  • 작성자 24.01.21 10:07



    지도사제 12.03.06. 08:19 ( 마처예함 )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가 나았다."(이사53,5)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100%) 내맡긴 영혼들은,
    죄 짓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걱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느님께 내맡겼습니까???
    우리가 부족하고 허물 많고 죄스러운 인간이기에 내맡긴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께 내맡긴 영혼들을 "죄를 통해서도"
    나날이 조금씩조금씩 당신 가까이로 이끌어 주십니다.

    내맡긴 영혼들은 죄를 생각지 말고,
    그냥 하느님만 사랑하기 위하여
    "내맡김의 화살기도" 만 열심히 노래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저절로 죄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내맡김의 화살기도의 놀라운 신비요 능력입니다.

    내맡기기 전에는
    내가 죄를 짓지 않으려 발버둥쳤지만,

    내맡긴 후에는
    하느님이 죄를 정화시켜 주시고 죄에서 멀어지게 해 주십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시는 것이
    "내맡김의 삶(영성)" 인 것입니다.

  • 작성자 24.01.21 10:08


    지도사제 13.04.13. 22:23

    < 거룩한 위탁, 내맡김> 없이는
    저얼~때로 <하느님 뜻 영성(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뜻 영성을 산다는 사람은
    <저얼~때로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


    죄를 지으면 하느님 뜻을 벗어나게 되니까요.
    오로지 <하느님 뜻대로만 살아야 합니다>.

    제가 부족한 저를 내어 맡겨 드리니
    어느날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오더군요.
    < 하느님 뜻 영성>이 말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부족한 인간을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하여
    하느님 뜻 영성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부족함과 죄를 통해서도 가르쳐 주시고
    나날이 거룩히 정화시켜주시면서 말입니다

  • 작성자 24.01.21 10:11

    @테바

    지도사제 13.09.01 01:14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신자들에게 <죄책감>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다만,
    신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줄 뿐입니다.

    자신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자신도 모르는 어두움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 주는 것은
    예언자적 사명입니다.

    자신의 어두움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밝은 빛이신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 적지 아니 많은 스스로 열심하다는 신앙인이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어둠을 깨닫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교만'뿐입니다.

    하느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등잔 바로 밑이 가장 어둡듯이
    그 어둠이야 말로 짙디 짙은 어둠이며
    어둠이 짙기에 더욱 자신을 몰라봅니다.

    교만의 대천사 루치펠이
    하느님 제일 가까이에 있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하느님 가까이보다 아예 하느님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빛 안으로 고울 인해야 합니다.

    빛이신 하느님 안으로 고울 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100%의 내맡김입니다 )(지도사제 11.06.17. 11:03)

  • 작성자 24.01.21 10:10

    @테바
    지도사제13.09.01 08:32

    < 물>은
    높은데서 시작하여 낮은 곳으로 흘러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돌아갑니다.

    물은
    깨끗한 곳에서 시작하여
    더러운 곳까지 흘러듭니다.

    온갖 더러운 물이 모인 곳이 <바다>입니다.
    바다엔 <생명>이 가득합니다.
    생명의 바다입니다.

    생명의 바다에서 놀다 참생명이 계신 <하늘>로 돌아갑니다, 물은.
    참 생명을 얻은 물은
    다시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낮은 땅>으로 내려갑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 평화!

    주님, 영원무궁찬미영광 받으소서, 마음이 착한 사람들을 통하여!

  • 작성자 24.02.01 15:07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무척님의
    너무나 단순하고도 짧은 이 댓글을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비생활이
    어떻게 가능한지 절절히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기에

    주시는 삶 자체가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주시는 시간, 사람, 공간이 하느님의 마련하신 것인
    기적과도 같은 신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끊임없는 아버지기도>와
    <무형의 성전>의 반복되는 영적인 양식 때문입니다.

    이 관상과 묵상의 진정한 의미,
    사랑안에서
    매 순간 하느님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 일 없는 것 처럼 느끼겠지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지요.

    모든 것이 은총이고
    모든 것이 기적과도 같은 신비입니다.

    "성령"의 "사랑의 산 불꽃"입니다.

    이것이
    "의식의 깊은 수준에서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지요.

    그것이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긴
    "바오로 사도"의 일생일 것이며
    "예수 기도를 암송하던 러시아인 순례자"의 "기쁨"입니다.


  • 작성자 24.02.05 12:52



    하느님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은 원할 때면
    언제나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마음을 '꺼버리는' 단추를 갖고 있습니까?

    생각을, 내가 생각을 어떻게 컨트롤하는가?
    생각을 어떻게 다룰 줄 아는가?
    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거예요.

    본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문제가 있어요.

    그 의문을 내려놓아서
    아무 문제가 없는 본질에 계합하는 것이 우리 공부다. >

    참으로 수만가지 문제를 가득 안고
    살아온 인생에서

    문제가 없이도
    하느님과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
    건너온 것이 꿈만 같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말입니다.

    우리 지도사제의 가르침대로
    우선 생각을 끊고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돌입하게 되고

    그 틈을 비집고 또 생각이 치고 들어오지만
    날이 갈 수록 치고 들어온 그 놈을
    알아채는 것이 좀 더 쉬어졌습니다.

    무엇이 순서인지,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에
    오만 팔만가지 생각에서 자유하게 되어
    날개 달린 새가 되어 날아가는 삶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더 이상은 생각을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은 생각을 분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 작성자 24.02.05 13:00


    생각을 생각해야 되는 불교식 참선과 화두에
    침을 흘리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생각을 끊고 아버지 생각을 하도록
    배우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참으로 참으로 아버지하느님을 모르고
    내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하고 죄스러운 저를 <거내영>으로
    불러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죽도록 죽기까지 아버지만을 사랑하는 기도를
    하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수많은 질문과 수많은 문제를 안았던
    모든 것의 답이
    하느님 뜻에 내맡김 안에 있었습니다.

    <거내영>을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신앙인을 아버지께 내맡겨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작성자 24.02.15 15:07



    [ 지도사제 13.06.22. 11:39

    한 사람이 거룩하게 변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기적!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썽만 피우던 자녀가 마음 잡고 착실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것보다
    더한 기적입니다.

    바람 피우던 배우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배우자만 사랑하게 되는 기적보다
    더한 기적입니다.

    한 사람이 거룩하게 변화하는 것보다 더 한 기적은 없는 것입니다.]


    moowee 11.12.23

    "진실한 사랑"은 자기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준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줌으로 진정한 자기(眞我)를 완성한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며. 존재의 완성입니다.

  • 작성자 24.02.15 16:27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무량님의 댓글을 통하여

    "서양 신비 사상의 기원"(앤드루 라우스)안에 있는
    오리게네스에 대한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오리게네스가 말한 하느님을 관상한다는 것,
    즉 "하느님을 아는 것"이란 무슨 의미일까?(..)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에게 알려짐을 뜻하는 바,
    하느님은 당신을 아는 이들과 결합하시어 당신의 신성을 나누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신성을 가지게 됨" theopoiesis이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게끔 우리 스스로를 바꾸는 것, 우리가 다시 하느님을 닮아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상은 완성으로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순수하게 된 정신은
    하느님을 관상하며 완성의 길로 나아가는즉, 관상의 대상을 통하여
    대상 안에서 스스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


    하느님을 안다라는 의미는 하느님의 뜻과 일치한다는 것이며
    일치해야 비로소 하느님의 신성을 받아가진다는 뜻이지요.

    하느님의 본래의 모습으로 사람이 바뀌어지고
    존재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지요.

  • 작성자 24.02.15 16:28

    @테바

    "스스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표현처럼

    신앙의 최정상을 말씀하셨지만
    <거내영>안에서는 익숙하게 들려오니 참 놀랍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에 내맡김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길이 바로 <거내영>이지요.

    가장 탁월하고 단순하고 안전하고 완전하고
    빠르고 쉽게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고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해드리는삶,

    이 삶이 바로 하느님 뜻대로의 삶이며
    땅을 밟는 하느님 나라를 사는 길이며

    예수그리스도와 성모님의 뒤를 따르는 길임을
    진정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혼육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됨으로써,
    하느님을 소유하여 신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작은 하느님으로
    땅을 밟는 천국을 살아가는 100%내맡긴 영혼들의
    이야기이며,

    예수님이 가신 위탁과 사랑의 길을
    그대로 따라쟁이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내맡김의 모범이신 예수님과 성모님을 본받는
    참 신앙의 길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순종한다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과 내뜻이 일치한다는 것이며
    하느님을 목숨바쳐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 24.02.15 15:34

    @테바
    [moowee 12.05.19. 13:12


    우리 주님께서는 100% 내맡긴 모든 영혼들을 철저히 책임지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이끄심에 철저히 이끌려드릴 수록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성자 에수님이 오직 아버지의 뜻에만 복종하신 바로 그 모습을 살아갈 뿐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저나 저의 말을 따르는 부족하고 보잘 것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신 길을 따라댕이가 되어 졸졸 따라가게 하시니 말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은
    위대한 성인이나 성직자, 수도자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은 이제 제 삼천년기에 들어서
    당신을 따르는 길을 "大路" 로 열어 놓으셨습니다.


    大路 즉 넓은 길이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 아닌 평범한 많은 신자들
    즉 평신도들도 누구나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 주신 겁니다


    그러나, 이 길이 아무리 大路라 하더라도
    반드시 "좁은 문(루카13,23)" 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좁은 문이란 바로 "내맡김" 입니다

  • 작성자 24.02.15 15:35

    @테바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좁은 문을 거쳐야 합니다
    이 좁은 문, 내맡김의 결심 봉헌은 결심하기까지 상당히 어렵기에 좁은 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맡기기만 하면 그때부터 탄탄대로가 펼쳐집니다


    왜, 이곳의 여러분들이 내맡김의 삶에 열렬한지 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좁은 문인 내맡김의 문을 통과하하였기에
    탄탄대로에 들어서셨고
    늘~ 모든 일에 거침이 없는 태도로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항상 주님이 함께 해주신다는 확신이 아니라
    ★체험★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사도들이 복음을전하며 온갖 수모를 당해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 작성자 24.02.15 15:39


    [ 지도사제 10.11.18 08:04

    (..)
    과연 어떻게 하느님을 잘 알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느님을 잘 알 수 있을까요???" >

    하느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단 하나!
    "하느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뿐이다!

    "신앙"이란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일"이며,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잘 알아야 하는데,

    하느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말이 되는가?
    결국, "사랑한다"와 "안다"라는 말이 같은 말이라는 말이 말이 되는가?

    아, 말이 된다고요?
    참 다행이네요.
    사랑하다는 말과 안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하느님을 알게 된다.
    하느님이 당신을 열어 보여 주시고 날이 갈 수록 더 잘 알게 해 주신다.
    부부가 진실로 사랑하면 날이 갈 수록 서로를 잘 알게 되듯이 말이다.

    신앙생활이란 "하느님을 아는 일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부부생활이란 부부가 서로를 아는 일이며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신앙생활이란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알아 가는 일이고,
    부부생활이란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알아 가는 일이다.

  • 작성자 24.02.15 15:47


    서로를 사랑하면 저절로 서로를 잘 알게 된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알고 계신다,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신다.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잘 모른다, 너무나 잘 모른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으며 바치는 모든 기도는
    하느님께 역겨움을 느끼게 해 드릴 뿐이다.

    하느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만이 "참 기도"이며,
    참 기도만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에 대한 "진실한 사랑"밖에 없다.
    하느님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만을 원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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