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강구항에 대게잡이 배들이 들어오면 ‘게판’이 벌어집니다. 대게 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항구 주변 170여 곳의 대게 전문식당의 상인 200여 명이 모여듭니다. 검붉은 다리가 쭉쭉 뻗은 게들이 등장하면 상인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립니다. 대게 중의 대게인 박달대게입니다. 살이 꽉 차 박달나무처럼 야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갑자기 한쪽에서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어휴! 저거 하나에 2만원인데 ··· ” 누군가 실수로 대게를 집어들다 다리 10개 중 한 개가 떨어져나가자 안타까워 지른 소리였습니다.
영덕대게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기 930년 태조 왕건이 안동 하회마을 부근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때 안동 유지들과 토호 세력인 영해 박씨들이 전투를 도왔습니다. 왕건은 보답으로 경주로 가는 길에 영해와 영덕을 들렀습니다. 지금의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영덕읍 축산면 차유마을에 들른 왕건은 접대 자리에서 처음으로 대게를 맛봤습니다. 그야말로 한 번에 반했다고 합니다. 고려 말 학자 권근(1352-1409)이 쓴 ‘양촌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맛을 인정받은 영덕대게는 조선 초에도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수라상에 오르는 데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먹는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대게 다리를 뜯는 임금의 모습이 체통을 떨어뜨린다고 쑤군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대게는 이 같은 ‘위기’를 정면 돌파했습니다. 맛으로 임금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영덕군이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대게 맛이 그리워진 임금이 어느 날 신하에게 “당장 대게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명을 받은 신하가 다다른 곳이 지금의 영덕군 축산면 죽도(竹島)였습니다.(이상 조선일보 권광순 기자 ‘그곳의 맛 ①영덕대게’ 참고)
‘영덕이냐, 울진이냐’ 대게의 원조 논쟁은 유명합니다. 한때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대장금’에서 울진 대게를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하였다고 해서 영덕 상인들이 격렬하게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다 같이 동해안에서 잡은 대게여서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지역의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다툼이 치열합니다. 대게 산지로는 영덕 강구, 울진 죽변, 포항 구룡포, 울산 정자 등이 유명합니다. 영덕군청이 올려놓은 대게 명칭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 29대 충목왕 때 새로 부임한 영해부사 정방필이 임금의 명을 받아 대게 산지(産地) 마을을 순시하던 중에 죽도산(竹島山)이 보이는 마을에서 한 어부가 잡은 게를 만났습니다. 이름을 물었으나 어부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크고 이상한 벌레라는 뜻으로 ‘언기(彦其)’라고 부르다가 죽도에서 잡았고 게의 다리가 대나무 마디와 흡사하므로 대게[竹蟹]라 바꾸어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대게는 큰[大] 게라는 뜻이 아니라 다리가 대나무처럼 쭉 뻗었다고 해서 대게인 것입니다.
*** 대게와 혼동하기 쉬운 붉은대게(홍게)도 그 모습이 비슷합니다. 홍게는 게딱지 좌우 양쪽에 작은 가시가 있으나 대게는 없습니다. 대게와 홍게 사이에 태어난 청게도 있습니다. 등 쪽이 연한 주홍색입니다. 대게 같이 생겼으나 대게는 아니라는 뜻을 강조해 ‘너도대게’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