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존(本尊)이란 ‘근본존경(根本尊敬)’의 의미로 인생의 근본으로서 신앙 · 예배하는 대상을 말합니다. 각 종교에는 제각기의 가르침이나 지침 등을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낸 본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존을 믿음으로써 본존에 나타나 있는 가르침이나 성질을 직접적으로 나의 생명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본존이 저급사악(低級邪惡)한 것이면 그것을 믿는 자의 인격도 생활도 자연히 저급(低級)하고, 괴로움이나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불행한 것이 되고 맙니다.
종교에 무지한 사람들은 인간보다 몹시 열등(劣等)한 축생을 본존으로 예배하거나 인과(因果)도 무시한 만물창조신(萬物創造神)을 예배하거나 석존 스스로가 금한 것에도 불구하고 석존의 진의(眞意)라고 생각하며 석존상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자종(自宗)에서 세운 본존의 진가(眞價)도, 예배하는 이유도 분별하지 못하고 끝내는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되므로 참으로 어리석고 무서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진언종(眞言宗)이나 정토종(淨土宗)에 있어서는 교주이신 석존 자신이「법화제일(法華第一)」이라고 설하신 사실을 왜곡하여 각기의 믿는 경(經)을 제일로 주장하여 아미타(阿彌陀)나 대일(大日)을 본존으로 해왔습니다.
그러나 정토종이나 진언종의 종조들은 모두 끝에는 불벌을 받고 보통의 임종은 아니었습니다. 정토종의 젠도(善導) · 호넨(法然), 진언종의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 · 고보(弘法) 등등이 이것입니다만 바로 잘못된 본존을 인생의 근본으로 하여 지옥으로 떨어진 실증인 것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와 같은 종교계의 본존잡란[(本尊雜亂): 근본으로 존경하는 대상인 본존을 잘못 정해 잡란(雜亂)이 되고 있는 것. 여기서는 일련종 미노부 파가 석존상, 니치렌대성인의 목상(木像), 만다라에서 귀자모신, 제석천, 나중에는 뱀, 여우 등을 본존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에 대하여「제종(諸宗)은 본존(本尊)에 미혹(迷惑)했느니라.」(신편어서 p.554)라고 지적하시고,「본존(本尊)이란 뛰어난 것을 쓸지어다.」(신편어서 p.1275)라고 교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교(宗敎)의 오강(五綱)’, ‘오중상대(五重相對)’, ‘사중흥폐(四重興廢)’ 등의 엄밀(嚴密)하고도 공정한 종교비판의 기준을 갖고 최고진실의 본존을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 종교비판의 기준에 의해 고른 본존은 니치렌대성인이 나타내신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대어본존(大御本尊)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른 종교가 세운 저급한 본존을 믿는 것은 이 최대최고의 대어본존에 어긋나므로 끝내는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 니치렌대성인이 나타내신 대어본존은 ‘주사친삼덕(主師親三德)’이라 하여 부처의 생명의 당체입니다.
‘주사친삼덕’이란 부처의 생명에 구비된 세 가지의 덕성(德性)을 가리킨 것으로, 절대의 힘을 갖고 권속을 지키는 주인의 활동(주덕), 민중을 절대의 행복경애로 인도하는 지도성(사덕), 자식에 대한 엄부(嚴父)와 같은 자애(慈愛)(친덕), 이상의 세 가지를 말합니다.
대성인은「부처는 인천(人天)의 주(主)이시고, 일체중생의 부모이며, 또한 개도(開導)의 스승이로다. 부모라도 천한 부모는 주군(主君)의 의(義)를 겸하지 못하고 주군이라도 부모가 아니므로 두려운 면도 있으며, 부모 · 주군이라도 사장(師匠)이 될 수는 없느니라.」(신편어서 p.628) 라고 하셨습니다만 이 삼덕겸비의 힘이 있는 어본존만이 우리들 민중을 근본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유일(唯一)의 올바른 본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본존을 배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절대의 힘을 가진 주인이고, 바르게 행복으로 인도해 주시는 사장(師匠)이며, 항상 자애하여 주시는 부모로서 둘도 없는 어본존님’이라는 순수한 신심으로 마냥 어본존을 구하여 근행 · 창제에 힘써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비로소 나의 생명에도 부처의 생명의 일분(一分)이 용현되어 일생성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니치렌대성인의 어본존은 인법일개(人法一箇)의 어본존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교법(敎法)이 우주간에 존재하고 있다해도 그것을 각지(覺知)하여 설하는 사람(부처)이 없이는 그 법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부처라고 해도 우주의 근원의 법을 각지하지 않고는 단지 사람에 불과하게 되고 맙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일체중생을 성불로 인도하는 근원의 법을 깨달으신 어본불(御本佛)이십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부처로서의 깨달음을 문자로써 한 폭의 대만다라 어본존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니치렌대성인을 인(人)의 본존, 대만다라 어본존을 법(法)의 본존이라고 합니다만 내용적으로는 일체이므로 인법일개의 어본존이라고 합니다.
흔히 무지(無智) · 만심(慢心)의 사람들이 인법일개의 심지(深旨)도 분별 못하고, ‘어본존이라고 해도 인간이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아무리 뛰어난 교법(敎法)일지라도 그것을 설하여 나타내는 사람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지요?
또 니치렌대성인은『초목성불구결(草木成佛口決)』에「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을 흔들어 헹궈 세운 것이 대만다라(大曼茶羅)이니라. 당세(當世)의 잘못 배운 학자(學者)는 꿈에도 알지 못하는 법문(法門)이니라」(신편어서 p.523)라고 하셨습니다만 아직 이해에 미치지 못하여도 이 어본존만은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의 생명의 당체이십니다.
우리들은 이 어본존에게는 대성인의 부처의 생명이 나타나 있는, 즉 살아계시는 대성인이라고 믿고 어본존을 배(拜)하여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심이 정말로 강한 사람은 그와 같이 어본존을 배하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들도 항상 그러한 신심을 목표로 나날의 신심수행을 거듭하여 여러 가지의 체험이나 불법의 교의(敎義)를 몸에 익히고 확실하게 어본존을 살아 계시는 부처님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신심을 깊게 하시기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