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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7 편
청년 시절
. 중도자 위원회, 1935년
. 시기 : 서기 10년 (16세) ~ 서기 14년 (20세)
127:0.1 청년기가 되자 예수는 자신이 가족의 가장이자 기둥임을 깨달았다. 재산은 모두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애 이전의 자신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이 땅에 있는 것이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 세계의 어떤 젊은이도, 예수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고, 앞으로의 어떤 젊은이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열 다섯에서 스무 살까지 그 벅찬 기간에 예수가 견딘 것만큼의 쓰라린 형편을 유란시아의 어떤 젊은이도 겪으라고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청년기의 실체 체험을 이렇게 겪었으므로, 네바돈의 모든 영역에 있는 젊은청년들에게 영원히, 공감하는 친구가 되었다.
이 신성한 아들은 어떤 등급의 성격 체험을 가진 존재에게도 공감하는 벗으로서, 실제 체험을 겪음으로 지역 우주의 어떤 세계에서도 도전할 수 없는 최고 통치자, 자기 우주의 주권자가 될 권리를 얻고 있었다.
1. 열여섯 살 되던 해 (서기 10년)
127:1.1 육신화된 아들은 아기 시절을 지나, 평탄한 어린 시절을 지나왔고, 어린 시절과 청년기 사이 벅찬 과도기에서 이제 청년 예수가 되었다.
이 해에 몸이 완전히 성장한 잘 생긴 젊은이였다. 친절하고 이해심이 있었다. 위엄을 가진 아름다운 목소리였고, 따뜻하고 꾸밈 없는 인사를 하였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과 만날 때에도 사람과 신, 이 이중 성질의 분위기를 증거하는 듯했다. 공감하는 친구이자 권위있는 선생, 두 가지를 합친 성품을 언제나 나타냈다.
신체가 강하고 튼튼한 이 젊은이의 인간 지능도 또한 충분히 발달하였다. 건강하고 균형이 잘 잡힌 몸, 날카롭고 분석적인 머리, 친절하고 이해심 있는 기질, 적극적인 기질을 소유했으며, 튼튼하고 놀랍고 매력있는 성격이 구성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와 동생들은 그를 이해하기가 갈수록 더 어렵게 되었다. 그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의 행동을 오해했다. 전에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예수가 유대민족의 구원자가 될 운명을 가졌다고 말했고, 예수가 이를 부인하자 어머니와 동생들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 해에 시몬은 학교에 입학했고, 또 집 한 채를 팔게 되었다. 야고보는 세 여동생을 가르쳤고, 룻은 미리암과 마르다에게 맡겨졌다. 예수는 회당 학교가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아 가정 학교를 운영해야 했다.
127:1.6 이 해 내내 예수는 할 일이 많아 작업 벤치에 묶여 있었다. 그가 만든 품질은 우수해서 결코 한가한 적이 없었고, 이따금씩 일이 많을 때는 야고보가 돕곤 했다.
이 해가 저물 때가 되자, 예수는 가족을 양육하고 식구들의 결혼을 본 뒤에, 진리 선생으로서, 하늘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자로서, 일을 공식으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것을 어머니와 결코 상의할 수 없음을 알았고, 땅에 사는 누구도 충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가 젊지만 가족에게는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그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슬픔에 잠겼다. 예루살렘에서 랍비들과 공부를 하지 못하는 예수를 보며,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그의 수고를 서러워 했지만, 기꺼이 고맙게 여겼다.
2. 열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1년)
127:2.1 이 무렵, 로마에 세금내는 것을 반대하는 큰 소동이 있었는데, 이를 부르짓는 열심당이 생기고 있었다. 이들은 정치적 투쟁으로 결말을 보려고 했다.
예루살렘에서 한 집단의 조직자들이 예수를 만나 입당을 권유했으나, 예수는 거절하였고, 이 거절은 나사렛의 젊은 동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 운동에 불참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리아는 그의 입당을 유인하려고 애썼다. 심지어 민족주의자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불복종이요, 예루살렘에서 돌아오고 나서 부모에게 복종하겠다고 한 서약을 어기는 것이라 비추어 말하기까지 했다. 예수는 부드럽게, “어머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마리아는 자신의 말을 취소하였다.
마리아의 동생 (예수의 삼촌)이 이 무리에 가담하여 갈릴리 분과 장교가 되었고, 몇 년 동안 예수와 거리감이 있었다.
예수의 반응 때문에, 유대인 젊은이들 사이에 열심당과 온건파로 분열이 생겼다. 예수가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했다. 가족 부양 의무로 거절했는데, 이삭이라는 부자 유대인이 예수의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나섰다.
127:2.6 열일곱이 채 되지 않은 예수는 일생의 초기에 가장 아슬아슬하고 어려운 한 상황에 부딪쳤다. 애국 문제에서 언제나 영적 지도자들이 처신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 로마에 항거하는 이 모든 선동에 유대 종교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두 배나 어려웠다.
어머니와 삼촌, 그리고 동생 야고보조차, 모두 민족주의자 운동에 합세하라고 밀었다. 이때까지는 언제나, 상황을 밝히려고 진실을 솔직하게 말하는 방법을 썼지만, 지금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선언할 수 없었다. 그의 신앙심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직접 도전을 받고 있었다. 가족은 소동에 말려들었고, 젊은 친구들은 파가 갈라졌으며, 마을의 유대인 무리 전부가 떠들썩했다. 나사렛의 현명한 상담자 하잔의 도움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흡족하도록 탄원했다. 첫째 의무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인데, 돈보다는 가족들이 가장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가족을 떠날 수 없고, 이로 인해 생애의 모든 다른 것과 일생의 사명도 포기하겠다고 설명했다. 나사렛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가족에게 좋은 가장이었음을 잘 알았다. 더러는 비밀리에 하잔에 의해 연습받은 야고보의 연설을 듣고 마음이 풀린 사람도 있었다.
야고보의 연설은, “형님이 우리와 함께 가장과 선생으로 있게 된다면 충성스런 민족주의자 하나만 얻는 것이 아니라 다섯명을 얻으리이다.” 야고보는 아주 긴장되고 아스슬한 형편을 무척 즐거운 종말로 이끌었다.
선동이 계속되었고, 예수는 다시 널리 총애를 받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감정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이것이 예수가 후일에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때부터 나사렛은 사람의 아들에 대해서 대립된 감정을 유지했다.
127:2.11 야고보는 이 해에 학교를 졸업했고, 목수 작업장에서 정식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솜씨있는 노동자가 되었다. 한편 예수는 건물 마무리 손질과 전문적인 가구 일을 더 하기 시작했다.
차츰차츰 신과 인간의 성품을 한데 모았고, 자신의 결심으로, 그리고 그에게 깃드는 훈계자의 도움만 얻어서, 머릿속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이 모든 일을 해냈다. 이제까지 한 사자가 방문한 것을 빼고, 아무런 초자연적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형 이마누엘이 그의 사자를 파송했는데, 예루살렘에서 밤에 한 번 예수에게 나타났다.
3. 열여덟 살 되던 해 (서기 12년)
127:3.1 이 해가 지나는 동안, 집과 뜰을 제쳐놓고, 모든 가족 재산이 처분되었다. 야고보가 일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이전에 팔았던 수선 가게를 다시 샀다. 재정 압박이 줄어들어 예수는 야고보를 유월절 예식에 데리고 갔다. 아버지가 5년 전에 비슷한 여행길을 가면서 가르쳤던 것처럼, 가는 길에 예수는 야고보에게 역사적 장소들에 대하여 일러주었다.
예수의 일생 계획에 대해 야고보는 잘 알지 못했고,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예수가 자신의 사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가족에 대한 책임은 야고보가 맡기를 기대하였다. 예수가 그를 유월절 예식에 데리고 가는 것을 그는 무척 고맙게 여겼다.
야고보가 성전 구경하고서 받을 충격을 줄이려고 애썼으나, 야고보는 이런 예식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체로 예루살렘 체류를 크게 즐거워했다.
야고보와 함께 베다니로 갔고, 시몬은 이미 선조들과 묻혀서 예수가 가장으로 유월절 저녁을 주관하였다.
유월절 저녁 식사 후에 마리아는 야고보와 함께 앉았고, 마르다와 나사로와 예수는 밤 늦게까지 이야기했다. 다음날 야고보는 이스라엘 연방에 가입이 허락되었다. 야고보가 성전에 가기를 고집하였고, 어머니의 말을 심중에 두고는 예수가 토론에 참여한 것을 듣고 싶어했다. 그러나 함께 성전으로 갔어도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다. 야고보가 이유를 묻자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127:3.6 이튿날 그들은 예리고와 요단강 유역을 거쳐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예수는 낡은 수선 가게에서 일했고, 날마다 나라의 모든 지역과 둘러싼 여러 지방에서 온 숱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크게 즐거워했다. 야고보의 도움을 얻어 가족을 줄곧 부양했다.
1년에 몇 번, 예수는 회당에서 안식일 성서를 읽었다. 논평이 필요 없는 구절을 보통 골랐다. 그는 재능이 있었고, 한 구절이 다른 구절에 빛을 던지도록, 여러 구절의 읽는 순서를 짜 맞추었다. 안식일 오후에 자연 속을 걸으려고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를 거른 적이 없었다.
이 무렵에, 하잔은 철학 토론을 하는 젊은 남자들의 모임을 시작했다. 예수는 이 무리의 특출한 회원이 되었다. 최근의 민족주의자 논쟁이 있을 때 잃었던 위신의 얼마큼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사렛의 젊은 남녀 사이에서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 친구와 굳건한 숭배자가 여럿 있었다.
127:3.11 9월에 엘리자벳과 요한이 찾아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의 조언이 없다면 유대의 고지로 가서 농사를 짓고 양치는 일을 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와 엘리자벳이 자기네 아들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할수록, 두 젊은이가 같이 일하고 서로를 더 보는 것이 좋겠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와 요한은 함께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늘 아버지가 부르신" 뒤에, 대중에게 봉사하면서 만날 때까지, 서로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요한은 예수의 하는 행동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보살피는데 만족스럽게 여겼다. 사람의 아들이 요단강 물가에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선 그날까지 요한과 예수는 다시 서로 만나지 않았다.
이 해 12월 3일, 아기 남동생 아모스가 고열로 앓다가 죽었다. 이 슬픈 일을 맏아들과 함께 보내고 나서 예수를 참 가장으로 인정했다.
지난 4년 동안 생활 수준이 계속 떨어졌다. 장례비는 집안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초조하고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슬퍼하는 것이 우리를 돕지 않습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고, 어머니의 웃음이 우리가 더 잘 하도록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더 좋은 날이 앞에 있다는 희망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 라고 말했다. 희망에 찬 이 용감한 자세는 튼튼하고 고귀한 성품을 개발하는데 힘차게 기여하였다.
예수는 바로 눈앞에 닥친 과제에, 머리와 혼과 몸의 온 힘을 효과 있게 동원하는 능력을 소유했다. 지칠 줄 모르는 인내와 더불어, 어렵게 필사자로 존재하며 거치는 시련을 차분히 견딜 수 있게, 마치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살 수 있게 만들었다.
4. 열아홉 살 되던 해 (서기 13년)
127:4.1 이 때가 되어 예수와 마리아는 사이가 훨씬 더 좋았다. 마리아와 아이들 눈에 예수는 아버지처럼 보였다. 남자 아이 넷과 여자 아이 셋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부양하고 기르는데 그들은 공통으로 모든 생각을 쏟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악을 행하지 말라'는 방법 대신에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 명령을 수용하도록 어머니를완전히 설득했다. 금지하여 악을 강조하는 것 보다 선을 행할 것을 강조함으로 선을 더 높이 올렸다.
유다가 가족의 규칙을 자주 어겼다. 벌을 내리는 것이 필요했는데, 나이 먹은 아이들이 만장일치로 선포하여 정해졌고, 벌을 주기 전에 바로 유다가 찬성하였다.
예수는 무슨 일을 행하든지 대단히 규율과 체계가 있었지만 신축성 있게 개인에 맞도록 적용하였다. 결코 멋대로 동생들을 징계하지 않았고 공평함과 개인적 배려로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가장이었다.
야고보와 시몬은 설득과 무저항으로 달래는 예수의 계획을 따르려고 애쓰면서 자랐고, 상당히 성공했다. 요셉과 유다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친구들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의 방어를 서둘렀다. 무저항은 가족의 규칙은 아니었다. 개인에 관한 가르침을 어기는 데는 아무런 벌이 따르지 않았다.
127:4.6 대체로, 아이들은 예수에게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의논하고 속을 털어놓았다.
야고보는 안정되고 차분했지만 예수처럼 영적 성향이 없었다. 요셉은 충실했지만 영적으로 더욱 부족했고, 다른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못미쳤다. 시몬은 착했으나 너무 꿈에 사로잡혀 안정된 직업이 없어서 상당한 걱정거리였다. 유다는 걸핏하면 싸웠고 가장 높은 이상을 가졌지만 성품이 안정되지 못했다. 어머니의 각오와 공격성 모두를 더 많이 가졌지만, 어머니가 가진 균형 감각과 신중함이 상당히 모자랐다.
미리암은 고귀하고 영적인 것을 예리하게 이해하는 안정되고 분별있는 딸이고, 마르다는 생각과 행동은 느려도 믿음직하고 유능한 아이였다. 아기 룻은 햇빛 같은 아이였다. 가장인 큰 오빠를 거의 숭배하듯 했다.
서서히 예수는 안식일의 종교 습관을 자유화하고 개량하려 애썼고,이 모든 변화에 마리아는 진심으로 찬성했다.
이 해에 유다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 비용을 치루기 위해 예수는 하프를 팔아야 했다. 이렇게 마지막 오락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그래도 세리에게 하프를 빼앗기지 않은 것에 위로를 얻었다.
5. 에즈라의 딸, 레베카
127:5.1 예수는 비록 가난했지만 사회적 지위는 조금도 하락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다. 튼튼하고 지적인 남성으로, 영적 지도자로 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나사렛의 부유한 상인 에즈라의 맏딸 레베카가 예수를 사랑하게 됨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가장 역할과 아마도 종교지도자, 메시아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예수가 알기 전에 그만두라고 레베카를 설득할 작정이었다.
레베카는 마리아의 말에 귀를 기울인 후, 지도자의 일생을 함께 할 것이라는 마음이 굳어졌다. 마리아가 자기를 설득하는 이유가 집안의 가장이며, 기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레베카는 아버지와 의논 후에, 예수가 버는 소득을 예수의 가족들에게 보상하겠다고 했는데도 마리아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 레베카는 직접 예수에게 갔고, 레베카의 열일곱 살 되는 생일에 예수를 초대하였다.
예수는 주의 깊게 이해하는 태도로 레베카와 그녀의 아버지 말을 경청했다. 예수는 “인간의 모든 책임 가운데 가장 신성한 것―사람이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눈 가족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고 친절히 대답했다. 레베카의 아버지는 예수의 말에 감동을 받고 아내 마리아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를 아들로 삼을 수 없소. 그는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고귀한 사람이요.”
그리곤 레베카와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예수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을 수행하는” 일 때문에 개인적 사랑에 의한 결혼은 생각해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평범한 인간이 직면하고 결정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들과 직접 대면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았다.
레베카가 주의 깊게 경청한 후 예수를 찬미했고, 예수는 진심으로 감사한 후 “그것은 평생 동안 저를 응원하고 위로 할 것입니다”고 응답했다. 그는 단순한 형제 같은 대우와 순수한 친구 관계 외에 어떤 여자와도 관계를 가질 자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127:5.6 레베카는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나사렛을 떠나 세포리스로 이사했다. 후일에 숱한 남자들의 청혼을 물리쳤다. 그녀는 예수가 진리의 선생으로 시작할 때를 기다리기 위한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살았다. 예수가 대중 사역을 하는 몇 년을 헌신적으로 따랐고,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렸던 날, 마리아 옆에서 "다른 여자들 속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 있는 수많은 세계 뿐 아니라 그 여자에게도 “몹시 사랑스럽고, 만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였다.
6. 스무 살 되던 해 (서기 14년)
127:6.1 레베카가 예수를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퍼져서, 예수는 두 번 다시 다른 착한 여인의 사랑을 물리치지 않아도 되었다. 이때부터 계속, 예수를 향한 인간의 사랑은 존경과 찬미의 성질을 띠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들이 다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것은 그의 됨됨이 때문이었다. 여러 해 동안, 예수의 인품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언제나 레베카의 헌신적 사랑이 입에 올랐다.
미리암은 레베카의 사건을 잘 알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물리친 예수를 이상으로 여기고, 깊은 애정으로, 오빠와 한 가장으로서 그를 아끼게 되었다.
예수는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가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고, 자기 가족 다음으로, 이 세 사람을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했다.
예루살렘 여행길을 떠났고, 유월절 예식에 가는 데 나흘이 걸렸다.
예수는 성전을 찾아가는 수 많은 무리들을 보면서 계속 예루살렘으로 갔다. 헤롯이 지은 이 성전과 정치적으로 임명된 이 사제들에 대하여 그는 이상한 반감을 더욱 느꼈다. 무엇보다도 나사로ㆍ마르다ㆍ마리아를 보고 싶었다. 나사로는 예수와 같은 나이였고, 가장이었다. 마르다는 예수보다 한 살 위였고, 마리아는 두 살 아래였다. 예수는 세 사람 모두에게 우상처럼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127:6.6 예수는 나사로의 집에서 유월절을 지내자고 제안했고, 희생양이 없다는 나사로의 말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런 의미 없는 의식에 관심이 없다’고 설명한 뒤에 엄숙하고 뜨겁게 기도를 드린 뒤 말했다. “내 민족의 유치하고 어두운 지성들은 모세의 지시대로 저희의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생명의 빛을 본 우리는 어두운 죽음의 길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영원하다는 진리를 알고 자유롭게 하자.”
그날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 네 사람은 희생 양 없이 첫 유월절 축제의 저녁을 먹었다. "생명의 빵"과 "생명의 물"이라 이름 지은 상징적 음식을 먹었고, 나중에 베다니를 찾았을 때는 이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 했지만, 어머니의 근심으로 할 수 없이 해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른 유월절을 지냈다.
이 해 동안에 마리아는 결혼에 대해 예수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그러한 일은 “나의 때”, 즉 “내 아버지의 일이 시작되어야 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육신으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 속에서 이미 작정했기 때문에, 그는 인간적 결혼 문제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 해에 그는 필사 본성과 신의 본성을 혼합하는, 한 인간의 과제를 새롭게 시작했다. 계속하여 그의 도덕적 지위가 높아지고 영적 깨달음이 늘어났다.
아버지 요셉의 전 재산의 마지막 부동산 지분을 세베대라 이름하는 배 만드는 사람과 함께 팔았다.
127:6.11 요셉이 회당 학교를 마쳤고 예수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재산은 바닥이 났지만, 세 사람이 일하게 되어 재정적 전망이 보였다.
예수는 어른이 되고 있었다. 아버지 노릇을 맡으면서, 하늘 아버지의 인도하심에 의존했다. 가깝게 눈앞에 닥친 필요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수고하면서, 더 높고 멀리 있는 이상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계획하는지를 배우고 있었다. 큰 뜻을 인간적 상황에서 닥치는 평범한 요구에 적응하는 솜씨를 꾸준히 쌓고 있다. 물질적 성취 작용을 개시하기 위하여 영적 추진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을 아주 거의 통달했다. 시간 세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영원한 승리로 바꾸는지를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해가 지남에 따라서, 시공 세계에서 필사 육체가 사는 것처럼, 이 나사렛 젊은이는 계속 인생을 체험한다. 유란시아에서 한껏, 대표적이고 충만한 인생을 산다. 이러한 인간 체험 전부가, 우주 주권자의 영원한 재산이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는 형이자 공감하는 친구요, 경험이 많은 군주이자 자비로운 아버지이다.
아이로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쌓았고, 젊은이로서 이 정보를 가려내고 분류하고 연결 지었으며, 이제 그 땅에서 어른으로서, 이 세상을 비롯하여 온 네바돈 우주에 두루, 사람이 사는 모든 다른 구체에 있는 동포 필사자의 이익을 위하여 나중에 그의 가르침과 헌신과 봉사에서 이용하려는 준비로 이 정신 재산을 비로소 정리한다.
그는 인간 본성을 충만히 이해하며, 인간 본성의 약점을 알아보는 이해심이 가득하다. 그는 어떤 나이나 어느 단계에 있는 필사 인간에게도,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계시하는 신성한 기법에 숙달되고 있었다.
127:6.16 이제 완전히 자란 남자, 어른으로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드러내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최고의 사명을 계속하려고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