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이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왕의 남자'가 천만관객을 찍으면서 한 때 인기몰이를 했지만, 명작으로서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지는 못하는 것처럼, 당시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어도 명작으로 남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사실상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청난 대중성을 가지고 인기를 끄는 작품 중에(박스오피스 최상위권, 국내 예매율 순위에 기반하는) 중에 정작 명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역사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정한 명작은 사실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마케팅을 한다 할지라도 대중들에게 외면받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작은 명작이 된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의 전설' 또한 그 명작의 반열에 올리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작품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00이라는 이름을 가진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일대기이다. 1900은 이른바 천재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함'과 그의 특별한 재능으로 인한 피아노 연주를 동시에 가지는 전형적인 천재이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한 채 배 위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그런 그의 특성과, 천재들 특유의 심리상태의 미묘한 변화를 치열하게 쫓아가며 그려내고 있다.
그런 인물의 특성 뿐만이 아니라 '음악영화'로서의 피아니스트의 전설 또한 매력적임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보여주는 OST는 매력적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에 집중하는 것이 사실상 피아노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의 근본적이랄까 필연적인 한계인데,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보여주는 음악의 장르는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에 가깝다.(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재즈이다) 그리고 재즈 피아노의 특성상 계속해서 흥겨운 리듬이 진행되는데, 관객들은 이것을 듣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의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명작의 반열로 끌어올리는 것은 비단 음악의 힘 만은 아니다.
작품 초반, 흔들리는 배 안에서 피아노의 고정 장치를 풀고 연주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요동치는 배와 흥겨운 음악이라는 부조리함은 마구 잡이로 돌아다니는 피아노에 있어서 절정을 맞이하는데, 음악에 맞춰 자유롭에 움직이는 피아노는 그들의 자유로운 정신을 상징한 것일까? 그런 어려운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 장면 자체는 그야말로 몽환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렇게 시종일관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단순히 음악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영화적 연출로 살릴 수 있는 매력을 발휘한다. 특히 시대의 재즈 연주자를 무릎 꿇리는 에피소드에서 1900이 보여주는 연주는 그야말로 충격적인데, 그 충격을 뛰어넘는 영화의 연출은(피아노의 해머가 달궈진 열로 담뱃불을 붙이는) 진심으로 경악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고, 여느 음악영화가 보여주지 못하던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충격적인 연출 아래는 멋진 음악이 존재하기에 연출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밖에도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00의 출생부터 성장과정. 그리고 그의 연주기행과 그의 최후까지 꽤나 짜임새 있게 끌어나간다. 그런 세부적인 요소들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음악영화 특유의 갭에 빠지는 것을 막는다. 일반적으로 음악영화는 음악에 치중한 나머지 서사의 인과성을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격하게 환상적인 소재를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끄덕일 정도의 인과성을 확보해 내는데 성공한다.
1998년에 개봉했으니, 12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영화는 뭔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