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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짓골성지 순례미사 강론
‘빈 무덤’에서 무엇을 보는가?
믿음의 눈으로 부활을 체험하자!
순례 오신 형제자매 여러분, 환영합니다. 멀리서 오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순례단으로 함께 오시기 위해서 그간에 준비하시느라고 고생하신 신부님과 순례단 임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기서 미사를 봉헌하시면서 여러분께서는 151년 전의 사연을 여러분의 몸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순례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한결 거룩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기 서짓골 성지에서 여러분이 바치는 미사성제의 제물은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평소와는 다른 마음이 되신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는 일백오십일 년 전을 체험하셔야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여러분들은 순교자들을 닮은 분들이 되실 것입니다. 151년 전 이곳 서짓골의 신자들이 갈매못에서 치명하신 성인들의 시신을 천신만고로 여기까지 모셔다 안장해드렸던 그 사연을 여러분께서 오늘 가슴에 담으셔야 합니다. 그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 또한 나중에 발각 체포되어 여기 묻어드린 성인들의 뒤를 따라 목숨 바치게 되었는데, 오늘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의 모습이 혹 그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이 환생한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옛적 그 신자들은 치명하시어 돌아가신 주교님과 신부님들과 회장님의 시신을 모시고 왔는데, 오늘 여러분들은 살아계신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옛적 그 신자들과 여러분들이 똑 같은 점이 두드러집니다. 그게 뭐냐? 목숨 바쳐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의 소유자라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의 눈망울과 얼굴과 태도가 그렇다는 것을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 옛적에 여기서 체포 된 신자들처럼 신앙의 끈으로 묶여서 하느님께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죽으러 가야겠지요? 순교자들과 같이 치명의 길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치명(致命)’이라는 말의 본뜻은 ‘삶을 건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순교(殉敎)’라는 말보다 ‘치명’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옛적에 중국에서 황제가 죽으면 그 신하들이 따라서 무덤에 묻히는 것을 ‘순장(殉葬)’이라 했습니다. ‘따라 죽는다’는 뜻이지요. 이건 어쩌면 수동적 태도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법에 따라 또는 명령에 따라 죽는다는 것인데, 그렇듯이 ‘순교’라는 말은 ‘가르침을 따라 죽는다’는 뜻이 됩니다. 전에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박해의 상황에서 죽으신 분들을 ‘치명자’라고 일컬었는데, 언젠가부터 ‘순교자’라고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만, 그 말은 실상 개신교 사람들이 쓰는 말을 따른 감이 있습니다.
체포 되어 죽을 각오로 비장하게 나서서 순교성인들의 시신을 여기까지 모시고 와서 안장해드린 옛적의 서짓골 신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붙잡혀서 할 수 없이 죽게 된 ‘순교’를 한 게 아니라, 자신들이 신앙으로 해야 할 일에 자신들의 목숨을 먼저 건네 놓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교자’라기보다는 ‘치명자’였습니다.
또한 이곳에 묻히신 안토니오 주교님과 두 분의 사제들께서는 교우들이 당할 위험을 줄이게 하기 위해서 자수하여 기꺼이 체포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체포되실 때 일반 신자들이 당할 희생을 덜게 할 수 있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순교자라고 부르기보다는 ‘치명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교우들 대신으로 건네신’ 치명의 길로 들어선 그분들이었습니다. 병인년 1866년의 3월은 사순절 기간이었습니다. 그해의 사순 제4주일인 3월 11일에 그분들은 자수하여 체포되었는데, 그 후 갖은 고초를 19일 동안이나 당하고 3월 30일 ‘갈매못’에서 치명하셨습니다. 그날은 마침 ‘주님 수난 성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장주기 요셉 회장님과 황석두 루카 회장님, 이렇게 다섯 분이 함께 휘광이의 칼날에 목이 잘려 치명하셨습니다.
안돈이 주교님께서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치명하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신 날 함께 죽게 된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이었지요. 그 까닭은 단순히 그 날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할 충청 수영에서 안 주교님과 다른 네 분을 함께 인근 동리에 하루 이틀간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외교인들 틈에 섞여서 보게 될 교우들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슬퍼할 것인가 하고 염려하신 안 주교님께서 사형 집행관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조리돌림을 생략하고 그날 사형이 집행 된 것입니다. 안 주교님의 그러한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시던 예수님께서 슬퍼하는 예루살렘 부녀자들을 위로하시던 모습과 너무너무 닮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안 주교님도 발가벗겨져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갈매못에서의 그날 다섯 분 중에 가장 먼저 죽음을 당하신 안 주교님의 최후 순간에 대해서 지금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발가벗겨져 장대에 묶인 주교님의 목을 망나니가 반쯤 벤 다음에 수고비를 더 달라고 한참동안 집행관과 흥정하는 동안 주교님의 고통을 저는 상상하기조차 너무 끔찍합니다. 십여 분간의 흥정 후에 주교님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고 이어서 다른 네 분의 목이 차례로 베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머리가 며칠 동안 장대에 매달려 전시 된 후 몸과 함께 바닷가 자갈모래에 묻혀 방치 되었습니다.먼저 황석두 루카 회장님의 시신은 그분의 조카들에 의해 홍산 삽티에 모셔졌습니다. 그해 5월29일이었습니다.
이어서 경기도에 살던 장주기 회장님의 아들 장노첨이라는 사람이 청양 다락골의 신자들을 찾아가서 아버지와 세 분 성직자의 시신을 거두는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다락골 신자들은 겁이 나서 거절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짓골 신자들이 선뜻 나섰습니다. 성인들의 시신을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우선 급한 대로 몰래 수습하여 인근 산에 임시 안장한 후에 신자들의 돈을 염출하여 작은 고깃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으로만 12일간의 험난한 운항을 하여 완장포구에 이르러 야음의 산길로 서짓골에 이르러 여기에 그 네 분의 시신을 고이 안장해드렸습니다. 그해 9월 1일이었습니다. 이어서 두 달 후에 그 사실이 발각되어 서짓골의 남자 신자들이 서울로 잡혀 올라가 모두 죽음을 당했습니다만, 그들의 시신을 찾으러 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짓골의 남은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졌고, 이곳 성인들 묻히신 곳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잊히어진 채 16년이 흘렀습니다. 1882년에 이 네 분의 무덤에서 수습된 유골들을 조선 땅에 보존할 수가 없어서 일본 나가사키의 오우라 성당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성인들의 육신이 모두 녹아서 진토가 된 이곳의 황량한 세월 135년이 지난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모여와 미사성제를 올립니다.
여기 묻히신 성인들의 존재는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영광으로 승화되었기에 제각각의 모습을 드러내는 육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하나의 빛으로 오늘 우리 눈에 들어오는 신앙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뜻으로 여기 높게 세워진 큰 돌에서 光榮爲主致命이라 우리는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심정을 절절히 표현하자면, ‘한 빛이어라, 주님께 건네 드린 목숨!’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 함께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하나의 큰 돌은 四聖祭臺라 일컬어집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가 성인들 안장지를 참배하며 기도하는 경내를 敦伊園이라 합니다. 안토니오 주교님의 조선식 함자 ‘안돈이’를 따른 기도의 정원입니다. ‘안토니오’라는 이름의 약칭을 ‘토니(Tony)’라 하듯이 ‘토니 정원(Tony Garden)’이 되고 있습니다만, ‘돈독하고 후덕하게’ 후대의 우리들을 맞이하여 주시는 안 주교님을 애정어린 이름으로 ‘토니 주교님’이라고 여기서 불러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 덕의 그늘에 앉아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그래서 安敦亭 즉, ‘안토니오의 정자(亭子)’라 하겠습니다만, 그래서 ‘편안하고 따뜻한 자리’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따로 순례자들을 맞이할 집을 마련하여 그 문패를 ‘敦伊館’이라 새겨서 붙여놓았습니다. ‘Tony House’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들과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여기 와서 돈독하게 신앙을 다지고 새로운 삶 즉 부활을 향해가는 믿음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서짓골’입니다. 여기 산비탈과 바위와 나무와 풀들은 옛적 그대로 세월을 지켜오면서 소리 없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옛적의 신자들이 남몰래 숨죽여 기도하던 세월은 백 수십 년 흘러, 오늘날엔 그 신자들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와 큰 소리로 기도하는구나!”
이렇게 오늘 큰 목소리로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 돌아가시고 3일 후 있었던 일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후 사흗날 즉 삼우제의 날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침 일찍 찾아갔던 곳이 어디였지요?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거기서 막달레나가 본 무덤은 시체가 묻혀있는 무덤이었습니까? 아니지요!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무덤에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이 들어 있었습니까? 아니지요! ‘빈 무덤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거기서 죽으신 분을 시체로 발견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분을 신앙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문득 “마리아야!”하고 부르시는 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옛적에 앞서 간 분들의 육신이나 혹은 오늘날 돈을 발라서 쌓아 놓은 볼거리를 찾아오는 곳이 아닌 여기 서짓골은 순례자의 눈에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발견한 빈 무덤과 흡사한 곳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도 그런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여기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순례의 발걸음으로 찾아온 ‘빈 무덤’에서 부활의 신앙을 맛보기 위해서 이렇게 미사성제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안돈이 주교님은 조선에 입국하실 때,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그리고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입국하시는 페레올 주교님과 함께 우리 충청도 강경에 상륙하시고, 부여지방 은산 산골의 교우촌에서 몇 달 동안 조선어 공부를 하신 후, 21년 동안 주로 우리 충청도 즉 오늘날의 대전교구에서 사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주교 서품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대전교구의 땅 강경에서 교구장 착좌를 하신 페레올 주교님을 보필하여 충청도에서 사목하시다가 그 다음 베르뇌 교구장 주교님의 치명 후 조선교구장 직을 승계하시고 23일 만에 또한 치명하신 분이 안돈이 주교님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기 서짓골에서 큰 기쁨을 맛보셔야 합니다. 그 기쁨이란,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기쁨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탁 뜨게 된 눈에 우선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어야겠습니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밖으로 달려 나가는 게 모두 돈 벌려고 뛰어나가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돈부터 봐야 좋겠습니까? 그게 아니지요! 생각은 돈 같은 물질에 먼저 가 있다 하더라도 눈 뜨면 자연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빛입니다. 그 빛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돈이든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게 순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빛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세상을 밝히 볼 수 있는 빛을 여러분은 이미 얻으신 분들입니다. 그 빛이란 ‘신앙’입니다. 우리는 그 ‘신앙’을 기준으로 하여 세상을 볼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박해의 캄캄한 어둠의 세월 속에 21년간이나 숨어서 신자들을 돌보시다가 드디어 죽음의 길로 들어선 체포의 순간에 그렇듯 기뻐하셨던 안토니오 주교님의 그 ‘신앙의 눈’으로 우리 또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들의 ‘믿음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을 만나러 여러분의 집에 돌아갈 때, 여러분의 마음의 귀에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마리아야!”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주님의 그 음성을 들었던 막달레나처럼 여러분들께서도 오늘 여기 ‘빈 무덤’에서 집으로 가실 때 또 다른 새로운 ‘막달레나’가 되어 돌아가실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신 여러분들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그러한 막달레나의 심정으로 새로운 신앙인이 되실 것입니다. 여기 서짓골 ‘빈 무덤’의 현장에서 믿음의 위대함을 보는 눈을 지니신 여러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옛적 병인년에 여기 서짓골에서 살던 신자들과 같은 신앙으로라면 무엇이든 아무리 궂은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세상의 질시와 냉대 속에서라도 기꺼이 품고 살아갈 다짐을 이 ‘사성제대’ 앞에서 올립시다. 여러분, 우리 모두 과거 치명으로 고백한 성인들과 서짓골 신자들의 그 신앙을 오늘날 우리의 삶으로 고백하기로 합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막달레나와 같이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알아보는 분들이지요! 그래서 세상에서 오늘만 사는 게 아니라, 목숨 내어놓고 영원히 사는 치명자들처럼 수천수만 년도 더, 아니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으신 분들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의 신앙에 대한 확인으로 여러분의 삶이 더욱 거룩해지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