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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주제
순종의 축복
2월 1일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는 말씀과 실천으로 우리에게 분명한 모본을 남기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어떻게 순종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이처럼 모든 사람이 총명하게 하나님을 따르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되는지를 규율과 모본으로 가르치기를 바라신다.
예수는 자신의 거룩한 사명과 사역을 온 세상이 밝히 알게 해 주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 아버지의 품성을 알리러 오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 말씀, 사역을 탐구할 때 갖가지 방식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모본을 따르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보고 읽는 산 편지가 된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소개하는 대리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는 법을 알려 주셨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자신의 삶과 품성으로 보여 주셨다. 따라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이와 같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정면으로 맞서 율법을 지키며 살 수 있다고 삶으로 직접 증명하신 예수님께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한다. 위대한 교사이신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시어 인류를 고상하고 거룩하게 하고자 인류의 선두로 우뚝 서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거룩하게 따르셨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할 수 있음을 입증하셨다. 그분은 일생에 걸친 순종이 가능하다고 입증하셨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주셨듯이 그분은 사람들을 세상에 보내어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에 관한 모본을 보이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불명예스러운 실패와 타락의 값을 치르고 정복자가 되셨다. 따라서 하늘의 거룩한 능력에 힘입어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음을 타락하지 않은 세상과 타락한 인류 모두에게 증명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낮추고, 우리를 위해 시험을 견디고 승리하시어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셨다. 그분은 가장 든든한 끈으로 자신의 관심과 인류를 한데 묶어서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내주겠다고 분명히 보증하셨다.
영문 『시조』, 1893년 4월 17일
2월 2일
불순종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하와가 그 나무를 보았더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것은 먹기 좋아 보였다. 여자는 먹고 나서 활력이 생기는 듯했고 존재의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자신이 범죄 한 뒤 그는 남편을 유혹하는 자가 되었다.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마귀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속삭였다(창 3:5). 그들의 눈은 정말 밝아졌지만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범죄의 대가로 얻은 것은 악에 관한 지식, 죄의 저주가 전부였다. 열매 자체는 아무 독성이 없었지만 죄는 단지 식욕에 굴복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신하고 그분의 말씀에 의혹을 품고 그분의 권위를 거절했기에 우리의 첫 조상이 범죄자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온갖 거짓과 오류의 문이 열렸다.
인간 남녀는 진리이시며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보다 사기꾼에게 귀를 기울였기에 모든 것을 잃었다. 선에다 악을 뒤섞어 그들의 마음은 혼란해졌고 정신적·영적 능력은 무감각해졌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유익을 그들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아담과 하와는 악에 관한 지식을 택했고, 상실한 지위를 회복하려면 자신들이 자초한 모진 환경 아래서 그것을 되찾아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에덴에서 살 수 없었다. 그 완벽한 곳에서는 이제 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을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슬픔 속에 그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환경에 작별을 고하고 죄의 저주가 머문 땅에 가서 기거해야 했다.
…비록 죄로 물들었지만 여전히 자연은 인간에게 교훈을 안겨 준다. 악의 더러운 손길이 사방의 땅, 바다, 공기를 오염시킨 탓에 한때 하나님의 성품과 선한 교훈만을 품었던 자연 속에 이제는 사탄의 성품과 악한 지식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자연도 좋은 모습만 보여 주지는 못한다. 선악을 모두 담고 있는 자연은 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경고한다.
『교육』, 25~26
2월 3일
구속의 약속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창 3:15, 한글킹)
떨어지는 꽃잎과 낙엽에서 아담과 그의 아내는 처음으로 쇠락의 모습을 보았다. 모든 생명체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엄중한 사실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생명을 공급하는 공기조차 죽음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잃어버린 통치권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아담은 이 땅의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었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온 천지가 그에게 지배받았다. 하지만 죄를 범한 순간 그는 통치권을 빼앗겼다. 그 자신이 허용한 반역의 정신이 동물들에게 확산됐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짐승, 숲의 나무, 들판의 풀, 그들이 숨 쉬는 공기의 속성까지 모두 죄악의 지식을 추구한 결과로 인한 슬픈 교훈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악의 결과에 내버려지지 않았다. 사탄을 향한 선언에는 구속이 암시되어 있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창 3:15, 한글킹)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인류 첫 조상의 귀에 들린 이 선언은 그들에게 일종의 약속이었다. 가시와 엉겅퀴, 수고와 슬픔을 겪다가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듣기에 앞서 그들은 분명한 희망의 말을 들었다. 사탄에게 굴복하여 상실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찾을 수 있었다.
자연 또한 계속해서 이것을 암시하고 있다. 죄로 훼손되었어도 자연은 창조뿐 아니라 구속에 대해 말한다. 썩어 가는 현상을 통해 땅은 저주에 대한 상징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명력의 증표가 아름답게 넘쳐 난다. 나무는 잎이 떨어져도 생생한 초록빛 옷을 다시 입고, 꽃은 시들어도 다시 새 모습으로 멋지게 피어난다. 창조의 능력을 내뿜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엡 4:24) 다시 창조될 수 있다는 분명한 보증이다. 이처럼 우리의 큰 손실을 일깨우는 자연의 사물과 현상들은 한편으로 희망의 메시지도 된다.
악의 손길이 뻗치는 곳마다 우리 아버지의 음성도 들린다. 그 결과들 속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죄의 본질을 확인하고 악을 버리도록 경고하며 선을 받아들이도록 초청하는 음성이다.
『교육』, 26~27
2월 4일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하나님의 말씀에는 토를 달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녀야 한다. 사울은 하나님이 직접 내리신 명령을 저버렸다. 자신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신의 불순종을 눈감아 주시리라는 자기 합리화로 그는 양심의 가책을 잠재우고자 했다. 사무엘이 찾아오자 사울은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며 의인 행세를 했다.
하지만 불순종의 증거가 너무나 명백했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는 사울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소와 양의 울음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단 말이오?” 하고 사무엘이 묻자 사울은 “군인들이 아말렉에게서 빼앗아 온 것입니다. 양 떼, 소 떼 중에서도 좋은 놈을 살려 두었다가 선생께서 모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잡아 바치려고 끌어온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은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라고 변명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무엘은 말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그 밖에 제사를 순종보다 더 좋아하시겠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더 나은 것이오. 이것은 거역이 마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고집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오. 당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당신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삼아야 한다.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절대자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그분의 언약은 변함없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자기 생각에 맞춰 뒤틀어서는 안 되는데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그 계명을 파괴하고 규율을 훼손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심판하는 것임을 세상 사람들은 너무 늦게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 일인지 모두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룩함과 행복과 하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제 발로 걷어찼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문 『시조』, 1896년 1월 9일
2월 5일
우리가 순종할 수 있음을 예수께서 보여 주셨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그 사람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아느니라”(요일 3:24, 한글킹)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란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사람, 계명을 어기는 것이 유리해 보일 때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계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잃어버림당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맺으신 은혜의 언약 아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이 주어졌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세상에는 두 부류 즉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가 있다. 거룩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 인류의 죄가 예수께 지워졌을 때 그분은 죄인을 위해 거룩하지 못한 자 중 하나로 여겨졌다. 하늘 아버지와 모든 천사 앞에서 그분은 우리의 대속물, 보증인이 되셨다. 그분은 세상의 죄를 뒤집어쓰고 우리 대신 죄인이 되셨고 우리 죄로 인한 저주가 그에게 임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생애와 고통스러운 죽음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그분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죄인 취급을 받으셨다. 그분은 세상에 오시어 자신의 신성에 인성을 옷 입고 시험을 견디며 자신이 하나님임을 증명했다. 인성을 쓰고 완전한 순종의 모본을 보이며 우리도 순종할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누어 받는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분명하게 밝힌다. 신성과 인성이 협력하게 하여 타락한 인간 존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기고 또 이기게 하라.
영문 『시조』, 1893년 4월 24일
2월 6일
원칙을 따르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영생은 모든 것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눅 14:33). 아무것도 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무기력과 어둠 속에서 마냥 기다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다. 그분은 틀림없는 언어로 우리 영혼에 말씀하신다. 우리의 의무를 깨닫고 그것을 굳게 실행하기 위해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겸손하고 간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여 그분의 뜻을 깨닫고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 가르침을 “알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요 7:17, 킹흠정). 경건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느낌이 오든 안 오든, 기분이 내키든 안 내키든 명백한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순종은 원칙을 근거로 하는 것이며 의로움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 택함받아 구원에 이르는 품성이다.
성경에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법이 나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1~24절).
모두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한 조건이 여기 소개되어 있다. 성도들과 함께 빛 가운데서 유업을 받을 권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이 택하신 남다른 품성이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분이 요구하시는 수준에 다다른 사람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넉넉한 자격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교육(Christian Education)』, 117~118
2월 7일
순종을 맹세한 이스라엘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
하나님의 지시대로 언약을 비준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출 24:4~8).
백성은 언약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엄숙하게 언약을 맺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모든 신자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상징한다. 그 조건들은 오해의 소지 없이 명백하게 제시됐다. 주어진 모든 조건에 찬성하는지 결정하도록 요청받았을 때 그들은 만장일치로 모든 의무를 따르기로 수락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기로 동의한 자들이었다. 율법의 원칙들이 상세하게 나열되었고, 율법을 따르겠다는 언약에 얼마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규정된 율법의 세부 사항들을 받아들였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요청에 모두 순종했다면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또 자신의 성향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이 오해받거나 그분의 요구 사항이 오용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남김없이 책에 기록해 후대에도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산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불러 주신 대로 받아 적었다.
여호와의 언약을 듣고 나서 이스라엘은 그분께 순종하겠다고 용감하게 약속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인 쳐졌다. 여호와께 희생 제물이 드려졌고 희생 제물의 피 얼마는 사람들에게 뿌렸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결과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특별한 보물로 은혜롭게 받아들이셨음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엄숙한 언약을 맺었다.
『발행 원고 1권』, 114~115
2월 8일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한쪽에는 아담의 불순종과 그 결과를, 다른 한쪽에는 순종하시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에덴은 불명예를 입었지만 한 사람의 죄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듯 한 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된다.
온전히 전적으로 순종하신 한 분 덕택으로 온 세상이 영광을 입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믿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다. 그의 온 생애에서 그 거룩한 원칙이 나타났다.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엄청난 고통을 견디며 몸소 순종을 드러냈고, 고난으로 말미암아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가져다주셨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조건을 알려 주면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따르는 길에는 늘 자기 부정과 십자가가 놓여 있다. 하늘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온갖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사탄이 찾아와 갖가지 방법으로 길을 잘못 인도하고 속이고 죄를 선한 것처럼 치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당부한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견디신 극기와 자기희생을 깊이 생각해 보라. 그 덕분에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이 땅에서 그분께서만 주실 수 있는 행복과 평화를 얻고 머지않아 복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선교사가 되지 않겠는가? 그분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지 않겠는가? 죄와 사탄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신 그분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으셨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그분은 자기에게 배우고, 자기의 멍에를 메고, 여호와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멍에를 메라고 초청하신다.
『청년 지도자(Youth’s Instructor)』, 1897년 4월 1일
2월 9일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선물로 가능해진 온전한 경지에 다다르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바른길을 택하고, 하늘의 능력과 연결되어 그분의 형상을 회복시킬 원칙들을 취하라고 호소하신다. 그분은 기록된 말씀과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을 통해 생명의 법칙을 계시하셨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원칙들을 배우고, 순종의 자세로 마음의 건강은 물론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만 순종의 복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율법에 순종할 능력을 얻는다. 그 은혜에 힘입어 악습의 사슬을 깨뜨린다. 인간이 바른길에 굳게 서도록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은혜뿐이다.
…사람들이 복음을 순결하고 능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복음은 죄로 인해 생긴 질병의 치료제가 된다. 의의 태양은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며 떠오른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료, 평온한 마음, 불안과 질병의 해소는 세상의 방법으로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명예, 천재성, 타고난 재능은 슬픔에 잠긴 마음을 달래고 삶을 돌이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전 존재를 통해 발산하시는 사랑은 생명의 능력이 된다. 그 사랑은 뇌, 심장, 신경 등 주요 기관을 모두 어루만지며 치유한다. …그 사랑 덕분에 이 땅의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온다. 곧 성령님 안에 있는 기쁨, 건강과 생명을 주는 기쁨이다.
…오랜 세월 죄가 인간을 장악했고 사탄은 거짓과 속임수로 하나님의 말씀에 오해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나님의 선의를 의심의 대상으로 몰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풍성하게 흘러나온다. 인간이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영혼의 창을 연다면 치료의 능력이 홍수처럼 쏟아질 것이다.
『치료봉사』, 114~116
2월 10일
참된 순종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6:16, 한글킹)
아담은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추정해 보았다. …이후의 과정을 겪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담은 유혹에 굴복했다. 죄의 문제와 그 결과가 우리 앞에 분명히 펼쳐져 있기에 우리는 원인에서부터 결과까지를 헤아릴 수 있다. 또 죄란 얼마나 큰 행동을 저질렀는가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밝혀 주신 뜻에 불순종하는 것, 사실상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분이 다스리는 법을 거절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은 마치 울타리 안에 있듯 악에서 보호받는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저버린 채 자기 나름대로 안전하게 따를 수 있다고 판단되는 표준을 세워 놓으면 행복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각자의 생각에 따른 갖가지 표준이 생기고, 통치권은 하나님의 손을 떠나 인간이 고삐를 쥐게 되어 자아의 법칙이 세워지고 인간의 뜻을 최고로 높이게 될 것이다. 순종하고 존중해야 할 하나님의 숭고하고 거룩한 뜻이 제시되어도 인간의 마음은 충동에 따라 제멋대로 하고 싶어지며 인간적인 일과 신성한 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인류의 첫 조상이 타락하는 바람에 인간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는 황금 사슬은 끊어지고 말았다. 순종은 더 이상 필수 사항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찍이 주께서는 옛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상을 따르는 것이 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지금도 계속 그렇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고 선언하신다. 어떻게 지키셨나? 인간으로 지키셨다.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유대인의 고발에 맞서 그분은 순수하고 고결하고 거룩한 품성으로 응대하면서 “너희 가운데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반문하셨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는 말씀과 실천으로 우리에게 분명한 모본을 남기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어떻게 순종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다.
『발행 원고 6권』, 337~339
2월 11일
행복을 지켜 주는 하나님의 율법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많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롬 8:3, 킹흠정)
인간의 행복은 언제나 하나님 율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순종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통로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포도밭에 그분이 두르신 울타리이며 그분을 따르는 사람을 악에서 지켜 준다. 그러나 아담은 죄를 범했고 자기 자신을 법으로 삼았다. 아담은 불순종했기에 결박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이기심에서 비롯한 불화가 인간 사이에 나타났다.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더 이상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아담은 불충성한 세력과 손잡았고 세상은 자기 본위에 빠졌다.
그리스도는 참다운 표준을 보여 주신다. 그분 덕택에 인간은 다시 한번 하나님과 하나가 될 기회를 얻었다. 그분은 범죄자에게 내리는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해 오셨다. 타락한 인간을 구하겠다고 율법의 계율 중 하나라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고 그들 대신 불순종의 형벌을 당하셨다. 인간은 이 방법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만 그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어 아담이 처했던 상황을 맞으셨고 아담이 이기지 못한 자리에서 이기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만약 인간이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거절한다면 자기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르겠다고 맹세하셨다. 그분은 자기를 낮추고 하늘에서 내려와 타락하고 무질서하고 무법한 인류 사이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보이셨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원수에게 맞설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을 충성스럽게 지키려고 돌아온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영광과 품성을 부여하신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을 적어 놓은 것이며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실행하러 왔다. 그 율법을 옹호하고 그 율법대로 살면서 완전한 순종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나는 인성을 지니고 왔다.’
영문 『시조』, 1900년 6월 13일
2월 12일
순종에 따르는 상급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주를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골 3:20, 한글킹)
부모를 공경하며 따르지 않고 부모의 조언과 가르침을 무시하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반항적이고 불순종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녀는 정결한 새 땅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땅에서 순종과 복종을 배우지 못하면 그들은 영영 배우지 못할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이 누릴 평화가 말 안 듣고 제멋대로 굴고 순종할 줄 모르는 자녀 때문에 깨질 일은 없다. 계명을 어기는 사람은 아무도 하늘 왕국을 얻지 못한다.
…젊은이들은 말과 행동을 비롯한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젊은이를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배워야 그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의 가족, 하늘 왕의 자녀가 되려는 모두에게 요구되는 구별된 삶을 사는 젊은이가 20명 중에 1명도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여기 순종의 대가로 큰 약속이 제시되어 있다! 숭고한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기 위해 친구, 친척과의 관계를 포기해야 하는가? 용기를 내라.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 그분이 두 팔을 벌려 여러분을 맞이하신다. 그들에게서 빠져나와 떨어져 지내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맞이하실 것이다. 그분이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얼마나 긴밀한 관계인가! 이 땅의 그 어떤 관계보다도 숭고하고 거룩한 관계이다. 희생을 감수해도, 그리스도를 위해 부모 형제와 처자식을 포기해도 여러분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가족으로 받아 주신다. 여러분은 하늘 왕족의 일원, 하늘의 하늘을 다스리시는 왕의 자녀가 된다. 이보다 더 큰 약속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교회증언 1권』, 497~510
2월 13일
계명을 지키는 가족이 그리스도를 빛낸다
“아이에게 바른길을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잠 22:6, 현대인)
아이들은 자신이 가족의 구성원임을 배워야 한다. 자녀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이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속한 가정에 할 수 있는 대로 행복을 안겨 주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 가정의 선교사가 된다.
균형 잡힌 품성은 일평생 큰 축복이다. 따라서 교육에 무관심한 부모는 자녀에게서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된 아이는 자신이 떠받쳐지고 보살핌받고 멋대로 행동하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의 바람과 뜻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모든 종교적 경험에서 가정 교육의 결핍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하늘 가족의 표본으로 삼고자 하신다. 모든 부모와 자녀가 매일 그 사실을 떠올리며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세상의 실물 교훈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영광받으시고, 그들의 가정에는 그분의 평화와 은혜와 사랑이 값진 향수처럼 퍼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교사로 지내는 이들의 자녀에게서 나타난 삶은 하나님께 아름다운 헌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것을 기뻐하시며 가장 귀한 선물로 여기실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가정 예배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는 부모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게 하는 세심한 자녀 교육의 열매를 보며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들은 질서 잡히고 바르게 교육받은 가족을 세상에 선보이며 하나님께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 그 가정은 여호와를 경외할 뿐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 발휘하는 감화력으로 그분께 존귀와 영광을 돌린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걸맞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6년 11월 17일
2월 14일
순종으로 평화와 행복을 얻는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다는, 하나님 율법의 모든 원칙에 순종할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서 이 조건을 이룰 능력이 전혀 없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은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말미암는다. 성경은 구원받기 전에 먼저 거룩함을 입어야 한다고 선언하며 이 거룩함은 진리이신 성령의 훈육과 제어에 우리가 복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의라는 향에 의해서만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 이 향은 모든 참된 순종의 행위를 거룩한 향기로 채워 준다. 우리는 병든 영혼을 치유해 달라고 구주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것은 주님의 것이다. 겸손히 통회하며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신다.
…한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던 사람이 어둠 속에 방황하는 이유는 자신감과 오만으로 자기의 성향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화와 행복이 유일한 길인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불순종했기에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졌다. 순종했다면 그들은 그분의 능력으로 힘차게 나아갔을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렇기에 하늘의 선물을 거부한 사람은 정죄를 받는다. 위대한 마지막 날, 순종과 불순종으로 상벌이 나뉘는 그날, 온 지구를 주관하는 재판관 앞에 선 사람들에게 갈보리 십자가가 선명하게 나타나 영생을 선사할 것이다. 타락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반역의 길을 걸으며 사탄의 편을 선택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경멸하던 이들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큰 모욕을 당했는지를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은 이 율법에 순종했기에 생명과 건강과 번영과 영원한 유익을 얻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6년 3월 15일
2월 15일
즐겨 순종하는 기쁨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모든 피조물이 사랑 어린 충성을 표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우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하늘 천사들은 창조주의 목적을 수행하면서 기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고 그분을 찬미하며 즐거워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했고 서로를 진실하게 사심 없이 사랑했다. 하늘의 조화를 훼손할 불화의 조짐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상태에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악용한 자가 있었다. 그리스도 다음으로 하나님께 영예를 얻었던 존재, 하늘 거민 중 최고의 능력과 영광을 지닌 자에게서 죄가 시작됐다. ‘아침의 아들’인 루시퍼는 덮는 그룹 중 으뜸이었고 거룩하고 흠이 없었다. 그는 크신 창조주 앞에 섰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둘러싸고 있는 빛줄기가 그를 비추었다.
…루시퍼는 점점 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에도 이 힘센 천사는 그것이 자기에게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늘 무리 중 최고인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감히 창조주에게만 합당한 존경을 차지하려는 욕심을 부렸다. 하나님을 모든 피조물에게 최고의 사랑과 충성을 받아야 할 분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경배와 충성을 자신이 가로채고자 시도했다. 또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에게 주신 영광이 탐나서 이 천사장은 그리스도께서만 지니신 특권을 열망했다(부조, 35).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의 법칙에 기초하기에 모든 지적 존재는 이 위대한 의의 원칙에 완벽히 일치할 때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사랑의 섬김 즉 그분의 품성을 이해할 때 우러나는 섬김을 바라신다. 그분은 강요된 순종을 달가워하지 않으시며 모두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해 자발적으로 섬기도록 하신다(앞의 책, 34).
2월 16일
예수께서 순종할 힘을 주신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율법을 이기적인 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율법의 요구 사항을 우리가 순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우리의 첫 부모가 타락한 책임을 그는 창조주에게 뒤집어씌우며 하나님을 죄와 고통과 사망의 창시자로 여기도록 사람들을 유인한다. 예수께서는 이 속임수를 폭로하셔야 했다. 그분은 우리 중 하나가 되어 순종의 본보기가 되셔야 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본성을 걸치고 우리의 경험을 겪으셔야 했다.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예수께서 감당하지 않은 일을 만약 우리가 하나라도 겪어야 한다면 사탄은 이것을 빌미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불충분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것이다(히 4:15). 그분은 우리가 당할 모든 시련을 견디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로이 주어지지 않은 그 어떤 능력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한 인간으로서 시험을 마주하셨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그것을 이겨 내셨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고 사탄에게 고통받는 이들을 치유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자신의 봉사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를 분명히 하셨다. 그분은 우리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입증하신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인성으로 인류와 맞닿으셨고 자신의 신성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붙들고 계신다.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은 우리에게 순종의 본보기가 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우리에게 순종할 힘을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취급을 자신이 받으시고 자신이 받아 마땅한 대우를 우리가 받게 하셨다. 그분은 자신과 상관없는 우리의 죄 때문에 정죄당하여 우리가 우리 업적이 아닌 그분의 의로 의인 대접을 받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당할 사망의 고통을 그분이 당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시대의 소망』, 24~25
2월 17일
아브라함의 위대한 순종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8)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은 언약을 갱신하며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엄숙히 맹세하셨다. “네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믿음에 찬 아브라함의 위대한 행동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의 후손들의 갈 길을 밝혀 주는 빛줄기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려고 핑곗거리를 찾지 않았다. 사흘간의 여정에서 이치를 따져 보고 하나님을 의심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는 의심을 접었다. …아브라함은 인간이었고 우리와 똑같은 갈망과 애정이 있었지만 이삭이 죽으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심하며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픈 가슴을 추스르려고 멈추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공의롭고 의롭다고 여기며 그는 명령하신 대로 낱낱이 순종했다.
…아들을 죽이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을 시험할 뿐 아니라 그의 마음에 복음의 실상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무서운 시련의 기간 동안 고뇌하는 가운데 그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무한한 하나님이 계획하신 희생의 위대함을 헤아릴 수 있었다.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일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시험도 없다. …하나님의 무한한 애정과 사랑에 관하여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부조와 선지자』, 153~154
2월 18일
변함없이 소중한 하나님의 율법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 언약(출 19:1~6)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비로운 그분께서는 몸소 전능한 팔을 뻗어 서로를 맞잡고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방금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민족, 매 단계에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백성을 자청해서 자기의 유업으로 택하셨다. 전능하신 분의 선하심과 사랑은 이토록 놀랍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용납하셨다. 곤란한 상황에서 그들을 건져 내며 그분은 자비와 선의를 드러내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본 증거를 의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출 34:6) 분이라는 틀림없는 증거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모든 하늘의 지적 존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분은 이스라엘을 드높이셨다. 그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언약을 맺고 교제를 나누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지 3개월이 되어 시내산 앞에 장막을 쳤다. 거기서 하나님은 엄청난 위엄 속에서 자신의 법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거대한 건물이나 인간이 설계한 구조물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분은 높은 산, 자기 손으로 직접 지은 성전에서 자기의 영광을 보이셨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에서 시내산 정상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높았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실 장소로 이 산을 택하셨다.
그분은 놀라운 위엄으로 나타나셨고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씀하셨다. 전례 없는 방식으로 백성에게 자신을 드러내며 율법이 영원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신다.
『발행 원고 1권』, 105~106
2월 19일
불순종은 반역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계명 하나라도 일부러 범하는 자는 다른 계명 역시 신령과 진정으로 지키지 않는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죄를 이루는 것은 커다란 불순종의 행위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것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과 충돌을 빚는 것이다. 사람이 죄와 교통하고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마음의 갈래는 누구를 섬기느냐로 결정된다. 하나님을 사실상 부인하는 일, 곧 하늘 정부의 율법을 반역하는 일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저버리고 스스로 의무의 표준을 세운다면 각자의 마음에 따라 여러 표준이 들어서고 통치권은 주님의 손에서 벗어날 것이다. 사람의 뜻을 최고로 삼으며 숭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뜻 즉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목적은 업신여김을 당하고 무시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길을 택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다. 스스로 하늘의 원칙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인 사탄의 편에 가담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가지 말씀이나 많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말씀 하나라도 무시하면 안전할 수 없다. 율법 중 이생과 내세에서 사람의 유익과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계명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때 우리는 마치 울타리에 둘려 있듯 악에서 보호받는다. 하나님께서 구축해 놓은 이 방호벽을 한 곳이라도 무너뜨리는 자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원수가 들어와 황폐케 하고 멸망시킬 길을 열어 놓는 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조상은 하나님의 뜻 한 가지를 대담하게 무시하는 바람에 이 세상에 재난의 수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본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같이 비슷한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나님 율법의 각 교훈은 그분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계명을 떠나는 자는 불행과 멸망으로 향하고 있다.
『산상보훈』, 51~52
2월 20일
순종하면 행복하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누구든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그분의 무한한 영광이 완벽하게 실현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여부로 검증받는다. 순종의 상급은 행복과 영생이다.
아담의 실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고 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확산됐다. 하지만 반역과 배신이 난무하고 배신자, 철면피, 고집불통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살피신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재물을 얻을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가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윤리적 통치의 원칙에 따라 사셨고 하나님의 율법을 낱낱이 지키셨다. 인간으로 살면서 그분은 율법의 유익을 몸소 보여 주셨다. 율법이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하다는 사실이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에게,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천사들과 스랍과 그룹 앞에서 증명된다. 하나님 율법의 원칙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 가운데서 드러났다.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품성을 계발할 것이며 거룩한 율법의 예증이 될 것이다. 마음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격, 영혼, 신체, 영을 사로잡아 의를 따르게 하신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품성을 닮아 갈 것이며 원대한 영향력을 지닌 율법의 원칙이 인간성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에게서 자기 부정, 자비, 사랑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그분은 엄하고 까다롭고 무자비한 존재라고 선언한다. 사탄은 진정으로 참회한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하나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다. 하나님에 대한 그 사탄의 묘사는 잘못된 것이다. 그는 거짓 증인이다. 그리스도를 고발한 자, 악마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발적으로 돌아와 하늘의 하나님께 충성하려는 이들을 고발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7년 3월 9일
2월 21일
자연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마 8:27)
고되고 기나긴 일에 지친 그리스도는 이것저것 요구하던 군중에게서 이제 막 벗어난 참이었다. 어선의 단단한 갑판 위에서 기지개를 켜고 그분은 곧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하고 쾌청하던 날씨가 돌변했다. 어두컴컴한 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느닷없이 맹렬한 폭풍이 몰아쳤다. 그 구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날이 저물었고 새카만 하늘이 물 위를 뒤덮었다. 성난 파도가 배를 때리며 집어삼키려 들었다. 배가 산꼭대기까지 치솟았다가 바다 한가운데로 곤두박질쳤다. 거센 바람이 배를 가지고 놀았다. …강인하고 용감한 어부들은 너무나도 드센 폭풍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파도가 그들을 덮치며 부서졌고 파도가 몰아닥칠 때마다 모든 것이 파괴될 것만 같았다.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부르짖는 제자들의 소리가 곤히 주무시던 예수를 깨웠다. …광풍 속에 놓인 보잘것없는 어선에서 그분은 거룩하고 엄숙하게 일어서셨다. 파도가 뱃전을 때리고 선명한 번개가 차분하고 평온한 그분의 얼굴을 비췄다. 자비를 베푸실 때마다 그러셨듯 그분은 날뛰는 바다를 향해 손을 들고 말씀하셨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폭풍이 잦아들고 소용돌이치던 파도도 잠잠해졌다. 구름이 떠나가고 별이 반짝였다. 고요한 바다 위에 배가 가만히 떠 있었다. 이윽고 제자들을 돌아보며 예수께서 꾸짖으셨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갑작스러운 침묵이 제자들을 뒤덮었다.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베드로조차 마음에 가득 찬 경외심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예수를 따라나선 다른 배들도 같은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예수의 명령에 모든 혼란이 잠잠해졌다. 위기가 가시자 모든 공포가 누그러졌다. 맹렬한 폭풍은 모든 배를 지척에 모아 두었고 그렇게 모두가 예수의 기적을 보았다. 폭풍이 그치고 고요가 찾아오자 그들은 서로 속삭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인상적인 광경을 결코 잊지 못했다.
『예언의 신(The Spirit of Prophecy) 2권』, 307~309
2월 22일
최고의 권위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라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일도 행하지 말라는 명령에 제자들은 담대히 맞섰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종교 개혁 당시 복음을 고수하며 분투하던 자들 역시 제자들이 고수한 원칙을 똑같이 지켰다. 1529년, 독일 제후들이 모인 슈파이어 회의에서 종교 자유를 제한하고 개혁자들의 포교를 금지하는 황제의 칙령이 발표됐다. 세상의 희망이 산산이 부수어지려는 듯했다. 제후들은 그 칙령에 동의했을까? 복음의 빛이 사람들에게서 거둬지고 다시 어둠으로 내몰려야 했을까? 세상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경각에 달려 있었다. 개혁파 신도는 한데 모여 만장일치로 이렇게 결의했다. “이 칙령을 거부하자. 양심의 문제에서 다수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오늘날 우리도 이 원칙을 굳게 지켜야 한다. 복음의 교회를 세운 자들과 그 후로 여러 세기 동안 하나님의 증인이었던 자들이 높이 들어 올린 진리와 종교 자유의 깃발이 마지막 투쟁을 치러야 하는 우리의 손에 넘겨졌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복을 얻은 사람은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드높여야 한다. 우리는 세상 정부를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것으로 여기며 합당한 범위 내에서 정부를 따르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이 하나님의 주장과 상충할 때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법령 위에 있음을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 ‘교회가 이같이 말하기를’ 혹은 ‘국가가 이같이 주창하기를’에 밀려나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세상 권력자들의 왕관보다 더욱 드높여야 한다.
…우리는 앞길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진리를 옹호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약 다른 이들이 이 일을 막는다면 그때는 우리도 사도처럼 말해야 한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행 4:20, 공동).
『사도행적』, 68~69
2월 23일
순종을 멋진 일로 여기라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6~28)
인간이 주제넘게 하나님의 위대한 도덕적 표준을 제쳐 두고 유한한 자신의 판단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자기들끼리 스스로 평가하고 자기만의 표준에 따라 살기 때문에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법이 멸시받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법을 어기고 심지어 진리의 빛을 지닌 이들조차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멸망으로 치닫는 악의 거센 물살에 쓸려 갈 것인가? 아니면 악이 만연한 가운데서도 물결을 거스르며 용감하고 성실하게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것인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좋은 나무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교회가 부담에 짓눌리게 하지 않는다. 주를 따르는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성실하게 가르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거부감이 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는 예수님 안의 진리가 온전히 실행되고 가르쳐질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자기의 실수와 모난 성격을 깨닫도록 하나님께 영적인 혜안을 간구해야 한다. 비난, 정죄, 흠잡기, 어둔 면을 들추기에 급급하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빛 가운데서 걸으며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말을 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니시게 해야 한다. 그분이 계시는 곳에는 우울, 불평, 푸념 대신 향기로운 품성이 퍼져 나간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4년 6월 12일
2월 24일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
구름 기둥 뒤에서 히브리 백성을 이끄셨던 예수께서 오늘날 우리를 이끄신다. 이스라엘에 지혜와 의와 선한 법을 주셨던 분께서 우리에게도 진심을 담아 말씀하신다. 번영과 행복은 흔들림 없이 율법에 순종할 때 찾아온다. 유한한 인간의 지혜로는 거룩한 율법을 조금도 개량할 수 없다. 십계명의 하나라도 어기는 것은 하늘 아버지께 불충성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과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필요하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유한한 인간들은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한 이 율법을 속박의 멍에 즉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멍에로 폄하할 것이다. 범법자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아무런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한다.
온 세상이 그분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그 법은 우리 의도와 목적까지도 판단하며 우리의 가장 은밀한 생각, 욕망, 성향까지도 온전할 것을 요구한다. 율법에서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여기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큰 믿음을 주장해도 위선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율법을 온전히 따르라고 온 인류에게 요구하신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
부주의로 인한 약간의 일탈도, 의도적인 범법도 모두 죄이다. 그리고 누구든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미친다. 거듭나지 않으면 율법의 규제가 거슬리고 거룩한 명령을 내던지고 싶을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행복은 율법을 옳게 이해했느냐, 율법의 거룩한 속성을 깊이 확신하느냐, 그 요구 사항을 기꺼이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찾는다.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는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유일한 수단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사기꾼의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문 『시조』, 1881년 3월 3일
2월 25일
순종의 완벽한 본보기인 예수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눅 2:51)
열두 살 때 그리스도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유월절 축제에 참석했고 돌아오는 길에 군중 속에서 사라지셨다.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동안 찾은 끝에 성전에서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예수를 발견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그분의 은혜로운 질문에 듣는 사람이 모두 매료되었다. 그분은 모든 젊은이의 완벽한 모본이시다. 그분은 언제나 어른을 존중했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아이는 결코 무례하고 버릇없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예수를 찾은 요셉과 마리아는 깜짝 놀랐다. 마리아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하늘을 가리키며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순간 그분의 인성에서 신성이 번득였다. 그분의 얼굴은 하늘의 빛과 영광으로 반짝였다.
…예수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것은 18년 뒤였지만 그 사이에도 그분은 주어진 기회를 활용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섬기셨다. 어린 시절에도 그분은 어린아이와 어른에게 위로가 되는 상냥한 말을 건네곤 했다. 그분의 말씨와 마음씨, 어머니의 모든 말에 순종하는 태도는 마리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수 역시 여느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많지만 틀린 소리다. 그분은 여느 아이들과 달랐다. 잘못 배우고 잘못 자라는 아이가 많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이 지닌 거룩한 특성에 걸맞게 교육받았다. 언제나 의로 기울어지는 그분의 성향은 부모의 끊임없는 기쁨이었다. 예수의 질문에 부모는 위대한 진리의 요소들을 더 열심히 탐구했다. 자연과 하나님에 관한 그분의 영감적인 말씀은 부모의 마음을 열었고 그들을 일깨웠다.
『청년 지도자(Youth’s Instructor)』, 1898년 9월 8일
2월 26일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신 26:17)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 하나하나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면 그 율법이 우리의 삶이 될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이 지어내거나 모세가 제정한 게 아니다. 지혜가 무한하신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께서 율법을 고안하셨고 시내산에서 놀라운 영광 가운데 선포하셨다. 이스라엘의 번영은 그 계명에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그분은 명하신다. 마음에 내키는 대로 지키거나 무시하라고 주신 계명이 아니다. 율법은 하늘 왕국의 법이며 그분의 뜻에 맞게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온 마음을 다해 율법을 지킨다면 확실한 증언이 세상에 전달될 것이며 그분이 자기 백성 즉 특별한 보물로 인정한 이들이 모든 행동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율법에 조건 없이 순종하는 사람은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부와 풍성한 약속을 이루어 주시며 이 땅에서 칭송의 대상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특별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인가!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선언을 믿고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는 모두에게 이 약속이 주어진다. 미래와 영원한 행복을 위한 조건은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서던 워치먼(Southern Watchman)』, 1904년 2월 16일
2월 27일
순종하면 즉각적이고 영원한 보상을 얻는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신 11:18)
이 말씀(신 11:13~28; 7:6~11)을 마치 철필로 기록하듯 모두의 영혼에 아로새겨야 한다. 순종에는 보상이 불순종에는 대가가 따른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분명한 지시 사항과 제한 사항을 주셔서 그들이 온전히 그분을 섬기고 하늘 우주 앞과 타락한 세상 앞에 승리자로 설 자격을 얻게 하셨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승리해야 한다. 이 필수적인 사항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불경한 자로 간주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시험하고 입증해 보이기 위해 그들을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낮추어 자기의 뜻이 그들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분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루며 인도하셨다. 이스라엘에 해가 되는 것을 만약 자신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하나님은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몫을 돌려 드리게 하신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정을 헌신하여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포도밭이 불모의 땅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전부 내놓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사업을 세워 가는 일에 사심 없는 관심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명심하라. 우리는 혼자서 일을 해낼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을 입증해 보이고 시험하셨듯 우리를 청지기로 삼아 우리를 입증하고 시험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명령과 순수함을 그릇되게 표현하는 분별없고 불순하고 변덕스러운 병사들로 자신의 군대를 채우지 않으실 것이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1년 10월 8일
2월 28일
참된 성화에는 순종이 따른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대담하게도 아담과 하와는 주님의 요구 사항을 어겼다. 그 죄로 인한 끔찍한 결과는 우리가 그들처럼 불순종하지 않게 하는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한다. 제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진리를 따르지 않는 참된 성화란 없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도 모두 사랑할 것이다. 성화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에 담긴 명령을 기뻐한다. 그 명령은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품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분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전달하고 돌판에 직접 손가락으로 기록하셨을 때와 똑같이 오늘날에도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신성한 율법을 짓밟으면서도 ‘나는 성화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진짜 성화와 말로 주장하는 성화는 서로 다른 문제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하지 않았다. 넷째 계명인 안식일의 신성성은 여호와의 보좌처럼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4~6).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성화됐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사는 이들에 대해 우리는 사랑받는 제자 요한이 판단했듯이 똑같은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게 될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요한도 경험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라”(7~8절).
요한의 편지는 사랑의 정신을 내뿜고 있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서도 자신이 죄 없이 산다고 떠벌리는 부류를 마주할 때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무서운 속임수에 대해 경고한다.
『성화된 생애』, 67~69
2월 29일
마귀의 일을 하지 말 것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자신이 어떤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는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에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 원수와 협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일을 하면서 그분과 협력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형제간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신자 사이에 불화를 일으킨다면 그것을 기뻐할 존재는 다름 아닌 사탄이다. 그리스도의 친구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않는 이들 때문에 사탄은 가장 성공적으로 자기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지금은 주님을 위해 준비할 때이다. 불신을 말하거나…마귀의 일을 행할 시간이 없다. 시기와 질투와 분열의 씨를 뿌림으로 상대의 믿음을 흔들어 놓지 않도록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신다. 그분은 찬성 혹은 반대한다는 주장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행위의 열매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마에 인을 맞을 때까지는 사방이 통제 아래 있다.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은혜의 기간을 참으로 신중히 활용해야 한다. 진심으로 자신을 살펴야 한다.
…영혼이 단련되고 마음과 생각이 순결해야 한다. 이것은 뛰어난 재능, 재주, 지식보다 더 가치가 있다. 능력이 많지만 그것을 옳게 활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주께서 이르시되”라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훈련받은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께는 훨씬 더 쓸모 있다. 사람들이 세상의 지식을 자랑하더라도 참되신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다면 그들은 비참할 정도로 무지한 것이다. 그들의 지식은 그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세속적인 지식이 세상에서 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말씀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불멸을 보장한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0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