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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의 독수리 - 國語 學習 영역의 細分化는 誤判 - |
孫元日 사회시스템연구원 원장 / 本연합회 지도위원 |
교과서의 制度와 內容은 이에 따라 특정 價値觀을 국민 모두가 共有하게 되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는 政治로부터의 中立은 물론 分權化·多樣化·투명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불과 몇 사람에 의하여 편찬되며 한글전용을 강행하고 얄팍하고 偏向된 理念을 配給하고 있다. 실수요자로서 費用을 모두 부담하는 民(私)의 수요를 무시하고 官(公)의 支配力을 굳히는 데 이용되고 있다.
교과서의 가장 基本的인 잘못의 하나에 국어 학습의 6개 영역 設定이 있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지식, 문학]으로 나누어서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무모한 판단에 대하여 정리하여 보았다.
1. 국어 학습 영역 細分化의 實態
국어를 6개의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학습하게 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學習指導指針書인 敎育課程을 실행하게 된 초기부터 있어 왔다. 그러다가 1987년의 제5차 교육과정에서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이번 제7차 교육과정에서 거의 완벽하게 규정되어 있다.
[국어과 교과과정](1997년 교육부 고시 별책 5)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를 10학년의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으로 지정하고, 그 중 첫째인 국어과를 각 학년마다 위와 같은 6개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全 紙面(155면)의 약 3분의 2에 걸쳐 세밀한 指針과 例가 제시되어 있다. 나머지 3분의 1 정도의 지면은 새 책이 나오는 것이 늦어서 從前의 것을 쓰게 된 것을 위한 잠정적인 것이다.
현재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편찬된 교과서는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에서는 全 학년의 교과서가 [읽기], [말하기·듣기], [쓰기] 등으로 각각 분리되어 있다. 중학교에서는 1학년 것이 [국어]와 [생활국어]의 둘로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내용에서 <말하기·쓰기>, <듣기·말하기> 등 章으로 나누었다. 중학교 2,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용은 올 해 안으로 나올 것으로 안다.
중학교 1학년용을 대표로 삼아 검토하였다. [국어 1-1](총 291면, 7장)에는 <문학>(4개 장)과 <읽기>(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어 1-2](총 245면, 6장)에는 읽기와 문학이 각각 3장으로 되어 있다. [생활 국어 1-1](총 178면, 7개 장)에는 <쓰기>(3개 장), <국어지식>(1개 장), <말하기·듣기>(1개 장), <말하기·듣기·쓰기>(1개 장)가 있다. 그리고 [생활 국어 1-2](총 142면)에는 <말하기·쓰기>(1개 장), <듣기·말하기>(1개 장), <국어지식>(2개 장), <쓰기>(2개 장)가 있다.
2. 細分化해서는 안 되는 理由
(1) 6개가 각각 독자적 영역이 되려면 入力과 處理 및 出力의 3단계 과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2) 서로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서 분리할 수 없다.
(3) 언어현상은 지극히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며 뇌가 一元的으로 통합 운용하고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뇌로 보고, 뇌로 듣고, 뇌로 말하고, 뇌로 쓰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적이라야 학습효과를 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 이상의 다양한 神經細胞로 구성되었다. 신경세포는 긴 것이 1미터 이상이나 되는 것도 있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긴 突起를 가지고 있다. 이 돌기와 돌기가 연결하여 몸 전체에 巨大한 網을 구성하고 있다. 피부의 세포와 각 感覺器官과 直接 연결되어 중앙 통제를 한다.
그래서 外界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드리고 여러 가지 처리를 하고 그 결과를 감각기관 및 피부에게 행동하게 한다. 언어는 이 중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활동으로서 大腦가 主役이다. 그러므로 대뇌의 활동을 덮어두고 감각기관의 훈련만을 통해서 국어를 학습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대부분이 헛수고가 될 것이다.
(4) 그렇기 때문에 <국어지식>이라는 영역을 설정하였노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어지식의 대부분은 文法으로 되어 있다. 국어의 大局과 核心을 알려주고 풍부하고 다양하게 배워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 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5) [국어지식]과 [문학]은 배울 對象이고,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는 배우는 方法이다. 성격이 다르다. 같은 줄로 나란히 세우면 안 될 것이다. 또한 읽기 속에 '문학'과 '설명문'이 마구 뒤섞여 있는데 이것은 현실세계와 공상세계의 혼합이다.
(6) 論說文·傳記文·便紙·日記·紀行文·廣告·自然科學에 관한 소개 등이 학습의 대상에서 除外되고 있다. 이것들은 어디서 어떻게 배우라는 것인가?
(7)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技能으로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어에 대한 능력이 어느 정도 培養된 다음에 시도할 성질의 것이다. 한국어의 本領은 무시하고 지엽적인 기능에만 매달리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며 비효율적이다.
문제를 여러 작은 부문으로 쪼개어서 각각 해결한다는 것이 과학적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의 경우에 있어서는 세분화하는 것이 오히려 혼란하게 하며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3. 국어 학습시간의 대폭 減縮
다음 표는 국어과의 연간 수업 시간(34주 기준)이다.
1학년의 210시간, 2학년의 238시간에서 8학년부터 136시간으로 대폭 감축되었다. 3학년 34시간으로 시작한 영어와 같아졌다. 연간 총시간에 대한 비율을 보면 27%에서 12%로 아주 적어졌다. 국어를 "日常用語 수준의 고유어로서 충분하다, 배워야 할 것이 그다지 많지 않게 되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학습시간의 단축이 곧 단어와 文章을 중심으로 한 學力 增進을 멈추고 한국어를 침몰하게 한 결정적 要因일 것이다.
4. 학습을 방해하는 국어 專門家
6개 영역설정이 무엇을 근거로, 누가 한 것인가? 중학교 [생활 국어 1-1] 2장에 일부 나와 있다. 제목이 [말하기와 듣기의 특성](37∼39면)이다. 盧命完 교수의 글이다. 盧 교수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편찬 책임을 지고 있는 분이다.
① [언어는 중요한 생활의 방편이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간단한 개인적 요구에서부터 어렵고 복잡한 철학적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여 표현하고 이해한다.]
② [인간의 언어 사용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네 가지 행위로 나타난다. 이 네 가지 언어 행위 중에서 말하기와 듣기는 언어 생활에서 특히 중요하다.]
③ [외국의 한 언어 교육학자가 학생들의 하룻동안의 생활을 언어 사용 측면에서 조사한 일이 있다. 그 조사에 의하면, 학생들의 하룻동안의 언어사용은 듣기가 45%, 말하기가 30%, 읽기가 16%, 그리고 쓰기가 9%였다.]
④ [말하기와 듣기는 소리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한다. 말하기와 듣기에서 소리는 형식이고, 소통되는 생각과 감정은 내용이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말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말할 내용을 생각해야 하고,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말소리를 들은 후에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해야 한다. 말하기와 듣기는 머릿속에서 의미를 구성해 내는 정신적 과정이다.]
이상의 항목 별로 검토하겠다.
① : 이른바 言語道具說을 전제로 삼았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手段으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생활에 쓰는 器具와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 다음과 같은 理由로 이 해석은 틀렸다.
첫째, 언어는 눈이나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뇌 속의 心象, 즉 주관적 관념이다.
언어 도구설은 한글전용 주장을 받쳐 주는 理論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언어가 도구이므로 마치 다른 도구가 그러한 것처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동시에 문자도 언어라는 기구의 下位 기구이므로 더욱 바꾸기 쉽고 간단한 것일수록 좋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② : 인간의 언어 사용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넷이라고 斷定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렇게 나누어서 학습을 해야 효율적이라는 실적 또한, 母語가 아닌 외국어를 배울 경우가 아니면, 없다.
그리고 언어활동이 인간의 認知能力과 별개의 自律的 체계가 아님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과정에서 종합적으로 보아 음성이 문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선 교과서가 거의 100% 문자로 기술되어 있지 않는가? 언어활동은 大腦의 여러 언어중추에 의해서 통합 운용되고 있다.
發話를 주관하는 영역(Broca), 理解를 주관하는 영역(Wernicke), 記憶의 영역(海馬), 시각의 영역, 청각의 영역 등이 하나의 거대한 망으로서 통합되어 있다.
③ : 외국의 어느 학자가 어느 학생의 어느 하루를 어떻게 조사하였는지 알 수 없다. 보편 타당한 자료로 삼기 어렵다. 조사 목적과 방법에 따라서는 수많은 다른 수치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전혀 다른 연구결과가 있다.
한 예를 들면 국립국어연구원 [새국어생활](2000. 여름호, p.47, 이관규, '학교문법교육의 현황') 에서 발표한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제6차 국어과 교과서 6건 전부를 조사한 바, <말하기·듣기> 영역이 쪽수로는 9.3%, 수업시수로는 12.5%이다. 고등학교 국어(상·하)에서는 쪽수로는 4.8%, 수업시수로는 9.5%에 지나지 않다.
④ : 盧 교수는 소리로서 생각과 감정이 전달된다고 주장하지만 있을 수 없다. 소리는 공기의 振動인데 여기에 송신자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물리적으로 담겨 있을 리가 없다. 또 [말하기와 듣기의 내용이 생각과 감정이다 라고 주장하나 이상하다. 그 밖의 주장도 본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상과 같이 언어의 학습을 枝葉的인 技能의 학습으로 본 것은 學理的으로나 實證的으로나 잘못된 판단이다. 언어 자체도 인간의 일반 認知能力과 별개의 자율적 체계가 아닌데 하물며 근육적 감각기관의 修練만으로 지식수준을 높이겠다니 납득할 수 없다. 아니 틀린 생각이다.
국어 교과서를 國定으로 묶어 두고 학생들을 좁은 우물 안에 가두는 교육은 진작 止揚했어야 했다. 視野가 좁고 偏見에 사로잡혀 있는 교과서 편찬자는 학생들 학습을 방해하는 독수리와 같은 용감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국어 교과서에는 이 밖에도 많은 착각과 편견이 있다. 다른 과목도 같은 사정에 있을 것이다. 교과서의 制度와 內容이 근본적으로 바로 서지 않고는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다. 5. 교과서의 獨占, 支配부터 풀어야
세분화 주장이 마치 檢證이 다 끝난 定說인 것처럼 군림하고 있는 배경에는 한글전용이 깔려 있다. 70%에 달하는 漢字語를 우리말이 아니라고 규정짓고 보니 고유어에 대한 位相을 높일 필요가 생겼고 이를 위하여 세밀화를 더욱 더 강화하게 된 것이다. 마치 과학적인 분석이 되고 고유어만으로도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게 한다.
한글전용은 약 백년 前에 싹튼 생각이다. 목적은 漢字語를 쓰지 말자는 데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사회의 모든 機能이 停止될 것이므로 한글로 덮어서 서서히 없애나가자고 했다. 그래도 별 지장 없이 한글만의 훌륭한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글자 형태의 단순함 하나만 보았지 그것으로 해서 언어와 그리고 문화가 침몰하고 말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말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글자는 그 소리를 적는 것뿐이니 어려운 漢字를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말의 바탕이 바로 언어이고 言語가 바로 知識이며 더 풍부하고 더 정확하게 理解하고 記憶하고 表現하지 않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였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空論이었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오해는 西洋文化에 접하기 시작한 무렵 이 땅의 先進 지식이었다. 과학적이며 이상적인 進路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서구의 言語觀 및 문법지식 자체가 확실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언어학이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였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다. 언어는 인간의 認識能力과 思索能力의 한계를 가름하는 가장 인간다운 능력이고 뇌 과학 등 관련 학문의 발달이 있어야 진척이 되기 때문에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조상과 침팬지의 조상은 약 500만 년 전에 갈라섰다고 한다. 현재 양자의 遺傳子 차이는 평균 1% 前後에 불과하다. 인간의 어린이와 침팬지의 어린이를 동시에 키워 본 동물학자의 기록에 의하면 태어나서 2, 3세까지는 침팬지의 知能이 인간의 지능보다 훨씬 더 우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단 인간의 어린이가 언어를 배워서 활용하기 시작하고 사회성을 갖게 되니 그 優位가 거꾸로 되어 침팬지를 결정적으로 띄어 놓았다는 것이다. 침팬지의 大腦에는 언어영역이 거의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이 단지 知覺만으로 살아가는데 대하여 인간은 언어를 다룸으로써 철학과 과학, 예술 등 갖가지 文化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토록 중대한 언어에 대해서 인간은 그 긴 생존기간 동안 연구를 게을리했다. 언어는 누구나 쓰고 있는 것이다. 설명이 없어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세상이 복잡해지고 배워야 할 지식이 많아지면서 학교교육이 필요해졌고 그 학습기간이 또한 점점 더 길어졌다.
그래서 관련 학문의 발달과 더불어 言語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일어났다. 그런데 깊이 알게 되니 큰 벽에 막히었다. 언어를 사용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신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본 듯, 뇌가 뇌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腦科學, 認知科學, 遺傳學, 生物學 등이 總動員되어 연구한 결과 큰 윤곽과 핵심은 잡히고 있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에 대한 고려는 여전히 外面하고 百年 前의 漢字亡國論을 교과서를 통하여 固守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한글은 24字, 漢字는 5만자이니 상대가 안 되며, 漢字는 없어질 글자다.], [문자는 물론 언어도 도구다.], [이 도구를 배우기 위하여 사회에 有益한 기술과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진정한 지식을 배울 시간이 빼앗기면 안 된다.]는 등 많은 착각을 학생들에게 강제로 注入시키고 있다.
한글전용은 과학적 근거가 없고 엄청난 損失만 가져 온 自充手이며 憲法 위반이다. 表現의 자유, 학습의 자유, 가르칠 자유, 생각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행정규제 중 最大, 最强, 最惡의 것이다. 이 규제는 당장 할 수 있는 교과서의 獨占, 支配로부터의 解除로써 풀기 시작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학생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게 하고, 자신들은 이를 감시하는 용감한 독수리가 되고 있는 교과서 편찬자로 하여금 저 空中으로 날아가 言語의 本質을 바로 인식하고 국어를 正常化하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