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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걸려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들뜨거나 신나거나 그러지도 않는군요. 너무 긴 시간이 걸려서일까요? 아니면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 같아도 긴장감이 가득 한 내성천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일까요?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며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땅 살 돈을 마련하고 지난 연말 강가의 작은 땅을 사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조계사 내 스페이스 모래에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기자회견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런 저런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4대강공사가 한반도 대운하의 옷을 입고 있던 2008년 2월 어느날 여러 종교인들이 한강하구를 출발하여 남한강을 걸어 낙동강으로, 그리고 영산강과 금강을 거쳐 다시 한강으로 100여 일 동안 풍찬노숙을 하였고,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존경받는 노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노고단 하악산에서 신원사 중악단으로, 그리고 임진각까지 몸을 낮추고 또 낮추는 오체투지의 길을 걸었습니다.
종교인들이 참회의 걸음을 걷고 또 걸었지만 4대강 공사는 진행되었고, 막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이미 오래 전에 그 기능을 다한 듯 울려야 할 경보를 울리지 않았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나무들을 베어버린 강가에는 여러 기관들의 이름표를 단 새 나무들이 다시 땅에 꽂혔고, 이름 모를 것들이 죽어간 자리에는 1500년 만에 찾아온 발전의 기회를 막지 말라는 현수막들만 나부꼈습니다.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이 산채로 매장 됐고, 지금은 소 값 안정을 위해서 올해 300억의 예산으로 7만 마리의 암소를 도태한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라는 가로림만에 들어서려는 조력발전소를 막기 위해 태안군청 홈페이지에 작은 글 하나 올려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페북에 올라온 오늘 TV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학교폭력 근절대책과 관련된 특집방송이 전파를 타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지난 겨울인가 내성천을 찾았다는 일본 습지전문가들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내성천에 들어 모래밭에서 무릎을 꿇고 수십여 분을 기도하였다는. 그런 강은 처음 만났다고 하였다던가요. 버클리대학교의 인자한 모습의 노교수 랜디 헤스터 교수님이 국회에서 하신 말씀도 떠오릅니다. 미국에서 평생 이런 강은 딱 한 군데서만 보셨다는. 지난해 한국을 찾은 베른하르트 교수님이 낙동강으로 내려가던 길에 잠시 들른 내성천 금강마을 앞에서 흐르는 강을 보고 다시 영강 합수부를 지나면서 지도로 내성천과 낙동강을 가리키며 국립공원(급)이라고 안타까워하시던 모습도.
예천군 개포면 강가 상습 범람원 논 564평을 산 것은 늦었지만 어느 분의 편지글처럼 내성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겠습니다. 어쩌면 지키지 못한 4대강의 생명들에 대한 아주 작은 속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것은 내성천을 향한 작은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고향만은 지키고 싶은, 고향만은 지키겠다는.
가끔은 고리타분한 학술자료들이 저를 환기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저야 어려서부터 그 품에서 뒹굴던 모래밭이라 그렇다 치지만 바다 건너 그들은 왜 내성천을 보고 감탄과 탄식을 동시에 하는 것일까요? 이런 저런 자료들을 짜깁기 해보았습니다. “내성천으로 흘러드는 모든 소하천, 심지어 동네 도랑조차 모래로 가득한 내성천은 그야말로 모래강의 고향이다. 이것은 낙동강 전체 유계의 대표적인 토산 소백산과 가장 규모가 큰 침식분지인 영주분지(봉화 ‧ 순흥 ‧ 풍기 ‧ 영주 일대의 들판과 야산을 포함한 지형단위로 화강암이 7~10m 정도로 깊이 풍화된 곳에서 발달하는 한국의 대표적 침식분지)가 내성천 유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쥬라기의 화강암이 주로 분포하는 내성천 유역 지층은 끊임없이 내성천에 모래를 공급하면서 내성천을 세계에서 유례없는 모래강으로 만들었다”
지난 여름 KBS 환경스페셜에서 강과 생명이라는 주제로 2부작을 방송하면서 내성천 모래의 중요성을 다루다가 영주댐 공사관계자와 댐으로 인한 댐 하류로의 모래공급 중단 우려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모래가 공급되지 않으면 하류의 생태계와 무섬마을, 선몽대, 회룡포 등의 경관에 치명적이지요. 당시 공사관계자는 댐건설 최초로 댐 하류로 모래를 배출하는 배사문을 댐에 설치하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두어달 지난 10월 수자원공사는 공사장 상류지역에 길이 130M, 높이 7.7M의 유사조절지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유사조절지란 댐 상류에서 댐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모래를 사전에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시설물입니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모래가 이 시설물에 쌓이는 대로 퍼내는 것입니다. 2013년 5월 완공 예정인 대규모 토목공사입니다. 구름이 넘나든다는 절경 운포구곡 안으로는 담수 시 침수되는 도로와 철로의 이설을 위해서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대규모 공사가 또한 진행 중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맑은 물이 많이 생겨서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낙동강에 단지 맑은 물을 흘려보내기 위함이 댐 공사의 가장 큰 목적인 영주댐 공사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산길을 가다 그것이 잘못된 길을 알면 바로 돌아섭니다. 빠를수록 좋지만 아무리 많이 갔어도 그것이 길이 없는 곳을 향하는 것이라든가 오히려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방향이라면 아는 순간 바로 돌아서야 합니다. 영주댐 공사가 꽤 진행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하늘이 지구촌에 선물한 둘도 없는 강 하나를 죽이는 것이라면 당연히 중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어떤 이익이 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다시 한번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은 내성천을 생각해봅니다. 평은 초등학교 아이들은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 잡은 넓고 멋있는 학교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공부를 계속하고 선생님과 강으로 나가 강도래, 물도래를 찾으며 자연학습도 하고, 금강마을 할머니들은 집에서 점심 드시고 나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뗍니다.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밤 한 숨으로 지새워야 했던 지난날의 악몽은 한 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린 지 오랩니다. 평생 같이 살아온 이웃과 댐 문제로 갈등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이전의 따뜻한 관계로 돌아옵니다. 나무토막 값만 던져주고 나가란다면서 분개했던 표고버섯 농사짓는 할아버지는 다시 버섯을 돌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지나는 젊은이 붙잡고 집에 가서 차 한잔 하자며 함박웃음을 웃으시던 키 작은 할머니는 오늘도 발을 가볍게 떼며 강가로 난 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갑니다. 5월이 되면 평은면 사람들은 다시 평은초등학교에 모여 체육대회와 노인잔치를 합니다. 큰 집을 홀로 지켜온 금강마을 김할머니는 이제는 주말마다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마당에 난 풀을 뜯고 말 벗이 되어드리면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니다. 무섬마을 앞 강가에 모래가 자꾸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시던 할아버지는 이제는 안도하고 전처럼 매일 아침 집 앞 강가를 산책하며 청소를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미카엘엔데의 모모에 나오는 어느 장면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강 양안의 보기 싫은 돌망태나 콘크리트 제방을 걷어내기 위해 그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왕버드나무를 심습니다. 왕버드나무가 다시 모래흙을 단단히 움켜지면서 인공구조물들은 단계적으로 철거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무를 심던 아버지의 옆에서 일을 거들던 아이가 어른이 되면 강가는 왕버드나무 숲으로 울창했던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여줄 것이고, 활동공간이 넓어진 원앙들은 내성천 곳 곳의 왕버드나무 숲에서 봄이 되면 일제히 우박 쏟아지듯 새끼들을 데리고 강으로 내려와 연둣빛 왕버드나무 잎이 흔들리는 강물 위로 소풍을 다닐 것입니다. 홀로 쓸쓸히 주위를 경계하던 먹황새도 어디선가 짝을 불러와 금탄 골짜기 깊은 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아예 눌러앉습니다. 강가에 그늘이 깊어지면서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언제부턴가 마을 강가로 돌아왔습니다. 덩달아 수달가족들도 신이 났습니다. 정부는 지천관리의 관점을 바꾸어 오염원이 강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대규모 투자를 하고, 마을 강을 살리려는 정부의 진심이 담긴 노력에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호응을 합니다, 이제는 큰 비에 비닐하나라도 강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농사 뒤처리에도 신경을 씁니다. 정부와 자치단체 그리고 주민들의 합심한 노력으로 강가를 유령처럼 만들던 가시박도 다 제거되었습니다. 오염물질을 정화하느라 군데군데 어두워졌던 모래톱은 이제 상 하류 어디를 가도 맑아서 하얀 모래 뿐입니다. 농부들은 다시 농사짓다가 목이 마르면 강으로 내려와 물을 떠 마십니다. 강이 다시 제 모습을 찾으면서 입소문을 탄 것이 먼 나라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까지 알려져서 40중반의 하인리히 씨는 돌아오는 여름휴가를 내성천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고 싶어 이용절차를 내성천 공동체 센터에 문의합니다. 어느새 내성천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아니라 전 지구인이 사랑하는 곳이 되었고 내성천의 지속적 보전을 위해 내성천은 상시탐방구역과 사전허가 탐방구역 그리고 학술조사를 위한 특별구역으로 구분 관리되었습니다. 물론 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것은 길이 있는 모든 지역에서 가능합니다. 특별구역은 과거에도 사람의 발길이 없던 깊은 계곡을 중심으로 설정되었고 이곳은 원래부터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을 따라 오솔길을 걸으며 경관을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제 지역 사람들은 이전 농사 소득의 일부를 외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얻게 되었고, 내성천이 최소한 영월 동강만큼의 무게가 있다는 나그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송리원 쪽 사람들은 마음속에 항상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다닙니다.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내성천은 다시 삼대가 모여 사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내성천은 강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깊이 새겨주면서 이전의 4대강사업 같은 치명적인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러 제도적 정비를 합니다.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한국에서 댐 공사는 과거의 단어가 되었으며 모든 국책 토목사업과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사업들이 엄격하게 규제를 받습니다. 사회는 생명과 공존이라는 화두를 지니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힘들지만 탈핵을 위한 길고 긴 움직임의 첫 발을 뗍니다.
지방의 아름답고 은은한 한 모래강에서 출발한 소리없는 운동은 마치 어느 봄날 강가의 노란 나비 한마리가 힘찬 날갯짓 한번을 하자 세상이 들썩거린 것처럼, 고요한 강물 위에 뛰어오른 피라미 한 마리의 몸짓이 긴 파장을 내며 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세상에 퍼져나갑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성천을 다시 찾은 김씨는 모래가 담긴 손가락만한 유리병을 아이에게 건네주며 지난 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며 땅 한평씩을 살 때 손에 꼭 쥐었던 그 내성천 모래입니다. 아이는 강가에서 병의 마개를 열어 모래를 다시 강으로 돌려보냅니다....
내성천 땅 한평사기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떠오른 생각을 적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되는군요. 제 무지로 인해 잘못된 내용이 혹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성천을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http://cafe.daum.net/naeseongcheon
http://www.naeseong.org/ 내성천 모래강 / 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
12-01[보도자료]내성천 1차 확보대상지 매입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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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끝에 두 사진이 너무 웃기다 ㅋㅋ 사진 감사합니다
참석못했던 아쉬움을 달래주는 글..사진..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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