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1129일의 일지 (1950. 6.25 ~ 1953. 7.27)
* 이중근편저 <부영그룹 회장>
- 동 책의 내용 중에 참고 될 만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일자별로 메모해 봅니다.
그래서 동 내용을 청우회 카페에 올릴 것입니다.
- <주> 1943년 11월 23일 카이로회담에서
‘적절한 절차에 따라 한국의 자유 독립’이 약속됐고, 이후 이를 재확인했다.
6월 25일(음력 5월 10일) 일요일... 비.. 그리고 아주 맑음
<전황>
- 북한군(인민군) 전면 남침
- 새벽 4시 남침 암호 '폭풍'을 전군에 하달.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 제 1, 2, 3, 4, 5, 6, 12사단과 제 105전차여단 등
11개 지점에서 일제히 국경을 넘어 침공. 북한군 선두부대 임진강 도하.
-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북한 지상군 4만명 내지 5만명 및 전차 94대가 남침을 개시 했다고 발표.
<국내>
- 이승만 대통령, 유엔한국위원회와 긴급 회의, 평화적 해결 희망, 정부 각기관, 비상사태 돌입,
신성모 총리서리겸 국방장관, 미국에 무기원조 요청.
- 유엔한국위원회, 북한 측에 즉시 전쟁 중지 요구, 평화회담 통해 사태 해결하라고 방송.
-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단에 관한 특별조치법' (대통령령 긴급명령 제 1호) 공포
<해외>
- 유엔안보리, 특별회의를 개최하여 한반도에 전투 중지와 북한군의 38도선 철수 결정,
미국이 요구한 정전결의안 채택(9:00 소련 불참, 유고 기권)
- 연합군 최고사령관(SCAP), 한국에 무기 긴급 공수
- 투루먼 대통령. 38선 이상 이남 지역에 국한된 미 해 공군작전 승인
6월 26일(월요일) 맑음 - 2일차
<전황>
- 북한기 2대, 김포비행장과 여의도비행장 재폭격
- 미 무스탕기(F80) 1대, 서울 상공에서 소련제 야크 전투기와 첫 공중전
<국내>
- 국회 본회의, 유엔과 미 의회 및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채택
- 북한 군사위원회(위원장 : 김일성, 위원 : 박헌영, 홍명희, 김책, 최용건, 박일우, 정준택) 설치
<해외>
- 맥아더 원수, 일본 정부에 공산당지 '적기' 정간 지령
- 유엔한국위원회, 북한의 남침이 계획된 전면전 기습침략이라고 리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
1950년 6월 27일(화) 흐림 비
<전황>
- 미국 극동군 전방지휘소(ADCOM) 수원에 설치
- 북한군 소양강 도하
<국내>
- 정부, 대전으로 수도 이전
<해외>
- 유엔 한국위원회, 도쿄로 이전
- 트루먼 대통령, "6.25 전쟁은 공산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도발한 불법 남침이다"라고 성명 발표
- 미 국무부, '맥아더 원수를 한국작전의 최고사령관에 임명한다'라고 발표
1950년 6월 30일...
<전황>
- 미군 전방 지휘소 수원에서 대전으로 이전
<국내>
- 정일권 소장.. 육해공군 총사령관겸 육군참모총장에 임명
- 약 500명의 학생, 수원에서 비상 학도대 조직
<해외>
-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 주일 미군 제 24사단 가용권한 및 38선 이북에 대한 미 공군 공격권 수령
- 32개국 유엔안보리에서 한국 무력원조 결의안 지지표명
-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 주일 미군 제 24사단 사용 권한 및 38선 이북에 대한 미 공군 공격권 수령
1950년 7월 2일(일) 일지에서...
<전황>
- 북한군 용인 점령, 북한 공군 병력 100대에서 110대로 증강
- 미군 푝격기와 전투기, 각지에서 북한군 집결부대, 부교, 수송대, 창고 등 푝격
<국내>
- 국군과 미 해군, 해군 부산항만방위사령부 설치
- 대구세무서, 밀주 제조 단속 개시
- 국군 공군, 최초로 F51 전투기(10대) 미군으로부터 인수
<해외>
- 미 경제협력처(ECA), 한국 원조 물자(식략, 석유) 재개
- 미 국무부, 유엔안보리의 한국전쟁 결의에 대한 소련의 위법 시비에 반박
1950년 7월 2일(일) 일지에서...
<전황>
- 북한군 용인 점령, 북한 공군 병력 100대에서 110대로 증강
- 미군 푝격기와 전투기, 각지에서 북한군 집결부대, 부교, 수송대, 창고 등 푝격
<국내>
- 국군과 미 해군, 해군 부산항만방위사령부 설치
- 대구세무서, 밀주 제조 단속 개시
- 국군 공군, 최초로 F51 전투기(10대) 미군으로부터 인수
<해외>
- 미 경제협력처(ECA), 한국 원조 물자(식략, 석유) 재개
- 미 국무부, 유엔안보리의 한국전쟁 결의에 대한 소련의 위법 시비에 반박
1950년 7월 3일(월) 맑음
<전황>
- 북한군 한강 도하
- 미국 영국 함대 한국의 동서해안에서 작전 업무 수행
- 평양 야간 폭격
- 육군본부, 평택으로 이전
<국내>
- 부산체신국, 우체국을 통한 각종 현금지불을 주당 1만원이하로 제한
- 애국지사 김홍량 사망
<해외>
- 장제스 총통, 한국전쟁의 도발자는 소련이라고 통렬히 비판
1950년 7월 4일(화) 맑음-흐림
<전황>
- 맥아더 원수, 대전에 주한미군사령부 설치, 미군 부산기지사령부 설치
- 육군본부, 대전으로 이전 ,
<국내>
- 국회, 비상위원 선출하여 긴급조치 강구하기로 결정
(비상위원 : 신익희, 장상택, 조봉암, 정일형, 지대형, 김동성, 이종현, 정헌권, 황성수)
- 북한, 김일성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임명, 남한 '해방지구'에서의 토지개혁 실시강령 발표
<해외>
- 캐나다 정부, 한국군에 공군과 구축함 2척 파견 예정
- 인도, 미소 양국에 대하여 한국전쟁 중재 용의 표명
- 캐나다 정부, 한국군에 공군과 구축함 2척 파견 예정
- 미 해군, 한국 해안 봉쇄를 공식으로 소련에 통고
- 그로미코 소련 외무차관, 미군의 한국 절수 요구하는 성명 발표
<주> 동 6.25 전쟁일지는 [6.25 전쟁 1129일] - 이중근편저... 책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임
이중근회장깨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1950년 7월 7일(금) 맑음
<전황>
- 미 제 24사단, 평택부근 37도선에 방어선 구축
- 동해안의 북한군, 삼척 포항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진출하고 줄곧 남하 태세
- 국군(육군), 병참관리사령부를 부산기지사령부에 창설
<국내>
- 이승만대통령, 북한군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라고 명령
- 통화조정위원회, 시중의 현금 부족을 은행 보증수표로 보완
<해외>
- 유엔안보리, 유엔통합사령부 설치할 것과 미국 측에 사령관 임명을 요청하는 결의안 채택
- 유엔통합사령부 설치하고 유엔사령관에 맥아더 원수 임명
1950년 7월 8일(토) 흐림 비
<전황>
- 미군, 북한군 탱크부대의 맹폭으로 대전 북동쪽 약 57Km 천안에서 후퇴
- 북한군 2개사단, 원주에 집결, 북한군, 동해안에 집결
- B29 전폭기편대, 고성-흥남 간 군사 시설, 원산 해군기지, 흥남질소공장 맹폭
<국내>
- 정일권 계엄사령관, 비상계엄령 포고 제1호 공포
- 유엔군 전차부대, 한국 도착
<해외>
- 유엔기 사용, 한국에 국한
- 중국, 화북과 만주에 병력 증원, 남방의 중공군 북방으로 이동
1950년 7월 10일(월) 아주 맑음
<전황>
- 미 제 25사단, 부산 상륙, 미 제 5공군, 한국으로 이동
- 유엔 공군기 300대, 한국 서부지역을 맹공격하고 전의-수원-충주 교통선 공격
- 리 유엔 사무총장, 유엔의 힘으로 세셰평화 성취하겠다고 언명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북한의 침략으로 38도선 효력 소멸되었다고 주장
- 부산시, 일반 가정에 제한 송전 실시
- 청원군 오청지서와 오창 양곡창고 구금자 희생사건 발생
1950년 7월 11일(화) 맑음
<전황>
- 유엔군, 충주 단양 탈환
- 북한군, 두 방향에서 대전으로 진격
- B29 전폭기, 원주 진천 등 폭격, B26, 조치원 진천 공격
<국내>
- 전국 호전에 따라 미 경제협조처 한국 사절단 일행 조만간 귀환 예정
- 외자관리청, 비료 배급제 철폐하고 직접 구매제로 결정
- 환금은행, 원화의 달러 교환 중지
<해외>
- 맥아더 원수, 유엔에 유엔기 요청
- 리 유엔사무총장, 유엔의 힘으로 세계평화 성취하겠다고 언명
- 영국 항모함 1척, 한국해역 취역 목적으로 싱사포르 진출
- 프랑스 극동함대, 미군 지휘아래 유엔군에 가담
*** 6.25 전쟁 1129일... - 이중근편저 - 에서
1950년 7월 14일(금) 흐림
<전황>
- 국군의 작전지휘관, 유엔군사령관에 이양
- 영국 함대, 서해안에서 작전에 가담, 인천 부근에서 북한군 연안 폭격
<국내>
- 이승만 대통령, 38도선으로 북진하여 한국 통일한다고 기자회견
-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원수에게 한국군 작전지휘권 이양 서한 전달(대전 협정)
- 정부, 대전에서 대구로 이동
<해외>
- 리 유엔사무총장, 유엔 회원국에 대하여 한국에 지상부대 파견 요청
- 유고 정부, 불가리아군의 유고 영토에 대한 침입 발포에 항의
1950년 7월 19일(수) 비 흐림
- 6.25전쟁 25일차 -
<전황>
- 북한군, 이리 점령, 영덕 점령
- 유엔 해군, 계속 동해안 북한군 군사 시설 포격
- 뉴질랜드 해군 참전
<국내>
- 금융기관 예금대불에 관한 특별조치령/ 대통렬령 긴급명령 제 4호 공포
- 남선전기 부산지점, 주요 기관 제외한 상시 송전의 일체 중지로 배전 계획 변경
<해외>
- 캘커타 영자신문, 중공군 티베트 침입설 보도
- 트루먼 대통령, 의회에 한국전쟁 특별 교서 발표 (징병제 실시, 예비군 동원, 주방위군 4개 사단 현역화)
1950년 7월 22일(토) 비
<전황>
- 딘 소장 대전지구에서 20일 이후 계속 행방불명
- 유엔 해군, 영덕 포격, 오후에 국군이 영덕 탈환, 미 제 1기병사단 제 7연대, 포항 상륙
- 북한군 제 6사단, 정읍 점령
<국내>
- 비상 향토방위령 - 대통령령 긴급명령 제 7호 공포
- 구용서 한국은행 총재, 새 화폐 발행문제에 대해 기자회견
<해외>
- 프랑스 군함 라 그랑디에호, 한국 파병 유엔 함대 참가 위해 사이공 출발
- 타임라이프 특파원 윌슨, 힐더 기자 종군 중 대전 철수작전에서 순직
- 볼리비아 벨기에, 한국 원조 신청, 볼리비아는 유엔에 장교 30명 파견하고 벨기에는 항공수종 역할 담당 지원
1950년 7월 25일(화) 아주 맑음 - 31일차
<전황>
- 미 제1기병단, 영동 서북방 12km 진지 확보
- 한국 수도사단 기갑연대, 청송에서 접전 개시
- 북한군, 목포에 진입하고 대전-영동의 미군 방어선 돌파
<국내>
- 윤군본뷰, 전쟁 이탈시 즉결 처분권을 분대장급 이상에게 부여
<해외>
- 맥아더 원수, 유엔안보리에 한국전쟁관련 '적은 유리한 환경 이용할 기회를 상실했다'라는 보고 제출
- 유엔군 사령부, 도쿄에 정식 설치
1950년 7월 29일(토) 비-흐림
--- 그 때로부터 66년이 지난 오늘 2016년 7월 29일은 금요일이고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데...^^
<전황>
- 워커 중장, 미 제 25사단에 상주의 방어선 사수 훈련
- 미 제1기병사단, 황간에서 김천으로 철수
- 미 공군, 서남전선에서 북한군 저지 위하여 거창 안의 출격
<국내>
- 부산 직장 의용대, 조직 결성 및 궐기대회 개최
<해외>
- 카신 유엔사무총장 특사, 유엔에 한국전투지구 피난민 양 100만명 보고
- 인도, 야전병원 한국 파견 통고
- 미국, 장제스 타이완 국민정부는 대외군원에서 제외
- 벨기에, 악화하는 국왕복위반대 파업 진압하고자 주독일군에 소환 명령
<주> 북한은 1950년 7월말, 낙동강 방어선을 제외한 남한의 90%를 점령했다고 함.
[저의 생각]
6.25전쟁은 정말 대단한 전쟁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공로는 이승만대통령이 계섰기 때문이었으며 특히 미국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더 이승만대통령과 미국과 우리나라를 도와준 16개국을 비롯한 유엔군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자료를 전해 주신 <6.25전쟁 1129일>을 편저하신 이중근회장께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미국과 세계 촤강국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치룬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보면은 정말 그 당시 막강한 군사력과 준비를 했었는가 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보잘 것 없고 무기력한 우리나라를 보면서 처참하고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더군요.
이제는 6.25전쟁의 폐허속에서 나름대로 부유한 나라를 만들어 주신 우리들의 선조 선배들에게도 감사드리며, 이제부터라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우리나라를 우리들 스스로 지켜 나갈 국력과 발전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950년 8월 1일(화) 흐림-맑음
<전황>
- 국군 유엔군, 낙동강 방어선 형성, 미 해병대(제1해병여단), 한국 상륙 준비
- 북한군 제12사단, 안동 점령하고 낙동강 도하 개시, 북한군 제1사단, 함창 점령
- 워커 미 제8군사령관, 낙동강 방어선(일명 부산 교두보) 구축 명령
<국내>
- 국회, 비상 경비예산안 총액 43억 4,800만원 확정 공포
- 재무부, 연초 가격을 2배 인상(공작 300원을 600원으로)
- 부산시 보건과, 천연두 예방 접종 실시
- 한국 청년단 경상북도 문화계몽대, 대한 청년단 경상북도 구국대로 재조직
<해외>
- 맨지스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미 하원에서 전투부대 한국 파병 언명
- 핀드레 뉴질랜드 공군사령관, 지상부대 한국에 파병 예정이라고 발표
1950년 8월 2일(수) 흐림-맑음
<전황>
- 미 해병 제2연대, 부산에 상륙하여 마산으로 이동
- 국군 3사단, 유엔 포병의 야간 함포사격 엄호하에 영덕 탈환
- 안동 부근의 북한군 제7사단, 국군과 대치
- 북한군 제8사단, 낙동강 도하 기도
- 원산 정유소 연일 폭격으로 완전 파괴 판명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대구 육군병원 위문
<해외>
- 퀴리노 필리핀 대통령, 필리핀군의 한국 향발 준비 완료 발표
- 미 국방부 대변인, 한국전황 호전으로 승리의 기일이 2주일 내라고 언명
- 라이베리아, 대한군수품용으로 1만 달러분의 고무 제공
1950년 8월 3일(목) 맑음
<전황>
- 유엔군, 마산-왜관-영덕(후에 포항)을 연결하는 신방위선(워커라인) 구축, 저녁부터 낙동강 철교 폭파
- 북한군, 낙동강 도하, 8월 공세 전개
- 국군 제12연대, 븍한군 제13사단 전발대를 낙동강에서 섬멸
<국내>
- 김훈 상공부장관, 전쟁발발 후 무역은 일본 경유하여 이뤄지고 있다고 담화
- 대구방위사령부, 전황 악화에 따라 사이렌 신호 실시
- 북한, 남한 침략지역에서 1만 8,000여개 농민위원회 조직
<해외>
- 유엔안보리, 중국문제 먼저 심의하자는 소련 측 안 부결시키고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 측 안 가결
- 일본(우편선회사), 유엔군에 화물선 5척 제공
- 필리핀, 1개 여단 병력 파한(탱크 17대 포함)
1950년 8월 5일(토) 흐림-비
<전황>
- 북한군, 군위 의성 상주 점령
- 유엔군,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에서 제지, 유엔 해군, 영덕 북쪽 북한군 종일 포격, 유엔 공군, 김포비행장 2회 공격,
북한군 전투기 27대 파괴
- 미 제5공군, 전폭기 400대 출격
- 미 제5공군 B26전폭기, 김천 대전 수원 서울 인천 등지에 야간 소이탄 공격
<국내>
- 임병직 외무부장관, 유엔안보리 소련 제안을 비난하는 성명 발표
- 이승만 대통령, 해병 제1대대에 부대장 이하 전 장병 전공 찬양하여 전 장병 1계급 특진 특명 하달
- 마오쩌등, 동북변방군은 '이달 내에 모든 작전 준비를 완료하라'라고 명령
- 제일한국교포, 자원군 결성
<해외>
- 터키군, 4,500명 한국 향해 출발 대기
- 미국 상원회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오키나와의 점령원조비 2억 6,600만 달러 가결
-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전선 의용군 다수 지원
1950년 8월 6일(일) 흐림- 맑음
<전황>
- 유엔 공군 530회 출격
- 국군, 의성 북방에서 북한군 1,000명 이상 사살
<국내>
- 유엔학한위원회, 부산에서 제2차 공개회의 개최
- 청년방위대, 소속장교 긴급 소집
<해외>
- 유엔학한위원회, 부산에서 제2차 공개회의 개최
- 리 유엔 사무총장, '모든 유엔 회원국가는 한국 원조할 의무가 있다'고 언명
- 오스트레일리아 구축함, 한국으로 출발
- 타이완 국민정부 공군, 진먼다오 대안 폭격, 중국 선박 134척 폭침
- 인도, 의약품과 구호품 유엔군에 제공 통고
1950년 8월 12일(토) 흐림
<전황>
- 유엔군 전차, 포항의 북한군 돌입 소탕전 전개
- 국군, 도이원 북방 10km에 위치한 북한군 대대 섬멸
- 국군 제1유격대, 434고지 564고지 확보하고 남하하는 북한군 섬멸
- 북한군, 현풍과 고성 점령
<국내>
- 이선근 국방부 정훈국장, 매점 매석자들을 공산군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고 경고 담화
- 육군본부, 비행기와 통신 위해 주요 부대에 호출부호 부여
- 런던 타임즈 특파원 아이언 모리스, 런던 데일리 텔레그라프 특파원 크롤토피어 버클레이, 종군 중 낙동강 전선에서 순직
<해외>
- 유엔군 사령뷰, 작전계획 100-B 발표, 상륙작전과 상륙부대 선정
- 유엔한국위원회 인도대표 나알 대령, 낙동강 전선 시찰 중 순직
- 중국, 호치민 정권 지원 개시
- 미 공군부에서 장교급 소집 : 대위 중위급 1,762명 현역 복귀, 군의 수의 1,532명
1950년 8월 15일(화) 흐림-비
<전황>
- 유엔군 포병, 대구 남서쪽 32km 낙동강 동안에서 북한군의 신교두보 진지 3개 대대에 맹폭격
- 김일성, '모든 것을 전선으로' 명령 하달
- 유엔 해군 육전대, 청진 부근 상륙 후 터널 폭파하고 귀환
- 공산당 성토웅변대회가 부산 부민관에서 열림
- 국난극복 국민총궐기대회 개최(부산)
<국내>
- 이승만 대통령, 공보처장 김활란 임명
- 8.15 광복절(건국 2주년) 기념식, 대구 문화극장에서 거행
<해외>
-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유엔의 지상군 부대의 즉시 증원 촉구 보고서 제출
- 김일성, 북한주재 중국대사 니즈량을 처음으로 접견
1950년 8월 19일(토) 맑음 --- 56일차
<전황>
- 이정일 대령 휘하부대, 포항지구 북한군 주력 완전 분쇄
- 국군, 549고지에서 북한군 격멸, 국군, 삼동 여산동에서 북한군과 교전
- 미 공군 수송기, 개전 이래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453만 5,900kg의 군수품과 6,000명 수송
<국내>
- 금산군 금성면 화림리 골자기에서 금정면 주민 14명 희생사건 발생
- 북한 당국, 남한 침략지구에서 '노동법령' 공포
- 맥아더 원수, 콜린스 대장 및 셔먼 해군작전부장과 군사작전회의에서 인천상륙작전 및 북진 가능성 논의(도쿄)
1950년 8월 20일(일) 맑음
<전황>
- 국군, 포항에서 26km 전진, 북한군 3,000명 분쇄로 개전 이래 최대 승리
- 함병선 부대, 위성 남쪽 창녕에서 북한군 1개 연대 섬멸하고 사단장 사살
<국내>
- 김훈 상공부장관, 전력 대책 및 전시 경제건설 계획 - 제주도 개발 등에 대해 담화
- 미 하원의원, 한국 전황 시찰
<해외>
- 맥아더 유엔사령관, 김일성에 대하여 북한의 잔학행위에 관한 중대 경고를 라디오와 삐라로 경고
- 장면 주미대사, 북한에 신탁통치설 반박
1950년 8월 25일(금) 흐림-맑음
<전황>
- 국군 유엔군, 공격 개시에 북한군은 탱크 30대로 반격
- 북한군, 하양부근에서 대규모 집굘
- 미 제2사단, 대구 남서쪽 25km 지점 북한군 1개 대대 완전 포위
<국내>
- 김종원 헌병사령부 부사령관, 자동차 불법징발에 대한 담화
- 해군, 진해에 장충단을 설치하고 전몰장병에 영령 봉안
<해외>
- 뉴질랜드 정부, 보병 및 포병부대 한국 파견 결정 발표
- 미국 워싱턴포스트, 한국통일이 유엔의 최종 목표이며 38도선 이북으로의 진격도 불사해야 한다고 사설에서 강조
1950년 8월 28일(월) 맑음
<전황>
- 미 공군폭격기대, 성진 금속공장에 폭탄 326톤, 진남포 공장지대에 폭탄 284톤 투하
- 극동 폭격기 550대 출격, 북한군 기지에 폭탄 500톤 투하
-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미 제 5공군 미 해뵹대 소속기 250대 출격, 평양비행장 등 폭격
<국내>
- 육군보충장교령 (대통령령 제 382호) 공포
- 조선은행권의 유통 및 교환에 관한 건 (대통령령 긴급명령 제 10호) 공포
-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에 김종원 대령 임명
<해외>
- 유엔사무국, 중국 측의 만주 폭격 항의 수리
- 유엔안보비밀회담, 유엔총회에 제출할 유엔안보리의 연차보고에 관하여 토의
1950년 8월 30일(수) 아주 맑음
<전황>
- 국군, 신녕 북방 국군진지에 침투한 북한군과 교전
- 미 제2 25사단 지구에 북한군 정찰대 공격
- 유엔 제77기동부대 함재기, 진남포 대공습
<국내>
- 백낙준 문교부장관, 전시 학교 임시운영 조치 대책 발표
<해외>
- 에치슨 미 국무장관, 북한군 철수하면 유엔군이 38도선 북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언명
- 존슨 미 국방장관, 공산군의 한국 침공은 모든 자유국가 정복 의도의 일환이라고 언명
1950년 8월 31일(목) 흐림
<전황>
- 낙동강 돌출부 및 영산지구 2차 전투(~9.1)
- B29 전폭기, 진남포 화학공장, 정련소, 조차장에 폭탄 600여톤 투하
<국내>
- 정부, 한국 배제한 국제회의의 한국 문제 처리에 반대 성명
- 정부, 부산 수영비행장을 임시 국제공항으로 지정
<해외>
- 유엔안보리, 미 공군의 만주 국경지대 폭격 둘러싸고 논란
*******************************************************************
1950년 9월 2일(토) 아주 맑음
<전황>
- 북한군, 낙동강 일대에서 총공격 개시
- 최신식 패튼전차 첫 전선 배치
- 극동 공군사령관, 37도선 이북의 철도 정지 언명
<국내>
- 국회 본회의, 유엔군의 총공세를 촉구하는 메시지 가결
- 정일권 계엄사령관, 대구시내 고의 철사업자에게 개점 명령
<해외>
- 맥아더 유엔사령관, 만주에 있는 한국인을 공산군에게 징발 편입시키는 징조가 있다고 유엔에 3번째 보고
1950년 9월 3일(일) 흐림 - 비
<전황>
- 북한군, 경주 방면에 침투, 북한군, 대구 북방에서 최후의 총공격 감행
- 유엔군, 낙동강까지 반격, 유엔 함재기, 마산 방면에서 지상군 엄호
- B29 전폭기, 낙동강 서쪽의 북한군 시설에 480톤 폭탄 투하
<국내>
- 이승만 대통령, 청년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담화 발표
- 조병욱 내부무장관, 미국 제품 부정매매 금지 발언
- 부산지구 징병책임자, 징병 소집 대상자의 거주지로 즉각 귀환하도록 촉구
- 이윤영 부산지구 헌병사령관, 차량등록에 관한 계엄사령관 포고문 발표
1950년 9월 5일(화) 비
<전황>
- 미 제 8군사령부, 한국 국방부 및 육군본부, 공산군 9월 공세로 고립 위기에 놓인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동
- B29 전폭기, 폭우 무릅쓰고 해주 실소공장 및 평양 조차장 폭격
- 국군 제2군단, 영찬지구에서 북한 제15사단의 돌파를 저지하고 포위 섬멸
<국내>
- 국회, 유엔 총회에 파견할 대표(신익희 장택상 정일형 황성수 김동성 서민호) 선출
- 미 경제협조처, 한국에 대한 신할당금 963만 4,000달러
<해외>
- 프랑스, 보병부대의 한국 파병 신청
- 저우언라이 중국 외교부장, 유엔군이 만주 국경선까지 진격할 경우 참전 입장 표명
1950년 9월 6일(수) 흐림 -비
<전황>
- 미 제1기병사단, 대구에 대한 북한군 진출 방지
- 국군, 경주에 대한 북한군 공격 저지, 국군 제8사단, 영천 전투전개
- 유엔 공군, 동부전선에 연 360대 이상이 집중 공격 해 북한군 전차 41대 격파
<국내>
- 장택상 국회 미 사절단 대표, 방미 소감 발표
- 신규식 관재처장, 귀속주택 징발 담화
- 여자의용군 교육대 창설
<해외>
- 주유엔 미국 영국 프랑스 3국 대사, 한국문제에 대한 유엔총회와 유엔 안보리 대책 협의
- 유엔안보리 미국 측 대표, 북한을 침략자로 비난, 소련 제44차 거부권 행사
1950년 9월 11일(월) 흐림- 맑음
<전황>
- 포항지구 국군 유엔군, 전차와 포병 엄호하에 진격 개시
- 한국 파병 미 제9군단장에 전 주한 미 제24군단 사령관 콜터 소장 임명
- 제 7훈련소 창설(경남 진해)
<국내>
- 국회, 이재민 수용 대책 등 논의하기 위해 비밀회의 개시
- 이윤영 사회부장관, 건물 등록에 대한 담화 발표
- 경상남도, ‘양곡소비규정 실시요강’ 만들어 각 시 군에 지시
1950년 9월 12일(화) 흐림- 맑음
<전황>
- 해병대 수송선단, 부산 출항
- 해병대사령부 해병 제1연대, 신무기로 완전 무장하고 인천상륙작전 위해 부산 출발
- 미 제1군단, 미 제1기병사단 미 제24보병사단 국군 제1사단 등으로 새로 편성
<국내>
- 국회 본회의, 피난민 구호대책 건의안 가결
- 외무부, 일본인 귀국 희망자 서류 접수 개시
1950년 9월 13일(수) 흐림-비
<전황>
- 유엔군 육군, 포항 서남방 8km 지점의 진지 탈환
- 국군의 최전선, 영동 동방 20km 지점
<국내>
- 이승만 대통령, 38선은 자동 소멸되었다고 언명
- 국회 본회의, 오물 청소법안 정부에 반환 결정
<해외>
- 오스트레일리아 외무부장관이 미국 및 남미제국에 태평양동맹 참가 요청
- 미 외교위원회, 일본과 강화맺기 위한 각국의 의사 타진 위해 맥아더와 협의 제안
1950년 9월 14일(목) 비-흐림
<전황>
- 미군, 아침 일찍 낙동강 도하, 정오까지 1km 전진
- 국군, 안동 서방 8.5km 지점에서 공격 개시, B29 전폭기 철도 폭격
<국내>
- 최순주 재무부장관, 조선은행권 100원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할 것과 사용 중지 담화
1950년 9월 15일(금) 비-흐림
<전황>
- 유엔 해병대, 인천상륙작전 개시
- 월미도 탈환, 오후 5시 30분에 주력 공격 개시
- 월미도 상륙은 미 제1해병사단, 주력부대는 미 제10군단, 상륙전 지휘는 도일(Doyle) 소장, 맥아더 원수도 진두지휘
- 유엔군 병력 약 7만명, 유엔군 전함 260여척과 공군의 지휘 하에 상륙 작전
- 국군, 동-서 양해안의 협공작전으로 아침 일찍 영덕 남방 장사동에 상륙
<국내>
- 국회 본회의, 국회 위문단 구성과 준 전투원 조치 법안 심의
- 국군 해병대, 인천상륙작전과 동시에 해안 상륙
1950년 9월 16일(토) 비
<전황>
- 인천 교두보를 선상으로 확대, 인천 동방 6km의 북한군 제1선 돌파
- 미 제8군 등 유엔군,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 개시
<국내>
- 인천시정 정상 복구
- 이승만 대통령, 전시하 원조물자나 군사물자에 대한 부정을 엄중 경고하는 담화 발표
- 국군 임시계급에 관한 건, (대통령령 제384호) 공포
1950년 9월 17일(일) 비-흐림
<전황>
- 미 해병대 제1사단 제5해병연대, 오후 8시 김포비행장 완전 정복, 한강 서남부대에 도달, 미 육군부,
미 제7사단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고 발표
- 유엔군 왜관 육박, 북한군 영천지구에서 사단장 도주
<국내>
- 국회 본회의, 무역행위 특별 심사법과 시행금지법안 심의
- 조병옥 내무부장관, 공비지역의 동포에 포고, 애국지사 한훈 사망
<해외>
- 미국,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서 한국 재건위원회 설치안 제의
- 장면 주미대사, 미국 변호사협회에서 ‘한국과 법치’라는 제목으로 강연
1950년 9월 18일(월) 흐림
<전황>
- 서울에서 역습해온 북한군 전차 10대 격파, 국군 선발대 영등포 돌입
- 유엔 해병대, 서울 서북방 한강에서 진격, 다른 해병대는 경인가도로 전진
<국내>
- 인천에 전범법정 설치, 지방장관 회의 개최
- 국회, 사형금지법 가결
<해외>
- 호치민군, 인도 지나와 중국 국경의 통케 점령
- 북대서양조약기구 이사회, 최종회의 ‘유럽통합군(NATO)’ 창설 승인
- 주 워싱턴 콜롬비아 공사, 콜롬비아가 순양함(2,000톤급)을 유엔의 한국 지원 활동에 제공한다고 발표
1950년 9월 19일(화) 흐림
<전황>
- 해병대 탐색대, 4개처에서 한강 도하, 선봉대 서울 서남교회 3km에 돌입
- 국군 및 유엔군, 한강 도하, 김포비행장 사용 개시
<국내>
- 이승만 대통령, 인천상륙 축하식에서 한국통일 방해 불허, 국군은 한·만주 국경까지 진격 명령
- 국제전기통신조약 가입
<해외>
- 제5회 유엔총회 개최, 라우 인도대표, 개회 벽두 중국대표 가입 심의 요구, 에치슨 미 수석대표는 이에 반대,
소련, 중국대표 참가 재차 논의에 찬성했으나 부결
- 프랑스군, 롱케 탈환
- 서독, 3상회의의 공동방위선언 코뮈니케로 발표
1950년 9월 20일(수) 흐림
<전황>
- 해병대 탐색대, 한강 도착, 서울 공략전 개시, 주력은 도하
- 국군 해병대와 미 해병 제5연대, 한강 도하 수색으로 진격
<국내>
- 이승만 대통령, 38선 진격문제에 대해 유엔 결정에 따를 것을 언명
1950년 9월 21일(목) 맑음
<전황>
- 미 제5 해병연대, 서울 서부 6km에 도달
- 영등포의 북한군 보급소 폭파, 서울 전역에서 북한군 소탕전
<국내>
- 공산당원, 서울에서 패주
- 중앙고등군법회의, 한강철교 폭파책임을 물어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사형 선고
(1964년 11. 14 가족의 재심청구로 무죄 선고)
1950년 9월 22일(금) 맑음 - 90일차
<전황>
- 인천상륙 유엔군(미 제7사단), 남하하여 수원에 돌입
- 국군 해병대, 서대문으로 구시가 돌입
<국내>
- 의성 군위 청송 칠곡 경찰서 복구
- 이승만 대통령, 수도 탈환이후의 제반 문제에 대해 기자문답
- 양평지역 거주 남성 33명, 좌익세력에 연행되어 총살
1950년 9월 23일(토) 아주 맑음
<전황>
- 김일성, 북한군(인민군) 총 후퇴명령 하달
- 유엔 해병대, 이화여대 뒤 고지 점령
<국내>
- 경남지구 계엄사령부(사령관 김종원 대령) 복귀
- 최순주 재무부장관, 인플레 억제 대책과 화폐증발 방지문제 언명
- 경부선 복구 개시, 낙동강 교량 긴급 가설공사 착공
<해외>
- 유엔총회, 침략저지를 위한 유엔부대를 조직하려는 미국 동의 제안 가결
- 영국, 유엔군의 38선 돌파 문제와 통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문제에 대해 미국에 입장 전달
1950년 9월 24일(일) 아주 맑음
<전황>
- 미 제1해병사단, 서울 남부교외에 돌입
- 미 제7사단, 영등포에서 동진, 서울 남쪽 1km 고지 점령, 남쪽과의 교통 차단
<국내>
- 인천에 정부의 임시연락처 설치
- 부산세무서장, 피란공무원 회사원 등 근무소득에 대한 원천과세 언명
<해외>
- 이탈리아, 재군비 3개년 계획 수립 결정
1950년 9월 25일(월) 맑음-흐림
<전황>
- 북한군, 서울에서 개전 이래 최대 저항, 해병대 진격 670m
- 미 제1기병사단, 조치원 돌입, 천안 탈환
<국내>
- 피란민 수용에 관한 임시 조치법중 개장 법률 – 법률 제146호 공포
- 육군본부, 민간인에 대한 가해를 금지하는 훈령 하달
1950년 9월 26일(화) 비
<전황>
- 미 제1기병사단의 린취 특수임무부대, 오산 북쪽에서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7사단 제31연대와 연결 작전
<국내>
- 조병옥 내무부장관, 치안 회복에 관한 포고
- 김훈 상공부장관, 자유무역 장려에 담화 발표
- 구용서 한국은행 총재, 조선은행권 교환 완료에 대한 담화 발표
- 김종원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야간 통행금지시간 연장 등 발표
1950년 9월 27일(수) 흐림
<전황>
- 미 해병대, 서울시 2/3 탈환, 오후 3시 미 대사관에 성조기 게양
- 국군 수도사단 제3사단, 울진 춘양 탈환
<국내>
- 재무부령 특제3호, 전재 지역의 국고금 특별조치에 관한 건 공포
- 김종원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전재민 복귀 등에 대해 담화
1950년 9월 28일(목) 흐림-맑음
<전황>
- 국군 수도사단, 영월 돌입, 국군 제6사단, 충주 탈환
- 미 제2사단, 청주 돌입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탈환 지역에서의 사적 원한에 의한 타살 구타 금지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 육군본부, 재물 약탈 및 부식물 징발 부녀자 능욕 엄격히 금지
- 김일성, 조선노동당 중앙정치국 긴급회의 주재, 중국과 소련에 직접적인 군사 요청하기로 결정
<해외>
- 유엔, 인도네시아 60번째 가입국으로 승인
- 맥아더 원수, 북진계획 개요 보고
- 트루먼 대통령, 38선 돌파는 유엔이 결정할 것이라고 천명
1950년 9월 29일(금) 맑음
<전황>
- 국군 제3사단, 삼척 점령, 국군 제8사단, 단양 탈환
- 유엔군, 남원 담양 탈환 후 광주로 진격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원수 동반, 항공편으로 서울 귀환, 이승만 대통령, 서울 입성에 대해 특별 성명
<해외>
- 유엔 8개국, 38선 이북 진격 여부 권한을 맥아더 원수에게 부여하도록 유엔에 제안
- 미국, 유엔군의 북진계획 승인, 영국 외무장관, 38선 돌파 주장
1950년 9월 30일(토) 아주 맑음
<전황>
- 김포반도에 낙하산부대(미 제187 공수연대전투단) 공수
- 국군 제3사단, 38선상의 인구리에서 월격 공격 명령 고대
<국내>
- 워커 미 제8군사령관, 국군에 38선 돌파 명령
- 국회 본회의, 38선 북진문제에 대해 유엔총회에 메시지 보낼 것을 가결
<해외>
- 중국 소련, 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등 기타 5개 협정에 관한 비준서 교환
- 네루 인도 수상, 유엔군의 38선 돌파 북진 반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