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청년학교 모임에서 나는 구성원들에게 '누구나 배움터'를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끼리만 하지 않고 군산에 있는 청년에게 홍보해서 지역 청년들과 의미 있고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다. 5월 말부터 격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최근 코로나19 거리두기가 다시 강조되면서 길 위의 청년학교 구성원들만 오프라인으로 모이고, 페이스북 페이지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첫 모임은 내가 호스트를 하기로 했다. 어떤 얘기를 할지 고민하다 내가 이 삶을 살기로 한 이유를 설명해 보려고 한다.
나는 2018년 8월 말부터 12월까지 제주에 있었다. 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군 생활하는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침묵해야 했던 부채의식 때문에, 전역 직전에 제주로 들어온 예멘 사람에 대한 뉴스를 쭉 지켜봐 왔다. 배낭여행 중에 난민캠프 자원활동가 모집에 대한 글을 보았고, 가야겠다는 강한 끌림이 있었다. 네 달간의 제주 생활은 '충만'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적절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이유를 반응할 수 없는 타자에게 투사해서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것보다, 타자의 고통을 눈에 담아 함께 울어주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잘 사는 삶이라는 것을 제주에서의 시간 동안 배웠고, 나는 이러한 충만함을 따라 살기로 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 '난민'이라는 존재는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접할 수 정보는 언론을 통해 가공된 것인데, 대개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뉴스이다. 이렇게 대중에게 만들어지는 혐오는 확대, 재생산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난민법 반대 청와대 청원이다. 2018년 6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한 달 동안 71만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이 청원은 그 당시 기준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가진 이들을 '중동에서 온 난민'이라고 범주화하는 순간, 이들 모두는 극단적 광신도이자, 테러분자로 비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은 필연적인데 우리의 인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충만의 빛을 따라 걸으며 이러한 갈등을 완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