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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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의 제 1차 남북정상회담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김정은, 문재인 두 정상이 사뿐히 분단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장면은, 우리의 마음이 평화와 번영을 향해 활짝 열려 있고,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한다면, 분단으로 인한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유쾌한 놀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회담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두 정상의 평화로운 산책과 자연속에서의 ‘공개 밀담’ 이었다. 두 사람이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나아가 남북의 소리없는 전쟁이 역설적으로 만들어 낸 그 풍성한 비무장지대의 평화로운 자연속에서, 고요한 정적을 배경으로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연주되면서, 한 시간여 남직이나 진지한 대화가 지속되었던 그 장면과 시간들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특별히 이 너무도 역설적인 평화의 장면(세계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의 한복판에서 가장 평화로운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이 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다는 마음을 가져다 주었다. 내 마음은 여기에서 성큼 나아가, 앞으로 우리 민족이 이 평화의 기운을 잘 가다듬어, 여전히 수 많은 분쟁과 갈등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증거하고, 평화를 확산시켜가는 평화의 일꾼으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그 혹독했던 고난의 역사를 끌어안고 아파하며, 그 뜻을 치열하게 물었던 함석헌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분단과 동족 상쟁의 비극은 세계의 모든 모순이 이 한반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 하였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세계 역사의 하수구’와도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분단의 고통이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세계사적 사명은, 이 대립과 전쟁으로 인한 악취나는 하수구를 자비와 평화의 맑은 물로 정화시켜 나가는 것, 그래서 이 세계에 평화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자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비전이 이제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번 회담을 통해 직감할 수 있었다.
4.27 판문점 선언문을 통해서 남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체 수립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이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에는 자연스럽게 남북의 군비축소와 병력감소 등도 포함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런 과정에서 남북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일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세계 곳곳의 분쟁과 고통의 현장에 파견하여 근무하게 하는, ‘평화의 군대’를 창설하여 운영하는 꿈을 꾸어본다. 이들은 평화의 군대로 모여서, 이유없는 전쟁연습 대신에, 평화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비폭력 갈등전환훈련, 비폭력직접행동 등의 평화훈련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생명을 파괴하는 훈련 대신에, 생명을 치유하고 살리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사회복지, 건설, 의료 등)을 배우는 훈련들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의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 파견되어서, 평화를 일구고,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서, 세계의 평화는 더욱 든든해지고, 인류의 삶은 더욱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상당한 기간동안 논의되어온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와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본인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다양한 대체 복무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사회와 국가는, 세계의 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평화의 민족’이라는 비전을 확고히 하면서, 대체복무제도를 섬세하고, 공정하게 설계하고 운영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간디는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에 맞서, 비폭력 시민운동을 통해 인도의 독립과 해방을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사티아그라하(진리의 힘에 의지하는 운동)를 실천하는 ‘샨티 세나’(평화의 군대)를 구상했다. 이 ‘샨티 세나’는 전쟁과 폭력이 아닌 진리와 사랑에 근거해서 새로운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일꾼들의 조직이다. 이들이 다양한 비폭력훈련들을 받고, 인도 사회의 모든 마을 공동체에 파견되어서 민중들과 함께 평화로운 마을공동체를 일구어가는 꿈을 간디는 구상하고 실험했다. 이 ‘샨티 세나’가 일상에서 지켜야할 규율들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기도와 명상을 하라. 자기 자신과 우주와의 조화를 추구하라. 인류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라. 냉정하게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라.
- 악기로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라. 즐겁게 활동하며 자기 자신속에서 조화를 창조하라
-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고 늘 미소 짓는 얼굴을 하라
-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라.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 일기를 써라.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사티하그라하에 가까이 가는 길이다
- 회계장부를 기록하라. 민중으로부터 모금한 돈을 쓸 때, 이러한 습관은 중요하다.
- 다른 사람과 토론한 내용을 일지나 공책에 적어 두어라. 말로 하는 메시지는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 신중하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노력하라. 새로운 기술이나 생각을 전하려고 할 때는 조금씩 천천히 하라.
- 민주적으로 하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민주적으로 진행하면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다.
- 효과적으로 하라. 사람들과 같이 행동할 때에는 계획을 세우고, 착실하게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라.
지금 음미해도 매우 의미있고 필요한 삶의 방식들이다. 이러한 규율들을 훈련하고, 이를 통해 단련된 평화의 병사들이, 이들이 필요로 되는 고난과 아픔의 현장에 파견되어,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해 낸다면, 우리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민족에게 그렇게나 혹독했던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 ‘평화의 복음을 증거하는 평화의 민족’으로 새롭게 비상하는 아름다운 꿈을 당차게 품어 본다.
이진권( 평화영성 교육센터 ‘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