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여행기
하늘을 나는 새조차 더워서 지친 날개를 쉬던 1998년의 여름이다.
갑자기 국지성 폭우가 퍼붓는다.
용인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도 퍼붓는 비에 속수무책이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수로인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경계는 이미 허물어진다. 폭우는 자연의 섭리대로 흐르는 것이라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모든 것을 쓸어간다. 용인 하천 주차장에 세운 차 수십 대가 물을 피하지 못한 채 배처럼 떠내려간다.
비가 그치고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찾아온다. 개의 혀가 늘어지고 개미들도 더위를 피해 그늘에 집을 짓는지 큰 나무 아래에는 유난히 개미집이 많다. 분수대에서 아이들은 떠날 줄 모른다. 온몸이 땀범벅이다. 샤워하고 수건으로 닦고 나면 다시 땀범벅이다. 한낮의 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열기에 달궈진 도심이 열섬을 이루어 밤에도 열대야가 지속된다.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숨 막히는 도시에 나는 서있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아내에게 말한다.
“이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데 확! 떠나 버릴까?”
“어디로?”
“울릉도 어때?”
“좋아 가요. 호호.”
8월 1일 새벽에 용인을 출발한 차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느덧 영동고속도로에 얹힌다. 새벽안개에 흐릿한 대관령을 겨우 넘은 차는 세 시간을 달려 항구에 도착한다. 묵호항이다.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시골 작은 항구를 하얀 백 갈매기가 날갯짓을 뽐낸다.
차는 주차장에 세워둔 채 배에 오른다. 밀려왔다 부서진 파도가 다시 밀려와선 뿌연 물보라를 남긴다. 묵호항이 멀어질수록 배는 더 심하게 요동친다. 아내와 나는 멀미 기운 때문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다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다섯 살 어린 아들만 뭐가 좋은지 뛰고 난리다.
‘아들아! 너는 멀미 하지 마라.’
드디어, 울릉도에 도착한다.
이국적인 풍경이 우리를 압도한다. 쭉쭉 뻗은 산은 북한의 금강산만큼이나 그 크기가 장대해서 감히 우러러 볼 수조차 없다.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파랗다 못해 검푸르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할머니가 묻는다.
“방 구해요?”
“예 민박하려고요. 방 있습니까?”
“그럼요. 절 따라 오세요.”
여러 말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할머니를 졸졸 따라간다. 민박 요금은 25,000원이란다.
구부정한 골목길을 돌아 도착한 곳은 허름한 집이다. 어차피 멋지고 호화스런 곳에서 잠을 잘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그곳에 여장을 푼다. 대충 점심을 해 먹고 우리는 서둘러 유람선을 탔다. 울릉도를 일주하는 도로가 그때는 없었기에 우리는 배를 타고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내원의 설명은 청산유수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 도동항을 거쳐 이름 모를 전적지까지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바람이 시원하다. 이국적인 풍경에 지친 몸이 깨어난다. 주인집에 낚싯대가 있기에 잠깐 빌려서 항구로 간다. 버려진 생선을 바늘에 찔러 바닷속에 넣었는데 금세 한 마리가 잡힌다. 손바닥 만 하다. 두 마리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라고 아내에게 건네니 이런 곳에 오면 남자가 요리를 하는 거라고 텔레비전에만 눈이 가있다. 할 수 없이 내가 매운탕을 끓여 내 놓으니 아내가 좋아한다. 낚시라곤 해 본적이 없는 내가 잠깐 동안 두 마리를 잡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8월 2일은 비가 종일 내린다. 120 mm의 장대비가 퍼붓는다. 산등성이 한 곳이 찢어져 산사태가 난다. 무섭다. 오전 내내 누워 있다가 점심을 먹고 우산을 쓴 채 우리는 산에 오른다.
여행을 와서 하루를 비 때문에 허비할 수는 없었다.
울릉도 기념관에 가서 울릉도의 멋진 풍경과 독도의 역사를 공부한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비가 오니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임을 애써 밝힌다. 사실 박물관만큼 재미없는 관광지가 또 있을까.
오후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도동항에 간다. 비릿한 냄새가 공기 속에 가득해 이곳이 항구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도동항을 감싸고 있는 방파제가 아늑한 엄마의 품 같다.
셋이서 달리기도 한다. 아들이 일등이다. 아들이 갑자기 말한다.
“엄마랑 아빠랑 안고 서 봐요. 제가 사진 찍어 줄게요.”
“아들! 잘 찍어야 해!”
삐딱하게 모자를 쓴 다섯 살짜리 아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그 속에 나와 아내의 미소가 담긴다. 아들은 갖가지 만화 로봇들의 액션을 흉내 낸다. 우리는 함박웃음을 나누며 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8월 3일 모처럼 날이 화창하다.
햇살은 청아하게 울릉도 바다를 드리운다. 젖은 내 마음은 성인봉 자락에 널어서 말린다. 금세 뽀송뽀송해진다. 비 갠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울릉도에는 택시가 다 지프차다. 거의 갤로퍼만 있다. 울릉도에는 오토매틱 차량이 없다. 길이 가파르고 눈은 1미터도 넘게 쌓이기에 녹을 때까지 잠정휴업상태에 빠진다.
아침 일찍 서둘러 버스를 타고 오늘은 서쪽으로 간다.
성인봉 등정을 하러 가는 것이다. 아들은 나보다 빨리 잘도 걷는다.
조금 오르다 보니 귀틀집이 보인다. 나무껍질로 지붕을 만들고 갈잎으로 벽을 만든다. 비는 절대 세지 않을 성싶다. 조금 더 오르니 냉풍욕장이 보인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처음엔 누가 선풍기를 갖다 놓았나 싶었는데 정말 바람이 세어 나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산 속에 듬성듬성 만들어놓은 나무 평상을 지나서 우린 폭포에 다다랐다. 시원한 폭포 줄기가 지친 육신을 어루만져준다. 행복하다.
사람이 없는 아름다운 유혹의 땅, 이런 곳에서 남은 인생을 산다면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나 행복할 것만 같다. 이곳에서 딱 1 년만 살 수 있다면 머무는 즐거움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점심을 사 먹고 집에 왔다가 오후에는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장에 간다.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난 자리에 남는 것은 닳아버린 돌멩이들이다. 천년의 파도에 찢기고 할퀴어서 이내 그리 두리 뭉실 검은 돌로 변했는가? 밀려오는 파도에 따라온 돌멩이들이 파도와 함께 쓸려 내려가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낸다.
‘또르르륵 또르르, 또르르 또르르륵’
바람은 머묾 없이 분다. 구름은 멈춤 없이 흐른다. 모두가 머물지도 멈추지도 않고 불고 흐르는데 나의 마음은 왜 자꾸 머물고 싶을까. 멈추고 싶을까. 아마도 거친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내 지친 심신이 자꾸 위로를 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로 저녁 산책을 간다. 바다로 향한 절벽이 장대하다.
깎아지를 듯 한 절벽 아래로 둥둥 떠 있는 바다의 자태에 시가 절로 나온다. 길의 끝까지 걷고 싶었는데 어두워져서 할 수 없이 돌아 나온다. 아쉽다.
나는 우리나라 동서남의 끝을 여행해 보는 게 그때의 소박한 꿈이었다. 감히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를 하리라곤 꿈조차 꾸지 않았다. 울릉도와 제주도는 갔으니 이제 백령도를 여행하리라. 일상에서의 탈출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