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시인의 시집 [쌍봉낙타의 꿈]이
2011년 8월, 도서출판고요아침에서 나왔다.
박성민 시인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다음은 '시인의 말'의 일부이다.
"... 나는 고뇌하려면 아직 멀었다...
... 산다는 것은 여전히 사막이다."
다음은 이승하 시인의 해설 '시와 시조 사이,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일부를 발췌하였다.
"... 운문이 점차 산문화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이 장형화이다.
시가 어마어마하게 길어져 시집의 두세 쪽 혹은 서너 쪽을 차지하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 길기도 길지만 난해하기가 한정 없어 시를 읽는 행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끝까지 읽기가 부담스럽다.....
박성민은 당선 이후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박성민은 시조와 시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시조 같은 시, 시 같은 시조를 쓰고 있다고 할까.
음수와 음보에 대한 규칙을 완고하게 적용하려고 드는 시조시인들에 대해
박성민은 현대시조의 유연함에 대해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시조의 형식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시적 비상을 꿈꾼다......
시조는 많은 경우 자연친화적인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혹은 풍자정신이 돋보이는 것도
박성민의 작품이 지닌 특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군인이 국가의 수반이 되어 독재정치를 한 것은
1961년부터 1992년까지 장장 31년간이었다. 시인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1980년대에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의 보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민주화의 희생양이 되겠다고 목청을 높였던 사람들 중 일부가 지금은
권력을 쥐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이런 유의 작품,
즉 확실한 주제의식을 지닌 작품은 시조시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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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심사평 / 박성민
다음의 네 사람이 최종심에 올랐다
노숙자의 현실성은 벼랑 끝이 만져지나 바닥에
누운 서정이 딱딱한 게 흠이었고, 강바람의 운율은
풋풋하고 시원한데 피가 도는 바람의 내력을 그려
내지 못했다 민들레의 시상은 허공에 뿌리를 두나
유목의 족보들을 들춰내지 못했다 구제역의 발굽
닳은 시간들은 감동이었다 눈물 그렁한 큰 눈을 보
며 심사자는 망설였다 비명이 허공을 받들 때 남는
건 한숨인데, 구제역의 서정성이 외양간을 넘길 바
라며......
올해는 당선작 없음, 심사위원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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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둥그렇게 말릴 때 / 박성민
압정으로 누른 매가
창공에 박혀 있다
바람에 웅크린 채
온몸에 힘 불어넣고
ㅊㅊㅊ 자음만으로 날개 접고 꽂힌다
가야금 줄 튕겨내는
길고 둥근 손가락
머금은 소리마저
입 밖에 나오지 않고
푸드득 몸서리치는 깃털, 빛나는 사금파리
잘려나간 손톱 같은
송골매의 부리가
어디론가 숨어버린
한낮의 마당가
핏줄만 말랑한 공기 속에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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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 박성민
봄비에 비닐 뚫고 파릇파릇 돋았구나
마른 입술 뿌드득, 빛나는 이빨 물고
이렇게 살아 있음이 부끄러운 날 많았다
갈수록 가슴 알알이 깨지는 속병이여
독한 것, 눈물의 씨앗마저도 독한 것
깔수록 자꾸 눈물 나는 미안한 80년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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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심청 / 박성민
아버지 눈 수술에
내 눈을 감는다
옷고름 푸는 손길
여기 용궁 룸살롱
멀리서
개 짖는 소리
웃음 파는 인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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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 박성민
1. 들쥐의 식성
청계천에 쥐 대신 바람이 들락거린다
숱하게 갉아 놓은 사람들의 뒤통수
때로는 지하벙커에서 쥐죽은 듯 웅크린다
가끔은 새우깡에 변사체로 발견되고
월급봉투 속에서 쥐꼬리만 드러난다
식욕은 그를 죽이고 불안만이 남는다
2. 악어의 눈물
하품을 할 때마다 눈물샘이 자극된다
찢어먹은 새끼 누의 속눈썹을 생각하며
허공을 후려치다가 드러누워 참회한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마존의 물살이다
허리를 휘어감고 입을 쩌억 벌리다가
눈물이 흔한 여자의 핸드백에 매달린다
3. 하이에나의 웃음
키키킥 웃음에 방심하면 안 된다
웃음 뒤에 노려보는 뒷덜미를 조심하라
소문을 질질 끌고 와 킥킥대며 삼킨다
새끼들 앞에서만 먹이를 토해놓지
비릿한 핏방울과 식욕이 교배하면
웃음이 실처럼 풀려 너의 목을 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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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골격이 크고 시원시원한 시인이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행사에 갔다가
기차를 함께 타고 오던 날
참으로 유쾌하고 호쾌한 시인이구나, 하고 느꼈었다.
무엇 때문이었던가는 지금은 생각이 나질 않지만....
목포, 라는 특별한 땅에서 태어났으니
그 기질 또한 특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