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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관보(官報)가 아니다
경남의 모 시민운동가가 경남도내 언론사에 지원되는 도와 시. 군의 연간(年間) 연정공고와 행사광고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런데 특정언론사에 한곳에 지원된 금액만 연간 20억 원이 넘게 지급됐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언론은 속박을 싫어하는 ‘자율형 언론’과 적당하게 권언유착으로 용비어천가만 부르는 ‘종속적 언론’으로 나뉜다. 언론도 하나의 조직이고 사회의 공기인 만큼 그 나름대로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언론은 어떤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는 파이프라인(pipe line) 구실을 해주어야만 독립된 기능으로 엘리트 군단과 일반 서민사이를 소통시켜주는 수로, 즉 언로(言路)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율형 커뮤니케이션을 언론의 허파(Lung)라고 할 때 허파에서 신체 각 부위로 보내지는 피와 산소가 신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다원화된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이익계층의 다면적 상황에 부딪혀 급선회하거나 종속적 태도를 보이면 저절로 식물언론이 돼버린다. 언론의 정치적 참여란 다른 이유일 수 없다. 정치(政治)는 국민의 이익을 전제로 한 제도적 장치이며 국민이 오직 믿고 의지하는 자양분의 공급원이다. 즉 권력의 주체성을 정치라고 말한다면 비판된 보도나 칭찬된 보도 역시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참여효과(feedback particpative effects)로 나타난다. 언론이 단추가 잘못 끼인 신사복처럼 돼버린다면 이미 이미지는 추락되고 질 좋은 재봉사나 천까지도 싸구려로 전락시키고 만다. 권력이 그 주체성이나 정체성을 상실해 국민의 의견은 무시되고 관청의 입장만 거침없이 산출(cutput)되고 만다면 허파가 제 구실을 못해 청색증(靑色症)에 걸리는 것처럼 소통이란 신선한 산소는 좀처럼 공급(input)되지 못한다. 가정과 직장과 기관 등 사회로 이어지는 작은 실핏줄들이 제 구실을 할 때 가슴의 피가 전신으로 고르게 배달돼 건강한 일상을 보내듯 언론은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언론을 통한 진실의 정보가 막힐 때 그 사회는 유언(遺言)을 앞둔 중환자상태로 돌입하고 마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율적 미디어가 아니라면 언론은 수혈과 영양주사에 의존해 생명을 간신히 유지하는 ‘제도 언론’ 즉 ‘종속 언론’으로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언론은 관보(官報)가 아니다.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들려오는 “그 신문이 그 신문이다.”라던가 “기사가 똑 같네?”라는 비웃음 소리는 대다수 언론이 정론보다는 영양가 높은 당근에 빠져들어 관보화(官報化)돼가고 있다는 비판과 다를 게 없다. 언론은 결코 관의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지는 애마(愛馬)가 돼서는 안 된다. 오직 언론의 등을 타고 채찍을 휘두르는 주인은 독자와 국민들뿐이어야 한다. 관의 미디어 매체에 대한 지원 역시 혈세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어느 정도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정보공개를 통해서 사실 규명된 그동안 경남도와 기초자치단체의 언론에 대한 편향적 시각은 매우 놀랍다. 같은 일간지인데도 무려 열 배 이상의 차별화된 특혜지원으로 언론을 시녀화하거나 매판 자본화해 언론 본래의 비판과 감시라는 공기(公器)로서의 위치에서 일탈하도록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졸지에 메가시티로 변한 창원시의 브리핑 룸은 고참신문의 기자들과 신생신문의 기자들 간에 벌이는 자리선점으로 저널답지 않은 볼썽사나운 추태가 자주 벌어져 미디어매체담당 공무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애기가 들린다. 크던 작던 자격미달인 사이비언론이 아닌 정론지라면 거기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은 모두 한 배에 탄 동지나 다름없다. 저널사회라고 선후배가 없고 위계질서가 전혀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오히려 지역 메이저신문의 저널들이라면 그들다운 포옹력으로 신생신문의 저널들을 가족이나 동지의식으로 대해주어야 하지 않나. 어떤 의미에서 오래된 노회(老獪)한 노인신문(老人新聞)들보다 젊은 신생신문(新生新聞)이 더 정론이라는 적혈구(赤血球)를 생산해 내지 않을까? 일류나 삼류로 구분되는 저널정신은 창간연식으로 따지는 게 아니라 정론직필과 진실보도에 대한 순수성으로 매겨야 한다. 경남도와 각 시 .군. 구들의 지역 언론사에 대해 역차별 없는 연정공고와 광고의 배분이 있기를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경남민언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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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창췅시청과 경남도청 자유게시판에도 올려놨으니 약간의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민선단체장은 그 위세가 대통령 위의 대통령이니 말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정당하게 집행하여야 할 광고비가 단체장의 개인 취향에 따라 좌지우지되거나 지역 언론사들을 길들이기 위한 편법으로 집행이 되어도 안 됩니다. 각 지역 언론사 기자들도 공공기관의 광고라는 힘의 논리에 지배되어 기사가 오락가락 해도 안 됩니다. 기자는 오직 권력을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비판에 인색하지 않은 기사를 쓸 객관적 시각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메이저 언론인 조중동을 비판하는 지역신문 기자들이 지역에서는 또 다른 지역메이저 신문같은 언론권력에 안주해도 안 됩니다.
국민이나 우리 주역민들이 원하는 언론에 대한 이상향은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시민운동가들의 역할이 가장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결국 이 모든 책임도 원인을 따져들어가면 신문을 매판화해 언론의 정도에서 일탈하게 만든 언론사주들과 사이비 기자들에게도 그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에선 저 역시 많은 자성과 자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원시라는 자체가 국회에서 법도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의원 몇 명의 찬성으로 짜집기된 조잡한 메가시티 아닙니까? 마치 공중부양처럼 그 정체성이 없는 도시가 청원시며 그 시민이란 게 한없이 슬프고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