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명물 ‘스탠리공원’
120만평 면적에 섬·호수도 딸려
스탠리공원(120만평, 서울 여의도의 약
1.5배)은 1888년 공원으로 개방되기 전
23년 동안 군사유보지였다. 밴쿠버를 시가지로 개발할 당시 이 땅의 옛 종주국이던 영국과 뒤이어 수립된 캐나다 연방은
미국이 이 땅을 침공할 경우 미 해군함정을 지상에서 격퇴할 포대(砲臺)를 설치하기 위해 오늘날 스탠리공원에 해당하는 땅의 개발을 유보했다.
미국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당시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현실성 높은 위험으로 작용했다. 그만큼 미국은 캐나다의 병합을 호시탐탐 노렸고, 실제로 두 차례나 캐나다를 침공한 적이 있었다. 미국이
캐나다 병합을 포기한 것은 1920년대 들어서였다. 1880년대 스탠리공원의 바로 인접지, 즉 오늘날의 다운타운에 땅을 갖고 있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개발 이익을 노리고 더 이상 미국의 침공 우려가 없으니 군사유보지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연방정부에 맹렬히 로비한 결과,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스탠리공원으로 조성했다.
원래 밴쿠버 일원에 백인들이 발을 붙이기 전만 해도 스탠리공원은 원주민들의 사냥터였다. 공원에 딸린 작은 섬 ‘데드맨즈 아일랜드’(Deadman’s Island)는 원주민들의 묘지였는데, 백인들이 퍼뜨린 천연두가 1890년대 원주민 사회에 창궐하자 환자격리 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신대륙은 원래 천연두 ‘무공해’ 지역이어서 원주민들은 이
병에 대한 면역체계가 전무했기 때문에 감염될 경우 백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다.
공원 안의 작은 호수 ‘잃어버린 못’(Lost Lagoon)은 20세기 초 이 나라의 탁월한 여류시인 폴린 존슨이 카누를 즐겨 탔던 곳이다. 이 호수 이름도 그녀의 작품 제목에서 따왔다. 온타리오주 한 원주민 부족의 추장인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존슨은 40대 들어 밴쿠버로
옮겨와 살았다. 이 시절 그가 밴쿠버 지역 원주민 스콰미시 부족 추장 캐필로노와 나눈 애틋한 교분은 캐나다 역사의 대표적 러브 스토리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