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생일과 북한군. 통치자와 군은 ‘악어와 악어새’
한 나라의 국가원수 생일을 기념일이나 경축일로 지정해 축하 행사를 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다.그러나 현직 국가원수뿐만 아니라 사망한 전직 지도자의 생일까지 국가적 명절로 지정하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찬양 또 찬양하는 곳은 북한 외에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은 김일성(4월 15일)·김정일(2월 16일)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기념하고 다양한 행사와 특별한 선물을 배급한다.올해는 음력 설 연휴가 김정일 생일과 겹쳐 북한 주민들은 5일간 ‘황금연휴’를 맞았다. 긴 명절을 위해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김정일 65회 생일을 맞아 조달되는 선물은 통상 김정일 명의로 주민들에게 배급하는 쌀·밀가루·육류·식용유·사탕·술 등 생필품 위주의 명절 선물과 권력 핵심층과 간부들에게 나눠 주는 양주·시계·양복·가전제품 등 고급품으로 나뉜다. 특별히 600여 ‘충성가문’에는 승용차·고급 손목시계·귀금속·포도주·캐비아 등을 준다.
이것은 내부 동요를 막고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통치술인데, 한편으로는 수령의 은덕(?)으로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게 됐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심을 가지라는 뜻도 담겨 있다.군 내부에서도 김정일 생일 축하를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한다.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소위 ‘선군 혁명 선구자 대회’ 축하문을 통해 충성맹세를 했고, 이어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를 비롯한 군 실세가 참석한 가운데 ‘김정일 최고사령관의 위대성에 대한 인민무력부 발표회’가 있었다.
여기서 김정일의 업적을 칭송하고 “인민군대는 최고사령관과 혈연적으로 결합된 강철의 대오로 강화 발전했다”는 생일 축하용 충성 결의대회가 이어졌다. 생일 당일 국방위원회에서는 연회를 마련하고 김정일의 출생을 “민족적 대 경사”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생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선발된 북한 군 장병과 청년학생들은 소위 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백두산 밀영 고향집’(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곳)으로 참배를 갔다.전방지역에서는 북한군 초소에 평소 볼 수 없는 인공기(북한 국기)와 보통 북측의 기념일에 게양되는 최고사령관 기를 내걸고 생일을 축하했다.
또 선군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북한 통치자는 군부대에 육류·과자류·담배 등을 선물하고 군 고위 장성들에게는 간혹 벤츠 승용차, 특별 주문 제작한 고급 양주나 고가의 사치품 등을 선물로 준다.이 자금들은 대부분 군수물자 수출을 통해 획득한 돈이며, 군에서 운영하는 ‘외화벌이 돌격대’를 내세워 국가 재정에 기여한 데 대한 보상과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경축 행사는 올해 김정일 65회 생일, 김일성 95회 생일, 북한군 창군 75주년 기념일 등 북한식 꺾어지는 해이기 때문에 더욱 성대하게 치러졌다. 왜냐하면 북한은 ‘꺾어지는 해’라는 5년, 10년 단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결국 조국 수호는 물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신성한 군대가 통치자의 생일잔치에 충성맹세와 축하놀이, 수령보위 결사옹위를 외치는 전위대로 전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