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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기도주일 01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이정완목사
안녕하십니까? 연말 기도 주일이 다가왔습니다. 먼저 이 기도 주간 동안 말씀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은혜가 충만하시길 소망합니다. 이번 기간 말씀의 총 주제를 소개드리기 전 화잇 여사의 권면을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적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끊임없이 가장 교묘하게 일하는 어두움의 권세를 대면하여야 할 남은 교회에게는 이 말씀이 얼마나 더 적용되어야 하겠는가!” 화잇 여사께서는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고 더더욱 마지막 남은 교회 백성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성경의 어떤 부분의 말씀을 저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성경에 어떤 말씀일까요 화잇 여사의 또 다른 권면을 들어보시면 이 성경의 말씀이 어떤 부분인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각 사람은 이 성경 말씀을 거듭 읽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 나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있는가라고 물어보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듭 읽으면서 자신에게 자문해야 할 질문 나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있는가? 성도님들 이제 바로 아시겠죠 저희들이 거듭 읽고 적용하기를 바라는 말씀은 성경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번 연말 기도 추일 기간 동안 저는 에베소서 6장 10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라는 총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선악의 대쟁터의 마지막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현 시점을 살아가는 모든 재림 성도들에게
가장 적합한 은혜로 채우시리라 확신하며 먼저 에베소서 6장 10절에서 18절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0-18)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첫 번째 말씀 시간으로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설립한 에베소 교회를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 네로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에 압송되어 있을 때 전력을 다해 세운 에베소 교회를 위한 사랑의 권면을 담아 보낸 서신이죠
이번 기간 동안 저희들이 나눌 말씀 부분은 이 편지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1장부터 3장까지의 교리적인 부분과 4장부터 6장까지의 실제적인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부분의 권면을 마치면서 바울은 성도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전투이기에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작전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선악의 쟁투가 벌어지고 있는 이 때에 저희가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기록한 바울의 권면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마음에 새기고 삶에 실천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바울의 권면을 따라 저희의 신앙생활을 선악의 쟁투의 관점에서 먼저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신앙생활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우리의 시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저희는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을 대상으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인간의 시야를 넘어선 존재와 싸우고 있습니다. 둘째 영적인 싸움은 선과 악 즉 하나님과 사탄 양편의 싸움입니다. 화잇 여사의 주석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서로 싸우고 있는 두 세력이 있다
이 양편은 계속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선과 악은 각 사람의 마음에서 충돌합니다. 이 영적인 싸움의 전장은 각 사람의 마음입니다. 네째 이 싸움의 승패는 어떤 존재가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화잇 주석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탄의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다. 그의 품성을 재연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창조되자마자 곧 사탄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말살시키려 결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장이 찍혀야 하는 곳에 그의 인을 찍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저희는
일상의 삶을 단순히 먹고 사는 육신의 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바로 선악의 영적인 전투의 관점에서 우리의 일상과 신앙생활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각을 정립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나아가 크게 보면 모든 인생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품성을 세울 것인지 사탄의 품성을 세울 것인지를 놓고 버리는 선악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이 제시하는 본질적 시각을 놓친 채 인생을 바라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환경 사이에 투쟁과 다툼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또한 인생은 전쟁이며 세상은 전쟁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혀 밝혀주는 영적인 시각이 없이 보는 인생과는 자칫 내가 싸워야 할 진정한 대상과 얻어야 할 승리를 잘못 규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저녁시간 동창 모임을 하고 돌아온 부부간의 말다툼이 생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무식해 당신하고 다니는 것이 창피하다. 창피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이 서로 반가워 많은 이야기를 나눴겠죠 남편은 그 대화 중에 아내가 하는 말들이 수준납고 창피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인격을 무시한 이런 발언은 공식적인 선전 포고와 같아서 부부 간의 다툼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 다툼과 싸움을 분석해 볼까요 아내를 공격하는 적은 누구입니까 남편이죠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요 공격적인 말로 상처를 입었으니 같은 수준으로 공격하는 말을 해야 하겠죠
당신은 유식한 줄 알아요 똥배까지 나와가지고 나도 같이 다니기 창피해요 이런 모습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상의 모습입니다. 바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인생은 전쟁이라고 말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제 인생은 영적인 싸움이라는 성경적 관점으로 이 다툼과 싸움을 생각해 보시죠 아내를 공격하는 적은 누구인가요
표피적으로 드러난 적은 남편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싸움은 이미 남편의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부족한 허무를 보고 하나님의 품성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들추고 공격하는 사탄의 품성에 의해 남편의 마음에서 일차적 패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점령한 사탄은 그 승기를 이용하여 아내의 마음으로 전쟁을 확산시킵니다
남편의 마음을 점령한 악한 생각은 상대를 공격하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 말들은 아내를 자극하여 아내의 마음까지도 사탄의 품성이 자리잡도록 공격합니다. 근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적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각자의 마음 속에 자신의 정신과 품성을 세우려는 사탄이 진짜 적인 것이죠 화잇 주석은 다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의 시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반대를 만난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계속 일하고 있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하는 흑암의 권세자들의 왕이다. 우리는 모두 다. 우리의 싸움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싸우는 것임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 말씀의 무게를 우리 모두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을 점령하려는 사탄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요 그 방어를 위해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작전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사탄의 의의 마음이 점령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함으로
우리 또한 마음의 사탄의 품성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간계 즉 사탄의 계획이며 방법이며 음모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을 공격하고 핏박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핏박하고 괴롭히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어려움과 실현으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사탄과 같은 풍성을 전념시키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사탄이 재림 성도를 공격하는 더 큰 그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욕하는 사람에게 같이 욕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 같이 이기적으로 대하면서 똑같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폭력적인 사람에게 같은 폭력으로 대하고 교활한 사람에게 같이 교활하게 대처하고 교만한 사람을 보면서 같이 교만해지고 세상껏 욕심 부리는 사람 곁에서 같이 욕심 부리게 하면서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사탄의 품성으로 전염되도록 하는 것이 인류 멸망을 위한 사탄의 계획입니다. 사랑하는 제림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싸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누구와 싸우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웁니까 다시 한 번
그 싸움의 대상을 그 싸움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의 가장 첫 번째 선악의 대쟁투의 현장에서도 싸움의 대상과 목적이 잘못 선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아담과 하와는 패배했고
패배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잘못된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왜 죄를 짓게 되었는지를 질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를 추궁하여 형벌을 주시기 위해 조사에 나서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을 해결하고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선악의 쟁투에서 패배한 아담과 하와가 정확히 그들은 누구에게 줬으며 어디서 졌는지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신의 범죄의 원인을 하와에게로 전가합니다. 그리고 하와는 자신의 범죄의 원인을 뱀에게로 전가합니다
선악의 쟁투의 관점에서 아담은 하와가 자신을 유혹한 그 현장이 싸움터였으며 자신을 유혹한 하와가 자신의 적이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도 뱀의 유혹을 받았던 선악과 앞이 싸움터였으며 자신을 유혹한 뱀이 적이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와의 유혹을 자신의 마음으로 가져와 그 마음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폐배의 결과로 선악과를 먹는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죠. 하와 또한 뱀의 유혹을 마음으로 가져와 갈등하면서 마침내 마음에서 폐배했기에 선악과를 먹는 행동을 했고 아담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의 전쟁터에서
진리이신 하나님이 아닌 거짓인 사탄을 선택한 근본적인 패배가 이 전쟁을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싸움의 정확한 대상과 장소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선악의 싸움의 정확한 대상과 장소를 혼돈하는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까
저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초에 선악의 첫 싸움이 일상의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 저희들의 일상의 삶 또한 계속적인 선악의 싸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모든 삶의 현장에서 바로 선악은 충돌하며 승리와 패배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계속되고 있는 선악의 싸움에서 재림 성도인 저희는 어떤 싸움을 싸워야 할까요? 여기서 저는 한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세 노인이라는 책을 저술한
에디 제이쿠시는 1920년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1933년 나찌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게 됩니다. 1938년 11월 나찌 돌격대에 붙잡혀 브앤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고
그 유럽 각지 여러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하기를 반복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끝내 이웃의 밀고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즈에 강제 이송되어 그곳 가스실에서 부모를 잃고 1945년 5월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약 1년 3개월 동안 도저히 인간으로는 겪지 못할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여러 과정을 거쳐 허주로 이주하여 사업에 성공하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예합니다. 노년이 되어서야 자식에게도 너무 고통스러워 꺼내놓지 못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미래의 세대에 전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됩니다
이 책에 내온 나온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동족에게 등을 돌린 수감자 우리를 감시하는 대가로 나찌가 내리는 특별한 혜택을 받는 부역자인 비열한 카퍼도 있었다. 여기서 카퍼란 나찌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유대인 부역자를 말합니다
우리를 담당한 카퍼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유대인으로 많은 사람을 가스실로 보낸 대가로 나찌에게서 술과 담배 그리고 따뜻하고 좋은 옷을 받은 정말 그간 무도한 인간이었다. 그자는 자기 사촌까지 소각로로 보냈다. 정말이지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 이런 만행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전보다. 더욱 결연하게 인간성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https://youtu.be/YS8zDUQFZBg
물론 쉽지는 않았다. 굶주림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허기는 체력을 바닥내는 것만큼이나 빨리 도덕성을 무너뜨렸다. 일요일인 어느 날 내 목에 빵을 받아 침상에 올려놓고 잠시 스프를 받으러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빵이 사라지고 없었다. 같은 막사에 있는 어쩌면 같은 침상을 쓰는 누군가가 내 빵을 훔쳐간 것이다
빵이 없어진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생존하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우슈비즈는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지만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한 번도 져버린 적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 악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면 살아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수감자를 아프게 한 일도 다른 사람의 빵을 훔친 일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동료를 도울 뿐이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건 안다. 그래도 도덕성을 잃으면 치료약이 없다. 도덕성을 버리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유대인들의 수용소 안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너무나 처참한 환경이었기에 자신만을 위한 너무 이기적이고 잔혹한 선택들이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술과 담배 그 별 가치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 사촌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들까지도 벌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성을 지키기에는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도덕성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그의 처절하지만 고결한 도전에 저는 깊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한 인간의 고결한 도전을 통해 재림 성도인 저는 어떤 싸움을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선악의 싸움은 출근하는 도로 위에서도 일어납니다. 모두가 바쁜 시간 내 앞을 급하게 끼어드는 차량을 보고 그 차량과 싸우지 마시고 여러분 마음에서 그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탄의 품성과 싸우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침 등교 시간에 짜증내는 자녀를 마주하며 그 자녀와 싸우지 마시고 내 마음에서 짜증내는 자녀를 포용하지 못하는 사탄의 품성과 싸우지 않으시겠습니까? 출근하는 내 앞에서 생활비가 떨어졌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내를 대하며 아내와 싸우지 마시고 내 마음에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탄의 품성과 싸우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디 가정뿐이겠습니까 회사에서 일터에서 나를 공격하는 상사를 대하며 일 잘 못하는 후배를 대하며 아부에서 승진하는 동기를 대하며 납품 일을 맞추지 못하는 거래처를 대하며 후발 주자인 경쟁 회사가 더 승승장구하게 잘 나가는 것을 대하며
바로 그 사람들과 싸우지 마시고 내 마음에서 사랑과 용서를 빼앗아가려는 사탄과 싸우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디 회사와 일터뿐이겠습니까 교회에서 은혜롭지 못한 목사님을 대하며 식사 당번 때마다. 이기적으로 오는 집사님을 대며 직원회에서 내 의견에 반대하는 장로님을 대하며 바로 그 성도들과 싸우지 마시고
내 마음에서 더욱 겸손히 주님께 충성하려는 마음을 뺏으려는 사탄의 공격과 싸우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렇듯 일상의 평온한 시간에 선악의 첫 싸움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의 모든 삶은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기 위한 사탄의 지속적인 싸움의 연속입니다
사랑하는 재림 성도 여러분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경우에서든 영적 싸움의 본질은 어떤 사람이 아니며 특정 장소가 아니라 바로 사탄이며 내 마음임을 기억하시고 계속적인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응원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치면서 마태복음 24장 재림의 징조장의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음에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오 두 여자가 멧돌지를 하고 있으며 한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재림의 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서로 구분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똑같은 일과 눈에 보이는 똑같은 장소에서 왜 이들은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비록 눈에 보이는 똑같은 일 눈에 보이는 똑같은 장소에 있었다. 할지라도
눈에 보이는 사람과 눈에 보이는 장소에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사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어떤 싸움을 싸웠느냐로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재림성도 여러분 오늘 지금 저희는 누구와 어디에서 이 선악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까?
형제와 형제 자매와 자매의 모든 싸움이 멈추길 주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모든 교회 안에서 성도와 성도 간의 다툼은 이제 끝내길 주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제 저희의 모든 싸움은 저희 마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이 세워지는 고귀한 싸움만이 남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인식한 분명한 답이 삶으로 실천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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