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치매기가 있어 요양원에 있습니다.
원래는 명절기간에 외박해서 우리집에 며칠 모시기로 했는데 요양원에서는 그렇게 할 상태가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깐 외출하여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엄마는 정신이 맑다가도 순식간에 흐려집니다. 같은 말을 묻고 또 묻고 되풀이 합니다. 우리를 알아보다가 모르기도 합니다.
그래도 착한 치매라서 주위사람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좁은 건물 안에서 운동도 안하면서 밥은 꼬박꼬박 잘 드시니 아주 얼굴이 달덩이같고 피부도 반짝반짝합니다.
정신이 온전할때는 아픈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픈 것도 없고 아무 근심이 없으니 오히려 행복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자기 정체성이란게 지금 엄마에게 있을까 생각하면서 오늘 옹고집전 옛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잘 알다시피 옹고집의 행패에 스님이 짚인형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듭니다.
진짜 옹고집은 적당히 늙은지라 기억과 사실이 헷갈려 원님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더듬거립니다.
반면 가짜옹고집은 정확하게 사실을 말하고 또렷한 어조로 지난 기억을 말하지요.
옹고집은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자신임을 기억하는게 진짜인데
가짜옹고집의 기억이 너무나 진짜같은겁니다.
fake가 original보다 더 오리지날스러운거지요.
옹고집은 쫒겨나고 이제 가짜옹고집이 집을 다스리는데 노모와 하인들에게 잘하고 이웃에게 널리 덕을 베푸는지라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변했어 라고 말이지요.
기실 이 말은 진짜가 가짜로 변했다는 말이 아니라 이 사건을 치르면서 옹고집영감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고 칭송하는 말이겠지요.
울분과 억울함으로 처음에는 진실을 가리겠다고 옹고집은 악착같이 살려고 분투하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헷갈리는 겁니다.
내가 진짜가 맞을까.
가짜 옹고집은 스스로도 자신이 진짜라고 믿고 주위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인정하는데
진짜 내가 나인걸 나조차도 모르겠는거지요.
나를 증명하는 건 내가 나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과 주변 사람들이 나임을 인정하는 것인데
만약에 이야기와 달리 옹고집이 진짜임을 밝히지 못하고 죽는다면 가짜가 더 훌륭한 진짜가 되는 것이요, 진짜는 영원히 가짜가 됩니다.
토머스 홉스라는 사람이 내놓은 '테세우스의 배'라는 사고실험이 있습니다. 그걸 제가 쪼끔 변형시켜 봤는데요...
신안 앞바다 물속에서 좌초된 고려시대 배가 발견되었답니다.
사람들은 그 배를 고스란히 잘 건져올려 박물관에 전시하고 잘 보존하였습니다.
그 배를 A라고 합시다.
얼마후 신안 앞바다 깊숙한 뻘밭에서 또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하였지요.
그 배는 크기도 클뿐 아니라 뻘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그냥 인양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 갑판을 조각조각 떼어서 건져올리고는 그대로 다시 조립하여 박물관에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이 배를 B라고 합시다.
A가 오리지날임은 말할 것도 없고
B역시 해체하고 조립하였지만 오리지날 맞겠지요?
시간이 지나자 A의 갑판은 조금씩 삭기 시작했습니다. 그냥두면 곁에 붙은 다른 갑판이 같이 부서질 것 같았지요.
박물관측은 유명한 선박수리공을 불러 노후된 갑판을 떼어내고 모양이 똑같은 새 갑판으로 교체하게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갑판이 새 것으로 교체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워낙 이 사람 솜씨가 뛰어나 원래 배랑 모습이 똑같아서 사람들은 구별할 수가 없었지요.
이 수선한 배를 A'라고 합시다.
근데 이 사람은 그때 떼어낸 갑판을 특수처리하여 모아두었다가 그 모양 그대로 또다른 배를 만들었습니다.
이 배는 A''라고 칭합시다.
마찬가지로 B선박도 하나씩 낡은 갑판을 교체하여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B'가 생겼고
B선박의 낡은 갑판을 이용하여 B''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선박수리공은 따로 공간을 만들어 A''와 B"를 전시하고는 원래의 신안앞바다 배라고 선전하고 관람객을 받았습니다.
박물관측에선 기도 안차는 노릇이지요.
오리지날 신안앞바다 배는 자신들이 전시하는 배라고 주장하고는 선박수리공을 고소합니다.
누구 말이 맞을까요?
자, 오리지날 A와 B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A'과 B'가 생겼습니다.
또 A''와 B''도 생겼어요.
자, 과연 어느 배가 오리지날일까요?
A''와 B''가 오리지날이라고 주장할 건가요?
언뜻보면 박물관의 A'와 B'는 진위가 미심쩍어 보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몸을 살펴봅시다.
우리 세포는 끊임없이 죽고 끊임없이 재생되지요. 6개월이면 온 몸의 세포가 다 바뀐다고 합니다.
세포가 다 바뀌었지만 나라는 존재는 바뀌었나요?
어릴적 나와, 파릇한 신혼때 나와, 막 삭아가는 나는 모습이 다 바뀌었는데 왜 나는 그때의 내가 나라고 생각하지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근거가 뭘까요?
나의 기억일까요? 주위의 인정일까요?
A와 B도 오리지날, A'와 B'도 오리지날, A"와 B"도 다 오리지날 같습니다.
그런데 오리지날이 이렇게 많아도 되나요?
자기동일성 문제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한정하지 말고
전생과 현생과 이승의 문제로 확대시켜 봅시다.
전생에서 현생으로 넘어올때 우리는 기억이 다 사라집니다.
기억이 자기동일성이라면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를 동일하다고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뭘까요?
까르마일까요?
데이비드 호킨스가 말하는 의식수준의 에너지장일까요?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동일체 의식일까요?
컴퓨터게임으로 생각해본다면
인생이라는 지구게임에 접속하려면 로그인을 해야합니다.
그때 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쓰지요.
인생게임을 하면서 나는 여러가지 아이템과 경험치를 획득할 것입니다. 자연스레 레벨업이 될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나는 또다른 물질게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때 나는 예전에 부여받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게임에 접속할 것입니다.
이 공통된 아이디가 뭘까요?
설마 매번마다 아이디와 비번을 만드는 것은 아닐것 같습니다.
이 아이디를 spirit이라고 명명하든, 영체라고 하든, 의식이라 하든, 참나라고 하든, 아트만이라 하든간에
그 이름이 뭣이 되었든 저는 이 전우주에서 하나로 통용되는 아이디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아이디는 지구게임에서 치매라는 일시적인 해킹을 당하기도 하지만
로그아웃과 로그인을 반복하면서 게임에 접속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자기동일성입니다.
이 게임이 환상이든, 환상이 이 삶이든 디폴트로 일단 접속한 상태에서는 확실히 몰입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삶에서 진지해져야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가짜임에 기꺼이 속으면서, 때로는 진짜임을 알아채면서 이 삶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매 엄마 보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죽어서 다시 저 세상에서 만난다면 엄마는 어떤 나이때의 엄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