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을 쓰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출판사를 통해 발간될 수도 있고 대학 출판부의 총서에 포함되어 그 대학의 후광을 입으며 출간될 수도 있는 에세이나 철학 논문, 학술 기사 모음 등에 붙일 서문을 작성함에 있어, 이제는 학계의 예절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본고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바로 그 예의 범절에 맞게 서문을 작성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자는 것이다. 다음의 문단들에서 나는 왜 서문을 써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를 총괄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또 감사의 말은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도 보여 줄 것이다. 품격 높은 전문가라면 마땅히 감사의 말도 능숙하게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집필을 마치고 나서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누구에게든 빚을 졌다고 꾸며대야 할 일이다. 빚을 지지 않고 이루어진 연구는 의심을 살 염려가 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감사의 말을 바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이 칼럼을 쓰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학술 출판에 관계해 온 값진 경험 덕분이다. 또 내가 학술 출판과 친숙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탈리아 공화국의 교육부와 토리노 대학, 피렌체 대학, 밀라노 과학 기술 대학, 콜롬비아 대학 덕택이다.
만일 사비나 양의 귀중한 협력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기고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 두 시경이면 담배 꽁초와 찢어 버린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내 작업실이 아침 여덟 시가 되면 그녀 덕분에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바르바라와 시모나, 가브리엘라에게 각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 관심사와 동떨어진 갖가지 주제의 학술 대회에 참가하라고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그들은 내가 방해를 받지 않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애써 주었다.
내 아내의 한결같은 도움이 없었다면 이 칼럼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내는 존재의 중요한 문제들에 한없이 집착하는 한 학자의 기분과 무절제를 용케도 견뎌 왔고 지금도 잘 견디고 있다. 세상만사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그녀의 충고를 들으면 어두웠던 마음이 다시 밝아지곤 한다. 말로는 스코틀랜드 산 최고급 볼트 위스키를 준다면서 언제나 사과 주스를 내게 주었던 그녀의 그 고집스런 배려는 나의 작업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히 큰 공헌을 했다. 이 글이 미약하나마 명징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건 바로 그 배려 덕분이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일을 해내가는 데 필요한 애정과 에너지와 자신감을 줌으로써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일에 대해서 보여준 아이들의 철저하고 초연한 무관심에 감사한다. 그 덕택에 나는 포스트모던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면서 이 칼럼을 마감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워할 것이 또 있다. 그들과 가장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의 머리 모양은 나의 감성과 배치되는 미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나는 우리 집 복도에서 그 녀석들과 마주치기보다는 차라리 서재에 홀로 틀어박혀 이 칼럼을 쓰고 싶었다. 그 완고한 의지가 내게 늘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글이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카를로 카라치올로, 리오 루비니,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리비오 자네티, 마르코 베네데토 및 <에스프레소> 사의 여타 임원들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밀비아 피오라니 경리부장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는 다달이 거르지 않고 도움을 줌으로써 나의 연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해주었다. 나의 이 변변치 않은 칼럼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영업부장 귀도 페란텔리의 덕택이다.
본고를 작성하면서 올리베티 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 회사가 있었기에 내가 M21이라는 컴퓨터를 마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소프트웨어 회사 마이크로프로와 그 회사의 프로그램 워드스타 2000에 특별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나의 원고를 인쇄할 때는 오키다타 마이크로라인 182라는 프린터를 사용하였다.
조바니 발렌티니, 앤초 골리노, 페르디난도 아도르나토, 그들의 애정 어린 고집과 격려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다음 몇 줄의 글과 위의 문장들을 작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애정 어린 독촉 전화를 걸어 ‘에스프레소’ 지가 곧 인쇄에 들어갈 것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칼럼의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곤 했다.
물론, 내게 도움을 준 이들을 거명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어떤 학문적인 책임이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이 글은 물론이고 지난 칼럼과 앞으로 발표된 칼럼에 어떤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나의 허물로 돌려져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