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황선영
추석에 어머니가 김치를 이것저것 담가주셨다. 연휴 끝에 동생이 왔다 간다. 뭐라도 들려 보내야 마음이 편하다. 얘는 김치를 사 먹는 형편이라, 좀 싸주었다. 김장거리를 솎아 담근 무줄기는 너무 맛있어서 작은 통, 배추겉절이는 별로길래 큰 통에 담았다. 깍두기, 파김치는 적당히 줬다.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은 유전자가 이기적이라 그렇다. 예수 믿기 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을 먼저 알았더라면 다윈주의가 됐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직접 읽은 것은 아니고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3장 생물학 편에 나오는 설명을 재밌게 봤다. 유전자는 물질이기 때문에 도덕이 없다. 선도 악도 아니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약간 불편한 감이 있으나 생존 본능이다. 오! 그래? 아주 조금 가책을 느꼈는데 마음이 편하다. 맛있는 것은 지켜 내 자식을 먹여야 한다. 아하, 이게 자기 복제인가 보다. 재밌네. 예수쟁이인 내가 믿는 것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것. 요즘은 없는 일이지만 어쩌다 착하다는 소릴 들으면 영 거북했다. 누구처럼 돋보이고 싶었거나, 그 편이 나한텐 쉬워서 그렇게 굴었던 건데.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 음식은 먹을 만했지만 볼품이 없었다. 무엇이든 간단하게 만드셨다. 김을 불에 대충 구워서 손으로 비벼 물과 섞는다.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김국이 된다. 된장국은 멀건 국물에 다른 것 없이 깨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지금 내가 온갖 육수를 내 끓여도 그것보다 맛이 없다. 희한한 일이다.
엄마와는 떨어져 지냈다. 모든 면에 불행은 아니었고 다행스러운 점도 있었다. 엄만 요리에 소질이 없는데 본인 철학이 뚜렷해, 먹는 사람이 힘들었다. 야채를 과하게 넣고 간을 거의 안 했다. 난해한 음식이 가장 먹기 싫었다. 달걀 풀어진 미역국을 보았나? 잡채는 당근과 파프리카가 주를 이루고 드문드문 보이는 당면은 간장을 만나지 못해 투명했다. 떡볶이는 떡보다 대파가 더 많았다. 파를 다 먹어야 상에서 일어날 수 있다. 자기 유전자를 건강하게 지키려는 방식이었구나. 이제야 이해한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를 만났다. 보통 좋은 게 아니다. 맛있고 정갈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정성을 많이 들이신다. 시댁 식구들은 식당 가도 김치는 손을 잘 안 댄다. 나도 20년쯤 되니 입맛 수준이 높아졌다. 어머니가 천년만년 사실 것이 아니라, 배우려 했더니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살라 하신다. 착하신 내 어머니.
아플 때, 할머니의 단순한 된장국에 밥 한 숟갈 적셔 먹으면 싹 나을 것 같다. 간절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하나님이 할머니를 다시 살려 보내주느냐고 묻는다. 눈물을 급하게 닦고 괜찮다고 정색한다. 병원으로 모셔지고 한 달 만에 가셨다. 생각보다 빨라 놀랐지만 슬픈 마음이 먼저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건강하다. 적정 체중에 혈압도 정상이다. 우리를 귀찮게 안 하니 감사하다. 평생 맛없는 것을 드셨지만 자기 몸을 지켰다. 계속 이렇게 드시면 좋겠다. 어머니는 일흔을 넘기시고부터는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쇠약해져 가는 게 눈에 보인다. 김치 어떡하지?
첫댓글 하하! 맛있는 김치 비법 얼른 배우세요.
예, 눈여겨 보고 있어요. 하하.
위트가 넘치는 글아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자신을 들여다보면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지요. 이정도는 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하하. 깨소금만 뿌린 된장국 어렸을 때 저도 많이 먹어봤네요. 방금 전 저녁 먹으면서 된장국에 깨소금 듬뿍 넣어 먹어봤어요. 고소하네요.
위로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 된장국 먹어 보셨어요? 우와. 무지 반갑네요. 섬에서는 그렇게 먹었나 봐요. 하하.
할머니의 된장국, 음식은 추억이기도 해요. 황선생님 손맛은 어떨까요?
옆에 아들이 엄마 손맛은 진짜 별로래요.
맛있는 김치는 작은 통에, 맛이 별로인 것은 큰 통에... 저랑 비슷해서 재밌어요. 맛있다고 하면 다 주는 우리 언니에게 고마워해야겠어요.
김치를 담으면서도 스스로 유치하고 부끄러운데 정정이 안 되더라고요. 하하.
매 끼니를 담당하는 주부는 요리가 쾌 고역이겠어요.
아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예, 맨 걱정이 그것이네요. 고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유전자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쬐끔 공감가는 부분이 저한테도 있는것 같네요. 하하
저도 시어머니의 솜씨를 얼릉 받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진지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하하하하 진짜 만나보고 싶어요. 같이 있으면 정말 덩달아 행복할 것 같아요.
맛있는 건 작은 통에, 맛이 별로인 건 큰 통에 담아주었다는 말에 빵 터졌어요.
무튼 선영쌤은 주변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엄말 닮아 아드님도
초긍정의 싸나이일 것 같네요.
쇠약해져가는 시어머니 바라보면서 김치 걱정하는 쌤, 진짜 귀여워요. 호호호
선생님.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환상을 깨고 싶지 않네요. 하하.
"맛있는 것은 지켜 내 자식을 먹여야 한다." 참 잘 하셨습니다. 저도 그래요
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