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아름다운 피조물>(2)
민즈의 견해에 대한 쉐퍼의 비평 중에서 중요한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민즈의 범신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민즈의 입장은 범신론적인 입장이다. 범신론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충분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범신론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서로 연동된 두 가지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로, 범신론에서는 통일성만이 의미가 있을 뿐 다양성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개별자가 포함된 자연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자연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말한다면 그 의미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두 번째 이유가 답변을 대신한다. 곧 범신론으로부터 얻어낸 모든 결과는 자연에 투사된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얻은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등한 피조물에 인간의 지식을 부여하는 낭만주의에 불과하다. 예컨대, 닭이 노는 광경을 보고 닭들이 마치 인간처럼 사랑을 나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닭의 현실태를 회피하는 것이다. 범신론은 실천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우선 자연의 현실태를 회피하는 범신론은 자연이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답변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얼굴과 적대적인 얼굴을 지니고 있는바. 범신론적인 관점은 자연을 정상적인 얼굴로만 간주할 뿐, 자연의 비정상성이 드러날 때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만물이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할 때 자연의 파괴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 점과 연동하여 제기되는 두 번째의 실천적인 문제는 범신론이 인간의 지위를 승격시키기보다는 비인격적인 낮은 자리로 격하시킨다는 점에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가정할 때 인간과 자연은 한통속에 구겨 넣어지고, 인간은 풀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자연을 인간의 차원으로 승격시킨 결과 인간이 자연으로
강등당해 버리는 것이다.
쉐퍼가 제기하는 또 하나의 비판은 민즈의 범신론적 입장이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윤리학을 실용주의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민즈는 자연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어야 하는 유일한 이유를 자연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여기서 도덕은 실용성과 동일시된다. 실용성 이외에는 어떤 다른 판단 기준도 제시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끼치는 이익 이외에는 어떤 다른 기준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대적인 규범을 상실함으로써 도덕의 기초를 제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현대인의 도덕적 곤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쉐퍼는 말한다.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17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