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체험의 중요성
설교 / 朴大山 목사
•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는 이론이나 가정(假定)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체험적 신앙이
필요한데,성경은 결코 성도의 주관적 체험을 무시하지 않으며
이러한 체험들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들이(히브리서 4:12)
인간의 마음과 영속에 자각되는 통로가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성과 순결함을(시편 12편
6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함) 무시하고 천박한 감정의 경험이나
광적인 체험주의에 빠져서는 안되겠지만,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시는 계시적 체험들은(참고,사무엘상 3:21/
욥기 38:1),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는 믿음의 증인들이 되게
합니다.
• 특히 동방 사람 욥은 처절한 고난 속에서 여호와를 체험하고
난 후,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들은 영안(靈眼)이 열리고,또한
시편 기자처럼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광활한 곳' 곧 자유로운 영적 환경으로 인도받기도 합니다.
시편 118편 5절에 보면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 아무리 태산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지혜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보는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어떤 과정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체험 신앙이 될 때,우리는 비로소 관념적이거나
막연한 자리에서 보다 실질적이고 담대한 믿음의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습니다.
• 사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히브리서 1장 1절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여러 모양'이란 '다양한 방법'이란 뜻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실 때 직접 나타나 말씀
하시기도 하고(욥기 38:1),어떤 때는 천사를 통해서,또
어떤 때는 꿈으로(민수기 12:6),또 어떤 때는 영음(靈音)으로
(사도행전 8:26,29/10:19,20),또 어느 때는 환상을 통해서
(사도행전 9:16/16:10)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문에 성경도 역사,율법,교훈,시(詩),지혜,예언 등과
같은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옛적에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주신 후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 계속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조명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6장 12절과 13절에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성령은 복음의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 성경의 일관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이며
증거입니다(요한복음 5:39). 그래서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계시의 성취이며,장차 재림하실
주님은 신약의 완성이자 전체 성경 계시의 최종적인
성취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울 사도가 증거한 것처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고린도후서 6:2).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세미하게
들리는 하나님의 온유하고 인자하신 음성을 들으며 사랑과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을 심령에 느끼며 살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우리에게 부여된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은 바 되시어 ,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악인들을 향해 쏟아 부으실 진노의 잔을 남김없이
마심으로써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진정시켰습니다.
즉 예수님의 중보 사역으로 인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의 낯빛이,사랑과 온유와 기쁨의 얼굴빛으로
바뀌셨다는 것입니다.
• 실지 구약 율법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죄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무섭고 엄위하신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때문에 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이 두려워서,
모세에게 제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하였습니다(출애굽기 20:18~21).
• 그러나 오늘날 성령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말씀하시는데,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신약
성경의 하나님은 이미 구약 성경 속에 계시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맞서서 제단 위에 불이 떨어지게 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지만,한 낱 이세벨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고
깊은 실의에 빠져 차라리 죽기를 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9:1~4).
그 때 하나님은 심히 낙심하여 탈진한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양식으로 힘을 북돋우어 호렙산에 이르게
하시고 거기서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열왕기상 19:7~9).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산에 서 있으라 하시고 그 앞을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지만 하나님은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고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지만 지진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었지만 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니, 불 후에 세미한 음성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습니다(열왕기상 19:11~13). 이와같이
세미한 음성 가운데 임하셨던 하나님은,신약시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이 예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세미한 음성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 다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 악인들에게는 불에
옹위되어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신다는 것입니다(이사야 66:15,16)
(참고,계시록 19:11~16)
따라서 성경은 분명히 감정적 체험의 강조가 이상한
신비주의로 왜곡될 가능성을 인식하고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며, 오늘날 복음의 세미한 음성보다 신기한 불같은
기적과 기이한 현상들을 좇아가거나 또 그런 것들로
사람들을 모을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태여 이러한 체험이 아니드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은 바 되고(베드로전서 1:23),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치시고 약속의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변화를 받아 지식에까지 새로와지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1:21,22/골로새서 3:10).
뿐만 아니라 비록 어떠한 고초로 인해 심령이 낙심이 될
때가 있으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고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워지는 신앙의 체험을 가짐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참고,예레미야애가 3:19~23).
• 아무쪼록 이 시대 우리 모두는 진정 하나님을 만난
체험있는 복음의 산 증인이 되어,초림의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을 세상에 전하고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첫댓글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