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듯하지만, 파도는 다시 밀려옵니다. 조수의 차이가 있어 깊숙이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해일이 일기도 합니다. 파도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파도가 있습니다. 병들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가난해지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늙어가는 몸은 한 번 병들면 회복이 더디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난은 범죄가 되고, 패자부활전 없는 세상에서 실패하면 다시 기회잡기가 난망합니다. 크고 작은 파도가 있습니다.
우리네 마음에도 파도가 있습니다. 병도 가난도 실패도 없건만, 파도에 마음이 휩쓸려 떠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여기저기 떠다닐 때가 있습니다.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버린 듯, 캄캄하여 아무 것도 전망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바다 속 우물에 빠진 듯, 수압에 눌려 심장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파도는 왜 있을까요? 파도는 왜 사람 사는 세상과 우리네 마음을 심연으로 몰아넣을까요?
땅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 위에 우리가 있어서, 파도가 보이는 겁니다. 바다 속에 잠겨 있다면 파도를 경험치 않겠지요. 안전한 땅 위에 있기 때문에 파도를 경험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0)
세상은 ‘깊음’이라 표현된 ‘물 덩어리’로 덮여있습니다.(창1:2) ‘물 덩어리’는 빛도 들지 않고 숨도 쉴 수 없는 ‘거대한 악’입니다. ‘거대한 악’이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거대한 악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하나님의 빛이 침투하셨고,(창1:3;요1:5) ‘물 덩어리’가 상하로 쪼개집니다. ‘물 덩어리’가 아래로 몰리며 위에 생긴 공간이 하늘입니다.(창1:8) 또 하나님께서 ‘물 덩어리’를 좌우로 가르시며, 하늘 아래 물이 없는 공간을 땅이라 부르십니다.(창1:9~10) ‘물 덩어리’ 즉, ‘거대한 악’이 밀려나며 생긴 자리가 하늘과 땅입니다. 사람이 하늘 아래 땅에 살고 있는 겁니다. 파도를 보게 되는 건 파도가 우리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요, 파도에 덮치는 것은 그동안 파도로부터 보호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해일이 덮친다 해도, 저 거대한 ‘물 덩어리’는 본디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악’이 ‘물 덩어리’가 되어 덮치는 때가 있지만, 일시적인 것입니다. 파도는 모래를 넘지 못합니다.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5:22) 모래를 넘지 못하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모래 밖으로 파도를 밀어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다.
파도는 ‘거대한 악’이 만들어내는 흐름의 파편입니다. 파도를 피하기 위해 ‘거대한 악’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타고자 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됩니다. 흐름을 따라 사는 게 얼핏 편안해보이나, 흐름의 끝엔 헤어 나올 수 없는 회오리가 있습니다. 불편하고 고단해도 내 팔뚝으로 노를 젓고 내 발등으로 물을 차야 땅에 닿습니다. 그러나, 내 팔뚝과 발등으로는 이 거대한 물 덩어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거대한 악이 물 덩어리같이 출렁거릴 때 두려움이 이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거대한 물 덩어리를 우리는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악에 묻혀 죽고야 말 것입니다.(마14:30)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이 덩어리진 채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는 바다에 삼켜졌고, 세월호를 삼켜버린 거대한 악은 이 땅을 덮고 있습니다. 거대한 악은 꿈쩍하지 않고, 흑암에 맞선 빛들은 싸이키 조명같이 현란하나, 덩어리진 악을 쪼개지 못한 채 시간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물 덩어리 위에 운행하셨던 것처럼,(창1:2) 예수님께서도 바다 위를 걸으셨음을 믿습니다.(마14:25) 그리스도께서 무서워 빠져가는 우리를 향하여 ‘즉시 손을 내밀어’ 구원하심을 믿습니다.(마14:31) 예수님에겐 폭풍 치는 바다도 땅과 같고, 성령님에겐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버무려진 거대한 물 덩어리도 육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령을 구하고,(눅11:13)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입니다.(요16:23) 성령과 동행하면 거대한 악도 내 발 아래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폭풍 치는 바다도 단단한 땅입니다.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려는 온갖 파도에게, 세월호를 삼켜버리고도 여전히 등등한 거대한 악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욥38:11)
첫댓글 아멘. 이 땅의 약한이들에게 몰려드는 파도가 그만 모래밭 너머로 물러가기를 기도합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