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아프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내게 믿음, 불신, 의심 등의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ㅡ 이것은 아프다는 내 말 뒤에 있는 어떤 것을 그가 믿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가?
ㅡ 그의 태도가 바로 그의 태도의 증거이다.
"나는 아프다"라는 말과 "괜찮을 거야"라는 대답 모두 본능적인 소리와 뭄짓으로 대체된다고 상상해보라!
311.
"그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가!"
ㅡ 아픔의 경우에, 나는 내가 그 차이를 나 자신엔게 사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부러진 이빨과 부러지지 않은 이빨 사이의 차이는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다.
ㅡ 하지만 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실제 아픔을 야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아픔을 상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ㅡ 예를 들어 얼굴을 약간 찌푸린다든지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자신에게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아픔이지, 가령 얼굴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
또한 당신은 자신에게 그렇게 보여주기 전에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이와 같이 사적으로 보여주는 일은 하나의 착각이다.
312.
그러나 또한 이빨의 경우와 아픔의 경우도 유사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전자에서의 시각(視覺)은 후자에서의 통각(痛覺)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각을 통각과 같은 정도로 나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다.
다음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들(돌, 식물등)의 표면에는 접촉하면 피부에 아픔을 일으키는 반점들과 부위들이 있다.
(가령 이 표면의 화학적 성질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 필요는 없다.)
오늘날 우리가 붉은 반점을 지닌 특정한 식물의 잎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경우에서 우리는 아픔을 일으키는 반점들을 지닌 잎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이 반점들과 그 반점의 형태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며,
이들로부터 그 사물의 중요한 특성들을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7-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