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벌레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향 숙
알람이 울린다. 스프링이 튕겨져 나오기라도 하듯이 몸이 벌떡 일어선다. 준비된 국 냄비를 가스 불에 올리고 큰아이를 깨웠다. 남편과 깊게 포옹을 하며 서로 결혼 22주년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3배속의 비디오 화면처럼 움직여 남편은 본가로 벌초하러가고 큰아이와 나는 지방의 모 대학 음악 콩쿨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침7시, 텅 빈 주차장에서 아이는 잠에 취해 있었다. 아이의 오른쪽 입술 아래 팥죽색으로 콩알만 한 게 도드라져있다. 마냥 철부지 같아도 연습은 열심히 했나보다. 음악관을 둘러보았다. 콘서트홀은 학부모의 대기실이고 안쪽으로 쭉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 건물은 양악, 왼쪽은 국악의 대회가 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아이를 깨우고 접수를 했다. 예선은 아이들만 경연장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아이를 들여 보내놓고 주차장에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역사가 깊은 학교는 나무에서도 연륜이 묻어났다. 한 시간쯤 지나자 아이가 음료수를 가지러 왔다가 서둘러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내려진 차창 밖에서 "언니"하고 부른다. 2학년 자모다.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아이들의 선후배 관계만큼 어려운게 국악과의 자모 관계이기도 해서 그냥 차에서 그녀를 보냈다. 차(茶)봉사를 하는 학생들의 권유로 커피를 마셨다. 같은 반 대금을 하는 아이의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초조함을 달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예선을 마친 아이는 묻기도 전에 ‘애매’ 하단다. 단 한 번도 만족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때쯤 네살박이 딸을 데리고 레슨선생님이 오셨다. 양손에는 내가 마시고 싶은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들고 있었다. 아기 노는 모습을 보면서 예선만 통과되기를 바랬다.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참가자들로 북적대어 더 초조해졌다. 방이 붙었다. 아이가 달려가면 양악이 붙고 또 달려가면 국악의 다른 파트가 붙기를 몇차례 드디어 아들이 웃는다. 선생님이 "예선 통과네요."했다. ‘여기까지만도 괜찮아.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욕심이 나나보다. 점심시간 내내 아이에게 정신 바짝 차리고 연습 때 만큼만 하라고 당부했다.
오후에 공연 일정이 있는 선생님은 돌아가고 아이와 대회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본선은 학부모도 대기실을 이용 할 수 있었다. 한 자모가 자신의 딸이 해금을 하게 된 동기를 말하면서 아들은 어쩌다가 이 길로 들어섰는지 물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피아노를 친 것이며 방과 후로 클래식 기타를 배운 것이며 원래는 양악을 좋아해서 음악회를 자주 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윤범의 열성 팬 이었던 아이가 2학년이 되고 음악교사인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국악을 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입술 천정이 채 닫히지 않은 구순염으로 태어나 아이가 겪었던 아픈 이야기는 접어 두었다. 대기실은 가야금, 해금, 병창, 거문고, 피리, 아쟁의 각기 다른 곡의 소리가 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입술이 타들어 갔다. 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는 마지막 연습을 하고 나는 밖에서 지켜보았다. 재학생들이 아들의 대금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가 크고 좋다면서 일등 감이라고 했다. 그저 인사인줄 알면서도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본선 진출만도 감사하다던 내가 정말 일등하게 해 주십사 기도하고 있었다. 본선은 학부모의 참관이 허용되었다. 아이의 연주를 보는 내내 사시나무마냥 떨려 이명처럼 들렸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뛰어왔다. "엄마, 2등이예요. 근데 1등은 없어요."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해준다. 탈락한 자모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감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연락을 넣었다. 본가에서 하루 자고 오겠다던 남편이 한달음에 달려 내려오고 아이는 친구들과 밥부터 먹겠단다. 긴장이 풀린 나는 어지러워서 간신히 집에 왔다.
결혼기념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삼겹살집으로 시누이 가족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경연장 이모저모를 영웅담이라도 되듯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식사가 마무리 지어질 무렵 주인공인 아이가 들어서자 축하 인사로 식당이 들썩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꼭 안아주며 말했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어. 애썼다.." 목이 메어왔다.
아들이 1년 장학금을 받고 그 대학을 가게 될지 아니면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하는 행운이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젊은이답게 도전하고 설사 실패할지라도 최선을 다하기를 바랄뿐이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원서를 써야 한다. 부모로써 부담감이 압박한다. 하지만 어디 당사자만 하겠는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응원하리라. 아들의 선택에, 그리고 결과에, 박수를 보낼 준비를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누군가의 말이다. 즐기는 자인 연습벌레 아들, 그대에게 오늘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2014, 9, 5
첫댓글 멋지세요~~ 늘 응원합니다~~
늘~ 감사드령~~명절 잘보내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