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함장-부함장까지 82% 확진…“軍지휘부 책임져야”
동아일보 2021-07-20
파병 301명 방역 무대책 방치… 장병 전원 오늘 수송기로 귀국
아프리카 현지에 파병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급 구축함)에 탑승한 장병 301명 가운데 82.1%에 달하는 247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장교 33명 가운데 함장(대령)과 부함장(중령)을 포함해 19명이 감염되면서 지휘 기능과 작전 임무가 사실상 불가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군 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악의 감염이 현실화된 것이다. 감염 비율로 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외를 통틀어 군의 단일 함정 내 최대 감염이라는 오명도 안게 됐다. ‘노(No) 백신’ 상태의 해외 파병 부대를 사실상 방치해 유례없는 집단 감염 사태를 초래한 군 지휘부에 대한 책임론이 군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19일 군에 따르면 현지 보건당국의 유전자증폭(PCR) 진단 검사 결과 34진 장병 가운데 179명이 추가로 확진돼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47명으로 늘어났다. 밀폐된 함정에서 승조원들이 밀집해 생활하고, 함 내 공조시스템이 서로 연결돼 있어 확진자·유증상자에 대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거의 효과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나머지 인원 중 50명은 음성, 4명은 ‘판정 불가’로 통보받았다고 군은 전했다.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15일 이후 확진자 7명을 시작으로 18일 61명에 이어 이날에만 179명이 무더기로 감염이 확인된 것이다. 군 관계자는 “판정 불가 및 음성 판정을 받은 장병 가운데 추가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지 병원 입원자는 1명 늘어난 16명이 됐다. 폐렴 증세가 심해 집중 관리를 받던 3명 중 2명은 상태가 호전됐으며 나머지 1명은 집중 관리가 계속 진행 중이다. 200여 명의 특수임무단을 태우고 급파된 공중급유수송기(KC-330) 2대는 19일 오후 현지에 도착한 직후 방역 조치를 거쳐 34진 장병 전원을 태우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들은 20일 오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직후 전담 의료기관 및 생활치료센터, 격리시설로 이동할 예정이다.
[청해부대 집단감염]청해부대 301명중 247명 코로나 확진백신 안맞힌 한국은 철수작전… 美는 지난 2월 함정서 백신 접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청해부대 34진(문무대왕함) 장병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급파된 특수임무단이 19일(한국 시간) 아프리카 현지 문무대왕함에서 방역복을 입은 채 방역작업을 준비하고 있다(위쪽 사진). 미 해군의 태평양 함대인 7함대 소속 수륙양용 수송선 USS 뉴올리언스에 탑승한 장병들이 올해 2월 14일 일본 오키나와 해상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국방부 제공·사진 출처 미 해군 홈페이지
함장(대령)과 부함장(중령) 등 장교 33명 중 19명을 포함해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급 구축함) 소속 장병의 80% 이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된 초유의 사태는 군 지휘부의 무능과 방심 탓이라는 비판이 군 안팎으로 번지고 있다. 2011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작전을 성공시켜 ‘아덴만의 영웅’으로 불리던 청해부대원들이 백신을 접종받지 못한 상태에서 집단감염 사태로 안전을 위협받고, 조기 철수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에 대한 지휘책임 규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휘·작전 불능 등 지휘부 오판이 자초한 인재”
군 안팎에선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지휘부의 오판이 자초한 ‘인재(人災)’라는 분석이 많다. 집단감염 위험보다 접종 후 부작용 대처 차질을 더 우려해 파병 4개월이 넘도록 ‘노(No) 백신’ 상태를 방치한 것이 ‘결정적 패착’이라는 얘기다.
전직 해군참모총장 출신 예비역 인사는 “지난해 미 항모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등 함정이 감염병에 얼마나 취약한지 군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접종 후 부작용의 대처 방안을 포함해 백신 접종 계획부터 세웠어야 했다”고 말했다.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 33명 가운데 함장과 부함장 등 60%에 육박하는 인원이 감염된 것에서도 함정 집단감염의 치명성이 드러난다. 지휘부가 일거에 무력화되면서 부대원 통솔과 작전 임무는 물론이고 위기 대처 불능 상태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확진자와 유증상자가 속출하자 함정 내 별도 공간에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를 했다고 군이 밝혔지만 함 내 전체로 연결된 환기구를 타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번져 거의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접종이 가장 확실한 방역책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청해부대 34진과 달리 미국 등 주요국들은 국내외 함정 승조원에게 백신을 우선 접종했다.
○ 靑, 군 지휘부 책임론에 선 그어
군 지휘부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청와대는 선을 긋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서욱 국방부 장관과 원인철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 책임론에 대해 “현재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군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백신 접종에 대해 예외 원칙을 적용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현재로선 군 수뇌부의 책임보단 장병들을 안전하게 이송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해외 파병 부대 접종 계획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방역당국이 논의한 끝에 원칙을 정했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9일 브리핑에서 “(백신의) 국외 반출과 관련해 (군과) 세부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 군인의 접종인 만큼 제약사와 협의해 백신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2∼3월경 질병청에 파병부대 접종 문제 협의를 요청해 “국내 백신 물량 부족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받았고, 정부가 제조사와 백신 계약 당시 해외 반출을 금지해 현지 접종이 어려웠다는 군의 기존 입장과도 배치된다. ‘책임 떠넘기기’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이날 오후 “정 청장의 발언은 청해부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軍, 불안한 가족에 사태 설명도 제대로 안해줘” [청해부대 집단감염]애타는 청해부대 장병 가족 “수송기 급파 소식도 기사 보고 알아… 현지 장병에게서 짧은 통화가 전부 내내 기운 빠진 목소리 마음 아파” 청해부대 34진이 승선한 문무대왕함과 동급인 충무공이순신함 침실. 밀폐된 공간에 여러 침대가 붙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t급)에 파병된 장병 가족들은 19일 오전 부대원의 82.1%인 247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전원 무사 귀환”을 염원하면서도 군 당국이 노심초사하는 가족들에게 함정 내 코로나19 집단감염 대응 조치와 향후 계획 등을 자세히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장병 가족 A 씨는 이날 동아일보에 “(가족들이) 잠도 못 자고 (현 상태를) 알아볼 길이 없어 하루 종일 기사만 찾아보고 있다”며 “부산 김해공항에서 18일 수송기 2대가 급파된 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A 씨는 확진 소식이 나온 뒤 현지에서 가족인 장병으로부터 전화가 와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짧은 통화를 한 것 외엔 당국의 추가적인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해당 장병이) 가족들에게도 군사 보안 문제로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면서 “전화를 하는 내내 기운이 빠져 있고 속상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조기 귀국하는 것에 대해 장병들이 불명예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청해부대 34진 부대장은 17일 청해부대 34진 온라인 카페에 두 차례 공지 글을 올리고 “대량 확진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후 일부 장병 가족은 추가 확진자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 국방부 민원실에까지 청해부대 상황을 문의했으나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장병 가족 B 씨는 “어떻게 격리되고 있고 귀환하면 어떤 조치가 이뤄질지 가족들에게라도 설명이 명확하게 이뤄졌다면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많은 장병 가족들은 청해부대가 현지인을 접촉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군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역만리에서 항해하는 4개월간 백신 공급이 아예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감염 사태 이후 문무대왕함 장병 전원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野 “국방장관 경질해야… 文대통령도 책임”
[청해부대 집단감염]하태경 “접종계획 세운뒤 시행 안해” 윤석열 “장병위한 기본적 도리 하라” 與도 “軍, 안일함 없었나 규명해야”야권은 청해부대 장병들이 무더기로 확진된 데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을 경질할 것을 요구하며 문재인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초기 대응에 실패한 군 당국을 향한 질책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19일 “사실상 정부와 군이 우리 장병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라며 “정부와 군 당국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라고 말했다.
야권 대선 주자들의 공세도 잇따랐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19일 ‘해외파병 부대 대상 우선접종에 대해 질병청 협조 중’이라고 적힌 국방부의 4월 보고 내용을 공개하며 “계획을 세워놓고도 시행을 하지 않아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부는 신속한 치료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을 위한 기본적 도리를 하라”고 밝혔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정부가 밝힌 ‘백신 반출의 어려움’은 궁색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정부와 군 수뇌부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것이냐”며 문 대통령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여당 지도부도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 규명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군 당국은 안일한 부분이 없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주당 민홍철 의원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총체적인 관리 책임 등에 대해 국방위 차원에서 지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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