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도 좋고 온도는 20도, 눈이 시릴 정도의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설악산 망경대 등산을 하는 날.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걸려서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정류장에 내려 근처 민박집 식당에서 전임 총무가 쏘는 황태전골로 점심을 먹고 한 숨 돌린 후 걸어서 2km 정도 떨어진 만해마을 구경을 가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은 쉬는 날이라 시집박물관과 기념관 등이 모두 문을 닫아서 주변만 둘러보고 시인 임화와 오장환 등 몇 사람을 만나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오가는 길에는 마을에서 관리한다는 양기를 북돋아 주는 마가목의 붉은 열매가 눈길을 끌었고 대민봉사를 나온 군인들이 직접 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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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식당의 2층 1,2호실에 짐을 풀고 저녁은 안주 겸 황태구이와 묵무침에 밥 두 그릇을 시켜서 라면과 같이 먹고 밤 12시까지 예술놀이를 하였다. 역시 술판은 피할 수 없는 건지? 모두가 잠든 시간 윤샘은 너무 취해서 현관에 있는 쓰레기통에 소변을 본 것이 흘러서 오줌바다가 된 것을 내가 수건으로 대충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백담사행 버스를 타고 가는 산길은 스릴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감상하면서 기분 좋게 출발을 하였다. 주말에는 차와 사람이 많아서 복잡하였다는데 마침 월요일이라 한가하고 10여분 후에 백담사 주차장에 내려 내설악에서 내려오는 수렴동 계곡을 거슬러 산책길을 가듯이 걷는 기분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날을 것 같이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름답고 멋진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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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 지 한 시간여 만에 서인으로 노론의 영수였던 김수항이 송시열을 거들어 장희빈의 왕비 추대를 반대하다가 결국 사약을 받은 후 그의 아들 삼연 김창흡이 창건하고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영시암(永矢庵)에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목을 축이는데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을 거슬러 걷는 길은 산길이 아니라 평탄한 한길 같고,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데 특히 단풍나무의 붉은 색깔은 뭍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어 연신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기가 바쁘고 단풍에 취해서 걸음이 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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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가파른 길이 나오고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점점 힘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가니 오세암의 팻말이 서있는 고개가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는데 좀 젊은 여자와 두 노인이 쉬는 것을 보고 연세가 얼마냐고 하니 80이라고 하며 다른 한 노인은 90세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이 들어보이지를 않았지만 90세에 지팡이나 배낭도 없이 젊은이들도 힘들어 하는 산길을 거뜬히 올라오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이 준비해간 약식을 드리니 맛있게 먹고는 오세암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을 거라며 먼저 일어서는데 90된 노인의 걸음이 성큼성큼 가는 모습이 젊은 사람들 못지않았다. 나도 저렇게 건강하게 나이를 먹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면서 우리 일행도 산행을 시작하여 탐방로가 아닌 길로 접어들어 경사가 심하고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길로 나무 가지와 뿌리를 붙잡고 네 발로 기어서 힘겹게 정상에 오르니 그 곳이 바로 우리가 목표로 한 망경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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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망경대. 만군데를 볼 수 있어서 만경대라는 속설이 전하는 망경대 정상에 올라서니 멀리 소청봉, 중청봉, 대청봉과 공룡능선이 보이고 모두가 발아래라. 설악산의 정기를 받아 속세에서 찌들린 몸과 마음에 재충전을 하는 멋진 시간이었다. 잠시 머물며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가던 길로 하산을 시작하여 갈 때 쉬었던 오세암 고개에서 준비해 간 점심을 먹는데 갈 때 만났던 90세 노인 일행을 다시 만나서 점심 드셨느냐고 하였더니 오세암에서 먹고 가는 거라고 하면서 90세 노인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그냥 길만 쳐다보며 휑하니 내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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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길은 갈 때보다는 힘이 덜 들고 걸음도 빠르기는 하지만 거리가 편도 6km, 왕복12km를 걷는 것이 모두 70대 노인인 우리에게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리 힘은 빠지고 길은 똑 같은 거리지만 갈 때보다 배가 되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그렇게 힘든 중에도 위안이 되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때 맞춰 절정을 이룬 단풍과 유리알 같이 맑고 푸른 계곡물에 반사되는 하얀 조약돌과 바위들, 그리고 어느 화가가 물감을 뿌린 듯 각양 색깔로 변하는 산의 모습은 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힘을 얻을 수가 있었고 내설악의 산세가 너무나 멋져서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천금을 얻은 듯하고 망경대를 정복했다는 뿌듯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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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이렇게 힘든 산행을 하겠는가? 다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중간에 조금씩 쉬어 가면서 기분 좋게 하산을 하였다. 약 6시간이 걸려서 백담사에 도착하니 절 앞의 긴 다리에 사람들이 서너 줄 정도로 절에서부터 다리 넘어 주차장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용대리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었다. 사람들이 조금 많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 못 하면 서울 가는 버스를 못 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버스가 시간과는 상관없이 연달아 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타고 용대리 주차장으로 오니 서울 가는 버스가 서 있는데 몇 분이 늦어서 먼저 온 사람이 타고 자리가 없어서 우리는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5시40분경 다음 차를 탔더니 인제, 홍천 등 여러 곳을 들르는 완행이라 서울까지 오는데 고속버스보다 30분정도는 더 걸려 8시가 넘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연말 송년회를 약속하고 꿈에 그리던 설악산 망경대 가을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