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작은 가게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사는 동네에 15년 살아았습니다.
동네 태권도장을 알았고,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등록하여 7년을 수련했습니다.
그 뒤에 딸도 같은 도장을 8년 다녔습니다. 이만한 단골 가게가 없을 겁니다.
처음 이사왔을 때 알고 지내던 슈퍼는 6년 전 문을 닫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그 슈퍼는 가족이 함께 운영했었는데,
어린 딸을 데려가면 손에 무언가 꼭 쥐어주시는 아주머니 자매가 계셨습니다.
코로나로 작은 가게들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15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했던 분식집이 지난 달 문을 닫았습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일 마치고 돌아갈 때 출출하면 들렸고, 딸의 부탁으로 종종 떡볶이를 샀던 곳인데 아쉬웠습니다.
아내를 통해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제게도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11년 전 사회복지사사무소 '구슬'을 시작하면서 복사나 제본할 일이 많았습니다.
근처 대학교 앞 복사집을 11년 이용했습니다.
친절했고 편안했고 확실했던 단골 복사집도 지난 달을 끝으로 영업을 마쳤습니다.
문자로 작별 인사말을 전해듣고 속상하고 아쉬웠습니다.
하나 둘 사라지는 가게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났다 결혼하면서 다시 살게 된 서울.
30년 넘은 서울 생활에도 정이 붙지 않습니다.
그나마 인정을 느끼게 했던 가게마저 사라지니 씁쓸합니다.
그 앞을 지나가면 인사했고, 저와 우리 가족을 알아보았던 가게들,
동네를 정겹게 했던 내가 알고 지내는 작은 가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이 가게들을 사라지고 어디로 갔을까요?
이런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듯한 책 한 권 만났습니다.
<오래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작은 가게 이야기>
§
작은 가게의 핵심은 바로 '관계'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들이 얼마나 친근한 애착을 기반으로 하는가는
작은 가게의 유지와 생존을 결정짓는 요인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작은 가게들과의 관계의 연속이었다.
나는 늘 집 앞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먹었다.
그 옆에는 으레 문방구가 있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들어 선생님이 말씀하신 풀 하나를 사고는
종이인형 같은 것을 사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엄마는 가끔 미장원에 가신다며 두어 시간씩 집을 비우셨는데
찾아가보면 미장원 주인 아주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 수다를 떨고는 하셨다.
문방구 옆 작은 약국, 그 옆에 서점, 그 옆에 정육점, 작은 식당, 그 옆에 다방, 아버지가 자주 가자주 가시던 동네 기원.
주인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동네 꼬마들이 어느 집 아이들인지 알고 계셨고 이런저런 간섭을 하셨다.
"학교 왜 이제 가느냐, 늦겠다.” “왜 이제 들어오느냐, 엄마 걱정 시겠다.”
“요즘 너희 할머니 허리는 괜찮으시냐” 등등.
나는 그 런 단골 가게들에 둘러싸인 동네 풍경에 익숙했다.
-머리말
§
그렇다면 촌스런 작은 가게들이 프랜차이즈화되면서 전보다 나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일까?
자료에 따르면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자영업 폐업률은 89.2%에 달한다.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서고 경쟁이 점차 심화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90%에 육박하는 자영업 폐업률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인 것이다.
10개의 가게 중 9개가 문을 닫는다. 사실 이것은 매우 완화된 표현이다.
실제로 2018년에 45만 7,998개의 가게가 창업했고 40만 8,776개가 폐업했다.
모든 수치가 가리키는 곳은 대체 어디인가?
사람들은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늘어난다.
동시에 폐업률은 나날이 치솟고 있으며 이미 그 수치는 90%에 육박한다.
이 모든 것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결과이겠으나
근본적으로 작은 가게의 양적인 증가가 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폐업 이후는 예상대로 곤혹스럽기 마련이다.
중산층 자영업자의 폐업은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마케팅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는 관계이다. 그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건 그렇지 않건 말이다.
그와 내가, 나와 네가, 일련의 그들과 내가 맺는 친근하고 친숙한 관계 말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가 주는 편안함과 안도감, 그것이 우리가 작은 가게에서 찾는 그 무엇이리라.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대형 체인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나 외로움을 달래주는 곳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동네는 좀 낭만적이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빠르고 편리하며 때론 복잡하게 진화한 시대에는 오히려 소박하고 투박하며 은은한 빛을 내는 관계들이
늘어가길 우리는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온전히 내가 경험한 작은 가게, 그리고 작은 가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저 내가 자주 다니는 하나의 가게 이야기, 내가 만난 단 한 사람의 이야기다.
작은 가게는 그 하나하나의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 그 관계에 대한 누군가의 경험. 이 것이 작은 가게를 정의하고 그 생존을 결정한다.
내가 작은 가게를 한마디로 '관계'로 정의내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소비자'로서, '가게 주인'으로서, 이들 모두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어떠한 관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우리의 '관계'는 논리와 통찰 만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론과 학문적 발견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관계'는 우리네 이야기들로만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사실 이미 수 많은 마케팅의 개념, 이론, 전략들은 모두 '관계;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정의하는 과정에 깊은 통찰이 없었던 것 뿐이다.
이 책에서 그런 관계에 대한 통찰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작은 가게와 손님들의 관계란 과연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건을 팔려면 그 대상인 사람에 대해,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가게의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통찰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이야기' 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는 냉철한 논리 이전에 이해해야 할 보다 감정적인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머리말
§
완벽한 상품기획이란 알고보면 이처럼 고객과의 친근한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친근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은
손님을 위한 서비스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가게의 상품기획, 서비스 기획 촉진 전략 기획 등 모든 마케팅 활동의 가장 기초이다. 63쪽
§
첨단기술을 타고 눈 깜빡할 사이에 세상이 바귀는 지금도 서점은 여전히 그런 곳이어야 했다.
사람들에게 지향해야 할, 삶을 이끌어갈 가치를 보여주는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서점은 그런 진지하고 멋스러우며 우리 정신의 주춧돌 같은 곳이다.
...
지척에 대형 서점인 반즈앤노블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애비드 서점을 기꺼이 찾는다.
서점 안을 감도는 순수한 기운, 세상을 향한 그들의 소리없는 설득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 작은 동네 서점이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진정한 서점으로서의 가치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게 될 그들의 순수한 가치 말이다. 128쪽
§
철학과 신념은 이처럼 사업가가 장기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일궈 나갈 이유가 되고 버팀목이 된다. 239쪽
첫댓글 저희 동네 도서관에도 이 책이 있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제3의 장소>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책에서 소개하는 제3의 장소
대부분이 술집이었거든요. ^^
이 책이 그 아쉬움을 조금 해결해주어
반가웠습니다.
@김세진 술집이야기 하니.. 몇번이나 돌려본 선술집의 에피소드 영화가 딱 떠오르네요..
이웃간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서 더 흥미진진하게 봤던....
"심야식당" 추천~~
세진의 책방도 이런저런 수다와 이야기들이 담긴 따듯한 공간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11년간 이용하신 그 복사집 문 닫았네요. 저도 아쉽습니다. 선생님 글 읽고 비 내리는 오늘 하경이와 함께 동네를 돌아봅니다. 안부 인사를 전하고 받습니다. 동네를 둘러 인사했을 뿐인데 인사를 받습니다. 선생님 글 덕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