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생각나면 떠오르는 봉선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미국에 이민 가서 잘살고 있는 치진 형님집을 지나 나보다 나이가 한 두 살 위이지만 친구처럼 지낸 대평형님 낮이나 밤이나 마루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친구 홍기 이 모두가 그리운 시절의 이웃집이다. 거제도에서 제일 깊은 골짜기 중의 한 곳인 ‘새미실’ 친구들은 산골에 산다고 놀려댓지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머리가 뛰어나 칠천도 처녀와 결혼한 옥치재형님, 지금 살아계섰으면 아마 재정부장관은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연초중학교 서무과장으로 있으면서 주산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1년 만에 전국을 재패한 옥치형 형님(촌수로), 옛날 중국 길림성으로 이민가서 김림성 성장까지 오른 어르신, 이 모두가 자랑스러웠다. 우리 뒷집에는 옥철구 삼촌이 게시고, 옥대평 형님이 살고 있었다. 옥대평 아버님은 해방이후 빨갱이 사건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대평 형님은 주산을 잘해 부산상고를 졸업하여 동아일보에 근무했으나 몇 해 전 돌아가셨다. 형님 집을 지날때마다 형님 생각이 난다. 일전이요 십전이요 이백오십육전이요, 삼십이전이면 ...예, 299전입니다. 시간이 나면 주산 암기를 한 기억이 살아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형님 집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초라한 형상을 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이 집을 지나노라면 마당 곳곳에 봉선화가 피어 있다. 우리가 어릴 때 장고방 옆이나 담벼락 옆에 아주 작은 화단을 만들어 봉선화도 심고, 단국화 심고, 해바라기도 심었다. 그리고 분꽃도... 얼마 전까지 피어 있던 봉선화도 지고 열매만 남아 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손으로 만져보니 ‘펑’하고 터진다. 시장에 아줌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트로토 가수 현철 지금 병마에 시달려 볼 수 없으니 그리움만 쌓이네... 어떤 이는 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인간 세상은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있고, 잘사는 사람도 있고 뭇사는 사람도 있다. 오늘 이 시간 고향생각, 대평 형님 생각, 봉선화 생각을 해본다. 추억이 새록새록 뭉게구름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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