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신문>, 2011. 1. 6
해
박두진(1916~1998)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에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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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일 때 해의 얼굴을 맑고도 밝다. 희망은 바람이 불어도 쉽게 날아오지 않지만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창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나타난다. 희망을 가질 때 해가 빛나듯 해를 품을 때 희망도 빛난다.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