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11장 天山魔刀

[석풍(돌바람)]

제11장 天山魔刀

인간(人間)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는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냉검상은 실로 대단했다.

천애령을 떠나그가 중원으로 들어온 지는 겨우 반 년의 세월. 그 시간 동안 그는 더 이상 유명해 질 수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나고 있었다.

하남(河南)의 패자(覇者)이며 적룡패를 거느린 사도무림의 거두 능천위가 정금산장에 쳐들어갔다가 상가집 강아지처럼 쫓겨난 소문을 필두로 냉검상에 대한 이야기는 불어나기 시작했다.

풍운산에서는 단지 쳐다보는 눈초리가 기분 나쁘다고 해서 사파의 명숙인 기련쌍마(祁連雙魔)와 시비가 붙어 반쯤 죽을 만큼 두 노마(老魔)를 두들겨 팼으며, 하북(河北)의 한 공자묘에서는 무림기인(武林奇人) 천은선생(天隱先生)과 사소한 시비 끝에 일전을

벌여 천은선생의 무기인 한 쌍의 판관필과 사십팔절관운필이라는 독문절기를 개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뿐인가?

소문은 얼마든지 있었다.

마도(魔道)의 거두 적발혈신(赤髮血神)이 말을 몰고 가다가 그에게 먼지를 씌웠다는 이유로 그의 애마 혈총(血寵)과 함께 두엄더미 속에 처박히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에 대한 소문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고, 그와 함께 그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들이 강호(江湖)에는 난무했다.

제일 유력하게떠도는 소문은 그가 천산에서 온 비적의 대두령이란 사실이 그의 유명세에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점도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그가 전설의 사천왕(四天王)처럼 거대한 몸짓을 지니고 있는 흉악한 인물이라고도 했고, 어떤 자는 항상 철립을 쓰고 다니면서 죽음의 냄새를 안개처럼 풍기고 다니는 깡마른 살수(殺手)라고도 했다.

어떤 자는 무림기인(武林奇人)의 애제자라고 하고......

어떤 자는 동영 출신의 해적이라고도 하고......

아무튼 냉검상의 진실한 면은 알 길없이 그에 대한 소문은 시간이 흐를 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소문이여러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그가 잔인하고 무서울 정도로 강한 고수라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냉검상은 더욱 유명해졌고, 강호상에서 남의 말하기를 밥먹기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그럴 듯한 별명까지 지어놓게 되었다.

천산마도(天山魔刀)----!

한 자루의 투박한 칼을 품고 천산에 등장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냉검상의 행적은 가는 곳마다 화제의 대상이었고, 그가 나타나는 곳마다 새로운 화제는 끊이지 않았다.

* * *

냉검상에 대한소문이 한참 강호상을 벌집 건드린 것처럼 들쑤셔놓고 있을 때 한 가지 충격이 또 전해졌다.

이 년 전부터 홍택호(洪澤湖) 변에 거대한 건물이 축조되고 있어 한 바탕 소문이 난 적이 있었다.

그 건축물은 도무지 인간의 상상을 불허할 만큼 거대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기도 했다.

무엇을 위한 건물인지 몰라도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과 수양제가 뚫으려 했던 대운하(大運河)처럼 일반 건축물로는 너무도 거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건축물이었다.

그 때 들리는 소문으로는 황실의 누군가가 그 건축물을 축조하고 있다는 정도로 끝났다.

그러나 그 건물은 석 달 전에 완성됐고, 바로 며칠 전 그 건물에 현판이 올랐는데, 천마교(天魔敎)란 무림의 방파(幇派)였다.

그런데 그 문파가 무림사상 최초로 황제가 칙령을 내려 인가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황궁은 본래 무림과는 묵시적으로 서로 관여하지 않는 관계를 취해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격적으로 천마교(天魔敎)란 방파에 대해서 황제가 인가를 한 것이었다.

무예의 발상지라는 대소림사(大少林寺)도 황실에는 사찰로만 인정할 뿐이지, 무공방파로는 사실상 인가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마교(天魔敎)란 듣도보도 못한 방파를 황제가 인정을 한 것이다.

더욱이 황제는 직접 천마교의 현판까지 하사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강호상에 충격을 주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그렇게 등장한천마교는 모든 것이 신비했다.

일단 천마교의 교주(敎主)가 누구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교는 의외로 정예화된 인원으로 치밀한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우선 알려진 인물은 부교주로 사존(邪尊) 무일평(武一平)이란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 역시 강호상에선 생소한 이름이었다.

부교주 아래 오대당주의 이름도 알려졌는데 이들 역시 생소했고, 오직 집법당주로 알려진 생사추혼(生死追魂) 낙가유(洛加儒)만이 이십 년 전 능천위와 쌍벽을 이루던 마도(魔道)의 실력자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낙가유가 일개 당주라는 사실로 보아 천마교의 세력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고 식자들은 판단하고 있었다.

아무튼 천마교의 등장은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더욱이 황제께서 마도문파를 인정했다는 점이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근간에 들어 바람없이 잠잠하던 강호계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 *

호북(湖北)의 성도(省都)인 악양(岳陽).

누대(樓臺) 악양루(岳陽樓)에 올라 보면 동정호의 광활한 모습이 보이고 가을이면 소상팔경 중에 으뜸으로 치는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볼 수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해서 악양은 항상 풍류문사(風流文士)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고풍의 도시였다.

하늘도 시린 빛인 가을의 청명한 어느날, 악양의 북문(北門)을 통해 유유하게 악양성 내로 들어서는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냉검상이었다.

투박해 보이는 미인혈(美人血)을 허리에 차고 걷는 그의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북경에서와 달라진 점이라면 흑의 위에 두툼한 곰 가죽 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한 달 전에 산중에서 잡은 흑곰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었다.

때는 바야흐로금왕지절(金旺之節)이라.

일 년 중에 금기(金氣)가 가장 성한 가을(秋), 악양의 곳곳은 동정추월의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 천하 각지에서 몰려들어 악양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냉검상은 그런사람들 틈에 끼어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었다.

냉검상은 북경을 떠나 남하하면서 천하의 풍물을 구경하면서 걸어 왔기에 어쩌면 이제 유랑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도 했다.

악양의 번화가인 십자로(十字路)로 들어서던 냉검상은 문득 한 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 출출한 시장기를 느끼고 객점으로 들어가려 했고, 객점 옆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냉검상은 무심히 사람들 틈에 끼어 벽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았다.

방문(榜文)이 붙어 있었다.

살인 및 강간, 도적질을 한 죄인들을 잡는 현상수배 방문이었다.

방문 옆에는 화공(畵工)이 얼굴까지 그려놓은 것이었는데, 기가 막히게도 냉검상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

냉검상은 자신이 현상수배된 사실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었다.

죄목은 살인이었고, 장소는 부령의 유곽, 화공이 그려놓은 그림은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털옷을 입은 모습에 제법 비슷하게 그려놓은 것이었다.

냉검상은 기분이 불쾌해졌다.

자신이 현상수배가 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냉검상의 성격은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냉검상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상금이었다.

자신의 방문 옆에 붙어 있는 옥화접(玉花蝶)이란 강간범은 무려 오백 냥의 현상금이 붙어 있었는데, 그에게 붙어 있는 현상금은 겨우 백 냥 뿐이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울화가 치미는지 냉검상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방문을 확 뜯어내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 버리고 유유하게 객점으로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은냉검상의 돌연한 행동에 아연해하다가 이내 무관심하게 흩어져 버렸다.

한데 한 사람, 미간에 검은 사마귀가 달려 조금은 교활하게 보이는 중년인 하나가 냉검상을 유심히 살피다가 부령살인범 현상수배 그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냉검상이객점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관가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흐흐흐...... 어제밤 개꿈도 안 꾸었는데 이게 웬 횡재냐? 은자 백 냥이 저절로 굴러 떨어지겠구나.)

냉검상은 자신을 고발하러 간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는 채 객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려던 냉검상은 걸치고 있는 곰가죽 옷을 내려보면서 왠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방문까지 붙여놓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옷차림으로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군.)

문득 그런 생각을 한 냉검상은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만 냥짜리 전표 하나와 천 냥짜리 전표 석 장이 나왔다.

안락원의 갑 자 도루에서 워낙 많은 돈을 딴지라 당소완에게 이십만 냥이나 되는 전표를 던져 주고도 돈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

아직도 주머니에는 만 삼천 냥에 해당하는 거금이 있는 것이었다.

(안되겠다. 모습을 좀 바꿔야겠다.)

생각을 바꾼 냉검상은 다시 객점을 나와 악양의 제일 큰 시장으로 통하는 백석로(白石路)로 향했다.

이 백석로는 삼척동자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중원에서 알아 주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아기 기저귀부터 관까지 살 수 있으며, 항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기녀(妓女)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오동나무로 깎은 남근(男根)까지 파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은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냉검상이 백석로로 들어간 지 일 각이 지난 후, 그의 모습은 장신구점에서 발견되었다.

옥(玉)으로 부챗살을 깎고, 손잡이 부근은 진귀한 상아(象牙), 그리고 능라(綾羅)의 비단천으로 만든 등운선(騰雲扇)을 하나 사들고 나오는 냉검상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일단 머리에는가을 하늘빛을 닮은 남빛 영웅건을 썼으며, 일신에 걸친 장삼은 은은하면서도 귀품이 넘치는 비단장삼. 더욱이 그 색깔이 검어 어딘지 모르게 고귀함을 풍기는데 등에는 금빛수실로 쌍룡(雙龍)이 수놓아져 있어 한층 더 냉검상을 멋들어지게 꾸며 주었다.

허리에는 일곱 가지 보석이 달린 황금요대에 발에는 수달피 가죽으로 세공한 가죽신을 신고, 마지막으로 등운선을 펼쳐들고 나오는 그의 모습은 가히 인중용이요, 어느 고귀한 귀족 가문의 영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이미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 듯 흡족한 표정으로 나온 냉검상은 좋은 말 한 필을 사기 위해 마시장(馬市場)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병기점을 발견했다.

(음...... 미인혈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무기를 하나쯤 더 지니고 있는 것이 낫겠군.)

즉흥적으로 생각한 냉검상은 병기점으로 들어갔다.

인생살이가 조금은 권태스러워 보이는 초로의 주인은 황망히 냉검상을 맞이했다.

"헤헤...... 어서 오십쇼, 공자님."

그는 의례적인인사를 하며 냉검상을 올려보다가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몇 차례 눈을 껌벅거려 보아도 이곳 악양에서 이처럼 잘생기고 멋들어진 미공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잘생겼다...... 내가 태어나서 본 남자 중에 이렇듯 잘생기고 기우가 헌앙하신 공자님은 처음 본다.)

같은 남자의 입장으로 보더라도 냉검상의 기풍이 너무도 신명기청(神明氣靑) 하고 청신수골(靑身秀骨)해 눈이 부신 것이었다.

냉검상은 주인의 눈길을 별로 의식하지 않은 듯 진열대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무기 좀 구경하자."

천애령에서부터 습관이 든 반말이었다.

그러나 일단 냉검상의 외모에 기가 죽은 주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단히 지체가 높으신 귀족이시구나.)

오히려 이렇게생각하며 반말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다수 외모를 보고 인간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기질이 있는 것이었다.

"헤헤......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구경을 해 보시지요. 저희 가게에서는 명성이 높은 명장들의 진품(眞品)만을 취급하고 있습죠.".

"음......"

주인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진열된 무기들을 구경하던 냉검상은 불현듯 한 쌍의 단창(短槍)에 시선이 멈추었다.

짧으면서도 강해 보이고,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단창은 척 보기에도 조금 무거운 중병(重兵)처럼 보였다.

본래 묵직한 무기를 좋아하는 냉검상은 그 한 쌍의 단창이 마음에 들었다.

(검은 빛이 감도는 것으로 보아 질좋은 묵철(墨鐵)을 섞어 만든 것이겠구나.)

냉검상은 단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마음에 드는군."

주인은 상인의기질을 발휘하여 기다렸다는 듯이 입에 곰팡이가 생길 새라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과연 안목이 높으시군요. 이 같은 진품을 가려내는 사람은 드물지요. 이 단창은 모두 명장 허일도(許逸道) 선생께서 근 팔 개월에 걸쳐 만든 진품으로 묵철과 금강사(金剛砂)를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웬만한 철판이라도 종이에 구멍 뚫듯이 뚫어 버리는 강한 무기지요. 더욱이 각각 무게가 삼십 팔 근이나 나가는 중병(重兵)이라 무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가치를 알 수 없는 물건입죠."

능숙한 상인답게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도 물건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화술(話術)이었다.

"얼마냐?"

"헤헤...... 이백 냥입니다."

냉검상은 그리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이백 냥을 꺼내 주고 단창을 받았다.

주인은 냉검상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경탄했다.

(저렇듯 화끈한 성격까지 지니셨다니...... 어느 댁 공자님이실까? 혹 악양지부 대인댁의 큰 공자님이 아니신가?)

이미 냉검상의모습은 그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병기점을 빠져나온 냉검상은 곧장 마시장에 가서 푸른 빛이 감도는 힘이 좋은 청마(靑馬) 한 마리를 천 오백 냥에 샀다.

단창을 등에 열십자로 비껴메고 푸른 빛이 감도는 갈기가 멋들어진 청마 위에 타자 냉검상은 더없이 준수하게 변모하였다.

하긴, 이렇듯 모습을 갖추는데 든 은자가 오천 냥이나 되니 가뜩이나 멋들어진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듯 변모한모습으로 유유하게 악양거리를 누비는 화복단장에 오가는 여인들은 냉검상을 흘끔흘끔 훔쳐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고, 사내들은 냉검상의 모습에 비참해질 정도로 열등의식을 느껴야만 했다.

말을 타고 냉검상이 다시 객점 앞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골목길에서 관군 몇 명과 함께 현상수배범 냉검상을 고발하려 뛰어갔던 중년이 뛰어오다가 말에 부딪칠 뻔했다.

냉검상은 마상에 오연히 앉은 채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뭣들 하는 짓이냐? 앞을 똑똑히 보지도 못하고!"

그러자 관군과사마귀의 중년인은 마치 죽을 죄라도 지은 듯 허리를 굽실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들이 찾으려는 살인범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어느 귀족의 자제려니 생각한 것이었다.

"죄, 죄송하옵니다...... 살인범을 쫓는 중이라 경황이 없어 감히 무례를 범했으니 용서해 주시기를......"

관군과 중년인은 거듭 사과를 하고는 휑하니 냉검상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냉검상이 바로 자신들이 찾으려는 부령 유곽의 살인범이란 사실을 조금도 생각 못했고, 냉검상 역시 그들이 자신을 쫓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냉검상이 말의배를 가볍게 차서 객점쪽으로 갈 때, 마침 한 대의 화려한 유벽향차가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다.

마차의 창문은 열려 있었고, 열린 창문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아까부터 줄곧 냉검상을 보고 있었던 듯 꿈꾸듯 몽롱한 시선으로 냉검상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남색과 홍색의 봉황채를 꽂고 있었고, 갸름한 얼굴에 상큼 뜨인 눈이 아직은 조금 앳되어 보이는 모습인데 한 송이의 풀꽃처럼 청조한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나이는 이제 열 일곱이나 열 여덟 정도, 그녀의 시선은 아예 냉검상에게 못박혀 있었다.

아직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에는 가득히 호기심과 동경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냉검상은 마차와 스쳐가면서 자연스럽게 여인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눈은 마주치고......

여인은 발그레하게 얼굴을 붉힌 채 냉검상을 향해 웃어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웃음 대신 다소곳이 눈을 내리 깔았을 뿐이고, 냉검상은 별반 감흥이 없는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대로 지나쳐버리는 냉검상을 보면서 여인은 망연한 표정이었다.

(뉘실까......)

마치 가장 소중하게 여긴 보석(寶石)을 잃어 버린 느낌처럼 가슴 속이 텅 비어오는 기분이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황보연(皇甫燕).

악양지부대인의 외동딸로 악양의 최고 권력자인 지부대인에게는 그야말로 금지옥엽이었다.

잠시 외출을 나왔다가 우연히 냉검상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사랑의 낙인을 가슴에 찍게 된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순수하고 깨끗한 한 여인의 심중(心中)에 사랑의 낙인을 찍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냉검상은 일단 식사를 하고 악양을 벗어나 동정호로 향했다.

바람은 서늘했고, 그 바람결에 따라 하얀갈대가 부서지듯 나부끼는 동정호변은 그야말로 절경 중에 절경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 절경도 창피를 느낀다는 동정추월이 한층 더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꾸며 줄 것이다.

바다처럼 푸르고 넓은 동정호의 수면에는 수많은 화선(畵船)들이 그림처럼 떠 있고, 아스라이 보이는 몇 개의 섬(島)들은 실로 환상을 보는 듯 아름다왔다.

냉검상은 천천히 말을 몰아 동정호의 절경을 구경하면서 갈대밭을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주위의 절경에 취해 냉검상은 그만 인적이 없는 한적한 동정호의 외각지대까지 오게 되었다.

자신이 너무 멀리 왔다고 느낀 냉검상은 말머리를 돌려 일단 악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였다.

귀청을 찢어낼 듯이 날카로운 비명성이 울려온 것은......

(응?)

비명소리가 급박한 것으로 보아 꽤나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을 느낄 수 있어 냉검상은 그대로 말을 몰아 비명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은 동정호변에서 조금 외떨어진 음습한 관림 속이었다.

냉검상은 말에서 내려 등에 비껴멘 쌍창을 들고 관림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관림 속은 음침한 어둠이 감돌고 있었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잡풀더미를 헤치고 이십여 장쯤 가자 역한 피비린내와 함께 냉검상은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의 시체였다.

두개골은 둔중한 둔기에 부서진 듯 깨져 있었고, 가슴은 풀어헤쳐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심장이 뽑혀진 듯 왼쪽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너무도 참혹한모습에 냉검상은 절로 인상이 찌푸러졌다.

(대체 어느 놈이 이토록 사람을 처참하게 살해했단 말인가? 머리가 부서져서 알 수 없지만 이 여자가 미인이었다면 놈은 정말로 죽여도 마땅한 놈이다!)

냉검상은 시체를 지나쳐 더욱 더 관림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인의 시체 한 구를 또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시체는 얼굴은 온전했지만 역시 심장이 없었다.

죽음에 이른 순간의 두려움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얼굴은 비교적 아름다운 젊음이 엿보였다.

그 얼굴을 보면서 냉검상은 분노를 느꼈다.

(이 악랄한 살인마를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

냉검상은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갈 수록 시체는 계속 발견되었고, 시체의 특징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심장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었다.

냉검상은 일곱번째로 발견한 시체의 가슴에서 아직도 더운 김이 나는 피가 뻥 뚫린 심장구멍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때 좌측에서 귀청을 터뜨릴 듯한 엄청난 광소성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냉검상은 가슴이 울렁거리며 기혈이 진탕됨을 느껴야 했다.

(윽! 굉장한 내공이다.)

그러나 냉검상은 급히 공력을 운기하면서 광소성이 터진 곳으로 몸을 날렸고, 그와 동시에 처참한 비명성이 울렸다.

비명성이 울린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한 나무 밑둥치에 팔괘도포를 입은 도관을 쓴 노도인이 쓰러져 있었는데, 금방 죽음을 당한 듯 가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빌어먹을...... 살인범이 누구란 말인가? 금방 쫓아왔건만 귀신 곡할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냉검상은 좌우를 둘러보다가 우측으로 핏방울이 몇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날리려고 했다.

그 때 죽은 줄만 알았던 노도인이 손을 올리며 극히 미약한 음성을 뱉아내는 것이었다.

"자, 잠시만......"

냉검상은 흠짓놀라며 노도인을 돌아보았다. 노도인은 초점이 모이지 않는 흐릿한 시선으로 냉검상을 올려보며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노...... 노도(老道)는 무당의 송학(松鶴)...... 금봉문의 총사를......"

그러나 노도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냉검상은 절로 눈살이 찌푸러졌다.

심장을 뽑히고도 잠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라면 노도인 송학의 무공도 상당히 심오한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송학도인을 한 순간에 살해한 흉수는 대체 어느 정도로 무서운 무공을 지닌 자란 말인가? 일단은 핏자국을 따라가 보자.)

냉검상은 핏자국을 따라 관림을 벗어나 어느 언덕 기슭에서 기어이 엽기적인 살인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에는 이미십여 구의 시체들이 모두 끔찍한 형상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살인마는 바로 시체 한 구의 팔을 찢어내며 미친 듯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괴인은 혈발(血髮)을 길게 늘어뜨린 채 금방 핏물에 담그었다 빼낸 듯한 혈의(血衣)를 걸치고 있었다.

얼굴은 핏물을 발랐는지 시뻘건 피로 번질거렸고, 먹우물처럼 움푹 꺼진 눈 속에서는 소름끼치는 녹색의 광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인간인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인간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공포스럽고 전율스러운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인이 서 있는 바위 아래에는 아마도 유일한 생존자인 듯 한 여인이 극도의 공포로 창백해진 채 무섭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청순하면서도 깨끗한 인상을 풍겼고, 두 눈은 총명과 지혜가 뭉쳐져 만들어진 것 같은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너무도 공포에 절어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였다.

혈발괴인은 시체에서 찢어낸 팔을 아무렇게나 휙 던지며 몸을 날려 여인의 앞으로 뚝 떨어져내렸다.

"크하하하...... 희봉아(姬鳳娥), 네가 금봉문(金鳳門) 제일의 재녀라고 들었다. 지다성(智多星)이라 불리는 최고의 두뇌와 최고의 담력을 지녔다는 너의 심장과 뇌를 꺼내 오늘 맛을 보겠다!"

오오......

맙소사! 사람의 뇌와 심장을 먹다니......

이 혈발괴인은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러나 희봉아라고 불린 여인은 이 괴인을 익히 아는 듯 더욱 창백하게 질려 몸을 떨었다.

"아, 안돼. 제발......"

그러나 혈발괴인은 유난히 긴 손톱이 달린 양 손을 번쩍 치켜들면서 희봉아에게 다가갔다.

"크하하...... 겁에 질린 네 모습은 무척이나 내 입맛을 돋구고 있구나!"

혈발괴인은 그대로 다가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쉬익!

싸늘한 바람이일며 날카로운 손톱에 의해서 희봉아의 가슴 부분 옷이 길게 찢겨져 나갔다.

희봉아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만 혼절을 하고 말았다.

혈발괴인의 솜씨는 아주 능숙하여 한 번 손놀림에 일말의 상처도 없이 옷만 찢어냈고, 그 바람에 생각보다 풍만한 희봉아의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크흐흐흐......"

혈발괴인은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둔 아귀(餓鬼)처럼 군침을 흘리며 희봉아의 젖가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심장을 뽑아내려는 듯이 번쩍 손을 치켜올렸다. 순간이었다.

"손대지 말아라!"

한 소리의 외침과 함께 냉검상이 벼락같이 혈발괴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벼락같이 일장을 후려갈겼다.

흠짓 놀라는 혈발괴인의 임기응변은 실로 감탄할 정도였다.

희봉아에게 뻗어가던 손을 주먹으로 바꾸면서 냉검상의 장력(掌力)을 받아낸 것이다.

펑!

가죽북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혈발괴인은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아무리 임기응변은 뛰어나다 하나 순간적인 열세를 면치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혈발괴인은 이내 몸의 중심을 잡고 냉검상을 보더니 험악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크앗!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놈이 감히 이 대독청(戴獨靑)의 앞을 막다니......"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그는 그대로 몸을 날리며 냉검상을 덮쳐왔다.

냉검상은 냉소를 치며 허공으로 떠올라 연환십팔퇴(連還十八退)의 수법으로 순식간에 서른 여섯 번의 발길질을 하며 혈발괴인과 현란한 공수교환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한데 냉검상이돌아서기가 무섭게 혈발괴인은 언제 짓쳐왔는지 냉검상의 면전에서 그대로 쌍장을 내뻗는 것이 아닌가?

냉검상은 거의 본능적인 동작으로 쌍장을 뻗었다.

순간,

쩌쩌-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손바닥은 자석과 쇠붙이처럼 찰싹 맞붙어 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냉검상은 자신의 장심을 통해 밀려오는 장강대하와 같은 무서운 경력에 내부가 흔들리고 기혈이 무섭게 들끓는 것을 느껴야 했다.

(우우욱!)

크게 당황한 냉검상은 이제까지 익히기만 하고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옥정기공(玉精奇功)을 끌어올려 공력으로 대항했다.

일반적인 초식과 공력이 어우러진 싸움이 아닌, 내공의 대결로 접어든 것이었다.

이내 두 사람의 발목은 서서히 땅 속으로 박혀들기 시작했고, 육신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주위에는 무서운 기세가 회오리를 일으켜 흙먼지를 말아올렸고, 주위의 바위는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결은 화려하거나 변화 막측하지는 않아도 서로가 치명적인 위험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무림의 고수들은 여간해서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혈발괴인의 손과 부딪치는 순간 공력이 밀려옴을 느낀 냉검상은 공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더욱이 자신이익히기만 하고 그 강함 때문에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옥정기공을 일으켜서도 혈발괴인을 쉽게 이길 수 없는 냉검상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천하의 기인(奇人)은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이 괴물의 내공이 나와 비해 별 차이가 없구나.)

이 순간 기절에서 깨어난 희봉아는 두 사람의 공력 대결을 보면서 경악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세, 세상에...... 이미 백 세가 훨씬 넘은 식인혈마(食人血魔)를 상대로 공력대결을 벌이다니...... 저 사람은 누구인가?)

냉검상의 안색은 점점 핏기를 잃어갔고, 식인혈마의 어깨는 점점 거센 떨림을 일으켰다.

냉검상은 안되겠다 싶은지 옥정기공을 구성으로 끌어올렸다.

찌- 쩡!

마치 거대한 얼음벽이 갈라지는 듯한 음향이 울리면서 냉검상의 두 손은 투명한 옥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팟! 파파팟!

우웅!

주위의 바위가두 사람의 기세에 돌가루를 폭발하듯 터뜨렸고, 공기는 쇠라도 구부릴 듯 무섭게 압축되었다.

"크으으......"

혈발괴인은 더욱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괴로운 듯 안면을 찡그렸다.

그의 전신에서는 비오듯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안면이 무섭게 푸들거렸다.

또한 냉검상에 비해 현격하게 땅 속으로 박혀드는 것으로 보아 서서히 공력에 밀리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었다.

몸의 떨림이 더해지면서 움푹한 혈발괴인의 두 눈이 툭 튀어나왔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짐승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벼락같이 두 손을 밀면서 손바닥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퍼엉!

압축된 공기가폭발하는 음향을 일으키며 냉검상과 혈발괴인은 허리가 꺾어질 듯 휘청거렸다.

그 순간 혈발괴인은 입이 피범벅이 된 채 발딱 허리를 세우면서 그대로 양 손으로 냉검상의 천령개를 쳐내리는 것이었다.

내공의 대결에서 내상을 입더라도 한 순간에 냉검상을 죽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휘청였다 발딱 서는 냉검상의 손에는 어느 새 단창 두 개가 쥐어져 있었고, 두 개의 단창은 서로 교차되면서 무서운 광채를 폭사하고 있었다.

슈슈욱!

혈발괴인은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단창의 광채를 보면서 대경성을 터뜨렸다.

"부, 불사신창(不死神槍)!"

"노괴가 아는 무공도 많구나!"

혈발괴인은 엉겁결에 쌍창을 손으로 잡으면서 극도의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네놈의 이름이 무엇이냐?"

"넌 몰라도 돼! 너는 단지 이 단창에 목이 산적 꿰뚫리듯 뚫린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냉검상은 그대로 혈발괴인의 복부를 걷어찼다.

"으윽......"

혈발괴인은 괴로운 신음성과 함께 실 끊어진 연처럼 나뒹굴었다.

그러나 냉검상은 조금도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쌍창을 풍차처럼 돌리면서 그를 덮쳐갔다.

"카앗! 이 개종자 같은 놈이......"

넘어졌다 발딱일어난 혈발괴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빙글빙글 돌렸는데 두 손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시뻘겋게 변했고, 기이하게도 늘어나듯 손이 커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희봉아의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심해요! 악마의 무공 혈인잠(血人潛)이예요!"

그녀의 말이 아니라도 냉검상은 혈발괴인의 변화를 보면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냉검상은 옥정기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단창을 굳게 잡았다.

그러자 창 끝에서는 오색(五色)의 찬란한 기운이 서광처럼 뻗어나왔고, 그것은 한 줄기의 벼락처럼 혈인잠을 펼쳐오는 혈발괴인에게 무섭게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크윽......"

혈발괴인의 입술을 비집고 괴로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 냉검상의 단창 하나가 괴인의 장심(掌心)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핏물이 단창을 타고 흘러내렸고 혈발괴인은 무섭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 사이를 놓칠세라 냉검상은 왼손에 든 단창으로 혈발괴인의 복부를 깊숙이 쑤셨다.

"크어어......"

혈발괴인은 급살이라도 맞은 듯이 몸을 떨면서 이마에 푸른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입으로 뭉클뭉클 피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이...... 이 새끼가......"

냉검상의 두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혈발괴인을 노려보면서 손바닥에 박힌 단창을 빼내고 그대로 얼굴로 쑤셔박았다.

혈발괴인이 놀라 입을 벌리는 순간 단창은 공교롭게도 그의 입 속으로 박혀 목 뒤를 뚫고 나오는 것이었다.

"끄...... 으...... 으......"

혈발괴의 입에서 가래끓는 소리가 났다.

냉검상은 냉혹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간 두 개의 단창을 그대로 뽑아내었다.

피분수가 솟아오르면서 혈발괴인은 거대한 탑처럼 느릿하게 무너져 내렸다.

피에 젖은 한 쌍의 단창을 쥐고 있는 냉검상의 모습은 이 순간 지옥(地獄)의 전투사처럼 보였다.

피(血)와 죽음을 관장하는 지옥의 전투사......